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글로리는 손으로만 하는 게임이 아니다. 순간순간 적절한 판단과 아이템 사용, 오브젝트 컨트롤을 이용해 이득을 불려 나가야 승리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이번 베인글로리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리그(이하 VIPL)의 무대에서 오로지 피지컬 만으로 승리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치열한 VIPL의 4회차 경기에서 같은 클랜에 소속되어 있는 타이거-포비아(이하 포비아)와 VAP가 만났다. 서로의 경기 방식을 잘 알기 때문에 접전이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포비아의 압도적인 승리. VWI 예선전을 엄청난 경기력으로 뚫어냈던 포비아의 경기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경기였다. VAP를 압도한 포비아의 승리 요인은 무엇일까? 그 핵심 요인을 파헤친다.


▲ 드디어 1승, 타이거-포비아!



■ '우라노' 링고의 압도적인 레인전과 캐리력!

포비아는 공격성이 짙은 타카와 아다지오를 정글 듀오로 선택해 상대 정글 듀오의 레인 개입을 최소화시켰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링고와 복스의 1:1 레인전이 펼쳐졌고, 링고가 상성상 위였기 때문에 복스는 후반을 위해 안정적인 CS 수급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시작 1분이 채 되지 않은 시점, '우라노' 링고가 노련한 딜교환으로 엄청난 레인전 우위를 가져왔다.

극 초반 CS 수급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왕 미니언'인데, '시벌리'의 복스가 이를 취하려 가까이 다가오려는 낌새가 보이자 거침없는 딜 교환을 시도했다. 1레벨에 안정적 CS 수급을 위해 '초음파'를 배운 복스는 저항할 수단이 없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엔 없었고 이때부터 레인전이 완전히 꼬여버리게 됐다. '평타-장전 가속-평타'로 이어지는 1레벨 풀콤보를 전부 맞은 상태였으며, 정글 개입도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복스 입장에서는 지옥의 시작이었다.

복스를 전적으로 밀어주는 조합이었기 때문에, 복스가 망해버린다면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VAP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아단이 도움을 주고자 레인으로 왔으나 확실한 CC기가 없었기 때문에 '선봉장'의 보호막 효과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링고에게 솔로킬까지 내주게 된 복스의 상황은 절망 그 자체였다. 심지어 레인까지 밀리는 상황에 당한 솔로킬이었기 때문에 CS 손해도 막대했다.


▲ 일방적 딜교환에 이은 솔로킬!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VAP의 정글 조합은 지극히 후반을 바라보는 조합이었기 때문에 초반 정글 상점 장악을 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레인전을 초반부터 압도해 CS 수급을 원하는 대로 한 '우라노'의 링고는 굳이 귀환을 하지 않아도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었다. 정글 상점에서 '죄악의 표창'까지 구입해온 링고는 더욱 강력하게 복스를 압박했고, 포탑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CS 수급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링고가 정글 싸움을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CS를 어느 정도 따라온 복스였지만, 아군은 자연스럽게 2:3 싸움을 할 수밖엔 없었다. 결국 링고는 이 싸움에서 킬 스코어를 하나 더 올리게 되었고 아이템 차이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킬과 CS를 바탕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우라노'의 링고는 적 포탑을 끼고 싸우는 한타에서도 미칠 듯한 카이팅을 선보이며 팀을 하드 캐리 했다. 게임 시작 15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벌리'의 복스는 2코어가 채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중간중간 멋진 한타 구도를 만들긴 했지만 VAP는 승리할 수 없었다.


▲ 포탑을 낀 한타를 승리로 이끄는 '우라노'의 링고


만약 '시벌리'의 복스가 1레벨 때 CS를 조금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포탑을 끼고 안정적으로 플레이했다면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3일 차 경기에서 보여줬듯이 CP 복스의 캐리력은 동일하게 성장했다면 링고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하며 전체적으로 '유리몸'인 포비아 영웅들을 순식간에 녹여버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비록 패배하긴 했으나 VIPL 2일 차 '비욘드'와의 경기에서 멋진 경기 운영을 보여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비등하게 레인전을 가져가기보다 상성 차이를 인정하고 좀 더 안정적인 운영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 MoM까지 받은 '우라노'!



■ 숨쉴 틈도 주지않는 탈수기 운영!

분명 포비아 쪽에서 레인전을 압도한 것은 사실이나 VAP의 조합은 6레벨 이후 강력한 면모를 보이는 조합이었기 때문에, 게임이 겉잡을 수 없이 포비아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비아의 선수들은 날카로운 한타 타이밍 선정과 오브젝트 컨트롤을 통해 VAP에게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았다.

우선 게임 시작 4분경 벌어진 첫 번째 한타에서 포비아는 '정확한 계산'하에 싸움을 건 듯 보였다.. 반대로 VAP의 경우 특유의 기습 플레이를 펼치긴 했으나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큰 시도를 했다.

게임 초반 부라 보너스 골드가 크진 않았지만, 포비아의 경우 금광부를 이미 취한 상태였고 링고는 핵심 아이템인 '탄성궁'을 갖춘 상태였다. 반대로 '시벌리'의 복스는 솔로킬을 당해 강제 귀환을 한 것 외에 아이템을 구매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쌓아둔 골드만 2천가까이 되는 상황. 애초에 한타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레인까지 밀려있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플레이가 필요했다.


▲ '시벌리' 복스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포비아 정글 듀오의 침투를 파악한 VAP의 정글 듀오는 이에 반격하기 위해 미니언 광부 위쪽 시야가 가려진 곳에 숨어있었지만, 이때의 포비아는 어떻게 싸워도 질 수 없었다. 레인을 한껏 밀어놓은 '우라노'의 링고가 바로 뒤따라오고 있었기 때문. 레이너가 자리를 비운 것을 확인한 VAP 입장에서 절대 싸워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합류했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시벌리'의 복스는 '우라노'의 링고가 자리를 비운 사이 최대한 CS 수급을 하고 상대 정글로 들어가 정글 몬스터까지 취하며 최선의 선택을 해주었지만, 서로의 사인이 맞지 않았는지 한타는 열리고 말았다.

결국, 이 싸움에서 VAP는 대패했고, 스노우 볼은 끊임없이 굴러갔다. 게임 시작 4분, 금광부가 나오자마자 이를 취해놓은 포비아였기 때문에 10분이 채 안 되어 막대한 양의 골드를 얻었고 골드 차이는 3천 가까이 벌어져 버렸다. 게임 종반부에는 1만이 넘는 골드 차이를 보이며 미칠 듯한 탈수기 운영을 선보인 포비아였다.


▲ 결국, 첫 한타에 대패하는 VAP


VAP의 정글 듀오와 레이너끼리의 사인이 맞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포비아의 확실한 판단도 빛을 발한 경기였다. 만약 초반에 레인에서 얻은 이득을 싸움을 통해 살려내지 못했다면 후반 한타에서 CP 복스와 아단+아다지오로 이루어진 광역 딜 조합을 버텨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노우 볼링을 굴려 나가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는 경기였으며, 오랜만에 포비아 특유의 시원한 경기력을 볼 수 있었던 경기였다.


▲ 본래의 경기력을 찾은 포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