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상의 기량을 가진 선수에게 우리는 흔히 '클래스가 다르다'라는 말을 한다. 표현은 애매하지만, 뜻은 굉장히 명확한 말이다. 남들과 구별되는 뛰어난 능력으로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선수에게만 이런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롤드컵 시작 전, '마타' 조세형은 선수 파워랭킹에서 B티어를 받았다. 조세형의 실력을 몰랐던 게 아니다. 메타가 변하면서 탑, 정글, 미드가 경기의 중심이 되었다. 서포터의 한계는 이전부터 명확했고, 해외팀 소속이라는 족쇄까지 있었기에 오더 능력이 뛰어난 조세형의 영향력이 이전만 못할 것이라는 꽤나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조세형은 서포터 혼자 힘으로 지던 경기를 뒤집었다. 메타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RNG와 TSM의 경기는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서포터의 포효였다.



TSM의 경기력은 정말 좋았다. 북미 지역 게임단 중 역대급 경기력을 보유했다는 말이 꽤 신빙성 있게 들렸다. 탑 라이너 '하운처'-정글러 '스벤슨케런'-미드 라이너 '비역슨' 이 세 명은 맞라인전이 강제된 최근 메타서 승리로 향하는 지름길을 차분히 밟아가고 있었다. TSM은 봇을 제외한 모든 라인에서 주도권을 쥐었고, 정글러 '스벤슨케런'은 라이너가 준 주도권으로 스노우볼을 굴리며 경기 초반을 지배했다.

경기 9분 경, TSM이 기록한 '스벤슨케런'의 킬은 TSM의 경기력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2분 전, 상대의 레드가 등장했을 때 '스벤슨케런'은 탑-미드 라이너의 비호 아래 상대 레드 버프를, 미드-봇의 비호 아래 상대 블루 버프를 갈취했다. TSM이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모니터를 통해 확 느껴졌다.

RNG의 정글러 'mlxg'도 마냥 당하고 있을 순 없었다. 'mlxg'는 상대의 블루 버프 카운터 정글링을 시도했고, 이를 눈치챈 '스벤슨케런'이 상대 탑 2차 타워까지 추격해 킬을 올린다. 'mlxg'는 반격을 생각할 수 없었다. 라인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TSM은 12분 경, 탑 라인에 빅 웨이브를 기회로 다이브를 시도해 '루퍼' 장형석의 럼블을 잡는다. RNG의 'mlxg'는 소통이 잘 되지 않았는지 커버가 늦었다. 중국팀의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후에도 TSM은 미드 라인에서 킬을 기록했고 바다의 드래곤을 챙겼다. 여기까진 TSM의 무난한 낙승이 예상된다.



RNG의 첫 번째 반격이 나왔다. 조세형의 손에서 시작됐다. 앞서 조세형은 상대 원거리 딜러 '더블리프트'의 진과 교전을 통해 점멸을 교환해놨다. '더블리프트'는 교전에서 상대 알리스타에게 박치기-분쇄 콤보 거리를 허용했고, 조세형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RNG는 이 교전을 통해 봇 1차 타워를 파괴하지만, TSM도 탑 1차 타워를 가져간다.

조세형은 3분 뒤, 상대가 봇 라인에서 시야 장악을 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팀원들을 불러 대기하다 나미를 잡아낸다. 전황을 뒤집기에는 아쉬운 성과지만, 분위기를 RNG 쪽으로 조금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다.

RNG가 이 전투를 기점으로 봇 라인에서 일어나는 전투에 모두 승리한다. 교전의 시작은 언제나 조세형의 알리스타였다. 조세형의 오더만을 듣는 팀원들은 알리스타의 움직임에 민첩하게 반응했다. 봇 라인에서만 6킬을 기록하는 RNG. 글로벌 골드 차이가 완전히 줄었다. 조세형의 활약이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조세형의 다음 표적은 TSM의 두 번째 딜러, '비역슨'의 오리아나였다. 양 팀의 정글러가 맵 위쪽에서 교전을 하면서 이목을 끈 사이, 조세형의 알리스타가 방심한 오리아나를 '점멸-박치기-분쇄' 콤보로 덮친다. '비역슨'은 도주에 중점을 둔 '유체화-점멸' 소환사 스펠을 가지고 있었지만, '샤오후' 카시오페아의 w스킬 '독기의 늪'이 그 위에 깔리면서 비명횡사 한다.

프로 선수 간의 경기에선 '데스'가 '킬'보다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한 번도 죽임을 당하지 않은 주요 딜러는 언제든 판이 깔리면 제 화력을 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때문에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선 잘 성장하고 있는 상대 라이너를 한 번씩 끊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조세형은 상대 미드 라이너와 원거리 딜러에 한 번씩 죽음을 선사하면서 한타 승리의 발판을 닦아놓는다.



RNG가 이번 대회 최고의 한타 장면을 연출했다. 조세형의 알리스타가 상대 뒤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화면에 잡힌다. 미드를 압박하는 상대 뒤를 잡으려는 심산이다. 먼저, 오리아나를 향해 날린 w스킬 '박치기'는 '비역슨'의 점멸로 상쇄된다. 조세형은 곧바로 점멸을 사용해 상대 리신-나미-진을 한 번에 띄우는 말파이트급 '분쇄' 스킬 사용에 성공한다.

RNG의 팀원들은 조세형이 띄워놓은 상대 위로 일제히 궁극기를 날린다. 럼블의 궁극기 '이퀄라이저 미사일'이 떨어지고 카시오페아가 '석화의 응시', '독기의 늪'을 연달아 날린다. 시비르의 부메랑이 하늘을 덮으며 RNG의 승리가 확정된다. RNG 팀원 중 어느 누구도 다른 곳을 노리지 않았다. 정확하게 조세형의 알리스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의 동작에만 반응했다.

이 싸움을 통해 RNG는 바론을 챙긴다. 이후 전투에는, RNG의 다른 팀원들이 마치 한을 풀 듯 적극적인 공격에 나섰고 RNG는 2016 월드 챔피언십에서 중국팀에 첫 승을 안겼다.



RNG의 시작과 끝은 모두 '마타' 조세형이었다. 선발명단에서 조세형이 빠지고 다른 서포터가 있었더라도 RNG가 승리할 수 있었을까? 오늘의 승리는 조세형이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한 경기이자 조세형만을 위한 경기였다.

경기를 마친 후 인터뷰에서 조세형은, 앞으로 RNG가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겠냐는 말에 "사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지만, 오늘처럼 경기하다 보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믿기 힘든 승리를 거둔 후 가진 인터뷰라 하기에는 패기가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조세형이 자신의 팀을 정확히 꿰뚫고 있기에 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승리는 RNG의 승리라기보단 '마타' 조세형의 승리였다.

이후 경기에도 RNG가 계속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긴 힘들다. 오늘 경기에서도 RNG는 여전한 약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RNG에겐 '마타' 조세형이라는 S티어 슈퍼스타가 존재한다. 그의 활약이라면, RNG의 앞날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