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업계나 기자는 다 그렇겠지만, 게임 기자 또한 자주 외부로 나가곤 한다. 때로는 외국으로, 또 때로는 지방으로…. 가끔은 전혀 생각조차 못한 지역까지 갈 일도 생기긴 한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같이 일하던 선배는 이스포츠 기자로 일하면서 몽골까지 출장을 간 적이 있었더랬다.

'게임 창작 캠프(게임잼)'에 제주도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평소 다른 행사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더 흥미가 돋았다. '게임잼'은 즉석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게임을 만들어 발표하는 게릴라성 게임 제작 대회다. 1박 2일이고, 2박 3일이고 머물면서 그 자리에서 자고, 또 일어나며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라니. 아주 제대로 개발 캠프를 열 요량인가 보다.

물론 처음 열리는 행사는 아니다. 수도권에서 몇 번 열릴 때 취재차 다녀오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심도 있는 취재를 할 수는 없었다. 우리도 개인 생활을 가진 직장인이니만큼, 열리는 첫날 다녀오고, 마지막 날 잠깐 들러 취재를 하는 식이었다.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다가왔다. 이번 행사는 꼼짝없이 2박 3일을 함께 해야 하는 만큼,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게임잼을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주말은 없구나 아이고...

처음에는 단순히 사진을 찍고, 현장의 모습을 나열하는 간단한 기사를 작성할 생각이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2박 3일을 취재하고, 멀리 나가는 출장에서 그런 간단한 기사 하나만 작성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서 그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의 기사를 생각해 보았다. 기사를 써야지 왜 일기를 쓰느냐 묻는다면, 일기가 맞다. 지금부터 써나갈 글은, 2박 3일간 '게임잼'을 살펴보면서 느낀 내 주관적 해석과 감정의 나열이니까.


■ 2월 19일 금요일: Team Up.

오전을 쉬고, 비행기 시간에 맞춰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저가 항공사는 이용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나름 생소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비디오가 아닌 음성에 맞춰 직접 구명조끼를 입어보는 승무원이라든지,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간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정작 비행은 길지 않았다. 공항에서 절차를 밟고, 보안 검색을 하며 걸린 시간이 무색하게 짧았고, 나는 곧 제주 공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내가 묵을 호텔은 제주시 외곽 외도동의 한 호텔. 게임잼 행사 시작 시각이 8시다 보니 시간이 조금 남았다. 점심부터 식사를 제대로 못 한지라 첫 끼는 제대로 토속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기에 짐을 풀자마자 밖으로 나왔지만, 풋내기 본토인에게 제주도는 말 그대로 야생의 땅이었다. 내가 있던 곳이 조금 이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한 식당은 전부 문을 닫고, 심지어 보행자용 신호등은 전부 꺼지고 점등 형태로 켜져 있어 길을 건널 때마다 주마등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밖에 나가자마자 바람이 휘몰아쳤다...

우여곡절 끝에 작은 국숫집 하나를 찾아 고기 국수 한 그릇을 먹곤, 그대로 택시를 타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게임개발사 '네오플'. 앞 '넥슨컴퓨터박물관'을 지나 조금만 걸어 들어가니 네오플의 사옥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영화 '트랜센던스'에 등장하는 조니 뎁의 사막 연구소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곳이 황량하다는 뜻이 아니라 바로 옆 블록에 있는 현무암 돌담을 보니 과거와 현재의 간극이 한눈에 보여서였다.

▲ 네오플 사옥은 컴퓨터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7시 30분, 행사 시작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참가자들도 하나하나 행사장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들은 도착과 동시에 티셔츠를 받고, '아트', '기획자', '프로그래머'로 나뉜 표를 받아 등에 붙였다. 비교적 험한 날씨 때문에 비행기 연착이 많은 날이었기에 행사는 30분 미뤄진 8시 30분에 시작되었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 팀 편성에 들어갔다.

아직 서로가 서먹한 상황. 반강제적(?)으로 얼굴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는 등 참가자들은 필요에 의한 교분을 나눈 후 팀을 만들었다. 절대 귀족인 '아트'와 사령탑이 될 '기획', 그리고 게임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래머'까지. 알고 있었다. 팀이라는 이름으로 일단은 묶였지만, 아직 서먹함이 가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곧 저 '억지 친분'은 곧 진짜 '유대감'으로 바뀔 것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굉장히 강력한 공감대를 이끌어내니 말이다.

▲ 첫 날은 아직 조금 서먹한 모습이었다.

고등학생부터 현직 개발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로 이뤄진 팀들이 완성되고, 작은 강당은 곧 개발의 터전이 되었다. 책상이 배치되면서 참가자들은 각자 챙겨온 '비장의 무기'들을 꺼냈고, 곧 익숙한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어지럽게 놓인 컴퓨터와 복잡하게 꼬인 케이블. 간혹 인터뷰나 탐방 등을 갈 때면 늘 보던 개발사 개발 공간이랑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 2월 20일 토요일: 열정.


