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늘 전쟁에 비유되어 왔다. 이 살얼음판 같은 스포츠 세계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가장 필요한 노력은 변화다. 정체되어 있는 팀은 상대방에게 먹잇감이 되기에 십상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병법의 달인 손자가 말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지피(知彼)', 상대방에 대해 알려면 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뛰어난 첩보력조차 무시하는 것이 도전이다. 그래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팀이 성공을 이룩해왔다. 중간 과정에 굴곡이 있다고 할지라도.

LCK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MVP가 바로 그런 팀이다. 아직 성공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도저히 가늠이 가지 않는 팀이다. 까도 까도 무엇인가 계속 나온다. 사이온, 제드, 아리, 쉬바나, 브랜드-벨코즈-질리언 서포터 등 세기 힘들 정도로 변칙적인 픽을 많이 사용했다. 최근에는 밴픽이 더 치밀하고 기발해졌다.



3월 2일 대 롱주전 2세트 : 속임수 카드 '렝가'




롱주와의 2차전이었던 3월 2일 경기. 1세트에 승리를 거둔 MVP는 2세트에서 아주 재미있는 밴픽 전략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LCK 어떤 팀도 사용하지 않았던 속임수였다. 그 중심에는 렝가가 있었다.

밴픽 진행

레드 진영이었던 롱주는 일반적인 밴 양상대로 바루스와 카밀을 잘랐다. 블루 진영이었던 MVP는 강력한 상대 봇 듀오를 견제하기 위해 애쉬와 자이라를 밴했다. 여기까지도 평범했다. 하지만, 마지막 밴은 달랐다. 바로 르블랑.

보통 르블랑은 블루 진영에서 밴 하지 않는다. 르블랑이 너프된 7.3 패치 버전부터 정말 간혹 나오기는 했지만,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이 블루 진영의 르블랑 밴이다. 르블랑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OP 중 하나이기 때문에, 블루 진영은 르블랑이 살게 되면 무조건 가져가려고 한다. 하지만, MVP는 르블랑을 잘랐다.

롱주 입장에서는 밴 카드 하나를 벌었으니 이득이었다. 3번째로 '이안' 안준형의 필승 카드인 신드라를 자르며 기분 좋게 밴픽을 시작했다. 그레이브즈가 남아있으니 굳이 신드라가 아닌 렝가를 자를 필요는 없었다. 렝가와 그레이브즈는 나눠 가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선택이 아주 특이한 상황을 만들었다.


MVP는 자연스럽게 렝가를 1픽으로 가져갔다. 다음 상황을 보자. 롱주는 1, 2픽으로 봇 듀오의 챔피언을 골랐다. 롱주의 강점이 봇 듀오 '프릴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 굳이 그레이브즈를 빠르게 가져갈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상대는 렝가를 이미 가져갔기에 그레이브즈를 뺏길 염려가 없어 3픽으로 가져가면 됐다.

하지만, 이것이 크나큰 착오였다. 바로 MVP의 다음 선택 때문이다. MVP는 그레이브즈도 뽑았다. 이 선택으로 해설진조차도 잠깐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래전에 사장된 2정글 조합이었을까?

핵심 이유

그건 아니었다. '렝가는 정글'이라는 상대 예측의 사각을 정확히 노렸다. MVP는 렝가가 다른 포지션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오래된 장점을 이용했다. 렝가는 탑으로 향했다.

선수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현재 정글 메타 1티어는 렝가와 그레이브즈다. 두 챔피언은 상황에 따라 약간의 우위가 존재할 뿐 큰 차이는 없다. 그 밑으로 카직스, 리 신, 엘리스와 같은 챔피언이 있는데, 이 챔피언들이 당연히 렝가와 그레이브즈와 견줄 만큼 좋지는 않다. MVP는 이 점을 제대로 노렸다. 롱주는 어쩔 수 없이 카직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MVP는 렝가와 그레이브즈를 모두 가져가는 전략을 염두에 두고 밴픽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르블랑 밴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르블랑을 일부러 열어주고 카운터치는 플레이가 가끔은 나왔다. 그러므로, MVP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상대가 가져갈 수 없도록 르블랑을 자른 것이다. 손해 없이 1픽으로 렝가를 선택하기 위해.


밴픽이 순조롭게 마무리됐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얼마나 플레이에 전략을 녹여내느냐였다. MVP 선수들은 경기로 보여줬다. 1티어 그레이브즈는 카직스를 상대로 활발한 카운터 정글을 통해 위치를 알려주고 레벨을 앞서나갔다. 렝가 또한 레넥톤을 상대로 라인전을 주도해 MVP가 탑, 정글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를 통해, 잘라먹기에 특화됐던 MVP의 조합에 날개가 달렸다. 경기는 MVP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3월 7일 대 bbq전 1세트 : 4원거리 딜러


MVP가 롱주와의 2세트 밴픽 싸움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면, bbq와의 1세트는 받아쳤다.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조합으로 받아친 게 아니었다. 탱커가 하나 없는, 4원거리 딜러 조합이었다. 각각 이유가 있었다.


