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에서 주최하는 '넥슨 디벨로퍼 컨퍼런스 2015(이하 NDC 2015)'가 금일(19일) 경기도 판교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특별한 인물을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현재 넥슨의 수장으로 있는 '오웬 마호니' 대표의 환영사를 가감없이 적었습니다.

▲ 넥슨 오웬 마호니 대표





안녕하세요. 오웬 마호니입니다. 이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설문조사부터 해도 될까요. 여러분 중에서 아타리 게임을 해보신 분 계시나요? 아, 몇 분 계시네요. 애플2를 소유했거나 애플2 게임을 해보신 분은? 아... 저기 머리 환하신 분이 손들고 계시네요. 자, 이 화면 알아보시는 분이... 아, 두 분.

이 게임은 컴퓨터 스페이스라고, 1971년에 출시된 작품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상업적 게임이죠. 이 작품이 게임업계의 시발점이었습니다. 플레이 방식이 좀 어렵고 크게 히트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최초입니다. 그 어떤 누구라도 지금까지 봐 왔던 것과 비교해 새롭고 대단한 것이었죠.

▲ 컴퓨터 스페이스(1971)


이건 잘 아시죠? 퐁입니다. 퐁과 컴퓨터 스페이스는 제주도에 있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니 가게 되신다면 꼭 한 번 플레이해보세요.

퐁은 1972년에 나왔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미국 대부분의 식당에 퐁이 배치되었고 동전을 끝도 없이 먹어 치웠죠. 제가 열 살 정도 되었을 때는 TV에 연결해서 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사 주셨는데, 형이 맨날 이겼어요.

퐁은 미국, 그리고 세계 최초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을 하며 자란 세대가 탄생했죠. 그 이후도 화려했습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배틀존 등 수많은 게임이 70~80년대를 장식했어요. 이 모든 게임들이 다 재밌고 색달랐어요. 새롭게 출시되는 게임은 대부분 새로운 재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 퐁(1972)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여러 회사가 게임업계에 뛰어들더군요. 노다지 광산이니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었겠죠. 창의적인 게임이 간혹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대부분 꽝이었습니다. 나중 가니 돈만 있는 투자자들이 마구 뛰어들었고, 이 사람들 위주로 업계가 흘러가는 상황이 왔어요. 예술성을 망각한 겁니다. 얼마나 심했냐면요. 개 사료 만드는 회사도 게임 만들겠다고 넘어왔습니다. 이렇게 되면 뻔하죠. 게임업계는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전 세계 게임업계는 엄청난 침체를 겪었습니다. 아타리 쇼크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아타리 쇼크의 원인은 다양한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데요. 30년이 지나고 보니, 가장 중요한 게 보였습니다. 꽝 게임이 정말 많았다는 것. 퀄리티 있는 게임이 많이 나오지 않다 보니, 사람들은 '게임은 원래 다 꽝이구나'라고 생각하고... 게임 회사들이 퀄리티 올리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개발사가 퀄리티 올리는 데 관심이 없는데 소비자로선 게임을 할 이유가 없었죠.

서양에서 역사상 최악의 게임이라 부르는 게임 중 하나가 'ET'입니다. 지금 이 화면은 당시 판매되지 않았던 게임 팩을 땅에서 파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시 ET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을 거뒀는데, 게임은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ET 개발진은 게임을 5주 안에 만들어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게임을 출시해야 했거든요. 5주 갖고 뭘 하겠어요. 재미없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ET라는 이름만 붙이면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해서 이걸 400만 카피나 찍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안 팔렸어요. 결국 재고로 쌓인 몇백만 카피는 뉴멕시코 사막에 매장되었죠. 게임을 땅에 묻었다, 이건 게임업계가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는 겁니다. 품질을 망각하니 그렇게 된 거예요. 길을 잃으니 게임이 쓰레기가 됐어요.



당시 게임업계가 왜 길을 잃었을까요. 산업이 성공하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군중 대부분은 목적지를 모릅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원초적인 목적을 망각하는 거죠. 창의적이라는 게 뭘까요. 남들을 따라가지 않아야 나옵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모르면 실수하기 쉽고 여기서 두려움이 나옵니다. 이런 두려움에서 창의성과 예술이 나오지만, 위험 요소가 많다 보니 대부분 도전하지 않았던 겁니다.

넥슨도 가끔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꾸준히 정진하는 게 어렵다보니 그런 실수를 스스로 초래한 경우가 있었어요. 그때 나온 게임들의 퀄리티는 매우 부족했고, 회사 역시 상당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교훈을 얻었고, 게임 개발사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업가입니다. 비즈니스적이죠. 그리고 게임업계도 비즈니스적인 시각으로 접근했습니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제가 맡은 일은,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게임을 찾는 게 제 일이었죠.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던 만큼, 제게 딱 맞는 일이었어요.

그때는 대륙별 게임사의 특징이 뚜렷했습니다. 유럽 게임은 그래픽과 사운드가 뛰어났고, 미국은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 강국이었어요. 일본은 캐릭터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했고, 한국은 온라인 게임의 기술력이 뛰어났습니다. 각 지역의 게임사들이 모두 '개척자'였던 겁니다. '무엇이 재미있나'를 찾기 위해서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했습니다.

근래 들어서 게임업계가 다시 한 번 목적지를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 게임, 그리고 모바일 게임이 부각되면서 말입니다.

아트나 예술, 그리고 재미 요소까지 따라 하는 카피캣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도 여러 플랫폼을 뒤졌지만, '이건 꼭 해봐야겠다'라고 느낀 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업계는 게임 품질보다 비즈니스 성공 모델을 따라가는 데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바일 플랫폼이 떠오르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재미를 망각하는 것은 게임업계가 둘 수 있는 최악의 수입니다. 업계와 회사가 동시에 악화되는 지름길이죠. 게임 업계에 몸담게 된 이유를 망각하는 거잖아요. 게임을 예술로서 생각하고 또 사랑한다는 게 여기 모인 이유일 텐데... 저는 창의력으로 게임을 만들어야 하고, 다음 세대의 창의력에 영감을 주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창의력에 집중하는 것이 게임업계 르네상스를 불러오는 시발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도 이러한 관점을 갖고 10년, 20년 후에도 자랑스러워할 게임을 만들기 바랍니다. 역사가 말해 줍니다. 상업적 성공은 위대한 예술을 따라갑니다. 저희가 개척해야 합니다. 남들을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길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니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넥슨은 개척자를 환영합니다. NDC가 열정을 공유하는 이들의 근거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 넥슨 경영진 모두를 대변해서 넥슨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NDC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