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화 엔진'이라고 하면 3~4개 정도의 이름이 동시에 거론됐었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판도는 변했다.

만약 지금 상용화 엔진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을 꼽으라면 분명 그때와는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다. 게임 시장의 트렌드가 변하면서 개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엔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건 당연한 수순이요, 흐름이다.

언리얼 엔진으로 알려진 에픽게임스는 올해 초 '모두의 언리얼 엔진4'를 표방하면서 변화의 바람에 뛰어들었다. 월 정액제라는 파격적인 방식을 도입하면서 개인 개발자나 소규모 개발자들도 언리얼 엔진4를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은 분명 주목할만한 도전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도전의 길은 과연 합당했을까? 지스타2014에 출전한 에픽게임스코리아의 부스에서 박성철 지사장을 만나 현재 성적에 대한 자평을 들어보았다.

에픽게임스 코리아 박성철 지사장

이번 지스타2014에 언리얼 엔진4로 개발 중인 스튜디오지나인의 '히어로즈 제네시스'를 함께 가지고 출전했다. 언리얼 엔진 기반의 고퀄리티 모바일 게임이 주목받을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수 있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나?

- 완성된 버전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히어로즈 제네시스'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다른 엔진을 쓰고 있었다. 그게 한 4개월 정도 전인데, 그때부터 언리얼 엔진4를 쓰기 시작해 이번 지스타에 플레이 가능한 시연 버전을 가지고 왔더라.

이번 지스타에서 '히어로즈 제네시스' 외에 언리얼 엔진4로 만든 게임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부스로 슬며시 찾아와서 멤버십 라이선스로 만들었다며 게임을 보여주는 분들이 꽤 있었다. 흔히 한국에는 인디문화가 덜 발달했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봤다.

언리얼 엔진4 멤버십을 시행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효과가 빨리 나타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본사에서도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이다.


'히어로즈 제네시스'와 협력 부스 형식으로 출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스튜디오지나인의 경우 이번 협력 부스를 위해 먼저 찾아와 진행한 경우다. 다른 개발사 분들도 사전에 연락을 많이 주셨다면 아마 에픽게임즈 부스의 포맷 자체를 바꿔서 출전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지스타에 부스를 차리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간접적으로나마 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협력 부스로 출전하게 됐다. 언리얼 엔진4를 믿고 사용해주신 분들에게 앞으로도 보다 실질적인 지원을 해드리고자 한다.


멤버십 라이선스의 도입과 함께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는 개발사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엔진이 무겁다는 이미지는 남아있는 듯하다.

-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MS워드와 메모장은 모두 텍스트 파일을 출력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예전에 수천 줄로 이루어진 문서를 메모장으로 열었던 적이 있는데, 그냥 텍스트 파일임에도 불구하고 스크롤이 버벅이더라. 같은 파일을 워드로 열었을 때는 부드럽게 잘 볼 수 있었다.

두 소프트웨어를 프로그램적인 측면에서 보면, 당연히 MS워드가 메모장보다 훨씬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언리얼 엔진4에 대한 이미지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기능이 많고 툴 자체가 무거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물까지 무겁게 나오지는 않는다. 작업 자체에 요구되는 사양은 높을 수 있지만, 그 결과물까지 무조건 고사양으로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거다. MS워드가 무거운 소프트웨어라고 해서 그것으로 작성한 문서가 무겁게 나오라는 법이 없듯이.

"언리얼 엔진은 무거워"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 중에도 실제 엔진을 써본 뒤에 갈아타는 사례가 꽤 있다.


멤버십 라이선스 정책을 도입하게 된 것은 분명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이러한 정책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모바일 게임 분야의 성장과 함께 시장 판도가 바뀐 것도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 과거 한국의 게임 비즈니스는 콘솔이나 PC패키지를 파는 것이 주를 이뤘다. 온라인 게임의 태동과 F2P 방식이 도입되면서 비즈니스 모델이 대폭 바뀌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에 비해 시장이 훨씬 커지지 않았나. 멤버십 라이선스 역시 이러한 변화로부터 착안해 만든 정책이다.

시기상으로는 모바일 시장의 성장세를 보고 정했다기보다는 그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다만 이 시점에 도입해야한다고 본사 쪽에 좀 더 강력하게 피력한 것은 맞다. 온라인 게임의 경우 출시한 뒤에도 컨텐츠를 붙여나가지 않나. 엔진도 그런 식으로 서비스되어야 한다고 어필했다. 실제로 언리얼 엔진4의 멤버십 라이선스를 선보인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대여섯 번 정도의 무료 업데이트를 제공한 바 있다.

