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팀의 승리를 몸소 이끈 선수들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선수들은 세트 MVP로 선정되어 많은 이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LoL은 팀 게임인 만큼, 혼자만의 힘으로 팀의 승리를 만든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MVP를 받은 선수가 활약하기 위해서는 이를 뒤에서 묵묵히 도와준 '숨은 MVP'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2018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섬머 스플릿 25일 차 1경기는 젠지 e스포츠와 킹존 드래곤X의 대결이었다. 여기서 젠지 e스포츠가 세트 스코어 2:0으로 승리했고, 1세트 MVP로는 세주아니로 명품 활약을 보여줬던 '앰비션' 강찬용이 선정됐다.



'앰비션'의 세주아니가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동안에 젠지 e스포츠의 미드 라이너 '플라이' 송용준 역시 그에 준하는 활약을 선보였다. 갈리오를 선택했던 '플라이'는 눈에 띄는 플레이는 물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활약으로 팀의 승리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껏 도왔다.

양 팀의 1세트 밴픽 구도가 꽤 재미있었다. 평소 공격력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는 킹존 드래곤X는 탑 라인에 오른이라는 든든한 탱커를 배치하고 킨드레드와 벨코즈, 바루스 등 후반으로 갈수록 강력해지는 조합을 꺼냈다. 오히려 중반까지 단단하게 버틴 뒤에 힘을 발휘하는 젠지 e스포츠가 초반부터 중반까지 먼저 노림수를 던져 스노우볼을 빠르게 굴리기 용이한 조합을 꺼냈다.

그렇다고 젠지 e스포츠가 '초반 스노우볼 올인' 조합은 아니었다. 킹존 드래곤X의 조합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속도를 올리는 플레이가 젠지 e스포츠에게 필요한 정도였다. 탱커가 하나도 없는 것도 아니었고, 후반으로 갔을 때 젠지 e스포츠의 조합만 툭 떼어놓고 봐도 '정말 좋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초반에 '앰비션' 강찬용의 세주아니가 끊기고, 상대 타워를 빠르게 파괴하지 못해도 젠지 e스포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킹존 드래곤X의 특성상 안정적인 조합을 갖추고도 조건만 충족됐다고 생각하면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걸 잘 활용해서 먼저 이니시에이팅을 걸거나 제대로 받아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실제로 젠지 e스포츠는 초반 좋지 않은 흐름에도 당황한 기색 없이 본인들의 스타일처럼 차분하고 단단하게 움직였다.

그러다가 젠지 e스포츠가 한 차례 반격에 성공했다. 그 시작을 '플라이'의 갈리오가 끊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살짝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던 초반 구도 속에서도 '플라이'의 갈리오는 '비디디' 곽보성의 벨코즈를 상대로 라인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다. 원래 갈리오의 라인 클리어 능력이 워낙 좋아 벨코즈를 상대로도 쉽게 밀리진 않는다. 하지만 '앰비션'의 세주아니가 탑 라인에서 사고를 당해 정글 주도권을 잃었던 만큼 '플라이'의 라인전 운영이 눈에 띄었다.

이러한 '플라이'의 움직임은 8분경 '커즈' 문우찬의 킨드레드를 잡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비디디'의 벨코즈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그만큼 라인전에서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확한 CC기 연계를 구사했고, 이 때문에 '커즈'의 킨드레드는 궁극기인 '양의 안식처'조차 쓰지 못한 채 비명횡사했다.

'룰러' 박재혁의 애쉬도 자신의 궁극기를 '고릴라' 강범현의 탐 켄치에게 활용해 합류를 방해하는 멋진 플레이로 팀원들을 도왔다. 젠지 e스포츠의 팀워크와 센스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 먼저 왔고 정확히 CC기를 연계했고 킬까지 기록했다.


▲ 상대 합류를 방해한 '룰러'의 센스 플레이도 좋았다.


초반 흐름에 제동이 걸리고도 이처럼 주도권을 크게 잃지 않았던 젠지 e스포츠는 한타 두 번으로 1세트를 빠르게 끝냈다. '앰비션'의 세주아니는 자신의 궁극기를 지속적으로 상대 킨드레드에게 시전, '양의 안식처'가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 활용되지 못하게 하면서 1세트 MVP에 선정됐다.

