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사칙연산으로 계산할 수 있다면 더하기나 빼기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지금까지 가져왔던 좋은 감정이 얼마나 크다 한들, 오해가 쌓이고 태도가 변하는 순간, 호의와 신뢰의 감정은 급속도로 나눗셈이 되어버린다.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다 한들 이미 나뉜 감정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기대감 역시 감정의 일부다. 구글 매출순위 상위 10위 터줏대감인 넷마블은 지난 7월부터 게이머들에게 '레이븐'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다. 홍보영상에선 보여준 뛰어난 그래픽과 타격감은 기대감을 품기에 충분했다. 이는 50만 명에 달하는 사전예약자들로 확인됐다.

지난달 20일부터 4일간 진행된 사전 테스트에서는 15만 명가량의 이용자가 참여해 일일사용자(DAU) 10만 명 이상, 잔존율 80% 등 성과를 냈다. CBT 데이터를 토대로 '블레이드'와 '영웅'이 양분하고 있는 액션 RPG 시장에서 승부를 겨루기 위해 많은 부분을 고민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 결과 '레이븐'은 구글플레이, 애플 앱스토어 양대 마켓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정식서비스를 시작한 지 일주일. 대작으로서 유저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며 흥행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레이븐'에 대한 단순 호기심이었는지가 판가름 날 시기다. 좋은 감정은 곱셈이 되고 실망스러운 감정은 나눗셈이 된다. '레이븐'에 대한 감정이 앞으로 배가 될지 반이 될지 키워드로 '레이븐'을 살펴봤다.




[네이버 그리고 탈카카오]

넷마블은 그동안 '세븐나이츠', '몬스터길들이기', '모두의마블' 등 카카오 플랫폼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봤다. 각 게임을 엮는 크로스 프로모션을 카카오톡 플랫폼으로 연결, 신규 유저 모객 및 바이럴 마케팅에 이용했다. 지금까지 '넷마블'은 3,700만 명 이상에 달하는 카카오톡 이용자 기반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반면 '레이븐'은 카카오 플랫폼을 택하지 않고 국내 최대 포탈 네이버와 공동 마케팅을 펼친다. '레이븐'은 네이버 아이디와 비밀번호만으로도 게임에 로그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페이스북 아이디를 통한 로그인으로 이용자의 소셜 기능을 강화했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넷마블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콘텐츠 유통뿐 아니라, 마케팅 플랫폼으로서의 네이버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복안이다.

넷마블은 '레이븐'이 구축한 대작급 게임 이미지를 '네이버'로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이른바 비게이머들의 분포가 많았던 카카오톡 플랫폼보다 코어하게 게임을 즐기는 유저층이 분포해 있는 '네이버'와의 협력을 통해 코어한 대작 RPG라는 점을 더욱 어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기존 카카오톡 플랫폼을 채택하지 않은 RPG들의 사례와 함께 이후 출시되는 RPG들의 탈카카오를 이끌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플랫폼 의존보다는 유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전략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 탐험 모드



[구글, 애플 원 빌드]

17일 기준으로 애플앱스토어, 구글플레이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올해 1분기에 출시된 게임 중 기대 이상의 성적을 기록한 사례가 없다는 점과 다른 업체들의 게임 출시 일정이 다소 지연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는 해도 '클래시 오브 클랜'의 아성을 무너트리고 순항중이다.

하나의 전략으로 자리 잡은 '원 빌드'도 현재 성과에 한몫했다. 양대 마켓에 동시에 출시하며 출시 초기 '이 게임이 트렌드'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최근 게임 흥행은 게임 완성도 외에도 입소문과 마케팅 등의 요소도 크게 영향을 주는 만큼 원 빌드로 동시에 출시한 것이 주효했다.

반면, '레이븐'의 성공을 속단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대대적인 마케팅과 이른바 '오픈빨'로 불리는 신작 출시 효과가 사라지면 이용자 이탈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 더불어 탈카카오 기류를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때가 이르다는 것이다.



[흥행 공식]

'넷마블'이 오랜 기간 공을 들였던 게임이니만큼 그래픽과 각종 콘텐츠를 잘 다듬었다. 여기에 장비 수집욕을 자극하는 도감과 강화와 합성을 통한 성장 욕구를 충족시키며 유저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감정은 기대감에 곱해져서 만족스러운 감정을 전달한다.

'레이븐'은 결투장, 길드 콘텐츠, 레이드 콘텐츠 등 으레 RPG들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출시 때부터 선보였다. 대부분의 게임이 업데이트를 통해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식과 달라 유저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국내 유저들의 구미에 맞는 흥행 포인트를 잘 잡았다는 느낌이다.

또한, '레이븐'은 자신이 어떤 층을 대상으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지를 잘 아는 게임이다.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와 사실적인 그래픽인 코어 유저들의 성향에 잘 맞는다.

결과적으로 '레이븐'은 어느 게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매우 잘 다듬어 좋아할 만한 유저들에게 선보였다. 수집과 성장, 강화와 합성 등의 익숙한 게임 방식과 탐험, 격투장, 레이드, 길드 콘텐츠 등으로 다양한 플레이를 유도한다.

'레이븐'은 반복 플레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성장의 재미요소로 포장해야만 하는 숙명을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 포장했다. 다만 대부분의 게임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잘 꾸며서 내놓았기 때문에 새로움을 갈구하는 모바일 게이머들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보는 즐거움]

'레이븐'은 보는 즐거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게임이다. 앞서 말했듯 '레이븐'의 콘텐츠는 특출 나다거나 신선하지 않다. 이를 보는 즐거움으로 상쇄했다.

불편하리만큼 시야가 좁은 근접 카메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호쾌한 액션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자동전투가 주를 이루는 게임이니만큼 화면 밖의 적 캐릭터들이 보이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구르기와 기절 같은 전략적인 움직임을 행하기 용이하다.

