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항상 아쉬움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던 팀입니다. 소위 '잘나가는' 정규 시즌 성적과 숨 막힐 정도의 경기력, 팀원들 간의 끈끈한 우정까지. 그런데도 매번 마지막 한 걸음을 앞두고 꿈을 이루지 못했죠. 하지만 그들은 이제 더는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ROX 타이거즈는 오랜 노력 끝에 꿈에도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 역시 항상 아쉬움과 함께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시즌 내내 안정감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드러내며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던 그 역시 결승 무대에서 항상 위로와 격려의 대상이 되곤 했죠. 하지만 그는 더는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쿠로' 이서행은 오랜 기다림 끝에 꿈에도 그리던 자리에 앉았습니다.

약 6개월 전에 만났던 '쿠로' 이서행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도 정말 밝았지만, 꿈을 이룬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층 더 밝아진 모습이었죠. 이제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그와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숙소 근처의 카페. '쿠로' 이서행은 여느 때와 같은 푸근한 미소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얼굴에는 우승자의 여유로움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죠. "결승 연습을 도와준 선발전 팀들과 승강전 팀들의 연습을 도와주면서 경기에 대한 감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라는 말을 하는 그에게서 프로게이머의 면모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휴가에 연습만 하고 있을 수는 없죠.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지냈다고 밝힌 이서행은 "우승 후에 친구들에게 양주를 대접했는데, 정말 비싸더라고요. 그래도 친구들과 만나 먹고 마시고 즐기고. 즐겁게 지냈어요. 축하해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이제 우승했냐'며 놀리는 친구들도 있었죠(웃음)" 라며, 그 나이에 걸맞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잠깐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ROX 타이거즈가 극적으로 kt 롤스터를 꺾고 우승했을 때. 당시 이야기를 꺼내자 '쿠로' 이서행은 눈빛이 더욱 또렷해졌습니다. 그때 그 기쁨, 그 감정이 다시 그의 머릿속을 채우는 듯했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는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고 울컥해요." 그가 처음 꺼낸 말이었습니다. 1세트부터 5세트 종료 직전까지 계속 번갈아가며 기쁨과 아쉬움이 목 밑까지 치고 올라왔다는 설명이었죠.

"5세트에 극적으로 이기고 나니 억누를 수 없는 무언가가 폭발했어요. 팀원들이 다 일어나서 소리 지르고 기뻐하는 걸 보니 경기 내내 뒤섞였던 감정이 눈물로 터져 나오더라고요. 사실 우는 사진이 예쁘지 않아서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감정이란 걸 어떻게 할 수는 없나 봐요. 그래도 울면서 우승 트로피 들고 있는 사진을 보니 나쁘지 않더군요(웃음)." 우승하고 꽤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ROX 타이거즈의 우승이라.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결승에서 SKT T1을 꺾고 우승했다면, ROX 타이거즈 입장에서 더욱 기뻤을까요?

어찌 보면 황당한 질문에 '쿠로' 이서행은 "그렇겠죠? 아무래도 세 번의 결승전에서 SKT T1에 패배했으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래도 우승한 것 자체가 큰 기쁨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기뻐요" 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걸 두고 '우문현답'이라고 하나 봅니다.


지난 섬머 시즌 결승전에서 ROX 타이거즈의 우승만큼이나 주목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쿠로' 이서행의 뜨거운 눈물이었죠. 그 덕분에(?) 이서행은 '울보'라는 별명을 얻고 말았습니다. 단지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기엔 눈물의 무게가 상당해 보였던 것이 사실. 이에 관해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에게 '결승은 많이 갔지만 우승은 못 한 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잖아요. 그 원인으로 저를 꼽는 팬들도 많았죠. 그래서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딱 우승을 경험하니까 그 '우승'이라는 것이 주는 황홀한 기분을 알겠더라고요. 그동안 서러웠던 생각도 나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뒤엉킨 눈물이었던 것 같아요."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강타하고 있는 자신의 우는 사진이 팀원들의 감정을 모두 담고 있는 것 같아 좋다는 '울보' 이서행. 참 성숙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억울한 것도 있나 봅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사실 팀원들이 전부 울었다는 항변이었죠. "솔직히 저만 울었습니까!(웃음) 우승이 확정되기 직전부터 팀원들 모두 소리 지르고 울고 난리가 났거든요. 심지어 '프레이' 김종인도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솔직히 제가 가장 서럽게 울긴 했지만(웃음)." 사실 ROX 타이거즈 팀원 모두가 '울보'였습니다. 그중에 '쿠로' 이서행은 1등!

사실 '울보' 별명을 얻은 선수는 '쿠로' 이서행 말고도 더 있습니다. 얼마 전에 마무리된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는 삼성 갤럭시 소속 '크라운' 이민호와 '코어장전' 조용인 역시 그랬죠. '쿠로' 이서행은 "'크라운' 이민호 선수가 롤드컵을 확정 지은 다음에 SNS에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거기에 제가 댓글로 '좀 우시네요.' 이렇게 썼던 기억이 나요. 공감을 많이 했어요. 그분도 마음고생이 심하셨으니까. 아마 저와 비슷한 감정이지 않았을까요?" 라며 같은 '울보'들을 보듬어줬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사진이 이상하게 나오니까 울지 말라고 조언도 해줬고요.

▲ 그들의 '눈물겨운' 우정(출처 : '크라운' 이민호 SNS 계정)

다시 진지한 이야기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쿠로' 이서행은 개인적인 목표로 '세체미(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가 되는 것을 꼽았습니다. 이제 곧 시작될 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면 보통 '세체미'가 됐다는 평가를 받죠. 본격적인 롤드컵 시즌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개인적인 목표는 바뀌지 않았을지 궁금했습니다.

