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희 기획자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이진희 기획자는 엠게임의 '열혈강호2'와 NC소프트의 '블레이드&소울'에서 시나리오, 퀘스트, 설정 등의 콘텐츠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최근에는 덱스인트게임즈의 모바일 AOS 게임 '아이언사이드' 제작에 참여했다.


MOBA, 흔히 AOS라고 알려진 장르는 각 플레이어마다 캐릭터를 조종해서 팀 단위로 전투를 치러 상대팀의 본진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투를 중심으로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다보니 유저들조차 AOS 장르에서는 스토리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냥 곁다리 정도로만 보는 일이 많다.

그러나 6일에 진행된 IGC 첫째 날 행사에서 'AOS(MOBA) 장르의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맡은 이진희 기획자는 AOS (MOBA) 장르야말로 스토리텔링이 핵심이 된다는 강연을 진행했다. 아래는 이진희 기획자의 강연 전문이다.


■ 강연주제: AOS(MOBA) 장르의 스토리텔링


⊙ AOS라는 장르의 게임에서 시나리오는 필요한가?


이진희 기획자 강연은 강연자 소개로 시작되었다. 이진희 기획자는 시나리오 이론에 대한 공부를 위해 영화학을 전공했으며 열혈강호2, 블레이드 소울 등 mmorpg의 시나리오와 퀘스트 등의 콘텐츠 관련 업무를 6년 이상 맡은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 AOS 장르의 게임인 아이언사이드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강연의 본격적인 시작은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AOS라는 장르의 게임에서 시나리오는 필요한가?' 인터넷 상에서 우연히 본 '롤이 무슨 스토리가 있어?' 라는 댓글 덕분에 강연 주제를 잡게 되었다고 말한 이진희 기획자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스토리텔링이란 스토리(story)와 텔링(telling)의 합성어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을 뜻한다. 스토리는 게임 시나리오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텔링 즉, 전달법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이러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해서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설은 텍스트, 연극에서는 대사, 드라마는 대사와 영상, 영화는 영상을 통해 스토리를 독자 혹은 관객에게 전달한다. 드라마와 영화는 같은 영상으로 스토리를 전달하지만 전달하는 공간이나 방식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드라마의 경우 TV를 매체로 하기 때문에 집에서 가볍게 볼 수 있고, 화면이 작다보니 클로즈업이나 미디움샷을 주로 활용하게 된다. 반대로 영화의 경우 극장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보기 때문에 몰입도가 강하고 화면이 크다보니 풀샷을 주로 활용하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던 다른 매체들과 달리 게임은 플레이(경험)를 통해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텍스트나 영상 중심의 스토리텔링은 게임에 적합하지 못하다. 게임의 스토리텔링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는 바로 캐릭터다.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통해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 강연의 계기는 하나의 댓글이었다

이진희 기획자는 대부분의 좋은 IP에는 좋은 캐릭터가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즉, 게임의 배경이 되는 스토리와 더불어 캐릭터가 게임 스토리텔링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 다만 MMORPG에서는 유저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아바타의 성격이 강하다보니 감정 이입이 힘든 부분이 있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목소리가 없다보니 스토리와 직접 연계되는 느낌이 부족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MMORPG에서 스토리텔링에 성공한 케이스로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를 꼽을 수 있다. WOW는 스랄이나 아서스와 같은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융화되는 캐릭터를 남기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블레이드 소울 정도가 화중 사형이라거나 진서연, 포화란 등의 캐릭터를 남긴 케이스다. 만약 블레이드 소울에 캐릭터가 없었다면 뮤지컬 제작도 어려웠을 것이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텍스트로 한정지어서 보는 경우가 많다. 텍스트의 경우 수정이 쉬워 수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낮은 소스다. 언제든 수정 가능하다는 생각이 있다보니 개발 과정에서 중요도가 낮아지고 구현이 많이 되거나 일정 수준 개발 이후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시나리오에 기반하지 않는 캐릭터가 이미 제작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 나중에 억지로 설정을 맞추면서 개연성이 부족해지게 되는 일이 잦다. 캐릭터의 설정이나 외형이 게임과 맞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먼저 제작된 캐릭터를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에 맞추려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게임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연결된다.

게임 시나리오를 텍스트로만 보다보니 유명 소설가 등을 영입해서 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이유는 소설가이지 게임 시나리오 작가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임 시나리오에서 요구되는 내용과 소설에서 요구되는 내용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 주로 사용되는 내적 갈등과 같은 부분은 게임에서 표현하기가 어렵다.

