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는 한국 게임 시장의 규모를 약 10조원 쯤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5 게임백서'에서는 게임산업시장을 9조 9706억 원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전체 콘텐츠 산업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그러나 게임은 사회에서 여전히 불편한 존재다.

정부는 게임을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규제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단어의 실제 유무 조차 명확하지 않은 '게임 중독'을 막는다고 청소년을 위한 셧다운제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AR/VR 산업 및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결과와 과정이야 어찌됐던 진흥책을 펼치고도 있다. 이토록 게임은 관심의 대상인데 아직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주목할 만한 신간이자 신간 판매 랭킹에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란 책이 등장했다. 분류는 무려 '사회'다. 이 책의 저자인 이경혁은 우선 게임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게임 업계인이아니다. 순수한 게이머의 입장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게임에 대한 비평을 담으려고 했다. 아들의 태명이 '쓰랄'이었을 정도로 게임을 즐겨한 평범한 '직장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이경혁 작가

Q. 게임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업계 종사자도 아닌데 게임을 소재로 책을 내게 된 계기가 있나?

우선 정말 대단한 사람들도 많은데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되어 부끄럽다. 회사 동료들한테 오늘 인벤이랑 인터뷰하러 간다 하니 젊은 사원들이 대단하다고도 말해줬다. 내가 인벤이랑 인터뷰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임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글을 쓰게 된 건 아는 기자의 권유였다. 매체 비평지인 '미디어스'의 기자가 게임관련 글을 한 번 써보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예전에 '예스24'에서 고전책 리뷰와 시사주간지 등에 칼럼을 기고한 게 전부인 내게 조금은 고민되는 제안이었다. 더구나 출시되는 모든 게임을 즐기는 부류도 아니고...

그때 미디어스의 기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게임도 매체인데 왜 다루지 않는 걸까? 게임도 매체잖아' 이 말에 크게 감동을 하여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2014년 가을쯤에 격주로 연재하기 시작했더니 반응이 좀 있었다. 그리고 이를 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묶어서 출판하게 됐다.

누구나 게임에 관련해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도 있는데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열정적인 게이머들처럼 출시된 게임들을 다 해본 것도 아닌데 괜찮을지 두려웠다. 어렸을 때는 잘사는 집이 아니어서 비디오게임기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 집에서 해본 게 고작이고…. 학창시절에는 컴퓨터를 빼앗겨 본 적도 있어 게임 경험의 공백도 있어서 게임을 많이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누군가 나에게 게임을 잘하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한 발 빼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더욱 부끄럽다. 운이 잘 맞아, 때가 잘 맞아 출판을 하게 됐다.

덕분에 책임감이라는 게 생긴 것 같다. 대한민국에도 이제 이런 책이 한 번쯤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게임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게임과 게임문화를 기술진화 시대의 정점에서 인간이 맞이한 문화와 여가의 새로운 기회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대한 수용자의 피드백이 담론과 비평으로 조성되어야만 게임이 산업으로서의 수익성과 문화로서의 향유 가치를 적정한 선에서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Q. 이런 책이 한번쯤 나와야한다? 이런 책은 어떤 책을 지칭하는 말인가.

게임을 매체, 문화로 바라봐주는 시각이 사회 기저에서 잡혀야 하는데 아직은 좀 부족한 것 같다. 다만 많이 올라왔다고는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중독' 덕분에 이러한 관점이 확대됐다. 중독 몰이 때의 반론이 커서 게임을 많이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흐르게 됐다.

현재의 게임은 과거의 오락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책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이것 봐, 게임을 세상과 연계시켜 사회를 바라볼 수도 있잖아.'다. 이제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서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디지털 세계는 갈수록 게임과 비슷한 문법이 보편화되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어, 게임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 되지 않을까 싶다.


Q. 책을 읽어보니 게이머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게임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게이머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맞다. 너무 게임 이야기를 하면 비게이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다. 게임 모르는 사람과 게임을 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게이머끼리의 단어는 모른다. 과거 락이나 힙합이 소수 매니아들의 전유물이던 시절 그들의 단어를 못 알아듣는 것 처럼 말이다.

이책은 대중서다. 비게이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 했다. 그렇게 봐준다면 반은 성공한 것 같다. 책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구성도 이를 반영했다. 그래서 오락실 문화에 대한 글이 가장 처음에 배치되어있는데, 아무리 비게이머들이라도 어렸을 때 오락실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추억을 떠올리며 읽어 들어가기 시작할 수 있도록 앞 단으로 끌고 왔다.