'게임잼'의 두 번째 날. 현장은 내 예상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이번 게임잼의 주제는 '탈출'. 최근 떠오르는 키워드인 만큼, 어떤 방법으로 '탈출'이라는 단어를 표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으리라. 걸어서 15분 거리에 찜질방이 있었지만, 몇몇 이들에게는 찜질방으로 가는 거리조차 아쉬웠을 테다. 바닥에 깔린 침낭과 어지럽게 늘어진 강장제 빈 병을 보니 단 하루뿐이지만 이들이 어떤 밤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 피곤을 참지 못한 친구들

괜스레 미안해졌다. 호텔에서 놀다 온 것은 아니지만, 난 그래도 잠은 편히 잤으니까. 책상에 엎어져서 잠든 참가자와 그마저도 못하고 앉은 자세 그대로 곯아떨어진 모습. 마치 해외 게임쇼 새벽 대기를 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해 살짝 웃음이 나왔다.

한편에서는 강장제를 물처럼 퍼마신 참가자들이 격렬한 기세로 코딩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떤 마음인지 짐작이 갔다. 반쯤이지만, 나 역시 '창작'이라는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 말이다. 글이 안 써지는 날이면 답답함을 풀 길이 없어 잠이 오지 않고, 일단 한번 느낌을 받아 삼매경에 빠지면 누가 와서 건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잊고 글을 쓰게 된다. 모니터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코딩을 반복하는 저 참가자 역시 비슷한 상황일 거다.

▲ 침낭은 생각보다 많았다.

문득 게임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 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최근 들어 법제적 울타리가 낮아지고, 게임에 대한 사회 인식이 변하면서 과거보다는 게임에 조금 '관대'한 사회 풍조가 만들어지긴 했다. 하지만 아직도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외면하면서 게임과 부정적 사회현상의 연계성만을 논하는 글들이 눈에 띄곤 한다. 그들이 지금 내 눈앞에서, 감기는 눈을 부릅뜨며 게임을 만들고 있는 저들의 모습을 보고도 그리 말할 수 있을까.

문득 금요일에 부산정보산업진흥원 콘텐츠사업단의 윤정원 팀장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이번 게임잼은 부산, 대구, 전북의 세 지방 콘텐츠사업단이 후원해서 이뤄진 행사지만, 앞으로 더 많은 지방의 콘텐츠사업단이 함께할 거라 했다. 아마 다음 게임잼, 그리고 그다음 게임잼은 더 큰 규모로 이뤄질 것이다. 이번에 참가한 인원은 모두 80명. 그럼에도 끝나지 않은 겨울 날씨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열정 온도는 높았다.

둘째 날 일정을 정리하기 위해 숙소로 나서는 길, 행사장 한 쪽에 만들어진 코너에서 간식을 타내기 위해 PT 체조(...)를 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뒤로하며 길을 나섰다. 일요일 12시면 제작이 끝나고 제출에 들어간다. 어떤 작품들이 등장할지는 모르지만, 열정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어떤 작품이 나와도 멋질 거라 믿고 있었다.

▲ 일정 자세(PT 체조 등...)로 일정 시간을 버텨내야 간식을 손에 얻을 수 있다.



■ 2월 21일 일요일: 3일의 끝.

마지막 날. 눈이 떠지기 무섭게 짐을 싸고 호텔을 나섰다. (문제는 눈을 늦게 떴다) 체크아웃 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도착한 행사장. 빠르게 끝낸 팀은 게임을 제출한 상태였고, 마지막 과정을 남겨둔 팀들이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 취재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인디디벨로퍼파트너스의 이득우 대표와 '룸즈: 불가능한 퍼즐'로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받았던 핸드메이드 게임의 김종화 대표 두 사람과 함께 넥슨 컴퓨터박물관의 카페로 향했다.

'레모니카노'. 넥슨 컴퓨터박물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료다. 레몬의 쌉싸름한 신맛, 그리고 아메리카노의 떫고 구수한 맛과 시럽의 달콤함까지. 오묘한 맛의 음료를 마시며 카페를 가득 메운 '메이플스토리' 캐릭터들을 구경하고 있는 와중, 이득우 대표가 말했다.

"이번 게임잼 상품은 평소랑 좀 달라요. 전자제품이나 이런 걸 상품으로 건 이벤트를 해보면 꼭 끝나고 나서 중고 장터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뭐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엔 조금 달랐으면 했어요."