그리고 이에 준하는 활약을 '플라이'의 갈리오도 한타 내내 보여줬다. 궁극기 '영웅출현'을 통한 적절한 합류는 물론, W스킬 '듀란드의 방패'로 상대를 잘 압박함과 동시에 뛰어난 어그로 핑퐁까지 해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갈리오가 할 수 있는 좋은 플레이는 모두 해냈다.

킹존 드래곤X가 '칸' 김동하 오른의 궁극기와 함께 시작한 한타. 여기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플라이' 갈리오의 플레이는 궁극기를 활용한 위치였다. 보통 아군 원거리 딜러가 위험에 빠지면 다급하게 그 쪽으로 궁극기를 시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플라이'의 갈리오는 조금 다른, 그리고 훨씬 효과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영웅출현'을 '앰비션'의 세주아니 쪽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앰비션'의 세주아니는 피해 감소 효과를 믿고 상대 쪽으로 달려들어 '룰러'의 애쉬에게 화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 갈리오의 궁극기는 좀 더 팀에 도움이 되는 위치에 활용됐다.


애쉬와 세주아니를 동시에 보호하며 전장에 '출현'한 '플라이'의 갈리오는 곧장 상대 바루스와 탐 켄치 쪽으로 CC기를 퍼부었다. '코어장전' 조용인의 라칸과 함께 시너지를 발휘해 상대 봇 듀오가 대처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리고 '플라이'의 갈리오가 날카롭게 킹존 드래곤X의 봇 듀오 쪽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비디디'의 벨코즈도 마음껏 스킬을 난사할 수 없었다. 당시 '비디디'의 벨코즈 곁에는 '칸'의 오른이 함께 있었다. 그래서 '프레이' 김종인의 바루스와 '고릴라'의 탐 켄치가 그토록 빠르게 당하지 않았다면 '큐베' 이성진의 스웨인이나 싸우고 있는 본대 쪽으로 자신의 화력을 자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플라이'의 갈리오와 '코어장전'의 라칸은 킹존 드래곤X의 봇 듀오를 빠르게 제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비디디'와 '칸'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 '비디디'의 벨코즈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젠지 e스포츠가 1세트 승리를 확정한 두 번째 한타에서는 '플라이'의 갈리오가 더욱 빛났다. 다시 한 번 킹존 드래곤X가 오른의 궁극기로 한타를 시작했다. 하지만 화력 부족을 느낀 킹존 드래곤X는 '양의 안식처' 속에서 때를 기다렸다가 한 발 물러설 생각을 했다.

이때 '플라이'의 갈리오는 상대를 살려보내지 않으려 했다. 그는 정확하게 '양의 안식처'가 끝나는 타이밍을 기다렸고, 때가 되자 과감하게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상대 세 명의 챔피언을 도발해 후퇴를 방해하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자신은 상대의 화력을 모조리 받아내고 극적인 순간에 '초시계'를 활용해 생존했다.

▲ '양의 안식처'가 끝나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노렸다.


이처럼 '플라이'의 갈리오는 중요한 순간마다 눈에 보이는 활약을 하면서 팀의 1세트 승리에 힘을 보탰다. 상대에게 반격할 여지를 한 번도 내주지 않는 CC기 연계는 물론, '양의 안식처'가 끝나는 시점을 정확하게 노려 파고드는 집중력도 눈부셨다. 팀원들과의 호흡을 믿었기에 보여줄 수 있는 활약이었다.

그러면서도 '플라이'는 세세한 움직임으로 팀에 흐름을 되찾게 해주기도 했다. 상대에게 밀리지 않는 라인전을 구사해 초반 사고로 주도권을 잃었던 아군 정글러에게 힘을 실어줬던 것. 이 플레이는 알게 모르게 젠지 e스포츠의 운영에 힘을 실어줬고, 실제로 첫 반격을 '앰비션'의 세주아니와 함께 만들어내기도 했다.

'플라이'가 팀을 위해 보여준 세심한 플레이와 팀워크 중심의 플레이는 왜 그가 좋은 평가를 받는 미드 라이너인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깨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