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펜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웅장하고 뛰어난 건축물"
- 안토니오 다 막달레나



캄보디아라는 나라를 생각해보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내전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최빈국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킬링필드'가 자행되었던 비극적인 역사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이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앙코르와트'일 것이다. 캄보디아의 국기에도 그려져있는 앙코르와트는 종교 사원이자 관광지로 유명하고, 관광객들이 캄보디아를 찾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 앙코르와트의 모습

▲ 캄보디아 국기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에 위치한 사원으로, 12세기 초에 크메르 제국의 왕인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처음 창건되었을 때는 힌두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바라문교 (브라만교) 사원으로, 바라문교의 주신 가운데 하나인 비슈누 신에게 봉헌되었다.

당시 크메르 족은 왕이나 왕족이 죽으면 죽은 사람이 믿고 있던 신과 합일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왕들은 자신이 죽으면 자신과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설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크메르 제국 왕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르야바르만 2세는 바라문교의 주신 중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해 앙코르와트를 건립했다. 현재는 불교 사원으로 더 널리 알려져있지만, 건축 양식과 장식과 부조 등 앙코르와트 속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모습에서 바라문 교 사원의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앙코르와트의 구조는 불교와 바라문교의 세계관에서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 속의 산인 수미산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중앙의 가장 높은 탑이 수미산을 상징하며, 중앙을 둘러싼 4개의 탑은 주변의 봉우리들을 상징한다. 외곽의 벽은 세상의 끝자락에 있다는 산들을, 그 주위를 둘러싼 해자는 바다를 의미한다.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세계의 모습을 앙코르와트에 담아낸 것이다.

▲ 수미산의 모습을 구현했다

앙코르와트는 독특하게도 사원의 정문이 해가 지는 방향인 서쪽을 향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종교 건축물들은 대부분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지어져있다. 당시의 종교에서는 흔히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생명의 탄생되는 곳으로 생각하고, 해가 지는 서쪽을 죽음으로 생각한 것을 생각하면 종교 건축물이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 이러한 문화는 이집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피라미드 대다수가 있는 왕가의 무덤은 나일 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앙코르와트는 서쪽을 향해 지어져있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연구가들이 다양한 추론을 해오고 있지만, 명확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가장 신빙성있는 추론은 앙코르와트가 왕이 죽은 뒤, 신과 합일한 사후 세계를 위해 건설된 사원이니만큼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추론이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초에 지어진 이후 14~15세기 경에 불교 사원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로는 사람의 관리가 중단된 것 으로 추정되나, 현지인들의 발길 자체가 끊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앙코르와트가 완전히 사람의 발길이 끊긴 채로 정글 속에 숨겨져 있다가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의 손에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앙코르 유적 자체는 소실된 적이 없고, 위치와 존재 모두 현지의 크메르인 (지금의 캄보디아인) 은 알고 있었고, 그 이전에도 서양인들 역시 먼저 방문한 사람이 많았다. 다만 앙코르와트가 서양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앙리 무오의 여행기가 출판되면서부터다.

▲ 해자가 둘러싼 앙코르와트 전경

▲ 앙코르와트 역시 앙코르 유적지 가운데 일부분이다

흔히 앙코르와트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는 우거진 밀림 속에 숨겨진 사원으로, 거대한 나무가 사원의 곳곳을 감싸고 있는 이미지일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앙코르와트는 밀림의 영향을 적게 받은 유적으로, 유적 자체를 나무로 감싸고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들이 앙코르와트에 대한 이미지를 오인하고 있는 데는 영화 '툼레이더'의 영향이 크다. '툼레이더'에서 배경으로 등장한, 울창한 나무로 둘러쌓인 사원은 '따프롬 (Ta Prohm)'으로 같은 앙코르 유적지 내에 있고 같은 불교 사원이지만 건립 시기도 건립 목적도 다르다. 따프롬은 곳곳이 울창한 나무로 뒤덮혀 내부에 진입하기도 힘들고, 사원 곳곳이 많이 손상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툼레이더 영화 속 한 장면

▲ 스펑(spoan)나무가 유적 곳곳을 뒤덮었다

반면 앙코르와트는 같은 밀림 속에 있지만 사원 주변이 해자로 둘러쌓여 수목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고, 덕분에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앙코르와트는 자연의 손길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으나,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서 많은 파괴를 겪었다.

