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소년만화나 무협지를 보면 엄청난 수련 끝에 주먹을 휘두르면 소리를 놓고 간다는 설정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얼마나 빨라야 소리보다 앞서간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전태양이 보여주고 있는 견제는 그에 견줄만한 압도적인 수준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공허의 유산이 발매된 지 이제 약 3개월. 전태양은 공허의 유산을 대표하는 TOP 테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군단의 심장에서도 그를 대표하는 무기는 '견제'였지만, 공허의 유산에서는 두 세 단계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신유닛인 해방선과 공성 모드된 전차를 아케이드할 수 있게 바뀐 점은 전태양의 견제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돼버렸다. 그리고 1일 펼쳐진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6 시즌 개막전에서 전태양은 현재 최고 저그라 평가받는 강민수를 상대로 압도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며 보는 이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보통 테란 대 저그에서 테란은 저그의 동태를 살핌과 동시에 견제의 수단으로 사신을 생산한다. 하지만, 전태양은 그러지 않았다. 병영에서 반응로를 빠르게 부착시킨 뒤 군수 공장을 올려 공성 전차 혹은 빠른 의료선 준비를 준비했고, 병영에서는 해병을 꾸준히 생산했다.

그리고 해병이 5~6기 즈음 생산됐을 때 미리 해병 특공대를 전진시켰다. 보통의 경우 저그는 이 타이밍에 일벌레 생산에 주력하는 시기다. 하지만, 강민수는 달랐다. 제 2확장에 일벌레까지 채우기보단 저글링을 한 타이밍 빠르게 생산해 변수를 만들었고, 다수의 저글링을 통해 맵의 중앙에 따로 떨어져 있는 전태양의 해병을 손쉽게 제거했다.



누가 봐도 주도권은 저그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전태양은 아마도 미리 진출했던 해병과 공성 전차를 의료선에 태워 함께 저그의 제 2확장 지역 언덕 쪽을 장악하며 괴롭히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병이 모두 몰살당했음에도 전태양의 견제에 차질은 없었다.

전태양은 의료선이 나오자마자 공성 모드된 전차를 태워 떠났다. 뮤탈리스크가 나오기 전까지는 여왕밖에 대공 능력이 없는 저그를 상대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까다로웠다. 단 한 기의 공성 전차지만, 맵의 지형을 활용한 전태양의 견제는 저그 입장에서 재앙에 가까웠다.

게다가 빠른 뮤탈리스크가 아닌 바퀴와 궤멸충으로 지상군에 힘을 실었던 강민수는 아무리 빠른 반응으로 대응하려 해도 날아다니는 의료선의 속도를 따라잡긴 버거웠다.

▲ 전태양의 환상적인 견제


의료선이 두 기가 됐을 때 견제의 파괴력은 두 배 이상이었다. 바퀴와 궤멸충 최적화 공격을 준비하던 강민수에게 공성 전차 견제는 눈엣가시였다. 대공 능력이 부족한 저그에게 공성 모드된 전차의 아케이드는 마치 스타1 시절 리버를 방불케 했다.

▲ 저그의 한 방, 그러나..


전태양은 끊임없는 견제를 시도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받던 생산력도 극복한 모습이었다. 또한, 견제를 통해 강민수의 체제를 정확히 파악했고, 머지않아 저그가 공격을 하리라는 점도 알고 있어 자신의 진형 앞에 보급고를 다수 건설하며 벽을 만들었다.

예전의 전태양이었다면 재미만 보다가 저그의 강력한 한 방에 밀려 경기를 내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태양은 자신의 장기인 '견제'는 더 날카롭게 살리고, 약점으로 지적받던 부분을 극복해내며 더욱 단단한 테란으로 거듭났다. 결국, 전태양은 선택권이 없던 강민수의 회심의 한 방 공격을 잘 막아내며 프로리그 개막전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데 일조했다.

아직 공허의 유산으로 대회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최고의 테란이라 불리기는 시기상조겠지만, 분명한 건 군단의 심장 시절보다 훨씬 강해졌고, 변현우와 함께 테란의 선구자 역할을 해내는 선수임엔 틀림없다.

보통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는 선수들은 한계가 극명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를 보다 더 갈고 닦으면 '장인'이라는 칭호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전태양의 견제는 과거부터 유명했지만 '견제'만 잘하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견제의 장인'으로서 강력해진 전태양의 앞날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