"스마트폰을 가지고 자유롭게 놀이를 하는 것처럼, 게임하는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즐겁게 합니다. 게임이 즐겁고 재미있다는 의미죠. 하지만 정치계에서, 시민단체에서 불어오는 외풍에 흔들리게 됩니다. 자신이 게임에 대한 가치가 확실하다면 그 외압에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유니티 개발자들을 위한 컨퍼런스 '유나이트 코리아2014'에서 열린 이번 강연은 조금 이색적이었다. 기술 노하우도, 게임 개발 과정도 없었다. 게임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적재산권 전문 법학박사인 김윤명 교수가 '게임프레임 바꾸기, 긍정적으로!' 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 김윤명 교수


게임에 관한 많은 헤게모니 싸움이 있다.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면, 게임의 진정성이 확보될 수 있을까. 이것을 생각해야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하는 움직임에 대해 자존감을 갖고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 김윤명 교수는 말했다.

게임에 대한 부가적인 가치는 중요하다. 게임을 개발해서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할지 생각해야 하고, 회사는 보다 재미있는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의 본질은 아니다. 회사의 본질은 매출을 발생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직원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 하지만 게임 자체가 사회에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만들 게임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김윤명 교수는 "제3자가 생각하는 게임은 어떤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 바다이야이와 같은 사행성 게임물을 흔하게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적어도 게임이 산업 콘텐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 관료들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여기에 추가된 것이 고스톱과 포커류 등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물이다.

또 하나의 개념으로 '중독'을 들었다. 중독은 사실 상당히 부정확한 개념이고, 의학계에서도 확정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게임중독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도 없다. 하지만 한국은 청소년보호법, 게임법, 기본법 등에서 인터넷게임 중독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중독이라는 개념이 게임법에 전반적으로 포함되어버렸다.

"이미 적용된 법은 웬만하면 떼내기 어렵습니다. 추가적인 법을 막아야 하는 겁니다. 게임중독법, 매출 1% 강제징수법 등은 발의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요.

게임법은 게임의 정의를 '오락을 할 수 있는 영상물'로 규정합니다. 그런데 이 오락이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 개념이에요. 같은 게임을 두고도 누구는 재미있고, 누구는 재미없다고 합니다. 게임법에 게임이 포함되는 그 순간 게임은 진흥이 아닌 규제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게임을 정의하는 일은 그렇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 우리는 아직 게임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김윤명 교수는 게임사들이 게임 개발에만 몰두했을 뿐, 문화적 접근은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지금 이런 논란들을 계기로 게임에 대한 문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이전에도 많은 콘텐츠의 초기에는 논란이 있었다. TV와 영화, 심지어 출판물까지. 지금은 모두 당당히 문화의 한 갈래로 자리잡고 있다. "게임 역시 이러한 논란이 끝나면 예술 중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 보호'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오면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청소년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것. 하지만 목적이 좋아도 과정이 좋지 못하다면 어떨까.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수많은 게임규제다.

그런 규제를 통해 과연 게임문화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김윤명 교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문화 성장은 다양성에서 출발합니다. 그 접근을 차단하면 누가 다양한 것을 만들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콘텐츠를 소비할 수밖에 없고, 우리 게임문화는 점점 밑바닥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이 부족했다는 반증이 될 겁니다"

청소년 보호는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가 갖고 있는 헤게모니다. 방송통신, 게임, 보건, 복지 등. 모두 고유 목적에서는 정당성이 있다. 그런데 한데 묶으면 다양한 이중규제가 괴물처럼 다가온다. 숨을 옥죄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을 향한 헤게모니는 어떤 이유에서 발생한 것일까. 김윤명 교수는 크게 네 가지에서 원인을 찾았다. 주류 콘텐츠 산업들의 견제, 언론, 표심과 정치, 마지막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언론은 프레임과 팩트를 의도적으로 왜곡한다. 버지니아 총기난사 사건 당시 많은 언론은 가해자가 FPS 게임을 즐긴 결과 총기를 난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추적해보니 그는 전혀 게임을 하지 않았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우리 사회와 문화는 부모들에게 양육의 환경을 주지 못한다.

"이 모든 본질은 입시 정책에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보다 즐겁고 여유롭게 생활을 누릴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은 없을 겁니다. 제한적인 환경으로 인해 게임에 몰두하게 되는 현실인데, 정부 정책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요."

▲ 인터넷게임 중독의 정의는 굉장히 허술하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런 헤게모니에 게임인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터넷 중독의 개념은 굉장히 모호하다. 김윤명 교수는 "입법자들이 오랜 검토 없이 통과시킨 법"이라고 설명했다. "게임법의 어느 내용도 게임이 왜 중독되는 요인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대중독에 왜 게임이 들어가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지요" 그것이 '규제 괴물'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 개발자의 자존감으로 넘어온다. 텐센트가 글로벌 3대 인터넷 기업으로 등극하는 상황에서 우리 게임의 경쟁력은 힘겹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현재 게임의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다른 분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세계 게임 수출액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개발자들은 자부심을 좀더 가져도 좋을 것이라고 김윤명 교수가 다독였다.

"스스로 묻고 말해야 합니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가치까지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제3자 전문가의 목소리를 빌어 이야기했지만, 그것으로는 먹히지 않아요. 특히 게임사들의 대표와 임원진들이 직접 이야기해야 합니다.

놀이 및 여가 문화로서의 게임문화도 주목해야 합니다. 다양한 장르의 리소스를 모아둔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인 셈이지요. 헌법적 가치로 볼 때 존중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개발자들이 더욱 어깨를 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게임문화에 대한 고민이 적고, 생각도 많이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오바마 정부는 천만 달러를 게임 연구에 지불하는 정책을 폈다. 김윤명 교수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게임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확립시킬 것인지 고민할 것을 마지막으로 제안했다.

"청소년들에게 깨끗한 것만 접하도록 강제하면 가치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양한 경험을 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무조건 차단하지요. 문화 발전이 훼손되는 셈입니다. 개발자들 역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거쳐봤으면 하는 바람이고, 요청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게임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