개인적으로 좀 더 코어한 이야기를 적고 싶었지만 편집자의 생각은 또 달랐다. 게이머들은 후반부에 나오는 토먼트 이야기나 아이템 이야기 그리고 게임 내 시간과 공간 문제를 좋아할거 같다.

대중서이기 때문에 개념을 길게 풀어썼다. 저번에 어느 포럼을 갔는데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설명하면서 비릴리오(Virilio)의 말을 인용했다. 인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비릴리오의 말을 어떻게 알까? 그래서 난 책을 쓰는 내내 인용을 단 하나도 하지 않고 개념을 풀어썼다.

주석을 잔뜩 달아서 있어보이는 말을 가져다 붙이면 안될 거 같아 이렇게 했다. 인문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쓰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책을 일종의 접점으로 게임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창구가 됐으면 좋겠다.

〈내 꿈은 정규직〉은 해고와 승진이라는 벡터에 따라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생의 방향타를 잡고 나아가야 하는 직장인들과, 그런 직장인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취업준비생들의 모습을 그려낸 블랙코미디 게임이다. 귀엽고 경쾌한 그래픽과 쓴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많은 이벤트들은 천만 월급쟁이들의 ‘웃픈’ 현실을 정말 웃프게 경험하게 한다. 갑자기 나타나서 돈 꿔달라는 상사의 부탁을 거절하면 승진확률이 떨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정답을 누르지 못하는 슬픔은 웃프다는 말로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 게임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제목에 담긴 역설이다.[내 꿈은 정규직]이라는 제목에는 안정된 고용을 향한 염원이 담겨있지만, 게임에서는 정규직도 해고당한다. 이마저도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가장 웃프다. --- p.240
▲ '내 꿈은 정규직' 부분 발췌.




Q. 보통 게임 관련 서적, 글이라고 하면 평가에 대한 글들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은 게임을 매개로 사회를 바라보는 일종의 비평서라 좀 특이한 것 같다.

책은 게임 자체 이야기 반, 문화와 저변에 관한 이야기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적어도 리뷰는 아니다. 어떻게든 게임과 사회가 연관되는 부분을 찾으려고 했다. 게임 자체를 두고 게임이 잘 만들어졌는지, 어떤 점이 아쉽다고 평하기보다는 사회와의 연계성을 찾는 비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존에도 이러한 시도는 계속 있었다. 그러나 도드라지지 못했다. 많이 올라오지 못했으니까…. 이런 시도의 일환으로 봐주면 좋겠다.

막상 이름을 걸고 책이 출판되니까 책임감이 생긴다. 게임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서 해야 될 것 같은 느낌?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진중권 교수처럼 저명한 사람들도 시도하기는 하는데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게이머가 아니므로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일반인보다 게임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아는 편이니까 인문학과 게이머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아이패드2 출시 직전, 인문학과 기술에 대해 논했던 故스티브 잡스


Q. 책을 쓸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무엇인가. 회사생활과 가정생활도 있는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이겨냈나.

인터넷 글의 특징 중 하나인데 댓글이 참 신경 쓰인다. 게임 같은 경우는 매니악하게 해당 분야를 파고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말 한마디 잘못하거나 자기 생각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악플이 쏟아낸다. 원래 인터넷에 글을 잘 안 썼던 사람이라 그런지 좀 무섭고 조심스럽다.

내 글을 모사이트에서 퍼간 적이 있는데 악플이 엄청나게 달린 적이 있다. 처음에는 쿨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또 그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오더라. 찾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더라. 그런 느낌과 경험이 처음이라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이런 일을 겪어보니까 글을 쓰는데 더 조심스러워졌다.

쓰는 과정에서는 자료가 부족해 힘들었다. 기존 레퍼런스가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영문사이트를 다 뒤져봐도 찾고자 하는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는 말할 것도 없이 전멸 상황이고. 아쉬웠다. 체계적으로 자료를 정리해놓은 것들이 없어서.

