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도타2에 존재하는 영웅은 109명이다. 여러 메타가 돌고 도는 동안 어떤 영웅은 1티어에 군림하는 반면, 어떤 영웅은 최하위 티어에 머물면서 낮은 픽률을 선보이기도 한다. 처음에 기자는 어떻게 이 최하위 티어 영웅들을 조명하면서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란 논지로 접근할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위 티어의 영웅들은 성능이 나빠서 '못' 나오는 게 아니라 단지 현 메타와는 맞지 않아서 '안'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단 한 번의 선택도 받지 못한 기술단을 주제로 기사를 쓰려고도 했으나, 그마저도 VG의 '블랙'이 공식전에서 기술단을 꺼내 기자를 부들부들하게 만들었다. 이에 기자는 생각을 바꿔, 오히려 최근 '핫한' 영웅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기로 했다.

하라는 업무는 안하고 눈칫밥을 먹으며 최근 있었던 스타래더 전 경기 리플레이를 뒤적거렸다. 첫 기사에 써먹을 주인공을 찾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삐가 풀리다 못해 망나니 수준으로 날뛰는 놈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그 놈'은 불과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프로 경기에서 1번 캐리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는데 스타래더에서는 밴 아니면 픽 수준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등장 경기의 승률까지 좋은데다 평균 KDA까지 높았으니 이 얼마나 최적의 대상이란 말인가!

▲ 첫 주인공답게 한국어 버전 영웅 선택창에서도 첫 번째다.


그 대상은 바로 가면무사였다. 최근까지는 유령의 홀에 너무 쉽게 카운터 당하고 후반에는 힘이 빠진다는 인식이 강해 1번 캐리로는 잘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약간의 버프와 프로들의 계속된 연구 덕분에 가면무사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뻗쳤으니 바로 광기의 가면을 활용한 운영이었다.

광기의 가면을 올린 가면무사의 힘은 특유의 초반 폭발력에서 나온다. 가면무사는 가장 높은 확률의 치명타 스킬을 가지고 있고 기본 공격속도도 도타2에서 제일 빠르다. 덕분에 공격력이 뒷받침되고 상대에게 붙을수만 있다면 이론상 그 타이밍에 가면무사를 이길 수 있는 영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핵심 아이템인 위상변화 장화와 광기의 가면이 굉장히 저렴한 초반 아이템이라 갖추기도 쉽다. 두 아이템 모두 사용효과로 이동속도를 올려주기 때문에 가면무사가 적에게 달려들기도 쉽게 만들어주니 금상첨화. 특히 광기의 가면은 안 그래도 빠른 가면무사의 공격속도를 미친듯이 증폭시켜주고 추가 이동속도까지 부여해주니 이보다 더 완벽하게 멋진 아이템이 어디 있단 말인가?

▲ 평타 3방에 명을 달리하는 고대영혼. 블마 크리 세 방에 눕던 데나 짤이 떠오른다.


초반에 522의 이동속도로 뛰어와 영웅을 무 썰듯이 썰어버리는 가면무사의 화력은 파도사냥꾼급 극한 맷집이 아니라면 버틸 수가 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초반에 본 이득으로 계속 스노우볼을 굴려 경기를 빠르게 끝내는 것이 가면무사 운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번 스타래더 시즌11에서 가면무사로 승리를 거둔 팀의 경기는 경기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광기의 가면 가면무사가 좋다는 것은 이미 대회를 통해 입증이 됐다. 하지만 여기서 기자가 아무리 가면무사의 강점, 약점이라던가 운영법, 카운터를 이러쿵 저러쿵 설명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그래서 님 티어가?"와 같은 반응일 터.

이에 기자는 현직 프로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스타래더에서 가면무사를 꺼내 굉장히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MVP 피닉스의 '포렙' 이상돈과 짧게 대화를 나눠보았다.

▲ 실력자의 의견에 묻어가는 것만큼 편한 게 또 없지!





Q. 스타래더 후 피곤할텐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자기 소개를 한 번 해 주시죠.

팀에서 가장 못하는 오프레이너 담당 '포렙'입니다(웃음).


Q. 최근 광기의 가면 가면무사가 유행하고 있죠.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얘기가 많은데 이런 형태의 가면무사는 장점이 뭔가요?

6레벨이 됐을 때 Q스킬과 궁극기를 동시에 쓰지는 못하지만 광기의 가면과 궁극기 콤보로 암살을 하기가 쉬워요. 궁극기가 쿨타임일 때는 위상변화 장화, 광기의 가면, 벌목 도끼만으로도 고대 크립을 아주 쉽게 가져갈 수도 있고요. 10분부터 20분까지 고대 크립을 계속 가져가면 스노우볼이 굉장히 커져요.

▲ 가면무사의 값싼 코어 아이템들.


