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포, 레이저, 로켓 런쳐 등 최첨단 미래 무기가 판을 치는 전장에서 낡고 구태의연한 피스톨 총성 한 발은 스스로 100년의 시간을 역행해 듣는 이들의 귀에 내다꽂힌다.

신구 오버워치의 영웅들과 탈론, 그리고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전투에 참여한 수많은 영웅들이 자랑하는 개성 넘치는 무기 속에서 구식 피스키퍼 하나를 어디에 쓸까 싶지만 거기서 뛰쳐나오는 총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작용한다. 때로는 묵직하게 한 발, 때로는 경쾌하게 여섯 발. 맥크리는 피스키퍼의 반동이 가져다주는 몸의 떨림과 이따금씩 코를 찌르는 매캐한 총내음 모두가 좋았다. 그는 이 보물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늦은 오후, B사 고위 간부 중 하나인 카플란 씨와의 약속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맥크리는 66번 국도에서나 마시던 펄펄 끓는 모래 맛이 나는 커피가 아니라 엄선한 블루마운틴 원두를 장인의 손길로 가공, 로스팅한 뒤 부드럽고 섬세하게 물을 내린 향이 깊은 커피를 홀짝이며 길을 나섰다. 예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할 호사였다.

약속 장소인 고급 레스토랑으로 가는 택시에 몸을 앉힌 맥크리는 지그시 창 밖을 쳐다봤다. 택시의 빠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는 바깥 풍경 속, 라인하르트가 "정정당당하게 싸워라!"라며 우렁찬 외침을 내지르는 커다란 오버워치 홍보 전광판이 지나갔다.

'흥.' 맥크리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맥크리에게는 스스로 세운 철칙이 있었다. 첫 째는 결코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말 것, 둘 째는 섬광탄이 없으면 얼굴을 내밀지 않을 것. 다사다난했던 맥크리의 삶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법령을 지키듯 철저하게 자신의 규칙을 준수한 까닭이다. 맥크리는 문득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섬난구난'으로 전장을 평정하고 돌아온 맥크리의 눈에 오늘도 아우성을 치는 시위대가 들어왔다. 나이값도 못하고 주책인 라인하르트, 자칭 과학자라 일컫는 윈스턴, 그리고 실업자가 된 리퍼 등이 앞장서서 맥크리 규탄 시위를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한심한 것들.' 맥크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늘상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당장 자기보다 더한 위도우메이커도 있는데 왜 거기서 떠들지 않고 내 앞에 와서 저 난리법석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피스키퍼 난사가 사기라니... 그럼 그 느린 속도로 항상 한 발 한 발 던져가며 싸우란 말이야? 하여튼 범인(凡人)들이란...'

그러나 맥크리의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시대가 바뀌고 솔저:76, 리퍼가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맥크리는 성난 군중들의 손에 이끌려 심문을 당해야 했다. 지나가고 지나오는 구둣발 소리와 목덜미에 퍼부어지는 욕설을 들으면서 꺾이듯이 축 늘어진 그의 머리는 들릴 줄을 몰랐다.

'내가 사기였다고? 허튼 소리, 변변한 이동기 하나 없는데 힘싸움이라도 좋아야 하는 건 당연한 거지. 그렇다고 항상 내가 피스키퍼 난사만 하기를 하나. 로드호그나 라인하르트 같은 녀석들만 있어도 장거리에서 정교하게 한 발씩 날려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줄 알아. 다 겐지나 트레이서같은 것만 하는 제놈들이 코앞까지 기어들어오니까 섬광을 맞고 죽는 거지... 위도우메이커한테는 말 한 번 붙이지 못할 놈들이...' 하며 맥크리는 속으로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면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이 막연한 기대는 절박한 이 순간에도 맥크리에게서 완전히 떠나 버리지는 않았다.
"위도우메이커 끄나풀, 야 이놈아."
고함 소리에 놀란 맥크리는 흠칫 머리를 들었다. 유령처럼 스산한 분위기에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쏘아보고 있다. 늘 자신의 하위호환이라며 평가절하받던 리퍼다. 맥크리는 다시 쳐다볼 힘도 없었다. 앞으로의 사태가 짐작됐다.

리퍼의 구둣발이 그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이 망할 놈, 어디 죽어 봐라." 구둣발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전신을 내지른다. 등골 척추에 다급한 충격을 받자 맥크리는 비명을 지르고 고꾸라졌다.
"승리에 영혼과 양심을 팔아먹은 놈아, 너는 고인이야, 고인..."
리퍼의 증오에 찬 외침에 꿈 속에서처럼 들려왔다.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맥크리가 잠잠해진 뒤 경쟁전은 '파르시'가 점령했고, 하늘을 달아다니는 둘에게 시달린 이들은 대항마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 답은 이미 명확했다. 장거리에서 빠르면서도 묵직하게 한 발씩 꽂히는 피스키퍼를 지닌 존재. 그렇게 다시 빛을 보기 힘들 것 같았던 맥크리는 기적처럼 기회를 얻었다.



약속 장소에서 카플란 씨가 나오자 맥크리는 웃으면서 선물을 보여주었다. 포장을 풀고 난 카플란 씨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연신 '땡큐'를 외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카플란 씨는 더스틴이라는 이름의 쉐프를 불러 최고급 양주 몇 병을 내오게 했다. 맥크리는 혓바닥이 얼얼해질 정도의 볼스카야 17년산 양주 한 잔을 핥듯이 조금씩 목을 축이면서 카플란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거, 최종 컨펌되었습니다." 맥크리는 뛸 듯이 기뻤으나 솟구치는 흥분을 억제하면서 천천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땡큐, 땡큐."

카플란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패치가 되면 그때는 보다 먼 곳에서도 힘 깨나 쓰시게 될 겁니다. 염려하시던 파르시도 나는 새 떨어뜨리듯이 쉽게 잡을 수 있겠죠." 연신 술잔을 거듭하는 카플란 씨는 몹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조만간 경쟁전 듀오를 같이 돌리기로 약속하고 레스토랑 문을 나섰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서 붉은 석양을 온 하늘에 뿌리고 있었다. 맥크리는 자신의 감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석양이 진다'며 정확하게 피스키퍼를 흩뿌릴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그 상쾌함을 잠시 만끽했다.

"저길 보십시오. 굉장한 석양이지 않습니까?" 맥크리는 혼자 이 느낌을 즐기기 아깝다는 듯 카플란 씨에게 말을 걸었다. 카플란 씨 또한 석양을 바라보며 감명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그렇군요. 마치..."





맥크리의 마음 속에는 새로운 포부와 희망이 차올랐다. 이젠 섬광탄이 없어도 멀리서 거뜬히 적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섬광이 있다면 예전만은 못해도 충분히 공격수를 잡는 데는 문제가 없을 터다. 골목대장 맥크리가 다시 돌아올 때가 된 것이다.

'흥, 그 사마귀같은 위도우메이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같은 파르시 속에서 살아났는데, 지금이라고 다를까... 패치가 되겠으면 되고, 메타가 바뀌겠으면 바뀌고, 아직 이 맥크리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 쯤이야...'
맥크리는 도라도산 특제 시가를 비스듬히 문 채 택시에 올랐다. 차창을 거쳐 보이는 석양이 맥크리에게는 더욱 붉고 정열적이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