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다. 떠들썩한 소문이나 큰 기대에 비해 실속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이 어울리는 상품으로 요즘 유행하는 것이 '질소과자'다. 질과 양 모두 만족시켜줄 것 같은 포장지 속의 빈약한 과자를 발견하게 되면서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들어있었다'는 자조적인 표현마저 나오고 있다.


맛집인 줄 알고 방문했더니 맛도 서비스도 별로였을 때, 할인 이벤트라고 갔더니 음식량을 적게 내줄 때 등, 이 시대 소비자는 실상과 다른 광고, 마케팅을 마주치며 분노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블레이드&소울(이하 블소) 유저들은 최근 또 한 번의 분노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3중 과금'이라는 별호마저 생긴 블소 이용권 개편 때문이다.


▲ 혜택,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게만 들리는 신규 이용권



시간순으로 가보자. 블소는 지난 11월 7일과 12일에 영상을 공개하며 '블소에 새로운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특히 12일에 공개 된 영상을 통해서 N샵이 개편될 것이라 언급했는데, 특이하게 실제 블소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영상의 내용으로 캐릭터 제한이 사라지고, 원하는 기간과 혜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보석과 같이 한 캐릭터에게만 줄 수 있는 추가 보상이 아닌, 현재 중국 블소인 검령에 적용된 것처럼 전체 캐릭터에게 적용되는 버프 혜택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 힘이 실렸다.


영상의 내용은 희망찼다. 블소 비무제: 용쟁호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N샵 개편 업데이트와 관련된 질문에 '너무 좋다'며 기뻐했다.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인터뷰 형식의 영상에 담겨있었다.


마침내 11월 19일, 예고했던 변화의 날이 왔다. 예상했던대로 이용권 구매 시의 혜택은 블소 내 캐릭터에게 적용되는 버프였다. 기본 제공 한 개에 선택 다섯 개까지 총 여섯 종류의 추가 버프가 생겼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선택형 버프 다섯 개에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던 것.


이용권 가격은 변함이 없는데 추가 버프를 받으려면, 돈을 더 내야 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 이용권을 선택하면 구매할 버프를 추가하는 메뉴로 이동된다


▲ 기존에 캐시템을 별도 판매하고 있었기에, 이용권, 캐시템, 버프의 3중과금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이용권은 게임을 즐기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다. 이에 대한 반감은 없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기초적인 수단에 '혜택'이라는 이름으로 추가적인 과금 서비스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물론 버프는 '선택'의 영역이다. 버프를 추가 결제하지 않아도 플레이는 가능하다. 이미 블소는 아이템샵을 통해 부적, 망치, 이용권, 열쇠, 의복 등 캐시 아이템을 별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추가 과금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버프의 성능이다. 전투(공격력 10, 치명타 피해량 10%, 방어력 200), 성장(전투 경험치 100% 증가), 편의(원거리 비룡공상 이용 기능), 편의(운기조식 시간 5초 감소), 외형(경공 이펙트 추가) 버프는 무엇하나 나쁜 게 없다. 다 좋다. 특히 전투와 성장 버프는 PVE나 PVP에서의 전투 능력치 및 캐릭터 성장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사지 않으면 손해로 느껴질 정도다.


자신의 능력치만 상승하는 부분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던전은 파티 플레이가 필수다. 그리고 난이도가 높은 던전의 경우 파티원의 최저 능력치를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커트라인이 존재하는 셈이다.


기존까지는 아이템에 의한 커트라인이 제시되었지만 고난이도 던전이나 4인 모드의 경우에는 버프에 의한 커트라인까지 등장할 수 있다. 버프를 구매하지 않았다면 파티에 참가할 수도 없는 슬픈 상황이 그려진다. 상대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PVP에서 치명 및 치명타 피해량 증가, 방어력 증가 버프의 효과는 더 말 할 필요가 없다.


가격도 부담스러운 요소다. 30일의 경우 이용권 23,000원에 버프를 모두 추가 구매할 경우 26,100원를 더해 총 49,100원을 결제해야 한다. 90일은 이용권 69,000원에 모든 버프 78,300원을 더해 총 147,300원이 필요하다. 버프를 모두 더한 90일 이용권은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180일 리미티드 이용권과 비등한 가격이다.


▲ 버프 유무에 의한 새로운 파티 초대 커트라인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용권 판매의 구조적 문제도 있다.


버프를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도 버프를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무제한 이용권' 결제를 해야 한다. 이용권을 구매하지 않고도 게임을 즐기는 유저는 많다. PC방 유저가 여기 해당된다. PC방에서 주로 게임을 하기 때문에 이용권을 살 필요가 없었던 PC방 유저들은 버프 구매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상황이다. PC방은 전용 아이템 사용 및 한가맹 요리 등 별도의 혜택이 존재했지만 새롭게 추가 된 버프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학생이나 직장인 중에서는 30시간씩 결제하여 한 달 이용권보다는 저렴하게 자신의 여가 시간동안 알차게 블소를 즐기는 유저들도 있다. 하지만 30시간의 '정량제 이용권' 역시 추가 구성상품을 구매할 수 없게 되어있다. 버프를 받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30일이나 90일의 무제한 이용권을 결제해야 한다.