현재는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파괴가 많이 줄어들었으나, 1970년대에 베트남 군과 크메르루주의 게릴라들의 거점으로 사용되면서 심각한 수난을 겪었다. 불상을 비롯해서 각종 석조 장식등에 훼손이 있었고, 중요 유물이 도난 당하는 등 전체 유적의 약 70%가 복원 불가 판정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피해를 받았다.

▲ 앙코르와트 3D 복원도

지금도 앙코르와트에 직접 방문해보면 벽이나 다리 등에서 총탄에 의해 생긴 홈이 곳곳에 남아있어 내전의 상흔을 체감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손에 꼽을만한 건축물이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인류에 의해서 파손된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얼마 전 이슬람 무장세력인 IS에 의해 팔미라 유적이 파괴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허탈함을 금치 못했다. 수천년간 버텨오며 당시의 역사를, 문화를 알 수 있게끔 해준 유적이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한순간에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앙코르와트 역시 그런 위기에 처했었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남아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역사나 유물에 투자하는 인력, 자금이면 지금 당장 배고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혹은 '당장 내가 먹고 살기에 급한 상황에서 그런 곳에 신경이 쓰이겠는가.' 그 말에도 분명 일리는 있다. 역사나 유적이 지금 당장 내 배를 불려주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역사는, 그리고 유물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한 말로 알려져있으나, 실제로 이런 말을 한 기록은 없다. 다만 이 한 문장이 경고하고 있는 바는 분명하다. '스스로의 역사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과오와 실패를 번복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 앙코르와트 게임 내 모습

앙코르와트는 화약 시대에 건설할 수 있는 건물로, 방어시 효과적인 불가사의 중 하나다. 유저 대부분이 선택하는 화약 시대의 불가사의는 '앙코르와트'와 '베르사이유' 이파전으로 나뉠 만큼 쓸모가 큰 편이다.

12세기 경 크메르 제국에서 앙코르와트가 건설된 이유가 사원 목적에 있는 만큼 게임 내에서도 치유쪽 효과를 준다. 불가사의의 효과로는 일정 시간마다 범위안에 있는 영웅 및 수비병들의 체력을 일정량 회복시킨다. 예전에는 방어시 3초마다 %단위로 회복 시켰지만, 체력이 높은 방어측 영웅이 죽지 않는 상태로 공격측 유닛을 제거하면서 개발 의도와는 다르다고 판단. '월드 워' 업데이트 이후에는 2초마다 고정 수치를 회복시키는 걸로 변경됐다.

효과가 변경됐지만, 화약 시대 불가사의 중 '앙코르와트' 만큼 방어에 효과적인 다른 불가사의는 없기 때문에 대체로 앙코르와트를 그대로 사용한다. 기병이나 영웅은 예전만큼의 체력을 회복하지는 않지만, 보병 입장에서 보면 체력이 적더라도 바로 만피가 되기 때문에 큰 손해는 없다.

그 외에도 하루 한번 앙코르와트에서는 무역품을 획득할 수 있다. 화약 3개, 계몽 4개, 산업 5개로 시대가 높아질수록 획득할 수 있는 물품이 많아지며, 무역품은 선택할 수 없고 랜덤으로 정해진다. 특히 최근 월드 워가 업데이트 되면서 총력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용병의 활약도 중요해졌다. 따라서 용병을 고용하기 위한 무역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앙코르와트에서 제공하는 무역품의 중요성도 덩달아 커져 인기가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