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내놓은 차기 카드는 조금 의외였다. 리니지 이후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그리고 이번 지스타 현장에서 첫 선을 보일 리니지 이터널까지. 엔씨소프트의 성장동력은 누가 뭐라 해도 MMORPG라는 이미지가 강하니까. 차라리 레드덕이나 드래곤플라이같이 FPS에서 잔뼈가 굵은 회사들이 내놓은 타이틀이라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프로젝트 혼'. 거대 메카닉을 소재로 한 TPS 게임이다.

물론 첫 선을 보이는만큼, 공개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스타2014 현장에서도 시연 부스는 아예 전무. 그저 짧게 편집된 영상만이 공개될 뿐이다. 하지만 조금은 달랐다. '프로젝트 혼'의 영상은 단지 티저 영상이나 플레이 영상에 국한되어있지 않았다. 엔씨가 프로젝트 혼을 알리기 위해 쓴 방법은 편집한 영상을 4DX 상영관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방식이다.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 기자라는 직업 덕분에 조금 일찍 접해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 혼의 영상. 그 안에서 엿볼 수 있었던 게임의 모습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써 보기 위해 워드패드를 열었다.

[▲프로젝트 혼, 하이라이트 영상]



■ 남자의 로망 - '메카닉'이란 소재가 가지는 장점, 그리고 단점.


'남자의 로망'이라는 단어는 진짜 엄청나게 광범위한 분야에서 쓰인다. 프렌치 메이드와 야릇한 란제리로 이어지는 덕스러운 로망이 있는가 하면 화력덕후의 속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밀리터리에 대한 로망, 그리고 뭔가 엄청나게 강해보이는 자동차에 관한 로망 등등 앞에 '남자의'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거의 남자의 로망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거의 모든 남성의 가슴을 스치는 코드가 바로 '변신 로봇'이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으니, 로봇에 대한 로망도 수정이 가해지긴 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을 쏙 빼다닮은 듯한 기계병기의 시대는 기원전 콜로서스로 시작해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최근 메카닉의 대세는 역시 보이는 근미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디자인이다.

프로젝트 혼 역시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메카닉의 외형은 진짜 그냥 기계덩어리다. 게다가 엄청나게 투박하고 효율적으로 생겼다. 쓸데없는 안테나나 뿔들은 없다. 2족보행병기는 그 효율탓에 제작되고 있지 않은거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제작된다면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 싶을 정도다. 게다가 광선검과 광선 무기로 대표되던 무장도 탄피를 뱉고 그을음을 남기는 화약 병기에서 그쳤다. 미래와 현대를 적절히 잘 어우러낸 모습이다.

▲ 기체 디자인이 엄청 멋지다기보단 '그럴싸'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메카닉의 표현이 얼마나 훌륭한가가 아닌, 메카닉 그 자체가 유저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것인가이다. 메카닉을 소재로 한 게임은 국내만 보아도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TPS나 FPS였다. 하지만 그 중에 성공한 게임이 있느냐 하면 딱히 생각나는 게임이 없다. '메카닉'이라는 요소 자체가 영화나 만화의 소재로는 굉장히 핫할 수 있는 소재이지만, 게임으로 만나는 순간 인간의 확장형밖에 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메카닉은 취향을 굉장히 타는 소재다. 평범한 게임들이 다양한 유저들을 잡아내고, 이후의 운영을 통해 그 수를 조절하게 된다면, 메카닉과 같이 취향을 타는 소재를 가지고 제작된 게임들의 경우 일부 유저는 아주 꽉 잡아둘 수 있을지언정, 또다른 유저층은 반응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다.

▲ 다만 메카닉 자체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건 넘어야 할 숙제.

엔씨소프트의 공개된 온라인 신작은 '리니지 이터널'과 '프로젝트 혼'. 리니지 브랜드를 선호하는 엔씨의 코어 게이머들과 다른 유저층을 노린 것은 뚜렷하게 보이지만, 더 넓은 수준의 유저층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 관건은 연출 - 멀티플레이에서도 극적 연출이 필요하다.


4DX라는 상영방식이 주는 가장 큰 이점은 바로 '연출의 극대화'다. 지금의 문화 흐름에서 비주얼적 '연출'은 영화나 게임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소재다. 같은 폭발 장면이라 하여도 영혼없이 쾅 하고 터지는 폭발, 그리고 폭발과 동시에 클로즈업하는 주인공의 얼굴과 슬로우모션으로 들어가는 카메라의 무빙 등 연출이 가미되어 있는 폭발은 전혀 다르다. 4DX라면 그보다 더할 수 밖에.