PC방 유저는 어떻게 해야할까. 집에서는 블소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버프 때문에 이용권을 결제하고 PC방에 가서 접속해야 하는 것인지. 현 상황에서 명확한 대안도 설명도 없다.


며칠 전에 끝난 비무제: 용쟁호투 예선에서는 3개월 무료 이용권이 관람객에게, 결승에서는 최초 입장객에게 평생 무료 이용권이라는 큰 선물이 주어졌다. 선물로 지급된 이용권에는 버프가 포함되어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평생 무료 이용권을 받았더라도, 다시 이용권을 결제해야 하는 것일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 무료 이용권을 받아도 '버프도 들어있을까?' 생각해야 하는 현실



이런 현실에 대해 사전에 명확하게 안내하지 않았다는 것도 화를 키웠다. 사전 영상은 질소 과자 과대 포장 쯤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N샵 개편을 예고하는 영상을 요약하면 '새로운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었다.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지만, 기대도 컸다. 영상에는 실제 블소 유저들이 "그러면 정말 좋죠", '아마 유저들이 많이 돌아올 걸요" 등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신뢰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상에 나와서 대답하는 유저들은 우리랑 같은 생각을 하며 블소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아니었나.


하지만 개편된 N샵의 실제 내용이 공개된 후, 부풀어올랐던 기대감은 급히 배신감으로 변했다. 화살은 인터뷰를 한 유저들에게도 돌아갔다. 어떻게 바뀔지 미리 들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냐는 비난이었다. 순수한 유저가 아닐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답변 실수일까? 악마의 편집일까? 의견 대립도 이어졌다.


결국 영상에서 인터뷰를 했던 한 유저가 글을 올리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편집된 영상이 이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해명글에서 해당 유저는 "이용권에 추가적으로 무언가를 더 준다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완전 좋죠!'라고 답했다며, 19일 업데이트 내용은 "들은 적도 없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N샵 업데이트 당일에는 인터뷰 대상자 중 한 명이 직접 글을 올리기도 했다


▲ 논란이 일자 사전 안내로 올라왔던 영상 두 개는 삭제되었다


그러나 블소 유저들의 분개하는 지점이 단순히 이용권 개편 때문만은 아니다. 블소라는 게임이 이제까지 걸어왔던 길이 부담을 높이는 방향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이템 2.0 시스템은 상상 이상의 재료와 금화를 필요로 한다. 계속해서 제한이 풀리고 있는 홍문/마도 레벨업은 끊임 없는 사냥을 필요로 한다. 게임 내 재화 획득, 레벨업 스트레스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는 것이 현재 블소의 상황인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바로 이 스트레스가 새롭게 추가된 버프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템 2.0 때문에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기 힘들면 전투(공격력 10, 치명타 피해량 10%, 방어력 200) 버프를 받아서 부족한 능력을 채울 수 있다. 홍문/마도 레벨업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드는 것 같다면 성장(전투 경험치 100% 증가) 버프를 사용하면 된다.


게임 콘텐츠의 답답함을 해결하는 방법이 새로운 업데이트나 시스템 개편 혹은 다른 콘텐츠의 추가가 아니라 '과금' 이라는 점에서 이번 블소의 요금제 개편은 더 큰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캐릭터 능력치 상승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과금이 아니라, 성장 시스템을 손 보면 된다. 사냥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싶었으면 획득 경험치를 증가시켜주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추가로 돈을 더 써야 한다.


▲ 11월 12일(수)에 올라왔던 사전 안내, 누가 이걸 보고 지금의 N샵을 예상했을까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번 개편이 게임사로써는 필요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유저들의 화난 목소리와는 별개로, 추가 버프를 구매하는 유저들의 수가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블소의 매출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단기적인 매출 증대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떻겠냐는 점이다. 접속자 수, 아이템 판매 수, 일정 기간별 이익 등은 수치화가 가능하여 언제든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저와의 신뢰는 수치화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지난 주 비무제: 용쟁호투 결승전 취재를 위해 영화의 전당을 방문했다. 경기가 시작 되기 몇 시간 전부터 경기장 밖에서는 블소 마스코트로 활약하고 있는 '불소'와 특정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포즈는 운기조식, 묵사발 등 쪽지를 뽑아서 랜덤하게 결정된다. 그런데 간혹 지정된 포즈를 취하기 전 '불소'를 때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관람객이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긴 했지만, '쌓여있는 불만을 표현할 곳이 그곳 뿐인가'라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이용권 개편이 있기 전까지만해도 블소에 대한 반응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긴 했지만 깔끔하게 정리되는 옷장도 추가되었고, 신규 직업 주술사, 백청산맥 리뉴얼 등의 업데이트는 기대감을 품게했다. 멋진 경기를 볼 수 있었던 비무제: 용쟁호투 대회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용권 개편이 더 아쉬울지도 모른다. 유저들의 의견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다면, 유저들의 편의에 조금만 더 초점을 맞춰 변경했다면, 블소를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이들은 신뢰라는 이름의 더 큰 박수를 보내주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