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2 공허의 유산을 대표하는 영웅인 아르타니스. 하지만 출시 당시 그의 능력과 성적은 많은 이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 많은 프로들이 아르타니스 플레이를 연구해봤지만, 오랫동안 성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대대적인 영웅 리빌딩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웅이었다. 홀로 떨어져 있다가 상대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끊겼고 전사인지 암살자인지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로 멀뚱히 서 있었다. 이번 HGC KR 초반부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승리의 픽으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최하위를 달리던 레이븐이 과감하게 아르타니스를 꺼내 두 세트를 따냈기 때문이다. MVP 블랙이 사용했을 당시 다른 영웅이 나와도 충분히 이길만한 픽이라고 생각됐지만, 'H82' 김정우가 활용하자 아르타니스의 장점이 확실히 드러났다. 후퇴하는 상대의 뒤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플레이 메이커 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넓은 영웅 폭을 자랑하는 L5 '정하' 역시 바로 아르타니스를 선택하며 승수를 쌓았다.

▲ 한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

MVP 블랙이 저그 무리와 함께 몰아치며 유리해진 상황. L5는 대치 구도에서 MVP 블랙의 크로미-레이너에게 일방적으로 몰매를 맞고 있었다. 무라딘의 화신마저 빠진 힘겨운 시기에 '정하'의 아르타니스가 과감히 들어가 제 역할을 해줬다. 폭발적인 딜을 자랑하는 MVP 블랙의 딜러를 끌어당기며 추격을 시작한 것. 정확한 기술을 바탕으로 단 한방에 핵까지 진격할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 죽음을 불사하며 뛰어드는 프로토스의 수장

아르타니스의 애매한 색깔은 조합을 통해 확실해졌다. MVP 미라클이 최근 메타에서 잘 볼 수 없었던 '3전사' 조합을 꺼냈다. 아르타니스는 전사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지만, 특성에 따라 근접 암살자와 비슷한 딜을 뽐낼 수 있다. 부족한 탱킹을 다른 두 전사 영웅이 맡아주고 '다미'의 아르타니스는 검에 힘을 줬다. 정신없이 좁은 지역에서 난전을 펼치는 저주받은 골짜기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정화 광선이 뭉쳐있는 상대를 괴롭혔고 오브젝트를 차지하기 위한 끝없는 전투에서 엄청난 딜을 자랑했다. 한동안 탱커 역할과 위상 분광기에 초점을 뒀던 아르타니스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번 HGC KR을 통해 프로들이 다양한 영웅을 재조명하게 됐다. 특성과 조합에 따라 매 시즌 새로운 모습을 더 해가는 영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안 좋은 수식어와 편견을 극복하고 리그에 나와 당당히 활약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영웅들의 귀감이 될 것이며, 히어로즈 e스포츠 씬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