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시장에 대한 예견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짧게 타오를 불길이라 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차세대 시장을 책임질 새로운 기술이라고도 말한다. 공통점은 있다. 현 시장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파란의 시작점이 될 거라는 것. 차이점은 그 이후다. 금방 잦아들지, 아니면 해일이 되어 시장을 강타할지 말이다.

성장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그만큼 높은 위험 부담을 갖고 있다. VR 시장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가진 생각이다. 그럼에도 VR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누구보다 앞서 시장을 개척하고,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리로드 스튜디오의 오태훈 대표 또한 VR 시장을 선도하는 인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VR계의 거물들은 익히 알려졌다. 오큘러스의 공동 창업자인 '팔머 럭키', '마이클 안토노프',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등등이다. 사실, 인지도 면에서는 오태훈 대표가 그들에 비해 손색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의 꿈과 열정, 그리고 VR에 대한 생각만큼은, 그들과 같은 선상에 서 있다.

▲ 리로드 스튜디오 오태훈 대표

오태훈 대표는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산하 스튜디오인 '인피니티 워드'에서 오랜 세월 근무한 경력이 있다. 다들 아는 FPS 프랜차이즈인 '콜오브듀티'시리즈의 개발사다. 디자이너로서 100가지가 넘는 총기를 디자인했던 인물이다. 그보다 전엔 세계 게임아트 공모전인 '도미넨스워'에서 세계 1위로 입상했던 경력도 있다. 그런 그가 2014년 7월, 홀연히 회사를 등지고 나왔다. 그리고 함께하는 5명의 개발자와 함께 '리로드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디즈니 출신의 아티스트 세 명이 합류하면서 '월드워툰즈'의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VR에서 어떤 희망과 비전을 보았을까? 무엇이 그를 VR로 이끌었고 이번 NDC의 기조인 '패스파인더(pathfinder)'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미래를 걷는 힘을 갖게 하였을까?


◎ 진실을 알고 싶은가? 아니면 그대로 살겠는가?

영화 '매트릭스'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장면이다.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양손에 얹은 채, 네오를 바라보며 모피어스는 말한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빨간 약을 먹고, 지금 이 상황에 만족하고 살겠다면 파란 약을 먹으라고 말이다. 그리고 빨간 약을 먹은 네오는, 그 순간 자신을 감싸던 모든 가상 현실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 영화 '매트릭스'는 그가 VR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오태훈 대표는 자신이 처음으로 VR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 역시 '매트릭스'를 보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매력을 느꼈다. 시각, 청각적 조작을 통해 가상을 현실로 느끼게끔 하는 것. 그가 생각한 가상 현실이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는 한 장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배색을 다르게 해 같은 색을 다른 색으로 인지하게끔 하는 단순한 착시 이미지다.

VR 또한 이와 상통한다. 실제 VR 장비를 착용할 때, 내 머리는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은 가짜이며, 나는 지금 머리에 기계를 쓰고 방 안에 있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순간적이나마 내 뇌가 속기 때문이다.

오태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현실은 단순히 뇌에 의해 해석되는 전기 신호일 뿐'이라고 말이죠."

▲ 원효대사가 해골 썩은 물을 시원하게 원샷한 것도 '가상 현실'과 같은 맥락이다.



◎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문제

오태훈 대표가 말하는 '가상 현실'은 이렇듯 '거짓일지언정 뇌를 속여 사실로 인지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영역은 굉장히 넓다. 교육, 의학, 시뮬레이션, 스포츠 등 VR 시장의 주요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는 '게임'과 '영상'분야는 사실 일부에 불과할 정도다. 상당히 비싼 항공기 조종사용 시뮬레이터, 의학용 시뮬레이터 등등도 가상 현실을 응용한다면 크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스포츠 경기를 VR로 관람할 수 있다면 어떨까? 경기장의 한복판에 서서 직접 선수들을 본다는 건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 VR의 응용 분야는 그 무엇보다도 광대하다.

다만, 이는 완벽하다고 볼 수 없다. VR이 이렇게 무궁무진하고 편리한 기술이라면,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후원을 할만한 기술이다. 그렇게 되고 있지 않다는 것, 나아가 일반 벤처나 개발사에서도 VR 관련 분야에 미지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 또한 심각하다는 것을 뜻한다.

오태훈 대표는 네 가지 문제점을 말했다.

▲ 오태훈 대표가 말한 네가지 문제점

가장 큰 문제는 '하드웨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큘러스에서 발표했던 모델 중 가장 널리 퍼진 DK2를 기준으로 할 때 해상도는 가로 1920px, 세로 1080px이며, 주사율은 75Hz다. 인간이 보는 실사에 가깝다는 해상도는 4K. 흔히 'UHD'라 불리는 3840x2160에 144Hz 정도의 주사율이다(주사율은 가정에 의한 것이다). 결국, VR 장비가 7680x4320 정도의 해상도를 뽑아내야 실제 사람이 느끼는 시야와 크게 괴리감이 없이 느끼게 된다는 말이니 아직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두 번째는 '어지럼증으로 인한 거부감'이다. '어지럼증'은 VR을 개발하는 모든 이들의 적이며, 동시에 무조건 해결해야 하는 지상과제다. "눈이 움직이는 것, 그리고 실제로 뇌에 흘러들어오는 정보가 달라요. 그럼 뇌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경고를 보냅니다. 어지럼증 역시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 일정 시간 이상 플레이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멀미가 난다. 아직은...

