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동종 장르의 게임들이 양분하고 있는 모바일 액션 RPG 시장에 호기롭게 들어선 '레이븐'. 레이븐은 출시 당시부터 많은 관심이 집중되며, 5일 만에 양대마켓 매출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지난 3월 12일 출시되어, 약 6개월간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는 레이븐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수많은 밸런스 패치를 진행하기도 했고, 실시간 레이드의 등장으로 기존 장비를 개편하는 작업도 이뤄졌죠. 하지만 출시 초부터 지적됐던 밸런스 문제는 여전히 유저들에게서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 상향을 외치는 자, 그동안의 설움을 외치는 자. 많은 이들이 반목을 거듭 중입니다.

출시 100일을 지나, 곧 200일에 진입하는 레이븐은 밸런스 측면에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문제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이에, 레이븐의 '밸런스 변화와 문제점'을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 "사라진 슬로건" - 이제 한번 만든 장비는 끝까지 못 쓴다?

출시 초부터 게임을 즐기셨던 분들이라면, "한번 만든 장비는 끝까지 사용한다"는 문구가 기억나실 겁니다. 로딩 도중에 가끔 볼 수 있었던 이 문구는 지금 시점에 이르러서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되돌아보면 레이븐의 성공에는 '장비의 육성'이 쉬웠다는 점도 어느정도는 작용했을 겁니다. 경쟁작과는 다르게 장비를 챕터마다 새로 갖춰야 할 필요도 없었고, 적당한 옵션의 장비를 획득했다면 그걸 계속 육성하기만 하면 됐었거든요.

▲ 이제 이 문구는 의미가 사라진 셈입니다.

직업별로 구성된 방어구 세트 간에도 밸런스가 맞지 않아, 특정 무기와 세트만 사용하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효율이 높은 세트를 갖춰뒀다면 그냥 그 장비만을 그대로 성장시키면 됐죠. 랜덤 옵션까지 완벽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만족할 만한 성능은 보장됐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은 장비들이 등장하고, 기존 장비들을 대체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모바일 게임이라는 특성상 새로운 콘텐츠를 짧은 기간마다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의 부담감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용량 제한, 기종별 차이가 심한 모바일 게임은 온라인 게임보다 많은 양의 콘텐츠를 제공하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결국에는 반복 콘텐츠나 어느 정도의 OP(Over-Power) 콘텐츠로 귀결되기 마련이고요. 어찌됐든 게임사 입장에서는 매출을 발생시켜야 하니, 기존의 장비나 캐릭터보다 뛰어난 것들을 게임 내에 추가시켜서 유저들의 구매욕을 자극합니다.

▲ 벨트같이 새로운 장비를 추가하는 것은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새로운 장비나 캐릭터로 콘텐츠의 양을 늘리고, 판매하는 것이 모든 일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문제는 신규 장비들이 추가되는 시점에도 '직업별', '세트별' 밸런스가 심각하게 붕괴한 상황이었다는 거죠.



■ "특정 종족의 무지막지한 상향?" - 캐릭터간 밸런스가 대두하기 까지

캐릭터 밸런스 논란을 가속한 것은 '요새 반지' / '지휘검' / '레이븐 세트의 개편' 세 가지입니다. 신규 레이드와 함께 추가된 '요새 반지'는 '치명타 저항' 옵션을 가지고 있는 반지입니다. 말 그대로 치명타 확률과 대미지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 휴먼의 삼신기라 불리는 '요새 반지' / '지휘검' / '레이븐 세트'(장갑)

치명타 옵션 위주의 장비를 착용하던 엘프와 반고 캐릭터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요새 반지의 기본 옵션으로 치명타 저항이 붙고, 추가 옵션으로 한 번 더 붙으니 치명타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죠. 당연히 PVP 콘텐츠에서 승률도 점차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이 반지의 추가로 '휴먼'은 가장 많은 수혜를 얻었습니다. 다른 캐릭터와 달리 방어 위주의 세팅에 '방어 무시' 옵션 등으로 공격력을 보완했던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어차피 방어 위주 세팅이었으니, 휴먼들은 '쌍치저 요새 반지'의 등장으로 다른 캐릭터들보다 PVP에서 더 큰 우위를 점하기 시작합니다.

