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대표할 만한 큰 대회와 리그를 마무리하는 시기. 프로게이머들은 2016 시즌 자신의 행적을 돌아보며 이적과 잔류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어떤 선수는 좋은 조건으로 입단할 예정이고, 우리 팀에는 누가 들어올 거란다. 같은 프로게이머지만, 마치 다른 무대와 길을 걸어온 것 같은, 내년부터 더는 우리가 한 팀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리 잡은 순간 팀 호흡은 예전만 못하다. 인터뷰를 통해 "최선을 다하겠다, 전성기 경기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하지만, 많은 프로게이머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시기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란을 일으킨 팀이 있다. 세계 4강을 제패하고 온 강호들이 출전하는 2016 KeSPA컵에서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한 콩두 몬스터. 최근 코치진이 바뀌면서 흔들릴 법한 콩두 몬스터 팀원들은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았다. 복잡한 상황에 신경 쓰기 보다 자신들이 현재 자신들에게 찾아온 기회와 팀원들에 집중한 것. 상대는 자신들이 챌린저스 코리아에 있을 때 롤챔스 섬머 시즌 결승에 있었던 kt 롤스터 였고, KeSPA컵에서 SKT T1마저 꺾고 거칠 것이 없던 락스 타이거즈였다. 하지만 콩두 몬스터는 상대가 누구든 끈기있게 '콩두표 저력'을 선보이며 IEM 경기 진출권까지 자력으로 따냈다. 2016 롤챔스 스프링 시즌만 하더라도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아쉬움을 샀던 콩두 몬스터. 그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 답은 위험한 곡예뿐? 스프링 시즌 무리할 수 밖에 없었던 '엣지-솔'

콩두 몬스터는 나진이 해체하고 e 엠파이어로 2016년을 시작했다. 더이상 나진 시절을 떠올릴 수 없을뿐더러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신생팀에 가까웠다. 신예들의 경기력은 불안했고, 그나마 프로무대 경험 있는 '엣지' 이호성을 중심으로 팀이 돌아갈 수밖에 없던 상황. 이호성 역시 '스코어-썸데이'와 같은 노련한 kt 롤스터 형들의 오더만 따르던 시기와 달리 자신이 팀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콩두 몬스터의 경기는 두 명의 딜러인 이호성과 '쏠' 서진솔의 활약 여부에만 집중됐다. 간절한 1승을 위해 두 명이 '외줄타기'와 같은 슈퍼플레이를 펼쳐야만 했던 것. 당연히 그들의 '외줄타기'는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위험한 길의 연속이었다. 딜러 두 명의 활약이 저조하면 무기력하게 무너지던 팀이 콩두 몬스터였다.

챌린저스 코리아와 승강전을 뚫고 올라온 콩두 몬스터는 더이상 '엣지-솔'로 대변되는 '투 맨팀'이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도 제 역할을 해내며 단순히 딜러의 캐리력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라인전은 다른 프로팀에게 밀릴지언정 끈질긴 운영과 후반 집중력으로 불리한 경기도 곧 잘 뒤집어버렸다. 예전 콩두 몬스터였다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시도조차 못해보고 무너졌을 테지만, 이번 만큼은 확실히 달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콩두 몬스터의 저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불리하게 출발하더라도 역전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무리한 슈퍼플레이보다 묵묵히 성장해 후반 교전에서 빛을 발하는 탑 '로치' 김강희. 딜러로 슈퍼플레이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앞 라인에 서서 팀원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정글러 '펀치' 손민혁은 날카로운 갱킹 뿐만 아니라 불리한 상황에서 성장에 힘쓰며 챔피언 색에 맞는 운영을 선보였다. '구거' 김도엽 역시 최근 볼 수 없었던 트런들과 같은 픽으로 아군을 보호하고 팀 교전에 힘이 됐다. 최신 메타에 맞는 라인전이 강한 챔피언보다 팀 교전에 힘이 될 수 있는 역할을 자처했다. 이제 딜러 둘이 펼치는 위험한 곡예가 아닌 앞 라인과 서포팅 능력까지 갖춘 팀으로 성장했다. 초반에 말리더라도 후반에 탑-정글-서포터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동시에 두 딜러는 무리하지 않아도 팀원들과 함께하는 플레이로 더욱 빛났다.


▲ 교전을 피하지 않는 콩두 몬스터

거칠 것 없던 락스 타이거즈와 결승전. 많은 이들이 락스 타이거즈의 압승을 예상했지만, 콩두 몬스터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킬 스코어가 크게 벌어진 첫 세트부터 기습적인 바론 오더로 기막힌 역전승을 일궈낸 것. 마지막 세트에서도 바론 사냥에 성공하며 40분이 넘는 혈투 끝에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단순히 후반을 바라보는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교전을 주도적으로 열어 후반으로 갈 발판을 직접 만들 수 있는 팀으로 어느새 성장한 것이다.

경기 후반부는 작은 실수가 곧 패배로 직결될 수 있는 위험한 시기다. 칼 같은 오더에 따라 정확히 움직여야 하고 단 한 명이라도 끊기는 순간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콩두 몬스터는 이런 후반을 바라봤다. 개인의 캐리력보다 팀원을 믿었기에 후반에 승부수를 던졌다. 한 명이라도 불리한 상황에서 급한 마음에 다시 곡예를 펼쳤다면 이만큼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콩두 몬스터 팀원들 개개인이 엄청난 스타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진정한 팀이 무엇인지 이번 KeSPA컵을 통해 보여주며 그 어느 때보다 값진 성과를 이뤘다. 혼자 느끼는 만족이 아닌 함께 만들어간 승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