조회 수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자연스레 신경 써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연재를 하던 곳은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적은 데다가 게임 자체 이야기도 아니고, 비평이었으니 얼마 읽지 않더라. 피드백이 없으면 슬프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연재 중에 가장 힘든 것은 상처였다. 스타크래프트 관련해서 글을 한 번 썼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회사에서 동료 하나가 재미있는 글이라고 보여줬는데 내 글이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이글은 노력을 많이 들인 글이 아니었다. 힘주고 대단히 공을 들인 글보다 가볍게 적어 내려간 글이 반응이 너무 좋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의 상실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한동안 휴재를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집에서는 많은 지원을 해줬다. 사실 와이프는 게임의 '게'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글을 쓸 수 있게 많이 도와줘 정말 고맙다. '게'자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나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설정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정도로 관심도 많아졌다. 게임이 일반적인 정서로 다가갈 수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회사 생활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맞벌이인데도 갑자기 글을 쓰겠다며 요구한 시간을 묵묵히 감내해준 아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공로자가 아닐까 싶다.


Q. 가장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 가장 처음 플레이했던 게임이 뎁스차지(Depthcharge)라고 폭뢰를 떨어트리는 게임이었다. 문방구 앞에서 했었다. 처음으로 정품으로 구매했던 게임이 '울티마5'였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초등학교 3~4학년이었던 내가 '울티마5'로 영어를 배웠다. 정말 즐겁게 플레이했었다. 내 인생 최고의 게임을 고르라면 '울티마5'를 고를 정도로 좋아한다.

'시드마이어의 코버트 액션'도 굉장히 즐겁게 했다. 지금도 가끔 플레이할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이다. 1990년 마이크로프로즈에서 출시된 게임인데 CIA의 수사관으로서 국제무대에서 벌어지는 각종 정치사건과 음모들을 사전에 차단해야 하는 게임이다. 굉장히 잘 짜진 게임이라 좋아한다.

이외에 공대장을 할 정도로 좋아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휴학까지 하면서 즐긴 '스타크래프트'도 있다.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는 프로 선수라는 게 없던 시절이라 PC방을 돌아다니며 도장 깨기가 성행하던 시기다. 당시 부천에서 서 있으면 중고등학생들이 지나가다 '어? XX 길드 형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공대장을 맡았을 정도로 열심히 즐겼다. 와이프 출산 예정일이 레이드날이라 레이드 시작 전 '오늘 꼭 트라이 성공해야 한다.'라고 까지 말했을 정도다. 참. 아들의 태명은 '쓰랄'이었다.



Q. 이 이야기만 들으면 약간 막장느낌이 나는데...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것 안다. 그런데 저런 모습은 '게임 과몰입' 아닌가? 출산날에도 레이드를 뛰고 게임을하려고 휴학을 할 정도면...

아들이 7살인데 요즘 갤러그 같은 고전 게임을 권한다. 고전은 책이든 게임이든 중요한 법이니까. 그리고 나는 아들이 게임을 하는 시간을 이용해 책을 좀 읽으려고 하는데, 조금 읽다 보면 다시 나한테 와서 놀아달라고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재미가 없어서 더 큰 재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현상의 이면을 이어나가고 설명하려는 것들이 뭉쳐있는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게임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사회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게임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죄책감'이라는 게 게임 매체의 특성은 아니다. 그런 누명은 벗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만들 수 있는 길 중에 하나로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책도 처음 등장했을 때 게임과 마찬가지로 배척을 당하는 매체였다. 출판 인쇄가 역사 전면에 나타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를 대중문화의 시초로 보는데, 당시 책을 두고서 '책을 많이 읽으면 비만, 노이로제, 당뇨 등을 유발할 수 있어 좋지 않은 취미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모든 매체는 처음 나올 때 일종의 공포를 유발한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대해 일종의 공포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 등장한 매체를 기존에 존재하는 매체와 비교를 하다 보니 기존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 역시 처음에 현실과 구분을 못 해 작은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매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게임은 굉장히 이해가 어려운 매체다. 문학은 특별한 기술이 들어가지 않는다. 영화부터는 기술의 힘을 빌리는데 게임은 기술을 모르면 이해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게임이 두드려 맞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술을 모르는 어른들은 이를 접하지 못했고 기존 매체의 한계에서 바라보며 '종일 그러고 있냐'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나는 전자오락의 1세대를 유년기에 겪었다. 목욕탕에 있는 '알카노이드'를 본 세대니까. 게임 초창기를 본 세대가 이제 부모 세대가 됐다.

