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있어서 2루는 수많은 의미를 가진 상징적인 자리다. 1992년 롯데의 마지막 우승에 큰 공헌을 했던 박정태가 1993년 2루 슬라이딩 도중 발목 복합 골절을 당했고, 그라운드로 돌아오는데 2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고, 수술을 5번이나 받고서도 돌아와 10년 동안 지켜낸 2루였다.

또한, 10년 동안 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팬들 곁을 떠난 임수혁이 쓰러진 곳이 2루였는데, 그 당시 타석에 서 있던 선수가 바로 프로 무대에 턱걸이한 선수, 흔한 국가대표 경력도 없는 그저 그런 선수인 신인 조성환이었다. 그때는 타석에서 굳은 채 갑자기 쓰러진 선배를 바라보고 있던 평범한 한 선수가 롯데를 이끌 주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76년 12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난 조성환은 재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충암고등학교 재학 시절 프로 입단에 대한 희망은 품고 있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대학 진학에 신경을 썼던 조성환은 1994년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한 채 원광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돋보이는 선수였던 조성환은 연습량이 많은 충암고와 원광대에서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1998년 8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8라운드 전체 57위로 롯데에 지명됐다. 냉정하게 자신을 프로팀에 갈 만큼의 기량이 아니었다고 말했었는데, 사실 2차 8순위 정도의 선수라면 구단에서도 크게 기대할 정도의 선수는 아니었다.


“대학시절 국가대표에 뽑히지도 못한 나를 뽑은 팀이 롯데다. 또한 병역문제 때문에 선수생활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을 때 기다려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롯데는 말 그대로 고맙고 감사한 팀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건지 입단 첫해인 1999년 타격 성적이 좋아 1군에 올라올 수 있었는데, 그때는 대수비 요원이 고작이었고, 타석에도 단 한 번밖에 서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롯데의 내야에는 4번 타자 1루수 마해영, 팀의 주장이던 2루수 박정태, 유격수 김민재, 3루수 공필성과 박현승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연도타율경기타수득점안타2타3타홈런루타타점도루볼넷사구삼진병살장타율출루율실책
19990.40025106410181030200.8000.5380
20000.226579315213012745921700.2900.3053
20010.19688922318420261461031630.2830.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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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루수☆52014151419142544424456
2000유격수☆31413131111132548534765
2001유격수☆41417131512144142654334

1군 시절 경기가 끝난 후에도 훈련하는 선배들을 보며 자신도 노력을 통해 주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노력한 조성환은 다시 내려간 2군에서 빠른 발을 살려보라는 우용득 감독의 조언으로 기동력을 키우는 데 집중한 결과 그 해 다시 1군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다시 올라온 1군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조성환. 그 덕분에 중요한 상황에 기회가 왔다. 연장 찬스에서 대타로 출전했지만, 완전히 긴장한 탓에 스탠딩 삼진을 당하게 된다. 삼진을 당하고 돌아오는 조성환에게 김명성 감독이 훈련은 실전에서 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이후로 조성환은 더 적극적인 선수가 됐다고 한다.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기당 한두 번 타석에 서는 것이 고작이었던 조성환은 선배들의 노력하는 모습과 자신의 장점인 빠른 발을 갈고 닦으며 꾸준히 노력했고, 이것은 점차 많은 경기 수와 타석으로 돌아왔다.


"후배들을 세심하게 다독이고, 외국인 선수를 포함한 외부 영입 선수들이 팀에 잘 융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
앞에서 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내 일을 하겠다"


연도타율경기타수득점안타2타3타홈런루타타점도루볼넷사구삼진병살장타율출루율실책
20020.235104255386014007421101874220.2900.30012
20030.307129486731492526196382337125750.4030.36918
20040.25719706184002213841610.3140.3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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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유격수☆42218201619154341495268
20033루수☆64330402740273854547079
20042루수☆42418262026203640345641

특히나 2002년에는 FA를 앞둔 박정태의 부진이 계속되자 조성환은 기회를 잡았고 경기 수에 이어 타석기회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포지션은 비록 계속 변했지만 꾸준한 출장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조성환은 결국 2003년 타율 0.307 149안타 73득점 23도루를 기록하며 데뷔 후 최고의 한 해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2004년 계속 상승할 것만 같았던 그의 야구인생에 문제가 생겼다. 4월 24일 경기 중 손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며 그대로 시즌을 끝마치게 됐던 조성환. 그리고 그해 9월 병역비리 사건이 터졌다. 공소시효를 16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조성환은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변호사의 조언으로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섬으로 들어가 잠적했는데, 검찰이 공소를 제기해 시효를 정지시키면서 도망칠 방법이 사라졌다. 결국, 두려움 때문에 6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했던 조성환은 자수를 선택했고, 처벌과 병역의무를 모두 이행한 후 4년 만인 2008년에야 야구선수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너무도 괴로웠다. 누구에게 쫓긴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게 됐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연도타율경기타수득점안타2타3타홈런루타타점도루볼넷사구삼진병살장타율출루율실책
20080.3271234627915127310214813137118160.4630.38210
20090.294762693579190812236131923370.4540.3416
20100.3361114148313931081945283545880.4690.3903
20110.2431174074599190613636937387110.3340.3109
20120.278103345409614031193352815870.3450.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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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루수☆84735564254433847626080
20082루수☆95745665264533948636181
20092루수☆73840424141383365536571
20102루수☆84841494046363663666960
20112루수☆63529302433274238505662
20122루수☆63625382737264968516752

