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만큼 원딜이 주목받았던 해가 있었을까. LoL 클라이언트 7.18 버전으로 진행된 이번 롤드컵은 불타는 향로를 등에 업은 원딜의 화력이 대부분 경기의 승패를 갈랐다. 이에 각 팀의 원딜 선수는 모든 기량을 쏟아내며 자존심 대결을 펼쳤다.

그리고 여기 두 선수가 있다. 작년에 이어 또다시 롤드컵 결승전이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뱅' 배준식과 '룰러' 박재혁. 긴 경력과 화려한 커리어, 세계 최강의 원딜임을 증명했던 '뱅'과 2016년 최강의 신예로 불리며 LCK 데뷔 5개월만에 롤드컵 준우승이라는 대업을 기록한 '룰러'이기에, 두 선수의 대결은 그 어떤 라인보다 흥미롭다. 과연, '대향로시대'의 마지막 승부에서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


■ 작년의 '뱅'이 아니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뱅'

작년 롤드컵 무대, SKT T1은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세체봇'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초반 라인전부터 중반 운영, 후반 한타까지 매순간 큰 활약을 보인 '뱅'-'울프' 이재완 듀오였다. 특히 '뱅'의 진 플레이가 일품이었는데, 롤드컵 기간 동안 7전 6승 1패라는 좋은 기록을 남겼다.

▲ 화살은 피하고, 총알은 꽂고! 이건 '뱅'이 연출한 수많은 명장면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올해 롤드컵에선 들쭉날쭉한 기복을 보였다. '프레이', '우지', '미스틱' 등 걸출한 원딜들이 그룹 스테이지부터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와중에 ‘뱅’은 경기를 주도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강력한 '뱅'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경기에서도 '뱅'에 대한 칭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기에 롤드컵 일정이 진행될수록 선전보다 부진이 눈에 띄었다. 특히 미스핏츠의 봇 듀오에게 1레벨 더블킬을 내준 8강전 4세트와 RNG의 '우지'에게 크게 말린 4강전 1, 3세트에서는 팬들의 거센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4강 4세트에서 '뱅'이 각성했다. SKT T1이 우세하다가 RNG의 반격으로 승부의 행방이 묘연해지던 시점, SKT T1이 미드를 푸시하다가 '후니' 허승훈의 나르의 체력이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메가 나르까지 풀린 위기의 상황. RNG가 추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뱅'의 코그모가 홀로 삐져나온 트위치를 향해 앞 점멸을 사용하며 솔로 킬을 만들었고, 곧바로 진격한 SKT T1이 세트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라이브 버전에서 불타는 향로의 너프가 이뤄짐에 따라, '대향로시대'는 롤드컵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이에 '뱅'에게 있어 이번 결승전의 승리는 SKT T1의 승리임과 동시에 본인이 대체 불가능한 최강의 원딜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다. '뱅'은 지금까지의 부진을 모두 털고, 평소의 기량을 찾아 최선의 경기를 펼쳐야 한다.


■ 최강 신예에서 최강 원딜까지, 끝없이 발전 중인 '룰러'의 이야기

2016년 5월, 혜성처럼 삼성 갤럭시(이하 삼성)에 합류한 '룰러'는 데뷔전에서 락스 타이거즈를 꺾고 이후 경기에서도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넘치는 자신감과 패기, 그에 걸맞는 피지컬로 LCK 데뷔 후 치른 첫 시즌에서 최종 4위의 성적을 기록했고, 이어진 롤드컵 한국대표 선발전에서 아프리카 프릭스를 3:1로, KT 롤스터를 3:2로 꺾으며 첫 롤드컵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신인의 과도한 패기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좋은 모습을 보인 경기도 있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인한 잔실수를 보이며 불안함을 남겼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SKT T1과의 결승전 5세트에서도 큰 실수를 범했다. 팽팽한 대치 상황에서 혈혈단신으로 적진 중앙으로 돌진한 것. 그 결과로 '코어장전' 조용인의 탐 켄치가 잡혔고, SKT T1이 바론과 장로 드래곤을 연달아 획득하며 결국 삼성이 패배했다.