▲ 요새 반지 하나를 가지려고 지름을 마다치 않았죠. 저도 그랬고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쌍치저 반지로 점화된 밸런스 논란에 '지휘검'이라는 존재가 추가됩니다. 버프 스킬로 명중률과 공격력을 상승시킬 수 있었던 이 마법 무기는 '비교적 낮은 공격력'을 가지고 있던 휴먼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레이븐 세트가 세트 효과가 사라지고 단일 부위에 고유 옵션을 주는 방식으로 개편되면서, 밸런스 논란은 극에 달하게 됐습니다. 레이븐 악마 세트 장갑의 옵션이 무려 '일반 피해량 세자릿수 증가' (30레벨 기준)라는 옵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지휘 검의 버프 스킬로, 명중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지휘 검으로 상승한 공격력은 레이븐 세트의 개편을 겪으면서 어마 무시한 일반 피해량을 보여주는 필수 무기가 되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길드 대전에서 지휘 검을 든 휴먼이 평타로 나머지를 제압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탐험 도전과제를 달성하는 것도 이전보다는 훨씬 쉬워졌죠.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나머지 종족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게임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 "휴먼은 왜 날아올랐나?" - 휴먼, 반고, 그리고 엘프의 쇠락사

하지만 '휴먼이 처음부터 밸런스 논란을 낳았는가?'라는 질문에는 확실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반고와 엘프 유저들이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휴먼 유저들에게도 암울하기 짝이 없던 시절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 '엄마~ 왜 휴먼은 없어?' 이전까지 휴먼은 모험에서 앞서나갔던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두 종족 캐릭터들이 모험 지역을 별 3개로 클리어하고 있을 시점에, 휴먼 유저들은 이전 지역의 별 3개 클리어 업적을 겨우 달성하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죠. 사냥 측면에서는 '참수 + 버서커 세트'를 갖춘 반고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결국, 사냥 측면에서 따라잡지 못하는 휴먼 유저들은 길드 대전과 결투장으로 눈을 돌립니다. 여기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회피팔라 세트'와 '팔라 방무세트' 등으로 해답을 찾았습니다. PVP 콘텐츠 한정으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내게 됐습니다. 'PVP 하려면 휴먼'이라는 인식까지 생겼습니다.

▲ 휴먼 유저들은 결투장으로 눈을 돌렸고, 성공을 거머쥡니다.

여기에 '요새반지'와 '지휘검'이 추가되고, '레이븐 세트의 개편'으로 휴먼 유저들은 낮은 공격력에서 오던 갑갑함을 벗고 날아오르기 시작합니다. 레이븐 장비와 지휘검을 갖추면 탐험과 결장을 별 무리 없이 전부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반면에 나머지 두 종족 '반고'와 '엘프'는 출시 초부터 한 가지 세트만을 노리고 게임을 즐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고는 버서커 세트의 성능에 기대어 게임을 플레이했고, 엘프는 치명타 확률을 올려주는 '다크 엘프 세트'를 주력 장비로 삼아서 육성했습니다.

이는 다른 세트 장비들의 성능이 두 세트보다 크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해당 세트들만 장비한다면 사냥은 물론이고 PVP 콘텐츠까지 즐길 수 있었습니다.

▲ 버서커와 다크엘프 세트. 이 두 개만 있으면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법 무기와 요새 반지의 추가로 이런 상황은 조금씩 반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치명타 위주 세팅을 막아버린 '쌍치저 반지'를 시작으로 점차 입지가 좁아지다가, 어느덧 완전히 추월당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탐험 측면에서는 휴먼에게 따라잡혔고, PVP 콘텐츠에서는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죠.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세팅을 실험하고 싶어도 부담이 심하다는 점' 입니다. 레이븐 세트가 개편되고, 신규 세트가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기존 세트에 들인 노력과 시간이 마음 한쪽을 무겁게 했습니다. 게다가 개편 이전의 세트 효과가 더 좋고 현재 세트의 효과가 효율적이니, '신규 장비를 만들더라도 강해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었습니다.

▲ 세트 개편으로 엘프는 특징을 잃었고, 반고는 상대적으로 너프를 맞았다?

처음부터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면 쉽게 적응이라도 했겠지만,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기존 세트 효과가 너무나 좋았고, 이미 육성에 시간과 재화를 쏟아 부은 상황이었죠. 다른 세트들의 성능도 지금 쓰고 있는 것보다 좋지 않을 것은 뻔했습니다. 굳이 다른 장비들을 사용할 이유도 없었던 겁니다.