프로젝트 혼의 튜토리얼 플레이 연출은 훌륭했다. 헬기에 로프를 감아 내동댕이치는가 하면, 컨테이너를 무기로 삼고 자동차를 방패로 삼는 등 다양한 연출이 포함되어 있었다. 관건은 이 연출과 묘사가 과연 적과 나라는 두 개체 사이에서도 존재하느냐였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PVP에서도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PVP에서의 극적 묘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콜오브듀티' 시리즈는 정해진 스크립트대로 장면과 연출을 배치해놓은 '싱글 플레이'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멀티플레이는 그저 잘 만들어진 FPS 수준에 그쳤었다. 게다가 플레이어간의 피지컬을 겨루는 FPS보다 전투 지속시간이 긴 TPS는 연출의 힘을 더 많이 받는다.

▲ 튜토리얼 영상에서 살펴본 연출은 괜찮은 수준

슈팅 RPG를 지향하는 '프로젝트 혼'이지만 슈팅류 게임은 오픈월드가 아닌, 짜여진 스크립트를 반복하는 구조일 경우 굉장히 쉽게 매너리즘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수명을 연장시켜줄 요소는 엔드 콘텐츠와 PVP일 것이고, 그 중에서도 변수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PVP가 더 중요해질 확률이 크다.

프로젝트 혼이 PC 패키지 싱글 타이틀로 나온다면, 지금까지 공개된 영상에서 보여준 그대로 더 많이 만들어내면 된다. 하지만 프로젝트 혼의 지향점은 온라인이 아니던가. 사람과 사람 간의 대결에서도 플레이어의 눈요기를 책임질만한 파격적 연출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프로젝트 혼은 그저 메카닉의 껍질을 쓴 TPS중 하나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성공한 사례는 있다. 에픽 게임즈의 '기어즈오브워'는 멀티플레이에서도 엄청나게 역동적인 움직임과 숨막히는 연출을 보여준다.

▲ 그냥 뛰는것도 박진감 넘치는 연출이 되었던 '기어즈오브워'

'싱글 플레이' 장면에서 보여준 연출은 나쁘지 않았다. 아직 덜 다듬어진 것을 감안하면 훌륭하게 만들어질수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 베이스의 게임에서 정해진 스크립트대로 진행하는 단계는 그저 튜토리얼에 불과하다. 이 역동적인 묘사들을 멀티플레이에서 어떻게 녹여내는가가 훗날 공개될 다음 콘텐츠에서 확인해 볼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차세대 성장동력 - '엔씨'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굴릴 엔진의 하나가 될까?


상기했듯, 드러난 것은 얼마 없었다. 싱글 플레이 튜토리얼 영상과 짧은 대전 화면 영상만으로 게임을 판별하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다. 대략적인 유추는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다만 '프로젝트 혼'이 엔씨소프트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만했다. '엑스틸'로 이미 메카물에 발을 디뎌본 엔씨였지만, 프로젝트 혼은 엑스틸과는 상당히 다른 게임이었고, 개발중임에도 나름 훌륭한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았다. 굉장히 많은 게임에 사용된 '언리얼3'엔진이 아닌, '언리얼4'엔진을 사용했지만, 아직 그 엔진의 힘을 전부 살린 것 같지는 않았다. 더불어 피격감이나 직접적인 전투 부분에서도 미숙한 부분이 보였다. 물론 흠을 잡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프로젝트 혼은 이제 첫 선을 보인 갈 길이 먼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언리얼4 엔진의 경우 아직까지 표준으로 삼을만한 작품이 등장하지 않았기에 개발 자체도 상당히 까다로울 것이다.

함께 영상을 관람한 기자들의 의견 역시 상당 부분 엇갈렸다. 굉장히 좋다는 감상평을 말하는 기자도 있었는가 하면, 조금은 생각했던 것과 거리가 멀었다고 말하는 기자도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개발중'이라는 견장을 찬 것을 감안하고,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는 모습만으로 판단을 해보자면 상당히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 아직은 건설중...

하지만 언제까지나 개발중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을 수는 없다. 객관적으로 볼때 엔씨소프트의 현 상황은 전성기에 비해 많이 어두운 것이 사실이니까. 블레이드앤소울 이후 해외 성적 부진과 신작의 부재로 주행능력이 급감한 엔씨소프트라는 자동차가 이제는 새 엔진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그리고 이미 엔진은 준비되었다. '리니지 이터널'과 '프로젝트 혼'의 쌍발 엔진. 이 두 성장동력이 유저의 호응이라는 연료를 태우며 힘차게 돌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노력과 피드백이 필요할 것이다. 게이머이자 기자인 나도 궁금해진다. 엔씨는 다시 전성기때의 속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직 몇 년은 더 기다려야 결과를 알 수 있을 테니, 마음에 여유를 갖고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