▲ 용감무쌍하게 돌격하는 '룰러'의 진.

생애 첫 롤드컵을 준우승으로 마친 '룰러'의 절치부심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2017 LCK 스프링 시즌 초반에 약간의 슬럼프를 겪었지만 이내 폼을 되찾고 삼성의 본격적인 캐리 머신으로 거듭났다. '재혁이형' 모드가 켜진 '룰러'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기에 MVP로 자주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다시 주어진 롤드컵 진출의 기회에서 KT 롤스터를 3:0으로 잡아내며 두 번째 롤드컵 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룰러'는 1년간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큐베' 이성진과 '앰비션' 강찬용이 '룰러'의 빠른 성장을 도왔고 '코어장전'의 완벽한 서포팅은 '룰러'의 생존과 화력을 배로 늘려줬다. '룰러'는 그룹 스테이지에서 '우지'에게 밀리며 2패를 당하긴 했지만 이후 8강에서 트리스타나로 3연승을, 4강에서는 바루스로 3연승을 거두며 본인의 기량을 충분히 증명했다.


데뷔 후 2년도 채 되지 않아 두 번째 롤드컵 결승전에 도전하는 '룰러'다. 신예의 자신감과 패기가 작년의 준우승을 만들었다면, 올해는 지난 1년간 갈고 닦은 침착함과 노련함이 우승을 만들 차례다. 여기에 SKT T1을 향한 복수심까지 더해졌기에, '룰러'가 지피는 불을 쉽게 잠재우긴 어려울 것이다.


■ 제한된 원딜 챔피언, 밴픽이 반이다

매년 롤드컵은 최선의 메타가 있고 원딜 챔피언도 그에 따라 상당수 제한된다. 작년의 경우 진, 케이틀린, 이즈리얼, 시비르 등의 챔피언이 주로 채용되었는데, 올해는 불타는 향로의 득세로 인해 평타 의존도와 생존기 여부가 중요해지며 트리스타나, 코그모, 트위치, 자야 등의 챔피언들이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 불타는 향로는 밴픽 단계에서 원딜의 존재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칼리스타는 모든 경기에서 밴을 기록중이고, 조합이나 선수의 성향, 숙련도에 따라 트리스타나, 자야, 코그모 등이 밴되기도 한다. 이에 '뱅'-'룰러'의 기량을 고려했을 때, 결승전에서도 충분히 원딜 챔피언에 밴 카드가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 SKT T1은 RNG와의 8강에서 4세트 연속으로 '우지'의 트리스타나를 막았다.

밴픽 구도에서는 아무래도 삼성보다 SKT T1이 더 혼란스럽겠다. '룰러'가 8강과 4강에서 각각 트리스타나와 바루스로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룰러'에게 둘 중 하나를 쥐어준다면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니 그룹 스테이지에서 보여준 트위치와 자야의 화력이 신경쓰인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SKT T1에 비해 삼성은 그나마 속이 편하다. 올해의 '뱅'에게는 '룰러'의 트리스타나나 바루스와 같이 특출난 캐리 능력을 보여준 원딜 챔피언이 없기 때문이다. 관전 포인트는 '뱅'의 트위치 채용 여부가 되지 않을까. '뱅'의 트위치는 그룹 스테이지에서 4전 전승과 17.5의 KDA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힘겨운 라인전이 있었기에 8강전과 4강전에서는 사용을 포기했다. 그러한 ‘뱅’의 트위치가 과연 결승에서 다시 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양팀이 숨겨두었던 원딜이 깜짝 등장할 수도 있다. '뱅'의 자야는 LCK 무대에서 7전 전승을 기록중임에도 올해 롤드컵에서는 한 번도 기용하지 않았다. '룰러'의 케이틀린 역시 소식이 없다. 물론 다른 선택지에 밀려 등장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지만, 만약 두 챔피언이 등장하게 된다면 그 역할에 주목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