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아름다움으로만 가득할 것 같은 이 도시는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다. 거리 모습만 봐도 한 가지의 색으로는 절대 칠할 수 없다. 다양한 인종. 멋쟁이 신사 숙녀들, 그 바로 주위에 남루한 노숙인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나 나올 것 같은 이쁜 가정집과 그 옆 기찻길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과 낙서들.

동화 같으면서도 현실 같고, 현실 같으면서도 동화 같은 도시다. 이 도시에서 2018 LoL MSI 준결승부터 결승전이 열린다. 경기장은 프랑스 파리 외곽에 위치한 '제니트 파리 - 라 빌레트'(제니트)다.


▲ 노숙인들이 만들어 놓은 간이 집



주민들이 편하게 생활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라 빌레트' 공원 안에 위치해 있다. 공원은 푸른색으로 드넓게 펼쳐져있다. 전체 면적이 약 16만 평인데, 녹지 면적만 10만 평에 가깝다. 예전 나폴레옹 3세의 명령으로 도살장으로 이용됐던 곳으로 특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경기장 주변은 파리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찾은 공원에서는 맨몸 운동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헉헉 대며 플랭크를 하고 있는 한 커플은 한가한 오전을 보내는 듯했다. 경기장을 찾은 관객들은 이와는 대조적이었다. 티모 모자, 코스프레 등 한껏 마음을 먹고 나온 모습이었다. 한 공간 안에 두 가지 일상이 공존하는 모습이 꽤 특별하게 다가왔다.






경기장은 푸른 풀밭에 홀로 피어있는 빨간 꽃 같았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작은 건물이 새빨간 색으로 눈을 자극했다. 내부에는 2000명에서 6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장소가 있다. 경기장은 여러 가지 이벤트를 개최하는 데 사용되는데, 종류에 따라 무대 공간을 변형할 수 있는 이동식 좌석이 특징이다.

일찍부터 관중들로 붐볐다. 그들은 같이 구호를 외치고 소리를 지르며 여기가 치열한 스포츠 경기가 펼쳐지는 경기장이라는 걸 몸소 증명하는 중이었다. 불어라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처럼 익숙했다.





"파리! 블라블라", "어후!어후!어후!~~" 경기 시작 전에 바람잡이가 올라 분위기를 띄우며 다시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익숙한 이유가 드디어 떠올랐다. 2년 전에 현재 네이마르가 뛰고 있는 유명 축구팀 파리 생제르망의 경기를 직관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들었던 구호였다.

축구가 아닌 LoL 경기장이었지만, 같은 구호라는 걸 알게 되니 파리 현지인들의 열정적인 감성이 더욱 그대로 느껴졌다. 스포츠 경기장이라는 느낌을 주는 응원은 경기 중에도 계속됐다. "프나틱! 쿵!쿵!쿵!" 발을 크게 구르며 온 경기장을 진동시켰다. 정말로 경기장 전체가 울렸다.




e스포츠 경기장에서만 볼 수 있는 응원 문화도 눈길을 끌었다. '내가 젖소 알리스타' 스킨을 그대로 재현한 남성 관객이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깡!깡!깡!깡! 종을 쳤다. 종소리가 게임에서 듣던 그 종소리와 너무 똑같아서 들을 때마다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관객은 경기가 시작되자 곧 시무룩해졌다. 홈 팀 프나틱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잦은 실수로 이길 경기도 패배했다. 2세트도 프나틱의 패배로 끝나자 몇몇 관객들은 화장실 쪽으로 빠져나와 벽을 걷어차며 화를 표출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오락가락한 광경은 이날 내내 계속됐다. 3세트에서 프나틱이 우위를 가져가자 온 경기장이 관중들의 발소리로 울렸다. 하지만 곧 경기장엔 해설자들의 목소리만 들렸다. 프나틱이 열세라 관중들이 조용해서였다. 이후 '레클리스'의 펜타킬 때는 함성과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경기는 RNG가 3:0으로 프나틱을 제압하며 마무리됐다. 홈 팀의 패배에도 관객들은 열심히 손뼉을 쳐줬다. 프나틱에게는 위로를, RNG에게는 축하를 보냈다.

물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관중들은 욕처럼 들리는 불어를 큰 목소리로 쏟아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반대로 경기 중 간간이 "찌아요!"를 외쳤던 꽤 많은 숫자의 중국인 관객들은 만들어온 팜플랫을 높이 들며 당당하게 경기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