구르기와 기절은 오랫동안 액션 RPG의 왕좌에 올라있던 '블레이드'의 일섬 같은 존재다. 구르기는 말 그대로 적의 공격을 굴러서 회피할 수 있게 하는 동작이다. 기절은 적 보스의 스킬 사용 타이밍에 맞춰 스킬을 사용하면 보스 스킬이 취소되는 동시에 기절 상태가 되게 하는 시스템이다.

'블레이드'의 일섬이 방어와 동시에 반격을 가하는 낚싯줄 같은 긴장감을 제공했다면 '레이븐'의 기절과 구르기는 감상을 중점으로 한 편의 기능에 힘을 줬다는 느낌이 강하다. 타이밍에 맞춰 잠깐 개입하기만 하면 된다.

감상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쳐냈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보충되는 체력 회복 포션이나 각종 버프 선택은 같은 맥락이다. 보는 즐거움에 모든 것을 담았다. 모바일 액션 RPG가 온라인 MMORPG처럼 각 잡고 하는 게임이 아닌 점을 상기하면 자동전투를 기반으로 보는 맛을 살린 것이 코어 유저들에게 주효했다.

물론 보는 즐거움에도 아쉬움은 존재한다. 콕 집어서 스토리를 볼 수 있는 왕궁 모드에 대한 아쉬움이다. 뛰어난 그래픽과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단순함 때문에 좋은 평가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좀 더 몰입력 있는 이야기를 풀어놨다면 하나의 예술 장르로 부상하고 있는 '머시니마'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콘텐츠가 되었을 텐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레이븐'은 전투 행위에서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했다. 다만, "지금 당신이 하는 것은 RPG"라는 사실을 주지시켜주기 위한 장치로 전락한 스토리 모드는 아쉬움이 남는다.

▲ 왕궁모드


[혼자라 외롭다]

수차례 언급했듯 '레이븐'은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춰 액션 쾌감을 전달한다. 때문에 게임 대부분을 자동전투로 진행하며 스킬을 누르거나 구르기를 하게 된다. 문제는 캐릭터 AI가 너무 바보 같다는 점이다. 자동 스킬 사용을 구입해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게임에서 제공하는 적정 스펙을 상회하는 아이템을 가지고도 번번히 스테이지 클리어에 실패하고는 한다. 결국, 안정적으로 자동전투를 돌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스펙보다 몇 단계나 낮은 곳에서 자동전투를 돌려야 한다.

자동전투를 사용하는 대부분 게임이 자동 전투 시 유저가 컨트롤할 때보다 1~2스테이지 정도 낮은 곳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비교했을 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또한, 실시간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전무하다는 것도 '레이븐'의 약점이다. 모바일 게임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상기했을 때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카카오톡 게임하기 플랫폼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떠올리면 더욱 명확해진다.

탐험, 레이드, 길드 콘텐츠의 종착역은 결투장이다. '레이븐'의 목표는 명확하다. 결투장에서 가장 강력한 캐릭터가 되는 것. 그러나 결투장조차 비동기화 방식이다. 혼자서 공격력, 방어력, 순위를 올리며 숫자에 만족하게 한다. '블레이드'의 난투장 등 실시간 콘텐츠와 비교해서 굳이 데이터 연결이 필요하냐는 의문까지 생긴다.

▲ 결투장



[레이븐만의 특색?]

'레이븐'은 대부분 게임에 있는 콘텐츠를 완성도 높게 구현했다. 하지만 '레이븐'만의 개성이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사람으로 치자면 성형외과 광고 모델 같다. 예쁘기는 한데 특유의 매력은 없다. "레이븐은 무슨 게임이다!"라고 말하기가 참으로 곤욕스럽다. 일종의 교과서 같은 느낌이다.

이는 장비 강화, 합성으로 점철되어있는 게임 진행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아이템을 획득하고 성장시키는 단순한 형태에 다른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뿐이지 진행과정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만한 것이 부족하다.

화려한 그래픽과 높은 기대치가 현재 매출을 견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레이븐'을 대표하는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지 못한다면 모바일 유저들은 새로운 재미를 찾아 다른 게임으로 떠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 길드 전투




■ 넷마블표 모바일 게임 성공 공식의 완성 - 이제는 운영

'레이븐'은 익숙한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여 매출 1위를 달성했다.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한 게임성과 네이버와의 협력을 통해 전방위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여 유저들에게 '레이븐'이라는 게임의 존재를 알렸다.

매출이 게임의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지만, 유저들이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는 것은 게임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 척도다.

'레이븐'은 일종의 교과서의 공식 같은 게임이다. 넷마블이 지금까지 그래 왔듯 기존에 존재하는 콘텐츠를 잘 다듬어 높은 완성도로 유저의 환심을 사고 매출을 유도했다. 넷마블표 성공 공식의 방점을 찍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익성만을 따져봤을 때, '레이븐'이 적용하고 있는 뽑기, 강화, 합성 공식은 이번에도 통했다. 다만 '레이븐'의 매출 구조상 매출이 게임 초반부에 몰려있기 때문에 조금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레이븐'은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났을 뿐이다. 장기적인 흥행을 위해서 앞으로 몇 차례 대형 업데이트가 있을 테고 새로운 콘텐츠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그 사이 유저 이탈을 막기 위해 꾸준한 이벤트도 진행될 것이다.

핵심은 운영이다. 초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유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 해왔던 것처럼 안일하게 해서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넷마블이 전사적으로 힘을 싣고 있는 타이틀이니만큼 앞으로 넷마블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게임의 장기적인 흥행을 위해서도 콘텐츠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운영을 선보여주길 바란다.

▲ 레이븐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