게임이 추구해야하는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게임 시나리오가 게임 시스템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가 영상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듯이 가능하다면 게임에서는 텍스트나 영상이 아닌 플레이를 통해 스토리를 전달해야 하고, 플레이와 시나리오가 연결되어야 한다.

또한 게임의 장르적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영화를 예로 들면 2D영화와 3D 영화의 연출이 다르다. 3D 영화의 경우 3D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간감이 있는 미장센이 필요하며 동시에 컷 길이 길게 잡아서 효과를 잘 보여주고자 한다. 게임도 장르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장르의 특성과 유저들이 해당 장르에 몰입하는 이유를 알아야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또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동원해서 캐릭터를 돋보이게하는 스토리텔링을 해야한다. 예를 들어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같은 캐릭터는 스토리가 희석되더라도 캐릭터는 기억에 남게 된다.

⊙ AOS 장르의 시작과 특성


스토리텔링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에 이어 AOS 장르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AOS는 국내에서만 부르는 명칭으로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은 MOBA (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다. AOS는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인 Aeon Of Strife의 약어로, 이 유즈맵이 MOBA 장르의 기원이라 AOS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 워크래프트3를 거쳐 Dota에서 장르적 기준이 확립되었다.

AOS 유즈맵에는 특별한 존재, 영웅화 된 유닛이 존재하고 해당 유닛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더해 유닛 하나만 컨트롤하고 싶다는 생각이 합쳐져 조작하지 않아도 되는 아군이 생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내가 조작하는 유닛은 특별한 유닛이라는 느낌을 위해 성장 시스템이 들어가면서 유저의 욕구가 반영된 장르로 탄생하게 된다. 즉 특별해진 하나의 유닛은 캐릭터가 되면서 AOS 게임의 특징이자 아이덴티티가 되는 셈이다.

AOS 장르 캐릭터의 구성 요소로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외형과 스토리 설정, 그리고 전투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캐릭터 구성 요소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에서 고려해야한다. 캐릭터의 외형이 바뀌면서 스토리도 수정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또한 AOS 장르 특성 상 게임에서 캐릭터가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가 핵심이다보니 전투 메커니즘 역시 자연스럽게 중요해진다.

리그오브레전드를 예로 들면 게임 초기에는 캐릭터 스토리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최근에는 스토리 기반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기존에 오래된 캐릭터 역시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특히 전투 매커니즘을 위주로 개선하게 되는데 갱플랭크의 경우 빌지워터라는 배경 스토리가 보강되면서 배경에 걸맞게 전투 매커니즘이 개선된 케이스다.

캐릭터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인 외형과 스토리, 전투 매커니즘의 교집합을 늘려나가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목표다. 세 가지 요소의 교집합이 클수록 스토리텔링이 잘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세 가지 요소의 교집합을 최대한 크게 만들어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캐릭터 스토리텔링의 목표라 할 수 있다.



⊙ AOS 장르의 스토리&텔링

스토리와 텔링 2가지 요소로 구분되는데 배경, 세력, 맵, 캐릭터 설정 등은 스토리로 볼 수 있고, 전투 매커니즘이나 대사, 인물 관계, 각종 컨셉 등은 텔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진희 기획자는 '보이스를 넣으면 일이 많이 늘어나지만 개발을 진행하면서 최대한 많이 넣으려했다'며 여러가지 요소 가운데 보이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특성은 비단 AOS에 국한되지 않고 오버워치나 사이퍼즈,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와 같은 캐릭터 중심의 대전 게임 모두에 해당된다. 이진희 기획자는 각종 예시를 바탕으로 강연을 이어나갔다.

■ 배경 설정 예시

"왼손은 거들뿐" - 슬램덩크

배경 스토리(왼손)는 중요한 오른손(캐릭터)를 위해 존재한다. 배경 스토리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등장이 가능한 세계관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적이지, 그 이상을 해야할 필요는 없다.

바실리스크

도쿠가와 막부의 후계자 결정을 위해 원수 집안인 닌자 집단간의 대리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싸우는 이유가 분명하며, 서로를 원수로 생각하는 분명한 세력이 존재해서 스토리 만들기가 용이하다. 거기에 더해 닌자다보니 다양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를 등장시킬 수 있어 게임과 잘 맞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캐릭터 설정 예시

바스티온 - 오버워치

바스티온의 경우 포탑으로 변신하는 '경계 모드'라는 전투 매커니즘으로 인해 인간에 가까운 외형을 가지기가 어려운 캐릭터라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바스티온의 외형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가니메데스라는 새와의 '교감'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다움'을 부각시켜 극복하게 된다.

