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명대학교 대학원 게임학과 윤형섭 교수


단일법으로 게임산업 진흥법은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나왔다. 그런데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규제로 묶여 있는 상태다.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같다.

기능적인 게임은 재미없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나는 재미있는 기능성 게임도 많이 봐 왔다. 게임의 기법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지금부터 소개하겠다.
- 상명대학교 윤형섭 교수, NDC 2015 강연장에서.




1. 문제 해결을 위해 쓰여진다.



미국에 폴드잇(fold it)이라는 게임이 있다. 에이즈와 암 등의 프로테아제 효소를 의사들이 찾지 못해 게이머들의 도움을 받은 사례다. 효소 찾는 방식을 게임으로 만들었더니 플레이어들이 공간 추론 능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이를 풀어냈다. 학계에서는 10년이 넘도록 풀지 못한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했다. 게임은 경쟁과 재미를 이용해 집단 지성을 이끌어낸다.


2. 귀찮은 일을 재미있게 하는 데 이용된다.



초어 워즈(Chore Wars)는 집안에서 하기 싫은 허드렛일을 주제로 하는 게임이다. 워크래프트 캐릭터를 활용해 패러디 방식으로 풀어냈는데, 집안일을 의미 있는 선택으로 풀어냈다는 것 때문에 주목받았다.

새로운 방법 찾기, 아바타 성장, 아이템 획득 등 게임의 메카닉이 다수 채용됐다. 억지로 하는 집안일을 스스로 하게끔 만든 것이다. 게임을 하고 나니 남편이 말을 잘 들어 너무 좋다는 사례, 분업이 잘 된다는 사례도 속속 나왔다.

실제 청소를 하면 게임 내에서 아이템을 주고, 이를 이용해 캐릭터를 키우는 방식의 게임이다. 다른 집과 청소 능력을 경쟁할 수도 있다.


3. 어려운 기술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반복 학습이 선행된다. 한 번 딱 보고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 번 반복해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어려운 기술을 반복해서 하면 지루하기 마련이다.

나사에서 만든 문 베이스(Moonbase)라는 게임이 있다. 달에 가서 훈련하는 것은 힘드니까, 달에 간 것으로 가정하고 게임 내에서 훈련하는 것이다. 이 게임이 등장한 후, 나사 직원들이 게임에 중독됐다는 기사도 나왔다. 우주인들이 손쉽게 훈련할 수 있으니 긍정적인 중독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외 사례도 있다. 태고의 달인 고수가 실제 북 장인과 시합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락스미스라는 게임을 활용하면 기본적인 기타 연주 방법과 튜닝하는 방법까지 손쉽게 배울 수 있다.


4. 사회공헌 사업에도 이용된다.



징가는 게임 내 아이템을 기부 컬렉션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결제 금액의 일부가 어려운 이를 돕는데 활용된다고 밝힌 것이다. 실제 그 아이템은 일반 캐시 아이템보다 많이 팔렸다. 이렇게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5. 제품 서비스 광고 마케팅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코카콜라는 유명 아이돌의 춤 동작을 따라 하면 무료로 콜라를 주는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사람 그 자체로 퍼포먼스이며, 홍보 효과를 누린 것이다. 사람들이 콜라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춤을 춘 게 아니다. 추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재미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프랑스에도 유명한 사례가 있다. 생수 광고였는데, 전력 발생 장치가 연결된 자전거를 배치하고 이를 사람들이 타도록 유도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면 앞 건물에 커다란 네온사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구조였다. 과거에는 감성이 녹아 있는 스토리텔링 광고가 주류였지만, 지금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입소문을 타게 만드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6.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나이키 플러스가 대표적이다. 아이들이 점점 운동화를 신지 않아 조사를 해 보니, NDS 하는 시간이 많아 그렇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이키의 라이벌은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였던 것이다. 고민 끝에 나이키는 재미있는 신발을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센서를 달아 자신의 운동량을 체크하게 하고, 스마트폰과 연동해 게임 요소도 추가했다. 소셜 연동 기능도 내장되어 친구와 운동량을 경쟁할 수도 있다.