Q. 가면무사의 대세 템트리가 선 아가님에서 광기의 가면으로 바뀌었어요. 이유가 뭘까요?

일단 광기의 가면의 가격이 100원 줄었죠. 거기에 가면무사의 민첩도 6이 올라서 초반 맞싸움에서 너무 강력해요. 사실 저는 용기의 메달을 잘 가지 않지만 대부분 유저들은 광기의 가면과 용기의 메달을 쓰고 궁극기를 써요. 저는 고대 크립 사냥이나 빠른 정글링에 조금 더 포커스를 두는 편이라 용기의 메달은 보통 생략하고요. 광기의 가면이 있으면 암살, 정글링 뭘 선택해도 편해지기 때문에 첫 아이템으로 많이 가는 것 같아요.


Q. 그럼 가면무사를 막으려면 어떤 영웅이나 조합, 운영이 필요할까요?

제가 랭크 게임에서 6900점까지 올리는 동안 선픽으로 가면무사를 가져가는 '저거넛 피커'들이 많아요. 물론 저도 그 중 하나지만...(웃음) 만약 상대방이 가져가면 오프레인에 도끼전사를 보내 카운터를 치거나 늑대인간, 모플링으로 맞받아쳐요.

특히 늑대인간은 네크로노미콘과 늑대까지 소환해서 달려들기 때문에 가면무사 입장에서 굉장히 난처해요. Q스킬을 쓰고 포탈을 타서 도망이라도 가야하는데, 용기의 메달이 있는 늑대인간한테는 그 사이에 녹는 일도 많고요.

운영으로 따지자면 치유 와드를 제거하기 쉬운 영웅, 혹은 초반에 밀어붙이거나 다같이 몰려 다니면서 한타나 푸쉬를 겸비하는 조합을 쓰면 좋아요.

▲ 나비를 끝장낸 최후의 트리플 킬

Q. 최근 대회에서 가면무사가 거의 밴 아니면 픽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로 현재 가면무사가 OP인가요?

그렇게까지 OP는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만타 도끼가 없는 상태에서 위상변화 장화와 광기의 가면을 갔는데 상대방에 제우스와 하늘분노 마법사가 있으면 체력 900짜리인 가면무사는 1초도 안 걸리고 지워지거든요. 매 판 상황에 따라 파밍에 포커스를 둘지, 싸우는 데 포커스를 둘지 결정해야죠.


Q. 스타래더에서는 '마치' 박태원이 한 번, 본인이 한 번 썼어요. 타 팀에서는 보통 1번캐리에게만 시키는 가면무사를 특이하게 오프레이너가 썼는데 미리 준비된 카드였나요?

원래는 제가 자신 있어서 쓰려고 했어요. 물론 '마치'형도 자신있어 했는데 아무래도 포지션 때문에 갈렸죠. 오프레이너로 썼던 이유는 VG의 'iceiceice'가 오프 가면무사를 썼던 것이 인상 깊어서 괜찮겠다 싶었어요.


Q. 그렇다면 '마치'와 본인 중 누가 가면무사를 더 잘 하나요?

(웃음)제가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치유 와드 컨트롤은 우리 팀에서 제가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가면무사에 대한 팁을 주자면 어떤게 있을까요? 아니면 하고 싶은 말 아무거나 좋아요.

가면무사는 캐리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슬라크같은 교전 위주의 캐리로 승부하려고 할 때 역으로 맞레인을 가서 레인을 터뜨리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굳이 치명타 선 마스터만 고집할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Q스킬을 더 올려도 괜찮고요. 초반엔 맹독 오브도 꽤 좋고, 상대가 유령의 홀이 나오면 분산의 검은 필수죠.

무엇보다도 치유 와드를 잘 살리면서 싸워야 안정적인 후반을 도모할 수 있어요. 한국 유저분들이 해외에서 사용되는 강력한 메타들을 빨리 흡수해서 다같이 파이팅 했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BTS 해설인 데이비드 파커가 우리를 참 좋아해주는데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어요(웃음).


※3줄요약은 어디에?
- 광기의 가면이 나온다고 무적은 아니다! 파밍을 할 것인지 싸움에 참여할 것인지 잘 살필 것.
- 가면무사를 막으려면 푸쉬 메타나 5인도타를 해야...
- '포렙'은 '마치'보다 가면무사를 잘한다.




가면무사에 대해서는 이상돈 역시 초반에 힘을 줘서 찍어누르는 영웅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가면무사를 잡고도 경기를 제 때 끝내지 못해 힘빠진 후반을 걱정하는 기자와 달리 이상돈은 빠르게 스노우볼을 굴려 경기를 끝내면 된다고 한다. 역시 mmr이 빛이요 진리인가보다.

사실 기사를 쓰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이미 가면무사가 좋은 건 다 알려진 사실이다. 오히려 너무 강한 탓에 방어력과 궁극기 사거리 감소라는 너프까지 당한 마당에 이제와서 "이놈이 사실 굉장한 놈이에요!"라며 반박자 느린 뉴스를 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가면무사로 플레이를 해보니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보기엔 고삐가 풀렸어도 남이 보기엔 족쇄가 채워졌다고 생각할만한 영웅도 있을 터. 무조건 이 영웅이 핫하다는 정의를 내리긴 힘들지만 도타2를 플레이하는 많은 유저들의 승률 상승을 위해 최근의 트렌드를 소개하자는 취지의 기획. 두 번째 만남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타2의 대회가 남아있는 이상 '핫'한 영웅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고, '영웅본색'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