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유료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는 1세대 온라인 게임으로 당시 PC방 열풍을 일으켰던 게임중 하나이다. 집에서 이용하려면 모뎀과 함께 분당 몇십 원의 전화 이용료를 납부하는 방법으로 접속해야 했고, 이후 PPPoE 방식의 이더넷을 설치하여 리니지를 즐겼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역시 리니지와 함께 PC방 문화를 주도했던 게임으로 분류된다. 규모가 있는 PC방에서는 규모가 작은 토너먼트 대회를 진행하기도 했고, 게임사 주관의 래더 대회 역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아마 이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유저라면 '신주영'이라는 이름이 꽤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모르더라도 누군가를 통해 들어 봤다거나, 서점에서 그의 이름이 써진 출판물을 스쳐지나간 인연(?)이 있지 않을까.

▲ 게이머라면 한 번쯤 봤을 법한 공략집 -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닉키 laverne)


신주영은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던 1998년부터 활약한 게이머다. 당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파생되기 전이었고, 협회나 소속 팀, 리그 조차 없던 시절에 활약했던 게이머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같은 세대였던 이기석과 함께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고 있다.

1999년에 신주영은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입대를 하게 된다. 군 전역 후 2004년에는 KTF에 입단하며 복귀를 하지만, 2005년에 돌연 은퇴를 선언. 이후 개인 사업을 한다고 알려졌다.

그랬던 그가 현재 리니지를 즐기고 있다는 소식이다. 신주영은 현재 해골 서버에서 '본좌a'라는 기사 캐릭터를 플레이하고 있다. 가끔씩 인터넷 방송을 통해 팬들과 소통을 하며, 또 다른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그를 만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에서 리니지 게이머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인터뷰를 위해 글루딘 마을의 가장 큰 여관을 대실했다.



Q.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먼저, 인벤 가족분들께 간단한 인사 부탁한다.

- 인터뷰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정말 기쁘다. 만나서 반갑다. 1세대 프로게이머였던 신주영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40대라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게 되었다.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지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책임감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다. 이렇게라도 근황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편안하다. 신주영이란 이름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기억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Q. 이기석, 김태형과 같은 1세대 프로게이머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리니지 내에서도 화제가 됐었다. 정말 프로게이머 신주영이 맞는가.

- 프로게이머 신주영 맞다. (웃음) 아마 팬분들이 헷갈리시는 이유가 신주영이라는 이름 때문일 것 같다. 사실 신주영이란 이름은 첫사랑이었던 누나의 이름이다. 배틀넷 아이디를 영어 그대로 쓰다가 유명세를 타게 되어 신주영이라는 예명을 쓰게 되었다. 이름을 알리고부터는 본명을 쓰지 않았다. 쓸 수도 없었던 게 본명을 말하면 당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다.


Q. 프로게이머 은퇴 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 생각해보니 참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2005년에 은퇴를 했으니.. 강산이 한 번 바뀔 시간이 흘렀다는 점에서 새삼 놀랐다. 은퇴 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PC방 사업을 하다가 그만두고, 이것저것 여러 사업을 했다. 지금은 쉬면서 가족에 충실하고, 시간이 될 때마다 리니지를 즐기고 있다. 약간 머리를 식히는 단계랄까. 한동안은 리니지를 하면서 취미 생활도 즐기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 해골 서버에서 '본좌a' 캐릭터를 플레이중인 신주영.


Q. 많은 이들이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하고 있다.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고.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음, 사실 많이 부끄럽다. 그냥 한 명의 게이머로서 우연히 명성을 얻었던 것뿐인데.. 이런 평가를 해주시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하고, 기쁠 따름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사실 내가 활동하던 시기는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이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프로게이머라고 불렸던 게 계속 이어지고, 대중분들도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흐르면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프로라는 타이틀은 어떤 분야를 통해 먹고 살 수 있는 개체가 된다거나,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의 프로게이머들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Q. 1998년 12월에 있었던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화제가 됐었다.

- 우승부터 입대까지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래더 토너먼트부터 회상하자면, 당시 우승은 가뭄에 단비 같은 의미가 있다. 내 프로게이머 활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고. 대중분들에게 신주영이란 이름을 알릴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때 경향 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 인터뷰가 매거진 1면에 실리면서 유명세가 시작됐었다. 덕분에 하루에 2시간밖에 못 잘 정도로 많은 스케쥴이 뒤따랐다. 오전부터 인터뷰나 촬영 등의 행사 초청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Q. 이후 라이벌이었던 이기석이 CF를 찍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던 시기에 입대하면서 추가적인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쉬움이 많을 것 같은데.