2008년 신인의 기분으로 야구계에 돌아온 조성환은 공백 기간 동안 멈춰진 몸을 다시 만들고 경기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새로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이런 조성환에게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꾸준히 노력하라고 했으며, 돌아온 김무관 코치와 함께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재기에 성공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조성환의 귀환을 알린 사건은 바로 2008년 4월 25일이라고 할 수 있다. 10회말 3:2로 삼성에 뒤지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 2아웃 1,3루 상황에서 최고의 마무리인 오승환을 상대로 조성환은 끝내기 안타를 기록한다. 2008년 오승환은 1승 1패 39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때 조성환이 안겨준 패배가 시즌 유일한 패배였다.

완벽하게 부활한 조성환은 2008년 타율 0.327(4위), 151안타(3위), 10홈런, 27 2루타(2위), 81타점(7위), 79득점(7위), 31도루(6위)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하고,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또한, 주장이던 정수근이 음주폭행 사건으로 팀에서 이탈하자 새로운 롯데의 주장으로 선임된다. 조성환의 주장 시절 롯데 자이언츠는 8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고, 그 이후로도 조성환의 전성기 시절 동안 항상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게임에서도 골드카드로 출시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주요 능력치와 주력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92 박정태가 10 코스트 골드카드로 새롭게 출시되며 압도적인 능력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주전 2루수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하지만 한 점 차 싸움에서 대주자로 기용한 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메리트라고 할 수 있다.


“가슴에 팀 로고가 있는 이유가 분명 있다.
주장을 할 때 선수들에게 우리가 롯데 자이언츠라는 자부심을 항상 잊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2009년 4월 23일 SK의 투수 채병용의 공에 얼굴을 맞고 수술을 받았던 조성환은 평생 얼굴에 흉터가 남는 것은 물론 시신경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다시 일어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으며, 결국 그라운드로 돌아와 76경기와 3할에 가까운 기록을 올렸다.

그리고 2010년 8월 24일 조성환은 KIA 윤석민의 타구에 다시 한 번 머리를 맞게 된다. "아직도 가끔 상상 속에서 공이 머리로 날아온다. 공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타석 하나하나마다 공포와 싸우면서 들어간다. 싸우지 않으면 타석에 설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고 인터뷰에서 얘기했을 정도로 조성환은 사구의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였고, 부상의 두려움 때문인지 과감하게 2루를 훔치던 주루 플레이는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이겨낸 조성환은 2010년 타율 0.336(3위), 139안타(8위), 31 2루타(1위), 83득점(7위)을 기록하며 두 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연도타율경기타수득점안타2타3타홈런루타타점도루볼넷사구삼진병살장타율출루율실책
20130.240741671540601491231722300.2930.3121
20140.000671000000010210.0000.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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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트송구정신수비주력
20132루수☆42216261917133557366246

사구 후 부상의 후유증 때문인지 2011년부터 멀쩡한 시력에도 불구하고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일이 발생한 조성환은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이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2013년 타격은 점점 나빠졌고 부상은 계속 발목을 잡았다. 2루수의 자리도 정훈이 차지하는 날이 많아졌다. FA 대박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저 팀과 팬을 위해 제대로 된 경기를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아쉬움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우승을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한국시리즈 MVP, 보너스 같은 건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저 저도 먼 훗날 후배들에게 우승할 때의 기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우승하는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그러면 저도 진정한 ‘롯데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팀에서 점점 좁아져 가는 자신의 입지를 보며, 경쟁력이 사라지면 은퇴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조성환. 2014년 5월 15일 LG전에서 대주자로 나오는 자신에게 환호성을 보내주는 팬들을 보며 좋은 기억 속에서 은퇴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한다.

은퇴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은퇴 1경기보다 팀의 시즌이 중요하다며 은퇴경기도 고사한 조성환. 팀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주장에 올랐던 인물이며, 여전히 자이언츠 팬들의 영원한 캡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