▲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설정을 통해 메운 '바스티온'

* 불쾌한 골짜기 이론 : 로봇이 인간의 모습을 닮을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게 된다는 이론

■ 세력 설정 예시

프렐요드 - 리그오브레전드

세력 설정은 캐릭터들을 연결시켜 세계에 속하는 인물로 만들어주는 요소다. 자연스럽게 세력의 설정(목적)이 명확하면 캐릭터 개인의 스토리 설정도 쉬워지게 된다. 프렐요드 캐릭터들이 전반적으로 푸른색을 띄고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세력 자체의 공통적인 아트 컨셉을 가지고 있어 이를 통해 세계관을 보여줄 수도 있다.

■ 맵 설정 예시 - 칼바람 협곡

프렐요드의 컨셉을 가진 맵으로 세력 설정에서 보이는 것처럼 프렐요드라는 컨셉에 맞춰 푸른 색을 띄고 있다.


각 예시를 통한 설명에 이어 각 항목에 대한 보충 설명 역시 진행했다.

보충설명 - 좋은 전투 매커니즘이란?

1. 전투 컨셉이 확실한 캐릭터 : 우디르, 샤코, 블리츠크랭크, 트위스티드페이트 등
2. 소위 충이라 불리는 캐릭터는 많이 선택된다 : 야스오, 마스터이, 티모, 베인 등
3. 캐릭터와의 강함과 무관하게 캐릭터 자체의 매력 요소가 있다.



보충설명 -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도 전투 매커니즘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요

- AOS의 장르적 특성을 스토리에 반영
- 라이엇 게임즈는 본사의 게임을 안하는 사람 안 뽑는다.
- 캐릭터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도 전투 매커니즘 : 패시브 스킬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도 캐릭터 성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보충설명 - 캐릭터 디자인 예시

이진희 기획자는 캐릭터 디자인의 예시로 본인이 생각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블레이드&소울의 몬스터 ‘만령강시’의 외형을 보면 배에 있는 입으로 적을 삼킬 수 있어보였지만 비주얼로만 존재할 뿐 실제 전투에서는 타격 스킬만 사용했다. 만령강시를 보면서 적을 삼키는 스킬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적을 삼킬 수 있는 외형 컨셉을 가진 캐릭터를 찾아보니 마인부우나 투투 등의 캐릭터가 존재했다.

이를 발전시켜 캐릭터의 아트 컨셉으로 외형은 피부가 미끈거리는 독두꺼비를 구상하게된다. 이와 연계해 스킬 구성으로 적을 삼키는 스킬, 독두꺼비의 외형에 어울리는 독을 모았다가 터뜨리는 스킬이나 두꺼비답게 뛰어다니는 이동 스킬, 피해반사 패시브 스킬 등을 생각했다. 캐릭터의 스토리 구성은 기본적인 배경 스토리나 세력 설정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스토리 구상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을 했을 때와 유사한 시점에 리그오브레전드에 탐켄치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구체화되지 못했다. 탐켄치 역시 적을 삼킨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구상한 캐릭터로 보인다.



이진희 기획자는 스토리 구성을 할 때 언뜻 보기에는 전투 메커니즘과 같은 요소가 스토리 구성과 연관이 없어보일 수도 있지만, 좋은 스토리 구성을 위해서는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 질의응답


Q. 아까 예시로 나왔던 탐켄치의 사례처럼 한 캐릭터의 특색을 보고 기원을 찾는 것이 기획 공부에 도움이 되나?

기원을 찾는 것은 캐릭터의 본질적인 성격을 파악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획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Q. 보통 기획할 때 캐릭터를 먼저 구성하고 큰 틀을 만들어가는 편인가, 세계를 먼저 구상하고 캐릭터를 만들어가는가?

장르마다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먼저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AOS는 전투 매커니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전투 매커니즘을 먼저 고민하는 식으로 구상하는 편이다. RPG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일이 많다. 주인공과 적을 설정하면 대립 구조가 발생하고 이를 통해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가 나온다.


Q. AOS 장르다보니 스킬 매커니즘과 밸런스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가?

사실 밸런스와 스킬 매커니즘 사이의 연계는 복잡하다. 전투 매커니즘에 따라서 밸런스에 변화가 생길 여지는 있으므로 충돌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다만 기본적인 큰 틀 자체는 전투 매커니즘의 핵심이 되는 스킬 몇 가지에 초점을 맞추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편이다.


Q. 캐릭터 이름 짓는 노하우가 있나?

예를 들어 중동을 배경으로 하는 캐릭터를 구상한다고 하면 중동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이름을 최대한 수집한다. 이후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관이나 시대에 맞는 이름을 남기고 조금씩 리스트에서 줄여나가면서 가장 캐릭터에 적합한 이름을 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