- 사실 이기석이 찍었던 CF는 내게 먼저 제의가 들어 왔었다. 금전적인 부분이나 계약 조건 등 모든 대우가 좋았다. 계약 직전까지 갔었는데.. 군 입대 때문에 계약이 불발되었다. 입대를 미루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자체가 인정을 받지 못할 때라 계약 조건에 대한 미팅도 되게 재밌었고, CF 업체 측도 많이 당황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 당시 큰 화제가 됐었던 쌈장 CF - 출처 : 유투브 영상


Q. 군 전역 후, 2004년에 KTF로 복귀했다가 2005년에 은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군 전역 후 행보를 궁금해하셨던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중간에 꽤 비어있는 시간이 있다 보니, 주변에서도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이다. 아시다시피 KTF에 입단하여 연습도 꾸준히 하고, 나름 노력을 했다. 근데 나 자신에 대한 문제가 좀 컸다. 아무래도 입대 전 만큼의 열정이 없었다. 그러다가 말도 없이 대전에 있는 본가로 내려가게 되면서.. 은퇴하게 되었다. 모양새 안 좋긴 했으나, 스타크래프에 대한 열정이 식은 상태라 큰 신경은 쓰지 않았다. 당시 생각할 일이 너무 많기도 했고...

이후 다른 팀에서의 오퍼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냥 좀 쉬고 싶었다. 사실 군 생활이 평탄했던 것도 아니었다. 군생활을 안 좋게 마무리를 했었는데, 그게 전역 이후 사회 활동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은퇴한 이후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 진짜 재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먹고 살기 위한 사업을 하면서 지냈다.


Q. 당시 선택에 후회는 없었는가.

- 가끔은 다른 길을 선택했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때 이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때 이 길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삶이 과거의 선택한 결과이고, 이미 다 지난 일이기 때문에 되도록 여운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 한 번 게이머는 영원한 게이머인 것.


Q. 워낙 게임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은퇴 후 무슨 게임을 즐겼는지 궁금하다.

- 국내 온라인 게임은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리니지, 아이온, DK, 뮤, 디아블로2 등등.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그냥 평범한 게이머인 것 같다. (웃음)


Q. 리니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또 리니지를 플레이한 지 얼마나 되었는가.

-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하던 때가 1998년도다. 당시 SG 클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클랜원 다수가 리니지를 즐기고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리니지를 알게 되었다. 군 전역 후, 조금씩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뒀었는데, 이번에 신규 서버가 나온다고 하여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잠깐 즐겼을 당시에 향수도 좀 있고 해서 그 시절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Q. 리니지 인터넷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

- 친구와 같이 리니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인터넷 방송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꼬드겨서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 모르는 점이 많아 조금씩 배워가면서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 친구가 많이 도움을 주고 있는데... 사실 이 친구가 우리 혈맹의 군주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 아마 혈맹 홍보 차원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라고 권유했던 게 아닌가 싶다. (웃음)


Q. 리니지나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알아보는 유저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관련하여 에피소드가 있는지.

- 인터넷 방송을 통해 '내가 신주영이다'고 말해서 알려지게 됐다. 방송 중에 친구가 무턱대고 공개한 것도 있고.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사칭이다'는 말이다. 캠 사용 방법을 몰라 얼굴은 공개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또 일부 팬분들은 목소리만 듣고서 옛날과 똑같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이 부분은 좀 놀랍다.

▲ 인터넷 방송에서 환불 요청을 한 팬도 있었다는 후문.


Q. 해골 서버 캐릭터의 레벨이나 장비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 현재 74레벨이다. 자랑할 만한 장비는 +9 데스 블레이드와 +10 파멸의 대검 정도. 방어구는 비밀로 하겠다. 공개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복귀 유저 방어구라 계속 업그레이드 중이다.


Q. 현재 소속된 '전쟁의신' 혈맹은 공성전을 준비하는 전투 지향 혈맹으로 알고 있다. 삼국 라인이 제1라인이라면, 제2라인의 주축은 전쟁의신 혈맹이라 알려졌다. 관련해서 혈맹에 대한 소개 좀 부탁한다.

- 알려진 대로 전투 지향 혈맹이 맞다. 아무래도 군주가 친구이다 보니, 나도 전투를 앞장서서 하는 편이다. 이 외에 대부분은 전투보다 레벨업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혈맹에 도움이 되려면 빠른 레벨업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공성전 전에 레벨을 최대한으로 올려야 한다. 레벨이 깡패란 말이 있지 않은가.

또 우리 혈맹은 복귀 유저의 비중이 높다. 바뀐 시스템이나 사냥터, 스탯 등 조금씩 적응해가며 즐기시는 분들이 많다. 나 또한 수년 만에 복귀하여 이제 조금 익숙해진 단계다. 그렇다고 전투력이 약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군주의 결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앞으로도 삼국 라인과 재밌는 필드가 되었으면 한다.

▲ +10 파멸의 대검, 해골 서버에서의 10검 값어치는 매우 높다.


Q.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 벌써 불혹의 나이라고 불리는 40대다. 솔직히 사냥이나 전투 등 콘트롤이 예전 같지가 않다. 그래도 내가 40대의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 인터넷 방송 시청자분들도 아저씨 콘트롤이라고, 또 이게 프로게이머의 콘트롤이 맞냐고 구박을 주시지만, 더 노력해서 20대 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

또 매너 게임을 강조하고 싶다. 온라인상에서 부모님 안부를 묻는다거나,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을 하는 비매너 플레이는 자제했으면 좋겠다. 생판 모르는, 처음 본 유저에게 욕설을 하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나 역시 매너 게임을 할 것이고, 앞장서서 매너 게임이 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인터뷰가 끝나고 환불 받았더니 10아데나 밖에 안돌려주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