세 번째는 '열리지 않는 시장'에 대한 공포다. 이는 대다수의 중소 개발사들이 VR에 대한 진출을 꺼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테다. 가시적인 시장의 형성이 없으니, 미래에 대한 강한 확신이 없다면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태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스티브 잡스도 처음엔 똑같았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공개했을 때,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동시에 구축되지 않은 시장에 대해 걱정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모바일 시장은 그 어떤 시장보다도 뜨겁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은 '개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다. VR을 개발하는 개발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턱도 없이 적다. 이는 세 번째 이유인 '마켓의 문제'와 상통하는 문제다. 시장이 완성되지 않으니 수익구조가 불분명하고, 이는 곧 투자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한다. 하지만 오태훈 대표는 한국이 미국과 버금갈 정도로 VR 소프트웨어 개발에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IT 계열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최근 한국을 방문하는 것 역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한국이 가진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어 그는 '한국 개발자들이 조금 더 서둘러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덧붙였다.

▲ 커뮤니케이션의 무대는 마련되어 있다.



◎ '월드워툰즈', 쉽지 않았던 개발 일지

▲ '월드워툰즈'의 개발중 스크린샷

도전이다. 아니 도전보다도 모험과 같았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쪽이 더 바르다고 봐야 할 거다. 오태훈 대표가 말한 '월드워툰즈'의 개발 과정은 말 그대로 모험과 가까웠다.

R&D(연구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적은 '멀미'였다. 오태훈 대표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거의 3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구토와 씨름하는 나날이었다고 고백했다. 검증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VR 구동은 위험한 일이지만, 개선을 위해서는 몸으로 들이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멀미를 줄여나가고, 동시에 퍼포먼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디즈니에서 합류한 기술 팀은 그래픽 톤을 실사보다는 만화에 더 가까운 쪽으로 만들었고, VR이라는 장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점프패드'와 같은 몰입감 높은 객체를 만들어냈다.

▲ 조작법은 최대한 쳐내 간소하게

그 과정에서 오태훈 대표와 리로드 스튜디오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수직으로 구성된 텍스쳐는 수평 텍스쳐보다 더 많은 멀미를 유발한다는 걸 알았고, 그래픽에 날을 세우기보다는 최대한 둥글둥글하게 깎는 것이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을 깨달아 모든 모서리를 다듬었다. 계단과 사다리는 VR환경에서 엄청난 멀미를 유발할 수 있기에 그 모든 것도 빼버렸다. UI는 화면 외곽에 배치할 시 심한 시선 분산을 일으키기 때문에 최소화하되, 화면 중앙에서 15도 안쪽의 좁은 영역에 표기했다. 이는 리로드 스튜디오의 비결인 '15도 법칙'이 되었다. 체력 상황은 화면의 색상 톤으로, 미니맵은 없애는 대신 색다른 표기법으로 위치 파악을 도왔다.

그리고 그 과정이 쌓여, 세계 첫 VR 온라인 FPS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 쌓이고 쌓이는 노하우



◎ 다가올 미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강연의 끝에 이르러, 오태훈 대표는 의문을 던졌다. VR에 대한 진출을 꺼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연 그 VR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조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시장성이 있는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가다.

오태훈 대표는 '경쟁'이 아닌 '상생'을 강조했다. VR 시장은 이제 곧 태동할 시장이다. 서로 이기고, 앞서 나가려 하기보다는 시장 자체의 규모를 키우고, 나아가 더욱 많은 이들이 VR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오태훈 대표는 청중들에게 물었다. "VR을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은 손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상당히 많은 이들이 손을 들었다. 오태훈 대표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지금 이 강연장에는 제가 했던 어떤 강연보다도 많은 비율의 인원이 VR을 체험해 보았군요. 제 생각에 세계 인구 중 VR을 체험해본 이는 0.0001%도 되지 않을 겁니다."

▲ VR을 바라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VR에 대해 듣고, 그 개념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는 있지만, 실제로 체험해보고 그 장단점을 몸으로 느낀 이들은 많은 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VR 시장이 생성될 그 순간, 시장의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 극소수의 인구들이 결국 VR이라는 시장을 태동시키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경쟁하면서 서로 억누르는 것은, 미래를 위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자명한 일. 시장의 규모를 늘리고, 소비자의 풀을 확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오태훈 대표는 역설했다.

동시에 오태훈 대표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수년 후를 내다보는 장거리 주자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며, 대중성 확보를 위해 'Non-VR' 소프트웨어를 같이 제작하거나, 부가적인 사업 아이템을 함께 궁리하는 것. 나아가 국내 시장이라는 안목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글로벌'을 바라보는 것 역시 시장의 확대와 활성화를 위해 생각해볼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태훈 대표의 강연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채 30분이 되지 않는 짧은 강연. 그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청중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그의 한마디로 VR이 위험 부담을 안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의 차세대 기술로 거듭나는 것은 아닐 테다. 다만, 그의 신념과 확신에 가까운 비전. 그리고 VR에 가지고 있는 열정만큼은 청중을 설득하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확신을 하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숨 가쁘게 강연을 이어온 오태훈 대표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청중에게 말했다. "안정적인 시장에 머무르며 단타를 치는데 그치느냐, 혹은 앞길을 개척하며 홈런을 날리느냐는 결국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