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30대에서 40대 혹은 20대 후반의 연령에 접어드는 자칭 게임 좀 많이 해봤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면 패밀리 게임기 이후 메가드라이브와 슈퍼 패미콤 등의 80~90년대를 풍미했던 가정용 게임기로 발매된 게임을 한 번 쯤은 접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닌텐도의 간판스타인 슈퍼마리오부터 지금도 발매되고 있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게임들이 등장했고, 사라져갔다.


그렇게 올드 게이머들의 가슴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고전명작들을 다시 즐기기 위해서 PC 또는 각 게임기용으로 다양한 에뮬레이터들이 등장했지만, 차세대 게임기와 고샤앙 PC의 그래픽 등으로 인해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눈으로 도트 작업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게임들을 다시 플레이하면 예전에 느꼈던 즐거움을 또 다시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때 가정용 게임기용으로 등장한 게임이면서도 상당한 자유도를 부여했던 게임들의 경우 당시 끝이 없을거라고 여겨졌던 방대한 세계관들은 지금 눈으로 바라보면 유치하고 좁아보이는 느낌도 줄 정도로 지금의 게임들은 공룡처럼 커져버렸다.



[ 기자를 폐인으로 만들었던 진여신전생 데빌서머너(지금도 출퇴근시 플레이중) ]



한정된 용량 안에서 한 없는 자유와 즐거움을 부여했던 가정용 게임들은 PC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온라인 게임과는 점차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고, 현재는 같은 게임이라는 큰 범주에는 들어가지만 사실상 아예 다른 분야로 나뉘어졌다.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꾸준히 온라인 게임이 개발되고 PC방과 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다양한 게임들이 만들어져 서비스된 한국에 비하여, 아직까지도 인터넷 종량제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본의 경우에는 게임 시장에서 온라인 게임과 게임기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국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서비스되는 상용화된 온라인 게임들의 80% 이상은 한국산 온라인 게임이었으며,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된 온라인 게임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일본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일본 자체 제작이라는 선구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일부 온라인 게임을 제외하면, 일본에서 자체 제작된 온라인 게임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 일본진출 성공신화 라그나로크 온라인 ]



지금까지 한국의 온라인 게임들이 일본에 대거 수출되어왔고 그로 인해 일본의 온라인 게임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온라인 게임 개발을 시도하는 게임 제작 업체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가정용 게임기가 주류를 이루는 일본의 게임 시장에서 온라인 게임이라는 블루오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어들을 끌어 들이지 않으면 시장 확대가 어렵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최근 급격히 과거 가정용 게임기 또는 오락실 게임(일본의 아케이드용 게임)들이 온라인화 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정용 게임을 온라인으로 제작할 경우, 특히 대작이라고 알려졌던 게임을 온라인 게임으로 출시할 경우 기존의 팬층을 어느 정도 흡수한 상태로 서비스를 시작하고, 다양한 홍보 등으로 추가적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주요한 유저 확보 방법 중 하나이다.


이런 방법은 일정 수 이상의 고정 유저를 갖추고 시작하기 때문에 홍보를 위한 부담이 비교적 줄어들게 된다. 일본 서버의 유저들의 성향상 일단 한 번 게임을 시작했다면 그 게임에 애정을 갖고 지속적으로 플레이하고, 웬만큼 서비스가 엉망이 아닌 한 쉽게 그만두는 경우가 적은 편이니까.


또한 훌륭한 원작에는 그만큼의 팬과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원소스 멀티유즈를 지향하는 일본의 가정용 게임들의 경우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상품등으로 팬층을 넓혀 가고 그 팬들은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운영하거나 스스로 관련 컨텐츠를 제작하는 등 하나의 문화를 이루며 다양하게 퍼져 나가게 된다.



[ 다양한 게임 캐릭터 관련 상품들 ]



그렇게 한 번 성공했던 패키지 게임을 온라인화할 경우 이것이 성공한다면 얻을 수 있는 부가 이득은 곱절로 늘어나게 된다. 포화상태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 많은 게임들이 발매되는 일본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기존 성공했던 게임의 후속작으로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그 회사의 다른 히트작 게임의 온라인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그뿐 아니라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도 상승하고 여차 하면 새로운 붐까지 일으킬 수 있으니 일석 이조, 아니 일석 삼조 사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 만사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 없다고, 문제는 실패할 경우다. 온라인 게임은 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 서비스이다. 원작을 바탕으로 기존의 팬을 끌어들여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보험 아닌 보험을 들고 사업을 시작하는 셈이지만, 그만큼 커뮤니티가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폐쇄적이자 배타적으로 비치게 되고, 게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운 점이 생긴다. 그렇게 점점 게임이 정체되어가면서 기존의 유저층 역시 게임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떠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에 직면하여 애정이 식은 유저들까지 빠져나가게 된다면 당연히 기다리는 것은 적자와 불명예뿐이다. 사업 실패로 인한 적자는 기본에 나름 후속작으로 자랑스럽게 제작하고 홍보했던 것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서, 회사 이미지는 급하락에 자칫 차세대 게임기로 준비중인 패키지판의 또 다른 후속작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참사까지 벌어진다.



[ 화려한 부활을 이룬 패미스타 온라인 ]



실패의 원인으로는 각 제작사의 사업구조 전환이나 개발 및 운영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게임 개발자들의 온라인 게임이라는 장르에 대한 인식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던 패키지판에 비하여 언제나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온라인 게임에서, 제작사가 과거의 명성에만 기댄 나머지 다중 동시 접속이라는 온라인이라는 기본 특성 자체를 간과해버리면 단순히 매월 요금을 지불하고 가난함만을 즐기는(?) 패키지 게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번 발매하면 다시는 수정을 할 수 없는 패키지 게임을 제작하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버그 없이 완성된 게임을 내놓는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게이머의 입장에서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매월 일정 비용을 지불하는 게임이 큰 변화 없이 기존의 시스템만을 고집하며 언제나 똑같은 모습만 보인다면 그 누가 즐거우랴.


그런 온라인 게임의 특성을 시행착오와 타 회사에 대한 타산지석 등으로 발빠르게 알아챈 몇몇 제작사들은 잦은 컨텐츠 업데이트와 다양한 이벤트로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고 과거의 영화에 얽매여 고전의 답습만을 하는 제작사들도 적지 않은것이 현재 일본의 온라인 게임의 시장이다.



[ 패키지만큼의 재미를 주지 못했던 테일즈 오브 이터니아 온라인 ]



패키지판의 온라인화가 시작되는 여명기를 막 지나는 중인 일본의 온라인 게임 업계에서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수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며 조만간 쏟아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일본 자체 제작 온라인 게임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머지 않아 찾아올 게임들의 홍수 속에서 온라인으로 만들어진 패키지 게임 중 어떤 것이 제대로 된 온라인 게임일까.


게임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같은 게임이라고 해도 좋은 게임이 될 수 있고 나쁜 게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좋다고는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서비스를 해 오고 제법 두터운 팬층을 갖춘 게임이라면 일단은 성공한 게임 축에 포함될 것이고, 반짝 나타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면 망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게임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일본의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게임들의 흥망사를 모두 다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유명한 성공작을 등에 업고 제작된 온라인 게임들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게임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음 회에는 그런 온라인화된 가정용 게임들 중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특별기획 2부, "온라인화된 일본 패키지 게임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Inven Fact - 이민규 기자
(fact@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