무엇이 상품인지는 듣지 않았다. 그냥 전과는 조금 다를 거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카페를 나와 도시락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니, 제출이 모두 마감된 상황. 각 팀의 팀원들이 각자 게임을 세팅하고 모두가 함께 즐겨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흐름에 몸을 맡겨 이들이 2박 3일간 만든 게임들을 직접 지켜보고, 또 플레이했다.

너무도 놀라웠다. 나는 개발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개발 과정을 모두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업계 활동을 하며 게임 개발이 어떤 프로세스로 이뤄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대치도 높지 않았다. 2박 3일은 짧은 시간이다. 1년에 한 번씩 내놓는 '피파'시리즈나 '어쌔신크리드' 시리즈를 보면서 공장에서 찍어내듯 게임을 만든다고 표현하곤 한다. 물론 게임의 완성도나 규모는 비할 게 아니지만, 그들은 수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수십 명이 모여 만드는 게임이다.

▲ 놀라운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2박 3일의 끝에서, 내 눈앞에 놓인 게임들은 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간단한 터치 형 모바일 게임부터 슈팅 게임,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대전형 퍼즐 게임과 '카드보드'로 구동되는 VR 게임까지, '놀랍다'라는 단어가 아니면 딱히 내 눈앞의 광경을 표현할 수사가 없었다.

'P2K'팀이 만든 '무덤 너머'는 정말 기억에 남을 정도로 놀라운 게임이었다. 2D 액션 게임에 '시점 변환' 요소를 도입해 플랫포머와 벨트 스크롤의 틈을 메우고, 이 '시점 변화'를 반드시 필요한 '필수 요소'로 만들어둔 기획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흥미로운 건 참가자들의 태도였다. 속 좁게 보자면, 그들에게 다른 팀은 다 경쟁자였다. 하지만 다른 팀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그들의 표정은 전혀 심각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도입한 게임에는 감탄을, 멋진 아트를 보여준 게임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깜짝 놀란 VR 게임

▲ '무덤 너머'는 그간 본 적이 없던 게임이었다.

이미 그들은 '열정'에 취해 있었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은 갓 공장에서 나온 구공탄의 불길처럼 타올랐고, 백색 왜성이 되기 직전의 초신성처럼 빛났다. 1등이냐 2등이냐가 중요할 리 없었다. 아마 나라도 저 상황에서는 더 잘한 작품, 더 나은 작품을 논하기보다, 그저 이 기간 동안 한 공간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한 작업을 마침내 다른 이들에게 보인다는 보람만이 가득했으리라.

이어진 수상식. 부끄럽게도 참가자들을 앞에 두고 폐회 인사를 올렸다. 갑작스럽게 요청을 받았기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몇 가지는 기억난다. "여러분과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아직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듯싶다.

최고의 열정상, 최고의 기획상을 넘어 '최고의 게임상'까지 수상은 빠르게 이뤄졌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이들은 있을망정, 웃음을 놓은 이는 없었다. 이득우 대표의 말마따나 상품은 다른 경연대회와 많이 달랐다. 우연히 딱 160개들이 감귤 사탕 세트를 받은 팀은 모든 참가자에게 사탕을 두 개씩 나눠주었고, 또 우연히 80개가 넘는 감귤초콜릿 세트를 받은 팀은 역시 모든 참가자에게 한 상자씩 초콜릿을 건넸다. 1등을 한 'P2K'팀 또한 딱 80병의 홍삼진액 세트를 받아 모든 이들과 상품을 나누었다. 마치 드라마 최종화에서나 볼법한 훈훈한 광경. 보통 이런 결말이 현실 속에서 일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모두에게 그랬을지는 사실 모르겠다만, 그러길 바라고 있다.

▲ '오후일곱시'팀이 수상한 감귤 사탕을 나누는 참가자들

▲ '최고의 게임상'을 수상한 'P2K'팀의 홍삼진액도 모두에게 돌아갔다.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며, 문득 궁금해졌다. 80명의 참가자에게 조금 전까지 이어진 2박 3일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폐회 인사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여러분이 번듯한 게임의 개발자, 그리고 PD가 되어 저와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들 모두가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성공은 열정과 실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열정'만으로 살 수 없는 시대다. 오죽하면 열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열정페이'라는 단어가 생기겠는가. 하지만 동시에, '열정'없이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시대다. 쟁쟁한 사람들, 나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부족한 공부는 채우면 되지만 부족한 열정에 억지로 불을 피울 수는 없다. 10년, 그리고 20년 후 게임산업을 이끌어갈 사람들이 이 '열정'을 간직한 사람들이리라.

그리고 나는 지낸 2박 3일 동안, 그 열정을 확인했다.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힘들다는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고 들리고, 시장이 줄어든다는 소식이 귀를 간지럽히지만 적어도 국내 게임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이들은 보았으니 말이다.



[취재] 젊은 개발자들이 흘린 48시간의 땀방울! '2016 게임창작캠프' 현장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