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프로의 무대. 슈퍼 플레이와 실수 하나로 자신의 평판이 오르내리는 긴장되는 순간이다. 오랫동안 활동한 프로게이머들 역시 무대에서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습할 때 실력만 나오면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아직까지 많은 프로들이 실전에서 100%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들과 달리 무대를 즐길 줄 아는 독특한 프로게이머가 있다. 강한 상대를 꺾고 난 뒤, 팬들의 환호와 관심을 즐길 줄 아는 이병렬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상대 팀 선수와 단판제 대결을 이어가는 프로리그 무대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꺾으며 많은 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 주목받길 원하는 프로게이머 같지만, 그 속에는 누구보다 철저한 준비가 깃들어있다. 작은 부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준비를 해왔기에 누구보다 당당하게 무대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프로리그 경기마다 프로토스 에이스 김준호(CJ), 주성욱(kt)를 완파하며 진에어 그린윙스의 승리를 이끌었던 이병렬. 프로리그 3라운드 결승전 무대를 앞두고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보자.





■ '섹시함'에는 노력이 뒤따른다? 이병렬만의 철저한 연구


이병렬은 단판제 경기에 강하다. 상대를 확실히 당황하게 할 만한 빌드와 운영을 들고나오기 때문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에 대처하려는 상대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한 준비를 해야 한다. 웬만한 공격은 최상위 레벨의 프로들에게 절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6 프로리그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병렬의 공격도 쉽게 막히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하지만 이번 3라운드에서 이병렬은 한층 더 날카로워진 병력의 움직임으로 강한 상대도 꼼짝달싹 못하게 했다. 가장 빛나는 점은 저글링 활용이었다. 저글링은 상대가 어느 정도 수비 병력만 배치하면 무력하게 무너지는 유닛이다. 반대로, 무방비 상태인 상대에게 가장 적은 투자로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유닛이 바로 저글링이다.


'섹시한 두뇌'를 가진 이병렬의 저글링은 움직임부터 남달랐다. CJ 엔투스와 3라운드 플레이오프에서 이병렬은 에이스 김준호를 손쉽게 격파했다. 상대가 진출할 타이밍에 저글링을 우회시킨 것. 첫 번째 소수 저글링 공격은 손쉽게 막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추가로 저글링을 우회해 김준호가 막았다고 생각하는 타이밍에 제 2멀티를 날려버렸다. 당황한 김준호의 선택은 올인 러쉬였다. 공격에 최소 비용을 투자한 이병렬은 김준호의 발끈 러시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저글링을 활용한 작은 심리전으로 상대를 통째로 흔들어버린 것이다.

이병렬의 저글링을 활용한 심리전에 주성욱 역시 무너졌다. 3라운드 kt 롤스터와 진에어 그린윙스 경기를 결정지을 마지막 에이스 결정전. 이병렬은 상대가 제 2멀티를 가져가며 수비 병력을 분산배치하는 타이밍을 정확히 노렸다. 대군주를 활용해 본진에 저글링 드랍을 시도함과 동시에 정면까지 노리는 날카로운 플레이였다. 당시 이병렬은 주성욱이 제 2멑티를 막기 위해 다수의 파수기를 전진 배치했다는 점을 정확히 노렸다. 본진 수비에 신경 쓸 때, 정면 병력이 값비싼 파수기를 끊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얼어붙은 사원의 제 2멀티 지형이 넓어서 파수기 역장으로 수비해야 하는 주성욱의 상황을 완벽히 간파했다.

두 경기를 보면 저글링 난입을 허용한 프로게이머들의 실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지형과 타이밍까지 모든 것을 고려해 만든 이병렬이 설계한 그림이었던 것이다.

▲ 이병렬의 주요 목표는 제 2멀티 파수기




■ 일회용 전략가라고 단언하면 안되! 유연함까지 갖춘 이병렬의 전략


이병렬은 작년부터 기상천외한 전략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남들이 못 쓴다고 내팽개친 유닛과 전략을 최고의 무기로 바꿔놨다. 프로토스를 상대로 상상하지도 못한 군단 숙주와 맹독충 드랍으로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후, 공허의 유산이 새롭게 출시되면서 이병렬의 전략은 다시 등장하기 힘들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두가 이병렬 특유의 전략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만한 시기가 오자 보란 듯이 군단숙주와 맹독충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깜짝 전략으로 두 유닛을 활용했지만, 이제는 유연함까지 더 해 한 층 더 전략적으로 발전했다. 군단 숙주는 프로토스 전에서만 등장할 거로 생각했지만, 박령우(SKT)와 동족전에서 꺼내 완승을 거뒀다. 어스름 탑이라는 맵의 특성을 연구해 종족별 상대법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제 이병렬은 상대하는 저그와 테란 역시 특유의 전략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이병렬은 경기 속에서 체제까지 유연하게 바꿔나갔다. 이전까지 준비한 전략을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시전하는 것이 이병렬 전략의 핵심이었다면, 이제 상황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김준호가 3라운드 플레이오프에서 다수의 사도-파수기로 압박을 시도하자 이병렬은 맹독충과 히드라리스크라는 보기 힘든 조합을 꺼냈다. 프로토스를 상대로 몰래 맹독충 드랍을 준비해왔던 이병렬이지만, 이번에는 대놓고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용도로 활용했다. 제 2멀티가 파괴되며 다급해진 김준호가 공격으로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맹독충이 들어오는 상대를 한꺼번에 제압하며 전투 의지를 꺾어버렸다. 굴러오는 맹독충을 막기 위해 파수기로 역장을 쳤지만, 그동안 긴 사거리를 자랑하는 히드라리스크가 파수기까지 완벽히 제압해버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상대 조합을 꺾을 만한 체제를 발 빠르게 완성하며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병렬의 체재는 주성욱과 벌인 2일 2세트 경기에서 더욱 빛났다. 점멸 추적자와 파수기 병력에 제 2멀티가 마비된 상황 속에서 이병렬은 최선의 판단을 보여줬다. 주성욱이 이병렬의 제 2멀티만 장악하면 자원 차이로 승리할 것 같은 상황. 이병렬은 다수의 점멸 추적자를 상대로 화력을 발휘하는 가시 지옥을 준비했다. 과감히 멀티를 버리고 상대 제 2멀티로 내려가는 판단을 한 것이다. 당황한 주성욱의 추적자 병력이 쫓아왔지만, 미리 자리 잡은 가시 지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이 유리한 체제와 교전 구도를 판단해 원하는 그림을 완성해나갔다.

이병렬은 프로리그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선수다. 3라운드 kt 롤스터의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인터뷰를 통해 "강한 상대를 만나면 더 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강한 주성욱과 만나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병렬은 kt 롤스터 전에서 주성욱을 상대로 하루 2승을 챙기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병렬이 보여준 행동은 허세가 아닌 진짜로 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이제 상대는 개인리그 결승 진출자 3명이 있는 강팀 kt 롤스터다. 이병렬이 원하는 강한 상대와 수차례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해외 결승전인 만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관중까지 승리한 선수에게 주목하는 무대. 중요한 경기에서 더욱 빛나는 이병렬이 어떤 준비로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2016 프로리그 3라운드 결승전 경기에서 보여줄 활약을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