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맞이...

바야흐로 게임의 계절 겨울이다. 마지막 남은 기대작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오고, 이어지는 휴일마다 따뜻한 집에서 이불과 감귤을 벗 삼아 게임을 하는 시기. 게이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긴 시간을 재미있고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 좋은 게임이다.

하지만 이제 평범한 게임은 질릴 수도 있다. 한두 시간 투자로는 엄두도 안 나는 몇몇 온라인 게임들, 또 하나에 6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해외 AAA 급 대작 게임들처럼 말이다. 뭐가 다르고, 왜 그걸 해야 하는지 딱히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게임들 속에서, 한가지 어떤 식으로라도 반짝하는 게임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여기 몇 가지 게임을 골라봤다. 가격도 싸고, 스팀을 통해 쉽게 구할 수도 있고, PC 성능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준이 무엇이냐? 바로 '정상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게임 속에 있든, 반짝반짝 자신만의 약기운을 뽐낼 '이상한' 게임들을 딱 여섯 개만 골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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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염소 뽑았다, '염소 시뮬레이터(Goat Simulator)'

트레일러부터 '데드 아일랜드'의 것을 패러디 했다

'~시뮬레이터'라는 이름으로 각종 현실의 활동들을 게임으로 옮겨온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되도록 진짜 현실처럼 옮기는 것이었던 '시뮬레이션' 장르가 이제는 온갖 약쟁이들의 상상 구현의 도구가 된 것에는 바로 이 게임, '염소 시뮬레이터'의 공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시작은 미약했다. 그저 한 게임 스튜디오 내의 게임잼으로 시작해 만들어진 출시 예정의 게임도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의 영상에서 시작된 반응이 이 게임을 정식 출시작으로 만들었다. 혓바닥을 휘날리며 사람에게, 차에게 돌진하는 염소. 그 누가 이 짙은 헤로인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을까.

▲ 이 게임의 많은 것을 압축하고 있는 한장

조작은 간단하다. WASD의 이동과 뛰기, 점프, 혀로 붙들기, 물리엔진을 위한 랙 돌 모드 등이 전부다. 공격이라고 있는 것은 뿔로 들이받는 것 하나다. 게임에서 주어진 퀘스트나 목표도 당연히 없다. 이건 '시뮬레이터'니까. 그저 이 또 하나의 현실을 살아가면 된다. 문제라면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염소도, 이 세계는 마치 그 자체가 마약 같다는 거지만.

▲ 나는 완전해졌다!

준비된 장소는 자그마한 염소 마을과 염소 도시 두 곳이지만, 플레이어가 놀 곳은 가득하다. 있을 것도 제법 다 있고, 무엇보다 많은 것은 이스터에그들이다. 사실 이쯤 되니 정식 콘텐츠인지 이스터에그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로데오 기계를 타면 등에 사람을 태우고 다닐 수 있고, 제물로 다섯 명의 인간을 바치면 악마 염소가 될 수 있다.

▲ 부숴주마!

개인적으로 찾아낸 이 게임의 가장 멋진 용도는 바로 접대용이다. 만약 게임을 좋아하는, 한 두명 세명 쯤 되는, 연인이 될 가능성이 없는 친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면, 이 게임은 즐거운 레크리에이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마약이 들어간 게임 파티, 어떤가?


■ 청소는 전투다, '비세라 클린업 디테일(Viscera Cleanup detail)'

▲ 환영한다. 이런 난장판에 온걸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 '어지르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다.'고.

한 번 상상해보자. 그 세계가 무엇이 됐든,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가 벌어졌다. 또 그게 누구가 됐든, 정의의 투사이자 강력한 영웅은 마찬가지로 그게 누구든 막대한 악당을 물리쳤다. 이 대단한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게임에서는 '장소'만이 중요하다.

