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6일 개막한 2018 LCK 스프링 스플릿이 어느새 2라운드에 돌입했다. 일정이 진행될수록 스플릿 초반에 연출됐던 서로 먹고 먹히는 혼돈은 어느 정도 진정됐고, 상위권-중위권-하위권 팀이 다소 명확하게 갈린 상황이다.

한편, 그 어느 때보다 로스터 변화가 적었던 이번 스플릿은 작년 기록을 바탕으로 각 팀과 선수들의 전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결과는 열어봐야 아는 법. 작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활약을 보인 선수들이 다수 있었다. 스플릿 1라운드가 끝난 지금, 기대 이상의 기량을 뽐낸 선수 중에서도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선수들을 꼽아봤다.



'소환' 김준영
본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있는 진에어 그린윙스의 터줏대감


'소환' 김준영이 진에어 그린윙스에 입단한 지도 어느덧 햇수로 4년 차다. 하지만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에는 '트레이스' 여창동에게, 2017년에는 '익수' 전익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소환'은 팬들에게 본인의 기량을 각인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소환'이 보여주는 좋은 폼은 그의 경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스플릿 초기 '소환'을 돋보이게 한 챔피언은 단연 오른이었다. KSV와의 첫 경기부터 오른을 기용해 높은 숙련도를 뽐낸 '소환'은 SKT T1전 3세트에서도 오른을 가져와 LCK 최장시간 경기를 승리로 끝내는 데 일조했다. 해당 경기에서 보여준 '소환'의 활약은 '테디' 박진성에게 가려져 상대적으로 눈에 띄진 않았지만, 번번이 SKT T1의 흐름을 끊어낸 오른의 뿔피리 소리는 진에어 그린윙스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오른과 함께 나르 플레이도 인상적이다. 작년 '소환'의 나르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이번 스플릿에서만큼은 항상 메가 나르 상태인 것처럼 거침없이 날뛰고 있다. 쟁쟁한 LCK의 탑 라이너들 사이에서 안정적인 라인전은 물론 스플릿 푸시, 합류, 한타까지 군더더기 없이 해내며 다수의 승리를 견인한 '소환'의 나르는 4승 1패, KDA 8.25라는 훌륭한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진행된 kt 롤스터와의 경기는 1:2 패배로 끝났지만, 2세트를 승리로 이끈 '소환'의 갱플랭크와 3세트에서 보여준 트런들의 라인 압박은 박수받아 마땅한 플레이였다. 오랜 시간 끝에 당당하게 주전 자리를 꿰찬 '소환'과 팀원들이 만들어갈 2018년 진에어 그린윙스의 스토리를 기대해 본다.



'블라썸' 박범찬
SKT T1의 몰락을 막아낸 특급 신인


'트와이스 손채영'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했던 렝가, 이블린 장인 유저가 있었다. 제9회 대통령배 아마추어 e스포츠 대회와 제9회 IeSF e스포츠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했던 아마추어 선수는 '블라썸'이라는 닉네임으로 SKT T1에 깜짝 입단한다. '피넛' 한왕호가 비운 자리에서 베테랑 '블랭크' 강선구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 '블라썸' 박범찬의 앞날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시작된 2018 LCK 스프링 스플릿에서 SKT T1은 역대 최악의 부진을 맛봤다. 진에어 그린윙스전 패배를 시작으로 5연패의 늪에 빠졌다. 언제나 LCK 최강 자리를 지켜왔던 SKT T1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없이 컸다. '부진은 있어도 몰락은 없다'던 SKT T1이 몰락의 위기를 직면했다.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상황, SKT T1은 2월 7일 bbq 올리버스전에서 '블라썸'을 선발으로 내보냈다.

'블라썸'의 첫 출전에 많은 팬의 우려와 기대가 뒤섞였다. 하지만, '블라썸'은 본인의 실력으로 SKT T1의 분위기를 완전히 돌려놨다. 1세트부터 특유의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협곡을 누비며 SKT T1의 승리를 도왔고, 2세트에서는 극적인 바론 스틸을 성공해냈다. 비록 2세트는 장기전 끝에 SKT T1의 패배로 종료됐지만, '블라썸'이 보여준 다수의 활약은 이게 정말 프로 데뷔 첫 경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이었다.


bbq 올리버스전은 결국 SKT T1의 2:1 승리로 마무리됐고, 이후 '블라썸'은 SKT T1의 주전 정글러 자리를 꿰찼다. 이후 '블라썸'은 데뷔전이 요행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매 경기 과감하면서도 깔끔한 플레이를 펼쳤고, 연패의 수렁에 빠졌던 SKT T1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연전연승을 이어가게 됐다. 결국, 최악의 부진을 맛봤던 SKT T1은 '블라썸'이라는 특급 소방수와 함께 5위까지 올라섰고, 다시금 LCK의 왕좌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라바' 김태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작년의 부진, 이젠 락스 타이거즈의 중심으로


'미키' 손영민이 2017 LCK 섬머 스플릿 1라운드를 마지막으로 락스 타이거즈를 떠나며 갑작스럽게 LCK에 데뷔한 '라바' 김태훈은 신인 선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오리아나와 코르키를 곧잘 다루긴 했으나 미드 라이너의 뚜렷한 존재감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경기를 캐리하는 모습보다는 중간중간 나오는 실수와 아쉬운 판단이 눈에 잘 들어왔다.