이에 대해 '쿠로' 이서행은 "지금 '세체미'는 당연히 '페이커' 이상혁이죠. 제가 그 선수를 이기지 못하면 매번 '2인자' 혹은 그 뒤쪽에 머물러 있어야 해요. 제 직업이 프로게이머인데 한 번쯤 최고의 자리에 올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더욱 롤드컵 우승에 목말라 있어요. '세체미'라는 타이틀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일종의 '동기부여'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라고 답변했습니다. 팀 목표인 '롤드컵 우승'을 위해서 '세체미' 타이틀에 오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참 멋진 생각이죠?


확실히 ROX 타이거즈는 롤드컵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만한 팀입니다. 모든 선수의 기량이 극에 달했고,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라는 롤챔스에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이제 각 지역 최강팀이 한데 모이는 롤드컵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들은 얼만큼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이제 막 본격적으로 해외 팀과의 연습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정확하진 않죠. 그래도 각 지역의 1위 팀은 모두 상위 라운드로 향하지 않을까요? 그 지역의 1위를 차지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니까요."(본 인터뷰는 롤드컵 조 추첨이 완료되기 전에 진행됐습니다) 아무래도 해외 팀과의 연습을 많이 해보지 않은 시기였기에, '쿠로' 이서행은 조심스럽게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미드 라이너라서 다른 팀을 볼 때 미드 라이너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어요. 롤드컵에서는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만나서 실력을 겨뤄보고 싶어요. 항상 제가 국제무대에서 통하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롤드컵에 출전하는 미드 라이너는 다 최고잖아요. 그들과 경기를 치르면서 제 실력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어요. 작년 롤드컵과 올해 롤드컵의 멤버가 많이 다르니까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그중에서 만나보고 싶은 선수는 없을까요? 그는 친해지고 싶은 선수로 '류' 류상욱과 '비역슨'을 꼽았습니다. "제가 워낙 푸근한 인상을 좋아하다 보니 류상욱 선수와 가까워지고 싶어요. 그리고 '비역슨'은 워낙 SNS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스트리밍에서 저희 팀 유니폼도 입어서 더욱 친분을 쌓길 바라요. 한 명 더 꼽자면... RNG의 '샤오후' 선수?" 위에 언급된 세 선수. 미국에서 '쿠로' 이서행을 보면 반갑게 맞아주세요!

'북미 vs 유럽' 구도는 어떨까요? 이 논제는 시즌마다 현지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주제입니다. 북미를 대표하는 TSM과 CLG, Cloud 9과 유럽 대표인 G2 e스포츠, 스플라이스, H2K. 아직 본격적으로 해외 팀과 연습을 하지 못했다고 하니, 이 팀들의 섬머 시즌 경기력과 이름값만 놓고 의견을 나눠봤습니다.

'쿠로' 이서행은 민감할 수도 있는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잘 모르겠지만, 주위 평가로는 북미 지역이 조금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것 같아요. 특히, TSM이나 Cloud 9의 경기력에 대한 평가가 정말 좋더라고요. 이들과 만나게 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라고 답했죠. 북미 팬들의 환호성과 유럽 팬들의 투덜거림이 벌써 들리는 듯하군요. 하지만 이 평가가 맞아떨어질지 여부는 롤드컵이 시작돼야 알 수 있겠죠?


롤드컵이라는 주제로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페이커' 이상혁이 우승을 차지한 뒤에 본인의 당시 헤어스타일과 비슷한 브로콜리를 한 입 베어 물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우승 세레머니였죠. 그렇다면 롤드컵 우승을 목표로 삼고 있는 '쿠로' 이서행은 어떤 세레머니를 생각하고 있을까요? 살짝 이른 질문이긴 했지만, 한 번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원래 머리를 탈색하려고 했는데, 이미 봇 듀오가 해버렸어요. 그러다가 외국인들 보면 구레나룻부터 턱수염까지 이어지는 수염을 기를까 고민해봤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저를 안 볼 거래요(웃음). 그렇게 자라지도 않고요." 한참 고민하던 '쿠로' 이서행. 우승 직후에 마이클 잭슨 춤을 팀원들과 추겠다는 말도 했지만, 뭔가 개운치 않았죠.

그러다가 번지 점프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평소에 정말 해보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이미 번지 점프를 한 번 경험해본 기자의 조언과 함께 '쿠로' 이서행의 롤드컵 우승 공약이 정해졌습니다. 번지 점프하는 영상을 촬영해 팀 SNS에 업로드하는 것. 약 한 달 뒤에 이서행이 번지 점프하는 생생한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 저기 매달릴 '쿠로' 이서행을 기대해봅시다! (출처 : 기자 SNS 계정)

긴 시간 동안 나눴던 수다도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롤드컵이 끝나야 다시 볼 수 있는 '쿠로' 이서행의 얼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 질문을 꺼냈습니다. 롤드컵에 나서는 각오와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쿠로' 이서행은 이 두 질문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태도로 답변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우승 경험도 없었고, 해외 대회 경험도 적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롤챔스 우승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작년보다 결과가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저번에 준우승이었으니까 올해에는 우승이 되겠군요. 내년에는 ROX 타이거즈 롤드컵 우승 기념 스킨이 나오면 좋겠어요. 호랑이 가면을 뒤집어쓴 빅토르 같은?(웃음)"

"결승이 끝나고 같이 우신 분들이 정말 많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저처럼 못난이가 되셨단 말인데(웃음)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감정뿐이에요. 이번 롤드컵도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잘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가족과 친구들, 팀원들과 같이 제 주변에 있는 분들이 '우승의 기운'을 받아서 하는 일 모두 잘 풀렸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