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스타워즈가 개봉하던 날, 건물 사이사이를 잇는 긴 줄이 극장 주변에 생겼다. 가장 먼저 영화를 예매한 아버지는 5살이 된 나를 줄 맨 앞으로 데려갔다. 뭐가 뭔지는 몰랐지만,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본 나는 열광했다."

루크 스카이워커에 열광하던 꼬마는 실사 영화는 물론 만화영화, 만화책 등을 섭렵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코난 오브라이언과 함께 '심슨 가족'의 TV 에피소드를 제작하기도 했고 픽사에 초기 멤버로 들어가 20년간 토이스토리 시리즈, 니모를 찾아서, 업, 카, 몬스터 주식회사 등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매튜 룬은 그렇게 미국 애니메이션계 최고의 이야기꾼이 됐다.

▲ 픽사 스토리 부서의 헤드 컨설턴트 '매튜 룬'.

▲ 매튜 룬이 코난 오브라이언과 함께 작업한 심슨 가족 시즌3는 역대 최고 시즌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그가 성인이 되고 나서 보니 그가 열광했던 스타워즈의 이야기는 그저 A부터 B까지 달려가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영화는 인물들의 갈등, 그리고 그것이 격화되면서 생기는 긴장감을 생생히 전달하기는 한다. 하지만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뿐 하나의 레일, 즉 스토리 위를 달린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대하는 관객들은 달랐다. 모든 영화 팬이 같은 영화를 봤지만, 그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상상하기도 하고 직접 그들의 복장을 흉내 내고 자신만의 스타워즈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퍼져나갈수록 새로운 전개는 더 다양해졌다.

대체 무엇이 스타워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일까? 그것은 영화가 가진 스토리 텔링의 특징에 있다.

▲ 스토리텔링의 특징 덕에 선형적 구조에도 인터렉티브 스토리를 가지게 된 스타워즈.

스타워즈는 롤러코스터와 같이 하나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선형적 이야기'지만, 범퍼카처럼 수많은 운전자에 의해 새로운 방향으로 튕겨져 나갈 수 있는 개성 넘치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청중은 그것들을 자기 입맛에 따라 조작하며 이야기를 재창조했다. 물론 부딪히고 넘어지는 범퍼카처럼 유저들의 이야기도 실패를 경험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지만 실패와 어긋남을 겪고 결국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세계. 이것이 감정을 전달하는 현대의 스토리텔링인 '인터렉티브 스토리'이며 이는 게임도 다를 바 없다.

매튜 룬은 GDCEU2016에서의 강연을 통해 스타워즈처럼 선형적인 이야기가 인터렉티브 스토리가 될 수 있는 5가지 원칙을 설명했다. 그는 20분짜리 만화부터 3편, 혹은 6편짜리 영화까지 모두 통용되는 이 원칙이 게임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고 말하며 강연을 이어갔다.

▲ 정해진 구간을 달리며 전개의 폭만 달라지는 선형적 이야기.

▲ 직접 조종하는 이용자에 의해 전개가 크게 달라지는 인터렉티브 스토리.


■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주목하게 만드는 힘, 색다름(Hook)

'무섭게 느껴지길 원치 않는 괴물, 프랑스 요리사가 되고픈 쥐,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금지된 슈퍼히어로.'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수식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괴물, 쥐, 그리고 슈퍼히어로의 이미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반적이지 않은 사실이 더욱 독특할수록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할 테니 말이다.

▲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와 이야기, 갈등 모두가 중요하다.

이처럼 일반적이지 않고 예상하지 못했던 캐릭터, 혹은 설정은 팬을 사로잡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물론 그것이 스토리에 효과적으로 녹아들어야만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 매튜 룬은 이처럼 '색다름'이 가진 힘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색다른 요소를 만들어냈다면 게임의 스토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라. 만약 게임의 스토리를 한 문장에 요약할 수 없다면 당신은 아직 게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기껏 찾아낸 '색다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면 자신의 게임에 대해 기본적인 수준 이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 캐릭터를 진화하게 하는 방법, 변화(Change)

아무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내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깊이는 떨어질 것이다. 반대로 하나의 이야기에서 캐릭터가 변화하고 성장한다면 관객은 변화에 자신의 감정을 덧붙여 개인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이런 판단은 유저가 직접 참여하는 인터렉티브 스토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캐릭터의 변화는 갈등을 심화시키거나 해소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특정 사건이나 문제를 통해 캐릭터의 성격이 바뀌어 기존에 문제시됐던 행동거지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관객이 이를 충분히 수긍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바뀌어야 하는 것이 꼭 극단적인 성격의 변화나 상황의 변화일 필요는 없다. 다만, 소소한 변화라도 일관성 없이 이루어진다면 되려 설득력은 떨어질 것이다. 이야기 중에 변화하는 특성이 게임이나 영화에 직접 표시되지 않더라도 개발 시 이를 문자화해둔다면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캐릭터의 특성이 제멋대로 바뀌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나 감정 변화도 성격을 바꾸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관계나 특성을 모조리 적어두고 바뀔 때마다 확인하면 갑작스러운 변화를 예방할 수 있다.


■ 청중과의 공감을 위해, 연결(Connect)

사람들은 자신과 연결되어 있거나 이해하고 있는 세계에 흥미를 느낀다. 즉, 아무리 참신하고 변화한 세상을 만들어도 팬들이 그것에 관심이 없으면 그저 색다른 선형적 이야기가 될 뿐이다. 결국, 팬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건 그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세상을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것이다.

특히 관중은 영웅이나 주인공과 자신이 특별한 무언가를 공유하기를 원한다. 영웅의 비밀이나 고통을 함께 한 관중은 가상 세계의 캐릭터에 더 쉽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기도 한다.

매튜 룬은 '나는 내 관객이 누구인지 항상 알길 원하고 그것을 위해 매일 연구하고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무엇을 신경 쓰고 있는지 항상 고민한다면 유저의 공감을 더 쉽게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캐릭터와 관중이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정직하게 소통하기 위해, 진정성(Authenticity)

픽사에서 디렉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열정적인가'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새 프로젝트에 어울린다면 당장에라도 디렉터를 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진정성 있는 태도가 있어야만 같은 관심사를 가진 팬들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많은 할리우드 영화감독들은 제작자에게 지명되어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의 열정이나 관심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기에 작품에 반영된 색다름과 변화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주제를 전달하기보다는 게임 속 캐릭터들의 대화를 통해 이를 전달하려고 한다.

흔히 억지 감동이나 슬픔이 이런 부류에 속하는 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거부감만 늘어나게 할 뿐이다. 스파이더맨에서 벤 삼촌이 죽을 때 남기는 말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대사는 유저에게 직접 감정을 전달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 제작자는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도록 억지로 이야기를 비트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매튜 룬은 '영리해지려 하지 말고 정직해지려고 노력하라'고 이야기했다.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정직하게 애정을 쏟는 태도가 곧 캐릭터이고 스토리에 생동감을 주는 원동력이 된다.



■ 인간의 DNA가 선호하는 형태, 구성(Structure)

매튜 룬은 더 많은 관중에게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처음, 중간, 끝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어른이 된 후 노인이 되고 시간이 흐르며 해가 지듯 처음, 중간, 끝은 우리 DNA에 내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말 그대로 어떤 이야기든 이 삼단계로 구분해야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의미하며 무엇을 설정하고 구축한 후 그 보상을 돌려받는 성과론적인 구분도 이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 처음, 중간, 끝은 인간이 가장 선호하는 구성 형태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