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지털포럼(Seoul Digital Forum, SDF)의 심화 세션으로 마련된 '게임病, 그리고 사회적 치유'에서 나온 합의점은 '보다 넓은 시각', 그리고 '신중함'이었다. 2시간 반에 걸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데이터 및 연구 결과 제시, 그리고 토론.

솔직히, 한 번쯤은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으면 했다. 게임 자체를 놓고 벌어지는 대립이 아닌, 보다 넓은 관점에서 현상을 보려는 시각. 오늘 이 자리에 오른 사람들 중 대다수가 '큰 틀에서 바라보자'는 관점을 제시했다.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 하지만 게임업계와 그 지지자들은 모든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게임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목소리를 전해왔다. 아이들로 하여금 게임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환경적 요인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읽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도영임 교수는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도영임 교수는 게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게임을 해봤다고 말했다.

실제로 게임 안에서 물건을 팔아보기도 했고, 광물을 캐러 다니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전투를 하기도 했다. 게임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결혼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게임 안에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는 것.

요컨대, 도영임 교수가 제시한 시각은 '게임이라는 것에 어떻게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다.

게임과몰입 중에서도 특히 많은 대립을 낳고 있는 것은 '청소년들의 게임과몰입'이다. 이를 둘러싸고 정부, 게임업계, 학계와 의료계 등을 비롯해 학부모와 게임을 즐기는 당사자들까지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그렇지만 막상 실제 청소년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깊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것이 도영임 교수의 지적이다.


청소년들의 현실.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사망원인 중 1순위는 '자살'이며, 그 이유로 가장 많은 것은 성적과 진학 문제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도영임 교수는 '청소년들이 희망하는 활동'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1위는 '모험'과 '개척활동', 2위는 '과학'과 '정보활동'으로,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는 것이 도 교수의 의견.

물론 이는 통계상으로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실제 게임을 하는 이유는 훨씬 다양하며, 그 가운데 '게임 과몰입'을 유발하는 요인들이 분명 존재한다. 금전적 이득, 즉 현실적인 가치가 발생하기도 하며, 부모의 지나친 감시와 감독이 반발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게임을 적당히 하던 집단'을 '과몰입 집단' 혹은 '과몰입 위험집단'으로 바꿔놓는 원인 중 하나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만큼, 부모 계층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도영임 교수는 "약 200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게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위한 하나의 기회로 보는 그룹부터,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고 최대한 차단하려는 그룹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3.0'. '리터러시'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즉,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기반 기술과 그 흐름을 읽고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도영임 교수는 이를 토대로 게임이 미래 사회의 커뮤니티 방식을 실험하는 하나의 장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 자체의 문제에 주목하기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그것을 바람직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판단의 눈'으로 볼 것인가, '이해의 눈'으로 볼 것인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바라보고,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는 범위와 영역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도 교수는 "무엇 때문에 행복하고 무엇 때문에 불행한지를 깊이 이해하려 함으로써 게임 과몰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나갔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다.


게임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 '이타적 선행'의 전파

"현대인에게 게임이란, '과몰입과 반사회적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일 수도 있고, '정상적인 생활의 건전한 여가활동 중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박주영 교수의 첫 마디다. 게임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며, 양쪽 모두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도박과 같은 중독성을 내재하고 있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사례도 분명 있지만, 사회 활동과 사교성 발휘의 장으로 이용되는 사례도 많이 있다.

박주영 교수는 "협동 플레이 등을 통해 온라인 결속력이 강화되기도 한다"고 말하며,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오프라인 사회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게임 자체가 사회공헌이나 기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온라인에서의 결속력이 오프라인까지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의 김휘강 교수는 '게임의 몰입도와 사회성'을 주제로 한 빅데이터를 제시했다. MMORPG '아이온'의 플레이어 약 1만 명 가량을 대상으로 산출한 통계에 따르면 일주일 평균 플레이 시간은 35시간. 즉, 하루 평균으로 나누면 5시간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 결과를 놓고 '하루 평균 5시간 동안 게임을 한다'고 이야기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휘강 교수는 실제 분포 현황을 함께 체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그래프로 그려진 분포도를 함께 놓고 보면, 대부분의 유저들은 하루 1~2시간 가량 여가활동으로서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균치인 5시간은 장시간 게임을 플레이하는 일부 유저들에 의해 나타난 결과인 것이다.

제시된 또 하나의 화두는 '게임 내 이타적 행위와 선행'이다. RPG류의 게임을 하다보면 초보 유저에게 무언가를 알려준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구체적인 디자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과 협력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손해가 된다. 즉, 합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적절하지 않은 행동임에도 이타주의적 선행이 종종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휘강 교수는 이를 집계해 수치화한 결과를 공개했다. 게임 내의 유저들은 네 번에 한 번 꼴로 자신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과 협력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한, 선행의 혜택을 받은 사람의 80%는 3개월 이내에 모르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다. 이른바 '이타적 행위의 전파' 현상이 게임 내에서 보이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실험을 통한 객관적 데이터 분석으로 긍정적 요소가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부정적인 면만이 너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며 "이러한 것은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게임을 긍정적 여가로 활용하는 사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사회'를 보라. 그리고 성급하게 판단하려 하지 말라

2시간 반에 걸친 짧지 않은 세션. 여러 학계 전문가들이 연단에 올라 각자의 시각과 분석 결과를 내놨다. 서로 다른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공통된 화두가 하나 있었다. 바로 '사회', 즉 주변 환경을 보라는 것.

거의 대부분의 사회 현상은 독자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위의 다른 요소들과 크고 작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게 마련. 성급하게 판단하려 하지 말고, 그 모든 연결고리들을 차근차근 살피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여러 발표의 공통된 내용이었다.

세션의 전체적인 진행을 맡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이동만 원장은 "수많은 의견들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았다"며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의 참여와 의견 제시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세션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