또, 노인들의 재활 훈련에도 게임이 활용되고 있다. 두더지 게임 방식을 활용한 두근두근 뱀 퇴치 게임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즐긴 노인들은 근육량이 늘어나고 건강 회복도 훨씬 빠르게 이루어졌다. 노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활력, 즉 활동하는 것 자체다.

그 외 어머니 어깨에 센서를 붙이고 안마하는 것으로 격투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례, 댄스댄스 레볼루션으로 비만을 치료하는 사례도 모두 포함된다.


7. 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소아암 치유 게임으로 리미션(Re-Mission)이라는 게 있다. 이 게임은 소아암 백혈병 환자의 통증 완화 및 투약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 리미션은 항암제를 이용해 자신의 암세포를 정복하면서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즐기면서 심리적인 치유 효과를 얻는다. 제작비로 400만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PS, XBOX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8.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변기 내 파리 그림은 소변을 흘리지 않고 정교하게 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한국에도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실제로 큰 효과는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최근에는 파리 그림에 열 감지 센서를 부착했다고 들었다. 파리 그림에 소변을 맞추면 열을 받게 되고, 파리 그림이 서서히 사라지는 방식이다.

더 좋은 방식도 개발되고 있다. 닌텐도 Wii를 소변기에 설치해, 소변을 조준하는 것으로 미니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해당 시스템을 채용한 가게 매출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덕평 휴게소에 이런 시스템을 찾아볼 수 있다. 오줌발 대회라고 있는데, 여기에서 1등을 하면 효도 관광 티켓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재활용 쓰레기통을 게임에 응용하는 사례도 있다. 게임 방식을 채용한 재활용 쓰레기통은 다른 일반 쓰레기통에 비해 두 배나 많은 빈병이 담겨 있었다. 저비용으로 큰 효과를 보는 경우로 꼽힌다.


9.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다.



횡단보도를 빨간 불에 건너면 안 된다고 열심히 교육하지만, 바쁜 현대인이 이를 100% 지키기는 어렵다. 보행자를 자발적으로 기다리게 만드는 신호등이 외국에서 화제가 됐다. 빨간 신호등의 사람 캐릭터가 춤을 추는데, 신호등 옆에 설치된 댄스 부스에 들어가 춤을 추면, 신호등이 이를 인식하여 그 춤을 따라 하는 방식이다. 춤이 엄청나게 다양하다 보니 보행자들이 그 춤을 보느라 신호를 지킨다고.


10. 교육 및 학교 수업에 활용 가능하다.



과천 과학대에서는 매년 온라인 수학게임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스펙 쌓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조금 안타깝기도 한 현실이다.


11. 실패에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테트리스는 컴퓨터를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 테트리스를 플레이한다. 그 이유는 실패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실패가 재미있게 되면 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하다 보니 재미있고 더 높은 단계로 진입 가능하다.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다. 도전을 하고 시행착오를 몇 차례 겪다가 결국은 성공한다. 그리고 아이템이나 레벨 상승 등의 보상이 주어진다. 이러한 보상은 성취감으로 연결된다.


12. 어려운 환경에서 최적화를 찾는 훈련에도 사용된다.



골프칠 때 공을 제일 쉽게 넣는 법이 무엇일까. 공을 들고 직접 구멍에 넣는 것이다. 권투에서 상대를 쉽게 이기는 방법은? 총으로 쏘면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의도적으로 비효율적인 장치를 마련한 뒤 최적의 방법을 찾도록 만든 것이다.

게임은 최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그것이 게임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레이싱 게임에서 0.1초의 기록을 앞당기기 위해 수십 번 같은 트랙을 도는 것이 좋은 예다.


13.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게임 디자인 기법.

이렇듯 게임 디자인 기법은 여러 용도로 활용된다. 게임이 우리에게 유용하다는 것을 많은 비전문가들에게 알려주었으면 한다. 게임을 어린이 장난감 보듯이 하면 안 된다. 어떻게 활용되야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미래를 밝게 하는데 게임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다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