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VO 공동 창업자 톰 캐논(Tom Cannon)

격투 게임 장르는 오락실 문화와 함께 발달해왔다. 오락실에서 더 오래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선 상대방을 밀어내고 승리해야 한다. 그 자체로 '경쟁의 영역'인 것이다. 오락실에서 개최되는 지역 토너먼트는 e스포츠의 개념이 생겨나기 전부터 종종 작은 규모로 계속 개최됐다. 시간이 흐르고 오락실의 인기가 사그러들며 '오락실 격투게임' 장르는 주류에서 멀어졌지만, 오락실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경쟁 정신'은 여전히 게임 내에 남아 여러 세대의 유저들에게 계속 전해졌다.

EVO의 공동 창업자인 톰 캐논(Tom Cannon)은 GDC의 'Arcade to eSports' 세션을 통해 90년대~00년대 오락실 문화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e스포츠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강연을 통해 경쟁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더 강해지기 위해 어떤 동기부여를 받았으며, 경기를 지켜보는 관객이 선수가 되어 싸울 수 있는 e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그러한 믿음은 오늘날의 격투게임 e스포츠가 옛날 오락실의 경쟁 구도와 같은 성향을 띠고 있다는 분석에서 기인한다.



"시간, 돈, 그리고 수치심 : 오락실 격투게임에서 작용하는 경쟁의 요소"

캐논은 강연을 시작하며 오락실 격투게임에서 경쟁을 발생시키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소개했다. 바로 '돈'과 '시간', 그리고 '수치심'이다. 오락실에 가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동전을 넣어야 한다. 하나의 동전으로 얼마나 오래 플레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동전을 투자해야 하나의 게임에 익숙해질 수 있는지는 모두 자신의 실력에 달려있다. 만약 승리한다면, 너는 추가로 동전을 넣지 않아도 계속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반대로 게임을 잘 못 하거나 상대 유저에게 패배한다면, 너는 동전을 더 넣거나 게임을 그만두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좋은 실력에서 오는 보상과 실력 부족에서 오는 불명예는 모든 오락실 게이머들을 경쟁자로 만들고, 승리를 갈구하게 했다. 게이머들은 최소한의 돈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길 원하며, 패배했을 때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길 원치 않는다. 이러한 모든 상호작용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결과적으로 감정적 변화는 더 심화했다. '경쟁'이 자연스럽게 촉발되는 것이다.


관중과 선수 사이, 그 옅은 경계

오락실 게이머들 사이에서 계속되는 이러한 자연 경쟁 구도에 뛰어드는 것은, '생존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선수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 않게 됐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계속 분석하기 위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는, 한 명의 세심한 관중이 됐다. 그들은 현재 대결을 펼치는 유저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플레이 스타일을 유심히 살펴보고, 자신이 배울 점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을 보고 있는 관중 이외에 직접 플레이하고 있는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이제 게임을 플레이하는 선수 본인도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다. 선수들은 이제 경기에서 살아남는 것은 물론, 자신이 속한 블록에 멋진 선수가 있다는 것을 관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꾸준히 연습한다.

▲ 관중들의 시선을 무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락실 경쟁 문화를 되찾기 위한 EVO의 시도

캐논은 강연에 참석한 참관객들에게 EVO가 다른 어떤 곳과도 다른 방식으로 격투게임 e스포츠 토너먼트를 개최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EVO의 방식을 통해 선수와 관중, 그리고 분석가들이 모두 '오락실'이라는 한 장소에 모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게임을 즐기기 위한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참가자격을 잃은 선수도 관중으로서 계속 행사에 남아있을 수 있다. 동전을 다 써버려서 구경만 하게 되는 오락실의 관중처럼 말이다.

EVO는 e스포츠가 아직 존재하지 않던 시대의 오락실 문화를 토대로, FPS, MOBA 같은 다른 e스포츠 장르와 차별화될 수 있는 '격투게임 e스포츠'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캐논은 끝으로 "격투게임의 진정한 가치는 자연스러운 경쟁 구도를 만들어낸 오락실 문화에 있다"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