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수들의 뛰어난 피지컬과 화려한 스킬 연계로 이뤄지는 한타 싸움이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잘하느냐 못하냐에 따라서 피지컬 차이와 글로벌 골드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밴픽 전략과 운영 방법이다.

핑크와드 코너는 2015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시즌5에서 치열함이 느껴지는 명승부 혹은 밴픽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경기를 선정하여 보이진 않지만, 게임 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밴픽 전략, 전술과 운영에 대해서 다룬다.

이번에 선정한 경기는 롤드컵 결승전 2세트 경기다.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운 SKT T1이 쿠 타이거즈가 완벽하게 만든 판을 운영과 전술을 통해 어떤 식으로 뒤집는지 잘 보여준 경기다. 쿠 타이거즈의 입장에서는 진저리가 날 정도로 SKT T1의 운영은 빈틈없이 단단했다.


■ 운영과 한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던 쿠 타이거즈 vs 강력한 후반 한타 조합의 SKT T1


밴에서 쿠 타이거즈가 준비를 많이 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스멥' 송경호의 주력 카드인 피오라의 스플릿 운영에 방해되는 1:1이 강력한 레넥톤을 밴하고, 엘리스가 없는 상황에서 최고의 정글러인 렉사이를 가져갔다. 쉔 서포터와 피오라를 고르면서 쿠 타이거즈가 스플릿 운영에서 이득을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케넨 원거리 딜러와 빅토르는 프나틱이 보여줬듯이 굉장한 시너지를 낸다. 빅토르가 긴 사거리로 압박을 넣으면 상대는 들어올 수밖에 없고, 케넨 원거리 딜러가 150%의 활용도를 발휘하는 상황이 나온다. 한타도 조건부로 강력하고, 운영도 가능한 다재다능한 조합이었다.

이를 상대하는 SKT T1의 조합은 대놓고 한타였다. 자르반 4세와 알리스타가 앞 라인에서 버텨주고, 럼블이 '이퀄라이저 미사일'로 공격 또는 수비 모두 가능한 전략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균형 잡힌 한타 조합을 선택했다. 거기다 후반으로 갈수록 룰루와 트리스타나의 시너지가 강해지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강함의 탄력을 받는 구성이었다.


■ SKT T1의 실수를 잡아 스노우 볼을 굴린 쿠 타이거즈


▲ 초반 성장에 난항을 겪은 자르반 4세와 럼블. 그리고 빅토르의 활약 (클릭 시 확대).


SKT T1의 초반 실수를 낚아챈 쿠 타이거즈가 여기서 생긴 눈덩이를 급속도로 굴렸다. '쿠로' 이서행의 빅토르를 룰루를 상대로 주도권을 잡아 발 빠른 로밍으로 격차를 더욱 벌렸다. 이로써 1세트에서 활약한 '마린' 장경환의 럼블과 '벵기' 배성웅의 자르반 4세를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쿠 타이거즈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SKT T1이 말도 안 되게 잘했다. 라인 스왑 단계를 통해 럼블의 성장 시간을 최대한 벌어줬고, 피오라와 만나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았다.

또 자르반 4세는 빠르게 시야석을 구매해 불리한 상황에서 오히려 쿠 타이거즈보다 더 넓게 맵을 밝혔다. 유리한 건 쿠 타이거즈인데, SKT T1이 맵을 훨씬 더 넓게 사용했다. 그래도 여전히 모든 라인에서 쿠 타이거즈가 앞섰다.


■ 분위기를 환기 시킨 페이커의 솔로 킬 이후 완벽한 SKT T1의 운영


럼블과 자르반 4세의 성장이 제 궤도에 올랐지만, 쿠 타이거즈의 성장이 훨씬 우세한 상황이었다. 특히, 빅토르는 3킬을 기록해 룰루와의 격차를 점점 더 내는 상황. 여기서 '페이커' 이상혁이 왜 자신이 '세체미'인지를 제대로 입증했다. 빅토르에게 점멸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과감하게 파고들어 솔로 킬을 따내, 쿠 타이거즈의 기세에 재를 뿌렸다.

솔로 킬 이후 SKT T1은 더 침착해졌고, 단단해져 갔다. 럼블은 많이 전사했지만, 여러 개의 킬로 충분한 화력을 보유했고, 자르반 4세는 앞에서 버티기만 하면 됐다. 핵심 딜러인 트리스타나와 룰루는 한 번의 전사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유리한 쪽은 쿠 타이거즈였지만, SKT T1 조합의 후반 시너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쿠 타이거즈는 마음이 급해져 뭔가를 하려고 했다. 그럴수록 SKT T1가 던져 놓은 올가미에 쿠 타이거즈는 스스로 목을 들이민 격이 될 뿐이었다.

▲ OGN 방송 화면 캡처

SKT T1이 드래곤을 빠르게 가져갔고, SKT T1이 우회해서 오는 사이 쿠 타이거즈는 미드 압박을 통해 이득을 보려 했다. 1차 타워를 파괴한 쿠 타이거즈가 빠지려던 찰나, 봇 라인에서 트리스타나가 타워 파괴에 성공했다. 오히려 불리한 SKT T1이 드래곤을 이득 본 상황. 독이 바짝 오른 쿠 타이거즈는 미드 2차로 돌격했다.


트리스타나가 봇을 밀고 있는 상황. 빅토르가 미드 라인을 정리하고, 케넨이 봇 라인을 막으러 가는 것을 포착한 SKT T1은 주저하지 않고 한타를 걸었다. 말로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판단이다. 그러나 상대가 앞서는 상황에서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을 3초 안에 내리는 것은 SKT T1이기에 가능했다. 이 판단으로 SKT T1이 한타 승리와 봇 2차 타워를 파괴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 쿠 타이거즈의 완벽한 바론 설계. 유일한 패착은 상대가 SKT T1이었다는 것이다.

잘 성장한 트리스타나와 룰루가 엄청난 시너지를 보였다. 알리스타와 럼블 자르반의 연계 또한 위력적이었다. 모든 것이 SKT T1이 밴픽 단계에서 설계한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갔다. 시간은 SKT T1의 편이였고, 쿠 타이거즈는 뭔가 시도해야 했다.

SKT T1을 무찌를 타개책을 쿠 타이거즈는 조합 컨셉에서 찾았다. 유일하게 우위에선 스플릿 주도권을 바탕으로 바론 설계에 들어갔다. 한 번의 바론 찌르기로 럼블의 순간 이동을 뺐다. 잠시 후 피오라가 봇 라인을 밀고, 럼블이 이를 막으러 오는 사이 쿠 타이거즈가 승부수를 던졌다. 완벽하게 쿠 타이거즈의 의도대로 판이 짜였다.


그러나 SKT T1의 교전 능력은 쿠 타이거즈의 예측 범위를 넘어섰다. 4:5 상황에서 알리스타와 자르반이 시간을 끌었고, 피오라가 트리스타나를 물려고 했으나 '대구경 탄환'에 전장 이탈 당했다. 룰루는 그 사이 마음 놓고 프리딜을 퍼부었고 럼블이 도착했다. 쿠 타이거즈의 설계는 빈틈이 없었다. 다만, 상대하는 팀이 SKT T1이었다는 것이 쿠 타이거즈의 유일한 패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