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글로리는 손으로만 하는 게임이 아니다. 순간순간 적절한 판단과 아이템 사용, 오브젝트 컨트롤을 이용해 이득을 불려 나가야 승리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이번 베인글로리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리그(이하 VIPL)의 무대에서 오로지 피지컬 만으로 승리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느덧 정규 리그의 마지막 날. VIPL 6회차 2경기에서 '핵'과 '와일드'가 만났다. 두 팀 모두 와일드카드전에 순탄히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었다. 게임 초반, 글레이브를 사용해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 와일드였으나 결국 30분이 넘는 경기 끝에 핵이 대역전승을 일궈내는 데 성공했다. 핵은 어떻게 수천 골드 차이의 격차를 극복하고 역전할 수 있었을까? 그 핵심 요인을 파헤친다.


▲ 멋진 경기를 보여준 두 팀



■ 버티고, 반격한다! 핵의 날카로운 판단력!

경기 초반, 날카로운 갱킹으로 와일드 '나이트레이'의 복스를 2번이나 잡아낸 핵은 좋은 출발을 하는 듯 보였다. 이에 조금은 위축될 수 있었던 와일드의 정글 듀오는 예상외로 수비적 플레이를 펼치지 않고 그대로 핵의 정글로 들어왔다. 이를 예상치 못한 핵은 초반에 이득 본 것이 무색할 정도로 큰 손해를 보고 만다.

정글 싸움에서 패배해 금광까지 뺏긴 핵은 초조한 나머지 7분경에 한타를 열었으나 '몽'의 아다지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 적 아다지오 하나에 모든 스킬을 쏟아부은 핵은 에이스까지 당하며 패색이 짙어졌다.

게임 시작 10분도 채 안 되어 3천 골드 이상 차이가 났고 1차 포탑까지 밀려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신들 쪽의 정글 몬스터 섭취도 여의치 않았다. 양 쪽의 미니언 광산까지 점령한 와일드는 핵을 강하게 압박했고, 핵이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변수'가 필요했다.


▲ 정글 싸움에서 크게 말려버린 핵


핵은 기다렸다. 변수가 꼭 필요했지만, 그 변수를 만들기 위해 섯불리 움직였다가는 경기가 그대로 끝나버릴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격차였다. 때문에 핵은 적극적인 움직임보다는 '갤럭시'의 스카프의 강력한 라인 클리어 능력을 이용해 버티기 전략을 펼쳤다. 라인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카프의 성장에 무리가 없었고 핵은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고난의 시간 끝에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아이템을 갖춘 핵. 상대의 두 번째 크라켄 포획을 저지하기 위해 맵 중앙으로 나섰다. 전력 차이는 극명했지만 '갤럭시' 스카프의 환상적인 움직임이 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와일드 '센티' 글레이브의 대미지 앞에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을 수 있었던 스카프였지만 '야수의 돌진'을 예측하고 뒷무빙을 해 피해냈다. 만약 이 싸움에서 스카프의 움직임에 1초라도 망설임이 있었다면 그대로 게임은 끝났을 것이다.


▲ '야수의 돌진'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스카프


이 교전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긴 핵은 크라켄을 취하며 대역전극을 향한 발판을 만들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질 확률이 매우 높은 교전임이 분명했다. 와일드카드 진출 티켓을 얻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도 볼 수 있는 경기였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매우 부담이 컷을 것이다. 냉정한 판단이 힘들었을 이 상황에서 멋진 판단을 했기 때문에 이 장면은 더욱 빛났다.

만약 스카프의 성장이 아직 덜 끝났다고 생각해 베이스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이러한 결과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절망적인 게임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역전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타이밍을 잡은 핵의 판단력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 크라켄까지 포획하는 핵!



■ 불리할 때 빛난 침착함

양 팀의 정글 듀오 조합이 같았기 때문에 경기 양상은 레이너의 활약 여부에 따라 크게 바뀔 여지가 많았다. 스카프 vs 복스의 구도가 나온 레인전에서 스카프가 좀 더 득점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한타 단계에서 활약할 여지는 CP 복스가 많았다. 서로 글레이브 정글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생존기가 없는 스카프는 약점 투성이였고 더 많이 조심해야 했다.

글레이브의 위협 때문에 안 그래도 경기를 힘들게 풀어나갈 것 같던 핵은 정글까지 말려버렸고 스카프의 캐리력에 많은 것을 의존할 수밖엔 없어졌다.

핵이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와일드는 스카프를 집요하게 노렸다. 밀려오는 미니언 라인을 먹고 어느 정도 성장한 스카프였지만 글레이브의 존재는 스카프가 딜을 하는 데 큰 제한을 주었고 반대로 '나이트레이'의 복스는 시종일관 프리딜을 했다. 중간중간 나온 복스의 3인 '있어 봐!'는 핵의 전투 의지를 꺾기 충분했다.


▲ 핵의 전투의지를 꺾는 '나이트레이'의 복스!


큰 차이로 앞서나가던 와일드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3코어가 나온 스카프의 궁극기를 정면으로 맞기에는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 부담을 아예 없애기 위해 스카프에게 모든 집중을 쏟은 와일드였지만 게임 극후반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와일드는 스카프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판단이 흐려진 듯 보였다. '센티' 글레이브의 야수의 돌진이 되려 스카프를 좋은 자리로 밀어버렸고 복스와 아다지오는 스카프를 견제하기 위해 안쪽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불타는 '끈적이'를 3명 모두가 밟아버렸고 그대로 용의 숨결의 무지막지한 딜을 정면으로 받은 와일드였다.


▲ 극후반 실수가 낳은 대참사


저항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와일드 선수들이었지만 게임 극 후반이었기 때문에 스카프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궁극기를 쓰지 못하던 스카프는 드디어 속 시원하게 불을 내뱉었고 와일드 선수들을 녹여버렸다. 핵은 그대로 상대 베인 크리스탈을 향해 달려 파괴함으로써 대 역전승을 일궈내는 데 성공했다.

결국은 '침착함'의 싸움이었다.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핵은 침착성을 잃지 않고 계속 때를 보았으며, 게임 후반에 들어 원하는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은 와일드는 침착함을 잃고 패배와 직결되는 큰 실수를 했다.

베인글로리에서 '침착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해줬으며 만약 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면 아무리 불리한 경기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기였다.


▲ 시원한 한 방을 보여준 '갤럭시'의 스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