결국, 레이븐 세트 개편 이전부터 장비를 교체하던 휴먼 유저들과는 달리, 엘프와 반고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휴먼이 장비를 교체하던 흐름의 연장선에서 개편을 맞이했다면, 나머지 두 종족으로서는 하루아침에 천지가 뒤바뀐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 "이것저것 시도는 해보는 것 같은데?" - 레이븐이 보여주는 장비 개편의 방향성

출시 이후 약 6개월. 지금까지 흘러 넘겼던 밸런스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 이번 논란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문제를 바로잡기는커녕, 신규 장비들의 추가로 밸런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다행히도 개발사 측에서는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점차 변화를 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이븐 세트의 개편과 신규 장비 '파멸 세트'의 추가가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 검은색에 황금색 문양과 장식이 포인트였죠.

레이븐 방어구의 세트 옵션을 삭제하고, 부위마다 고유한 옵션을 부여함으로써 세트 간의 조합을 권장하려고 했습니다. 만드는 과정에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편이긴 하지만, 굳이 세트 옵션에 목메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생겼습니다.

얼마 전 등장한 신규 세트, '파멸' 시리즈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레이븐 세트와 마찬가지로 세트 옵션보다는 각 부위에 있는 고유 옵션들을 부여했습니다. 세트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기에, 자신이 원하는 옵션을 확보하고 활용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입니다.

▲ 그냥 원하는 옵션이 있는 부위를 찾아서 장착하면 됩니다.

이런 변화로 신규 유저들은 모든 부위를 같은 세트로 통일해야 하는 상황을 벗어났습니다. '파멸 세트'를 착용해서 게임을 즐기다가, 성장한 뒤에는 서리와 레이븐 세트로 넘어가도록 하는 성장 구조를 설계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쌍치저 논란이 거세지자 '반지와 목걸이 슬롯을 분리'한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결과만 바라본다면 '지휘검으로 증가하는 휴먼의 공격력을 늘려준 꼴'이 되어버렸지만, 유저들에게 선택권을 제공했다는 점은 의미를 둘 만합니다.

▲ 암살자 목걸이와 요새 반지를 모두 착용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실시간 레이드 등장 이후에 레이븐이 보여주는 방향성은 분명합니다. '세트 효과보다는 부위마다 원하는 옵션들을 조합할 수 있도록 변경'하겠다는 것입니다. 레이븐 세트의 개편, 장신구 슬롯과 벨트의 추가 등도 이런 계획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종족별 특징은 옅어지고, 그동안 자신들이 외쳤던 문구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개발사 나름대로는 이 상황을 벗어나려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이제는 덮기보다는 풀어야 할 때." - 반고븐, 휴이븐을 넘어...

출시 초 반고가 대세로 자리 잡자 등장한 별명 '반고븐 (반고 + 레이븐)'과 최근 휴먼의 상승세로 등장한 '휴이븐 (휴먼 + 레이븐)'은 모두 특정 종족의 밸런스 논란이 있던 시점에서 등장한 것들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 별로 언급되지 않은 엘프도 있고요)

▲ '가슴'으로 키운다는 엘프. 최근 실시간 레이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

현재는 다른 두 종족보다 휴먼의 장비 효율이 높다는 점이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거와는 다르게, '세트효과를 없애고, 모든 방어구에 붙는 보조 옵션을 통일'하는 선택지를 보여줬습니다.

이는 초장기 세 종족의 특성과 능력치가 조금씩 차이가 있고, 이를 기준으로 방어구의 세트 효과가 정해졌던 것을 생각하면 큰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종족 간 특징을 버리고 평준화를 택한 밸런스 조정.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지는 지켜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던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만은 의미를 둘 수 있을 겁니다.

▲ 세 캐릭터가 가졌던 특징과 차이들은 점차 의미가 없어지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레이븐 세트 개편으로 '이도저도 아닌' 특징 없는 종족이 되어버린 엘프와, 종족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방어구 및 무기 디자인, 소외받는 세트들의 개편 등 유저들이 제기하던 의견들도 귀담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밸런스 논란을 신규 장비와 신규 지역으로 덮기만 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을 벗어나, 새로운 해결점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숨 가쁘게 달려오기만 했던 6개월. 이제는 게임의 유지 보수와 남아 있는 유저들을 위한 조정 작업이 필요할 때입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던 밸런스 논란. 유저들은 나아지지 않는 밸런스로 인해 서로 반목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소외당하던 종족과 장비를 모두 짚어줄 수 있는 개발사의 개선책이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유저 간 반목을 진정시키고,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