수많은 우주인이 살아가는 우주정거장? 중세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성? 아름답기 그지없는 초원의 온실? 어디라도 똑같다. 처절한 전투가 지나고 난 뒤면 그곳에는 벽과 바닥을 구분하기 힘들 만큼 낭자한 유혈과 자갈처럼 굴러다니는 각종 신체 부위, 부서진 기물과 병기들이 가득하다. 어찌 됐든 전투는 끝났고, 평화를 되찾았으니 다시 눌러살아야 할 텐데, 문제는 지나치게 더럽다는 것이다.

▲ 네놈들이 침략만 안했어도!

여기서 '어지르는 놈 따로 치우는 놈 따로'라는 격언이 나온다. 하지만 고결한 영웅들은 너무 바쁘고 또 너무 귀하신 몸이라 직접 뒤처리를 할 수 없다. 결국, 우리의 몫이다. 어느 게임에서건 부탁하면 다 들어주는 무보수 만능 하인, 플레이어 말이다.

영웅들이 악당을 물리치는 데에만 막강한 무기와 도구가 필요한 게 아니다. 더러움이라는 인류 최악의 적을 몰살하는 것은 단순히 한두 가지 도구로 되지 않는다. 기본적인 대걸레와 빗자루, 그리고 대걸레를 빨을 물통도 주기적으로 갈아주어야 하고, 소각장에 태워버려야 할 사체와 쓰레기들을 담을 박스도 계속 뽑아내야 한다. 또 어두운 곳에서 쓸 랜턴도 있어야 한다. 다 써서 없어진 소모품을 채워야 하는 건 물론이다. 군대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청소는 전투다."



이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미 놓여있는 것을 깨끗하게 치우는 게 아니라, 이미 치우고 난 것을 다시 더럽히지 않는 것이다. 혹시나 클릭 미스로 더러워진 물통을 엎었다거나, 사체를 떨궜다거나 하는 비극이 일어나면 해야 할 일이 다시 늘어난다. 아, 청소란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던가. 전국 수만 명의 청소노동자 여러분들께 경의와 존경을 보내는 시간이다.

▲ 모두 불길 속에 사라지는 법...

그런데도 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대걸레질 한 번, 소각로 행 한 번마다 눈에 띄게 깨끗해지는 바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장소는 모두 인류 역사상 최고로 더러운 장소들이다. 이 장소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리는 작업,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 모로 가도 건너기만 하면 된다, '폴리 브릿지(Poly bridge)'


이 게임은 사실 생소한 장르는 아니다. 두 지점 간을 창의적으로 잇는 다리를 만드는 게임은 이미 몇 가지가 시장에 나왔으니까. 하지만 이 게임이 회자되는 건 그 '창의적'이라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서다.

처음 이 게임을 알게 된 건 게임의 정식 소개 영상도 아니고, 단 한 장의 GIF 그림 파일을 통해서였다. 그전까지 기자는 이 게임이 '두 지점을 잇는 다리를 건설하는 게임'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에서 보인 것은 다리도 아니고, 애초에 양쪽이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다. 대신 그 구조물은 마치 투석기처럼 차를 반대편으로 쏘아보냈다. 착지까지 완벽하게.

▲ 이걸 보고 게임을 한다면, 속은거다

이 게임을 하다 보면 비슷한 맥락의 인디 게임 '비시즈'가 생각난다. 둘 다 겉보기엔 멀쩡한 퍼즐 게임 같아 보인다. 무얼 부순다던지 다리를 건넌다던지 하는 목표를 주고, 그 목표를 위해 매우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해내야 한다. 하지만 창조적이라고 해서 마냥 평화롭거나 조용하진 않다. 왜냐면 파괴란, 새롭고 창의적일수록 재미있으니까. 그래서 영화와 만화 속 악당들이 기발한 방법만 찾다가 패배하지 않나.

▲ 바로 이런 게임이다

이 게임의 룰은 단 하나다. 왼쪽에 서있는 자동차를 추락시키지 않고 오른쪽 편으로 보낼 것. 그 외에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다리인 척 88청룡열차의 360도 코스를 선보여도 되고, 그렌라간이 된 듯 나선력을 뽐내도 좋다. 심지어 애초에 다리로 양쪽이 이어져 있지 않아도 된다. 단지, 차만 보낼 수 있으면.