하드웨어 성능의 발전 속도는 무척 빠르다. 이런 환경에서는 언리얼 엔진처럼 저성능부터 고성능까지 폭넓게 커버할 수 있는 쪽이 유리하다고 본다. 그만큼 앞으로 해나갈 수 있는 것들도 많다고 생각하고.

에픽게임스 본사의 정책을 이야기하는데 도움을 준
제이 윌버 부사장

한때 온라인 게임 분야의 신규 개발이 잠잠했지만 최근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 지스타에서만 해도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한 국산 온라인 게임들이 몇몇 출전하기도 했고. 이들의 개발현황도 접해봤을 듯한데, 소감이 어떤지?

- '로스트아크' 같은 경우는 2012년 4월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트라이포드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해 초기 버전을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내놓은 영상들을 보니 굉장히 개발력이 뛰어난 팀인 듯하다. 우리도 이렇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운데, 스마일게이트 쪽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중 콤보도 잘 되고 액션성이 굉장히 뛰어나다. 한국 지사 뿐만 아니라 본사의 팀 스위니 대표도 로스트아크의 영상을 보고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더라.

'프로젝트 혼'의 경우, 언리얼 엔진4 프로젝트 중 공식적인 석상에서 대중들에게 선보인 첫 번째 사레다. 물론 실제 출시 시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공개된 시점으로는 가장 먼저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언리얼 엔진4에 대해 많은 피드백을 주고 있고, 그것은 엔진을 보완해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들의 도전정신이나 실험정신이 남다르다는 것을 종종 느끼고 있다. 확대된 시장으로부터 더 많은 피드백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언리얼 엔진4를 더욱 완벽하게 다듬어나가고자 한다.


에픽게임즈 내부에서 현재 역량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 최고의 제품 서비스로 최상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의 만족도를 최대화하는 것에 있다. 여기서 고객이라 함은 엔진을 사용하는 개발자는 물론 에픽게임즈가 개발한 게임을 좋아하시는 게이머 분들 모두를 뜻한다.

또한, 에픽게임즈 한국 지사에서는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수많은 해외기업들 중 항상 모범이 되는 회사가 되도록 할 것이다. 본사가 있는 미국과 차별하지 않는 가격 정책, 미국 현지보다 더 뛰어난 기술지원 정책 및 프로그램, 세미나와 더불어 항상 언리얼 엔진의 개발방향이 국내 개발사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할 것이다.


국내 개발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 함은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

- 개발사들이 게임을 만들고 출시할 때 들어가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언리얼 엔진 사용 계약을 체결하면 엔진의 소스코드를 함께 제공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엔진의 소스코드가 없다면 우리 엔진을 사용해 만든 게임들은 서비스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비스 도중 생긴 문제가 엔진 단위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해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니 말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만약 에픽게임즈가 문을 닫게 되더라도 소스코드가 있기 때문에 개발사 자체적으로 문제점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멤버십 라이선스를 시행한 뒤로는 음료수 몇 잔, 식사 한두 끼 정도의 가격으로도 엔진을 사용할 수 있다. 부담없는 가격으로 엔진을 사용하도록 하고, 나중에 큰 성공을 거둔다면 그 수익을 조금 돌려받는 구조의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엔진이든 게임이든 상관없이 에픽게임즈라는 이름을 믿고 제품을 이용해주는 분들이라면 최고의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앞으로 에픽게임즈와 언리얼 엔진의 발전 방향 혹은 청사진을 듣고 싶다.

- 올해 지스타에서는 PC온라인의 부활 신호탄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PC온라인 게임들이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앞으로의 트렌드는 PC일지, 모바일일지, 아니면 또다른 어떤 것일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개발자로서도, 혹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개발사로서도, 하나의 엔진이 다양한 플랫폼을 아우를 수 있다면 선호하게 되지 않을까.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하든 그때그때 적응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PC온라인이나 콘솔 쪽에서는 메이저급 회사들이 언리얼 엔진 선택을 망설이지 않고 있다. 주요 타이틀을 개발함에 있어 주저 없이 언리얼 엔진을 선택하는 경향이 꽤 오래됐다. 하지만 모바일 쪽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책의 변화, 엔진 사용의 용이성 등을 대폭 변경한 '모두의 언리얼 엔진4' 출시 이후로 이런 상황은 많이 바뀌고 있다. 6개월 가량 사이에 국내에서만 수천 명의 개발자가 언리얼 엔진4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번 지스타에 부스를 운영하면서 그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소규모 개발사에서 플레이 가능한 작업 결과물을 가져와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아, 모두의 언리얼 엔진4를 출시한 것이 이런 변화를 만들고 있구나' 싶어서 감동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모바일 쪽에서도 언리얼 엔진이 PC에서만큼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에픽게임즈의 가장 큰 목표다. 지켜봐주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