과몰입으로 돌아가서, 우리 아들이 나에게 다시 놀자고 오는 건 '사람이랑 노는 재미'를 알기 때문이다. 게임 중독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게임이 재밌어서 하는거다.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거리가 없으니까 게임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친구랑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 한잔 하는 것도 재미있어한다. 그런데 지금 중고생들에게는 게임보다 더 즐거운 놀이가 없으므로 게임을 하는 것뿐이다.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나. '요즘 애들은 뛰어놀지를 않아'라고. 뛰어놀 곳이 없는데 어디서 노나. 어떤 놀이를 즐기고자 했을 때 상응하는 시간과 자원을 들여야 하는데 PC방은 그 비용이 매우 적다. 용돈 조금만 있으면 친구들과 재미있게 보낼 수 있으니까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재미있는 게 게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마 더 재미있는 게 나오면 게임 좀 하라고 해도 안 하지 않을까? 게임을 많이 한다고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재미없는 걸 잔뜩 만들어놨으니 게임을 하는 거지...


Q. 놀이문화의 하나인 게임인데, 왜 이렇게 배척당하고 있는 걸까. 특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북미나 유럽에서도 게임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전 오락실이 처음 생겼을 때 이름은 오락실이 아니었다. 지능개발오락이라고 써놨었다.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걸 일종의 반작용으로 포장한 것이다. 애초에 이 사회는 노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생산력이 올라가면 올라가는 만큼의 여가 시간이 발생한다. 지금은 주 5일 근무가 당연하게 받아지고 있지만, 내가 사회에 나올 때만 해도 토요일에도 일하는 게 당연했다. 대한민국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생기는 여가시간을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발전을 위해 달려오다 보니 노는 것이 나쁘다는 인식이 강하다.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놀이로 인식이 되니까 도박으로 취급받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시기는 분명히 지났다. 프로게이머들은 게임으로 돈을 번다. 생산력이 있는 놀이 문화가 된 것이다. 또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없다를 떠나서도 놀이 자체를 꼭 생산과 연결해야 하는 걸까?

순수하게 노는 것을 왜 받아들이지 못할까? 창의력 발현을 위해 놀면서 일해야 창의력이 생긴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일하면서 놀면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모순이다.

춤을 못 춰도 펌프를 하면서 춤의 재미를 알 수 있다. 리듬 게임을 하면서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사람도 피아노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게임은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서사를 따라가는 매체다. 스스로 이야기를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서사를 만드는 도우미의 재미가 있다. 플레이어가 진행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지 않나. 이것이야말로 창조 활동 개념의 새로운 매체 아닌가.

▲ 전자오락실을 시찰하고 있는 김상협 국무총리. 1983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Q. 소재는 어떻게 발굴하는지 궁금하다.

계속 쌓아나간다. 계속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 가급적 뻔하지 않은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게임 내 '자유도'같은 뻔한 소재들, 많이 사용한 소재들은 지양하는 편이다. 비슷한 범주에 타격감도 있다. 일상에서 한 번 꺾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아쉬운 점은 같이 스터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같이 스터디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많은 사람이 인문학과 게임이 교집합이 없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또 게임하는 사람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게이머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사실 게이머처럼 하나의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 본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 어떤 관심 분야에 깊이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게임과 인문학…. 생각해보면 의외로 교집합이 많다.


Q. 출판 후 반응은 어떤가.

예스24에서 7월 29일 사회분야 판매 2위에 올랐다. 사실 돈 벌겠다는 생각은 많지는 않아서 그런지 그냥 창피했다. 그래도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런 책이 사회에 나와야 게임문화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게임이 더는 서브컬처 변방에 있는 요소가 아니라 생각했고, 책이 많이 팔리면 사회적으로도 논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예상보다 많이 팔리고 있어 이제는 책임감도 느껴진다. 의무감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의 기대도 생겼으니 부끄럽지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만큼 왔는데 인제 와서 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말 감탄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데 부끄럽게도 내가 기회를 잡았다. 누(累)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도와드릴 생각이다. 개인의 명예보다는 게임계의 명예를 위해서 열심히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2015년에 인문학협동조합과 함께 '게임의 사회학'이라는 주제로 대중 강좌를 열기도 했다. 올해 2학기부터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인문학 교양강좌를 진행한다. 정규 강좌고 3학점짜리다. 내 이름을 달고 책이 나왔으니 책임감을 느끼고 할 생각이다.

참 어머니에게 출판소식을 전해드리니 파안대소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락질하던 놈이 그걸로 책을 다 내네!"

학창시절 그토록 속을 썩여가며 몰래몰래 게임하는 바람에 잔소리와 질책을 한 바가지씩 받았는데…. 막상 그 게임으로 아들이 책을 냈다. 게임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이고 세계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이제 대중들도 좀 알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