▲ 이쯤되면 더이상 다리도 아니다...

일단 이 게임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냥 미션을 깨는 것도 맵 별 차이로 쉽지 않은데, 거기에 이걸 창의적으로, 누구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하려니 그건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다. 그렇지만, 괴물처럼 대단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언제나 있다. 결국 어떤 다리가 놓이는가는 유저의 몫이다.


■ 수술과 살인의 한끗 차이, '서전 시뮬레이터(Sugeon Simulator)'

▲ 이미 수술의 영역을 넘어섰다

수많은 '시뮬레이터'식 아류는 담지 않으려 했지만, 이 게임은 이 분야에서 레전드 급이다. '염소 시뮬레이터' 이전의 시뮬레이터 장르의 준동을 이끌고, 맛 간 게임으로서의 활로를 모색한 그 게임. '서전 시뮬레이터'는 말 그대로 외과 수술을 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게 다라면 이 글에 포함되지 못 했을 것이다.

우선 이쪽 게임들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직관적인 조작법을 도입했는데, 바로 왼손을 그대로 적용해 버튼 하나마다 손가락 하나를 조종하고, 그렇게 왼손의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의 위치를 조정하게 된다. 얼핏 보면 굉장히 직관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이렇게 하다보면

▲ 그냥 살인을 하게 된다

참고로 기자는 다크소울1,2 와 블러드본까지 모두 클리어 한 전 세계 1%대 달성률의 업적을 가지고 있는 게이머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다크소울에 비해 100,000배쯤 어렵다. 각 손가락마다 10배씩 어려운데 그걸 다섯 제곱해야 하니 그 정도 된다.

이 게임의 또 한 가지 코드는 그로테스크함이다. 분명 외과수술이 건만, 대충 갈비뼈를 도려내 흉곽을 드러내고, 뒷일 생각 없이 중요한 장기를 가리고 있는 다른 장기들, 폐, 간, 혈관 따위를 다 들어내도 된다. 모든 장기를 남김없이 들어내고 새 심장을 박아준 다음, 슬슬 '그래도 사람은 폐가 없으면 못 살잖아?'라는 의문이 들 때면 클리어 메시지가 "좋아 보이는군요. 아마도 살아날 겁니다."라고 안심을 시켜준다.

▲ 여기까지만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게이머들에게 의학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는 이 게임은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 왜 위대한 영장류인지 깨닫게 해준다. 이 게임을 하면 당장에라도 광장 한복판으로 달려가서 '인간의 손이 이렇게 위대합니다 여러분!' 하고 외치고 싶어질 것이다. 정말로.


■ 맛있어질 권리, '나는 빵이다(I am bread)'

▲ 그래 너 빵이다

모든 것에는 태어난 이유가 있고,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좀 잔인하지만 먹을 것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만약 식재료들에게 혼이 있다면 그들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것이리라.

여기 빵이 한 조각 있다. 이 빵의 목표는 완벽하게 구워진 최고의 토스트가 되는 거다. 그런데 그냥 얌전히 토스터에 들어가는 순간을 기다리면 될 것을, 너무나 자아실현욕구가 강한 이 빵조각 친구는 직접 이뤄내야만 한다. 문제는 빵이 대체 왜 있는지 모를 장소가 차고 넘친다는 것. 주방에 있는 걸 보는 게 더 어렵다. 눈 내리는 집 앞마당, 차고, 공사 중인 방 등등 온갖 장소에서 식빵이 튀어나온다.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뭐, 장소까지는 괜찮다. 정말 필요해서 비상식량으로 갖다놓았을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환경에서도 빵을 구워야 하고, 이 게임에서는 일단 온도를 섭씨 40도 이상 낼 수 있는 물건이라면 죄다 빵을 구울 수 있다는 점이다. 창고에 달려있는 백열전구로도 빵을 구울 수 있고, 세워져 있는 자동차 배기구를 통해서도, 심지어 햇빛을 모은 돋보기로도 구울 수 있다. 결국 이런 모든 화기를 조절해 100%의 멋진 구운 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 가장 이상적인 조건

하지만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잊을 뻔했지만, 이 친구는 빵이다. 팔다리도 없고, 네 모서리를 조작해서 움직여야 한다. 움켜쥐거나, 살짝 밀거나,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동작을 네 부위마다 따로 해줘서 움직여야 한다. 이건 마치 '서전 시뮬레이터' 같다. 그리고 당연히 먹을 것은 위생에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빵이 더러워지면 실패다.