2018 LCK 스프링 스플릿을 앞두고 락스 타이거즈 역시 대부분의 팀처럼 주전 선수 전원 재계약을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락스 타이거즈에 대한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 시즌이 지나긴 했지만 다른 팀을 수호하는 베테랑 미드 라이너들에 비해 '라바'의 임팩트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라바'는 첫 경기에서 '페이커' 이상혁에게 완전히 말리며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라바'의 진가가 드러났다. 바로 다음 경기였던 bbq 올리버스전에서 코르키와 갈리오로 준수한 플레이를 펼치더니, 그다음 경기인 콩두 몬스터전에서는 2018 LCK 스프링 스플릿 최초이자 커리어 최초의 펜타 킬을 올렸다. 이후로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쿠로' 이서행, '크라운' 이민호 등의 베테랑들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줬고, 진에어 그린윙스전이나 MVP전에서는 아예 캐리를 담당했다.


한편, 락스 타이거즈는 '라바'와 함께 '린다랑'-'성환'의 기량도 만만치 않게 올라온 상태다. 작년 여름 처음으로 맞췄던 세 선수의 호흡이 점점 좋아진 결과일까. 많은 경기에서 상체 주도권을 강하게 잡는 모습을 보이며 기존 플레이메이커였던 '키' 김한기의 부담을 덜었다. 이에 봇 듀오의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해졌고, 이는 락스 타이거즈의 전체적인 전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현재 락스 타이거즈는 5승 5패, 승점 -2으로 6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매 경기 발전하는 락스 타이거즈의 경기력을 보고 있자면 더 높은 순위까지도 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6일 KSV를 잡아낸 전력이 있는 락스 타이거즈인 만큼, 남아있는 모든 경기에 전력을 쏟아붓는다면 플레이오프 진출은 물론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낼 수도 있겠다.



'그레이스' 이찬주
데뷔 시즌부터 합격점! 진에어 그린윙스의 새로운 중심


현재 LCK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데뷔 시즌에 큰 부진을 겪었다. 오래 맞추지 못한 팀원들과의 호흡 문제도 있지만, 대회 경기의 긴장감과 기존 LCK 선수들의 노련함은 아마추어에서 갓 프로 선수가 된 신인들의 앞에 놓인 거대한 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 시즌부터 합격점을 받는 신인들이 종종 나오곤 했는데, '그레이스' 이찬주 역시 그중 한 명이다.

2017년 11월 진에어 그린윙스에 합류한 '그레이스'는 오래 지나지 않아 2017 KeSPA컵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첫 경기였던 KeG 광주광역시전부터 탈리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그레이스'는 담원 게이밍을 넘어 롱주 게이밍(현 킹존 드래곤X)의 '비디디' 곽보성을 만났다. 많은 팬들은 당연히 '비디디'의 압도적인 우세를 예상했지만, 따끈따끈한 신인의 패기는 '비디디'를 억눌렀다. 3세트에서 아쉬운 실수가 나오긴 했지만, 2세트에서 미드 주도권을 휘어잡고 경기를 캐리하는 모습은 LCK 3년 차 베테랑 미드 라이너라 생각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LCK 무대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은 '그레이스'의 출발은 매우 불안했다. 지난 KeSPA컵에서 보여줬던 기량은 온데간데없었고, 능동적으로 뭔가 만들어내기보다 수동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택했다. 하지만 1월 30일 콩두 몬스터전을 시작으로 '그레이스'는 본인의 모습과 역할을 찾았다. 콩두 몬스터전 1세트를 조이의 하드 캐리로 마무리하며, 이후 진행된 경기에서는 작년과 같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모든 경기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상대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는 '그레이스'의 플레이는 언제나 기대 이상이었다.


최근 아프리카 프릭스를 2:0으로 완파해낸 진에어 그린윙스의 설계 뒤에는 '그레이스'의 신인답지 않은 묵직함이 있었다. 절반 이상 진행된 2017 LCK 스프링 스플릿이지만, '그레이스'가 더욱 성장할 기회는 충분히 열려 있다. 이에 남은 스플릿 일정에서 '그레이스'의 발전을 지켜보는 것도 진에어 그린윙스의 경기를 보는 재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영상 출처 : LoL eSports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