상대의 핵심 운영 원천 봉쇄 '케넨-애쉬'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할 원거리 딜러는 케넨이다. 케넨이 어떻게 원거리 딜러로 분류되냐고 궁금해할 수도 있다. 요즘 케넨은 AD 아이템을 가는 것이 대세다. AD 케넨의 최대 장점은 단 하나. 탱커를 상대로 압도적인 스플릿 푸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bbq는 상대를 가둬놓고 포킹을 하는 조합이었다. 조합을 살리기 위해서는 운영의 주도권이 있어야 했다. bbq가 쉔과 렉사이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케넨은 상대의 운영을 완전히 망가트렸다. 쉔을 지독하게도 압박해 반대로 완벽히 운영의 주도권을 잡았다. 게다가 상대는 논타겟 도발이라는 조건이 많은 CC를 가지고 있는 쉔이라 더욱 위협이 되지 않았다. 케넨은 탑과 봇 라인에 고속도로를 냈다.

또 상대의 운영을 봉쇄하는 원거리 딜러 애쉬가 있었다. 애쉬는 강제 한타에 특화된 챔피언이다. 상대 조합은 포킹이 가능한 것은 물론 라인 클리어 능력으로 수성까지 매우 뛰어났다. MVP 입장에서는 꼭 싸움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봇 듀오인 애쉬와 말자하가 수행했다.

그리고 애쉬의 장점은 하나 더 있었다. 라인전 능력. 애쉬의 라인전 능력은 바루스를 제외하고는 원거리 딜러 중에 단연 최상위권이다. 애쉬의 라인전 능력은 주도권을 잡아야만 하는 상대의 포킹 조합에 골칫거리를 안겼다.


안정감 제공 '그레이브즈-코르키'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장점은 그레이브즈에게도 통용됐다. 렉사이는 그레이브즈를 상대로 위협을 넣기가 힘든 챔피언이다. 가뜩이나 렝가와 카직스조차 레벨링의 왕으로 등극한 그레이브즈에 공세를 퍼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렉사이라면 더욱 어렵다. 이런 장점으로 그레이브즈는 팀에 안정감을 더해줬다. 상대 정글에 들어가 렉사이를 두들긴 것은 아니지만, 렉사이의 동선을 파악하게 해줬고 오브젝트 싸움에 승리를 가져왔다.

코르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7.4 패치 버전을 기준으로 쓰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던 코르키라 이번 4원거리 딜러 조합은 더욱 의외였다. 하지만, 딜적인 측면이 아쉬워졌을 뿐이다. 안정적인 라인전, 뛰어난 포킹 능력, 준수한 로밍 능력, 갱킹 회피 능력 등 여러 방면에서 좋은 점수를 가지고 있다. 아이템이 나온다면 딜도 여전히 강하다. 이런 능력들을 바탕으로, 코르키는 팀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줬다.


안정감까지 더해지면서 시간은 당연히 MVP의 편이 됐다. 뛰어난 4원거리 딜러의 후반 캐리력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초조한 쪽은 bbq였다. 이제 4원거리 딜러의 단 하나 남은 단점, 이니시에이팅에 취약하다는 점을 노려야만 했다.

그러나 MVP에는 말자하라는 받아치기 최고의 서포터 중 하나가 대기하고 있었고, 코르키와 그레이브즈 모두 회피기가 좋은 딜러들이었다. 또한, bbq의 챔피언 중 이니시에이팅이 가능한 챔피언은 쉔과 렉사이 뿐이였는데, 이 두 챔피언 모두 강력한 이니시에이터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모든 방면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웠던 bbq는 바론으로 최후의 싸움을 유도했지만, 끝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제 손꼽아 기다려지는 MVP

MVP는 bbq에 승리를 거두며 어느새 7승 고지를 달성했다. 이제는 상위권 팀을 위협하는 위치에 오르게 됐다. 이들이 여기까지 오르는 데는 계속된 도전이 중심이 됐다. 렝가가 서포터로도 염두해둔 픽이었다는 얘기는 그들이 얼마나 도전적인 팀인지를 더욱 와 닿게 한다.

그들의 도전은 팬들도 변화시켰다. 많은 팬들은 강팀들의 경기만큼이나 MVP의 경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다른 팀과 비교해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던 MVP는 이제 LCK의 중심을 향해 가고 있다. 단순히 높은 순위 때문만이 아니다. 도전과 변화는 그런 매력이 있다. 사람의 가슴을 움직이는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