▲ 마침내 완벽한 토스트가 되었다!

빵이 맛있어지기 가장 어려운 극한 상황. 하지만 괴물 같은 게이머들은 네 손가락으로 온갖 묘기를 선보인다. 마치 표창처럼 날아가 3초 만에 빵을 구워버리기도 하고, 견자단 저리 가라 급의 액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식빵뿐만 아니라 다른 빵까지 나가게 된다. 배가 고파지는가? 이 게임을 하기 전엔 꼭 밥을 먹기 바란다. 비위를 생각해서다.

유명 유투버 'Robbaz'의 '나는 빵이다' 플레이 영상



■ 새로운 유망주, '자, 이제 누가 네 아빠지?(Who's Your Daddy?)'

"누가 네 아빠냐?"

이들 맛 간 게임 올스타즈에 이어 새로운 유망주가 있다. 아직 정식 출시도 안됐고, 이제 막 게임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강력하다. 가족을 위한 맛 간 게임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둘로 나뉘어 한 명은 갓난아기, 한 명은 그 아빠 역할을 맡는다. 룰은 간단하다. 아기는 모든 걸 부수고 망가뜨리며 자신을 위험에 놓으면 된다. 아빠의 역할도 간단하다. 그런 아기를 막으면 된다. 분명 룰은 간단한데, 게임은 너무나 쉽게 난장판이 된다.

▲ 이게 진짜 전쟁이다

이 게임은 이제 막 킥스타터를 성공해 스팀 얼리 액세스를 지원 중인 신출내기로, 정식 버전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발상만큼은 기발하다. 수많은 예비 아빠들, 그리고 어렸을 때 아빠를 수없이 괴롭혀왔을 다 큰 아기들, 그리고 내가 집을 비웠을 때 우리 남편이 뭐 하는지 궁금한 엄마들. 모두에게 열려있다.

▲ 안돼...

바로 어제 출시된 이 게임, 휴일 동안 가족을 괴롭히고 싶다면 이 게임을 추천한다. 갓난아기가 일부러 오븐에 들어가고 콘센트에 손가락을 꽂고 칼 무더기 속으로 기어가는 지옥도에서 고생할 모든 아빠들의 안녕을 빈다.


■ 이상함과 창의성 사이의 한끗, 그 재미

위에 설명한 게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미쳤다고? 물론 그것도 맞다. 하지만 정확히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창의성'이다. 혹은 '창발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갑자기 게임을 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것, 그게 이 게임들의 공통점이다. 미약하거나 매우 단순한 목표는 주어지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은 모두 유저가 정할 수 있는 것이다.

▲ 이녀석도 같은 범주다

대신 전체적인 플레이 타임은 아무래도 짧지만, 이 게임들은 모두 그런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만큼 가격이 싸고, 용량 부담도 적고,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투자도 많이, 개발도 많이, 돈도 많이 받아야 하는 AAA 게임들과는 지향점이 다르다. 이 게임들은 아무리 놀이터가 작아도 자유롭게 놀 수만 있다면 무엇이 부족하냐는 말을 하는 거다. 음, 그러니까, 누군가 "너 이런 맛 간 게임 좋아해?"라고 어떤 눈빛과 함께 물어보면, "난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게임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해라. 당당하게.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스팀으로 달려가길 바란다. 현재 모든 게임이 연쇄 할인 마의 피해자가 되어 보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 염소, 외팔이 외과의, 지구 최강 청소부, 다리 건축가, 식빵 한 조각 등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달려가라! 약 냄새가 가득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