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단은 LoL과 스타크래프트2 부문 본선에 이름을 올렸다. '금빛 멤버'를 자랑하는 선수단이 어떤 경기를 펼칠 것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인도네시아의 수도이자 아시안게임이 진행 중인 자카르타로 출발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자카르타에서의 첫 날
인도와 횡단보도를 보기 힘든 이 곳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날 밤을 새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예정보다 공항버스가 일찍 목적지에 도착해 여유롭게 탑승 수속과 환전, 로밍을 끝낼 수 있었다. 문득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느꼈고, 나는 거리낌 없이 사진을 두 장 찍었다.

▲ 한 켠을 바라보다 문득


▲ 소위 '허세 사진'을 찍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자카르타 공항까지 7시간 정도를 날았다. 다행히 창가 쪽 자리를 얻어 창 밖에 펼쳐진 장관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구름 위에서 신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책도 읽고 잠도 푹 잤지만 여전히 나는 비행기 안에 갇혀있어야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감이 잘 오지 않을 무렵, 비행기가 커다란 바퀴를 내리고 착륙했다.

▲ 그래도 창 밖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거치고 택시에 몸을 실어 예약했던 숙소에 이르렀다.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배가 고파져 음식점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길에 차도만 있고 인도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차도 가장자리 쪽을 거침없이 걸었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걷고 있는 사람들을 차량이 알아서 피해 움직였다는 점이다. 이따금 경적이 울려 그쪽을 쳐다보면 차량과 차량 간 사소한 문제였을 뿐이었다.

도로에는 인도만 없는 것이 아니라 횡단보도도 찾기 힘들었다. 음식점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도로를 건넜어야 했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길을 건너야 할 지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이리저리 좌우를 살피다가 차량이 잠시 뜸해지면 너나 할 것 없이 길을 그대로 건넜다. 이와 같은 무단횡단을 자카르타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실행에 옮겼다. 문화 충격을 여러 번 경험한 나는 어느덧 그들처럼 도로 위를 걷고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본격적인 첫 날
기상천외한 현장 풍경, 그래도 무탈하게 마무리


자카르타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아침.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일찌감치 시작하는 대회 경기 취재를 위해 경기장으로 향했다. 자카르타에서도 월요일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모양이었다. 도로에는 많은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여 장관을 연출했다.

e스포츠 경기가 펼쳐지는 마하카 스퀘어에 도착했다. 짧은 영어를 발휘해 미디어 룸을 찾아 짐을 풀었다. 현지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경기장 출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혹시 취재할 거리가 있을지 몰라 카메라를 들고 서둘러 경기장 내부로 들어갔다.

▲ 예상보다 무대가 커서 놀랐다.

시범종목은 아무래도 정식종목에 비해 무대나 환경이 열악하다. 하지만 처음 e스포츠 무대를 보고는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무대는 화려하고 거대했다. 비록, 메인 스테이지 양쪽 아래에 서브 스테이지가 허술하게 배치되어있긴 했지만. 선수들이 서브 스테이지에서 경기를 치를 때 집중력이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 무대 아래에 마련된 저 곳이 서브 스테이지

경기가 곧 시작되려고 했고, 나는 경기장을 떠나 기자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안전 요원이 갑자기 길을 막았다. 알고 보니 출입구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 들어오는 문으로는 나갈 수 없고 나가는 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경기장 뿐만 아니라 건물 출입구도 같은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다.

일정이 진행되면서 승리하는 팀과 패배하는 팀이 생겼다. 두 팀 선수들은 경기 종료 이후에 따로 모여 미디어 믹스존을 지나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믹스존이라는 것이 꽤 익숙할 거다. 가끔 스포츠 뉴스에서 선수들이 기자들의 짧은 질문에 답하는 곳이 믹스존이다.

선수들은 믹스존을 지나다가 자신과의 인터뷰를 원하는 기자의 인터뷰에 응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일단, 선수가 동의해서 인터뷰가 시작되면 딱히 제한 시간은 없는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기자가 계속 하고 싶어도 선수가 자리를 떠나면 인터뷰가 종료되고, 두 사람 모두 만족할 만한 시간을 보냈다면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끝난다.

▲ 믹스존은 이렇게 생겼고

▲ 스포츠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연출된다.

그런데 아시안게임 e스포츠 경기장의 믹스존은 이상했다. 현지 스태프와 안전 요원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선수를 강제로 대기실로 보내려고 했다. 말도 안되는 행위였다. 다행히 여러 기자들이 어필한 결과, 이후 인터뷰는 여느 믹스존 인터뷰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됐다.

사실 나는 믹스존에서의 인터뷰 자체가 흥미로웠다. 보통 e스포츠 대회에서는 경기가 끝나면 승리한 팀에서 대표로 한 선수가 기자실에 들어와 매체 공동 인터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기자 생활에서 처음 경험해본 믹스존 인터뷰였고,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LCS에서도 믹스존 인터뷰와 비슷한 방식으로 경기 후 인터뷰가 진행된다고 하니 내년 LCK에도 이러한 형태의 인터뷰가 적용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믹스존만 열악한 건 아니었다. 미디어 룸 출입문이 고장나서 급하게 손질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었는데 더 중요한 건 선수 대기실의 상황이었다. 일단 출전 팀은 8개인데 대기실은 두 곳 뿐이었다. 각 팀은 칸칸히 나눠진 방 안에서 경기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선수 대기실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대한민국 대표팀의 대기실 안쪽을 잠깐 보게 됐는데 다행히 선수들은 힘든 기색 없이 적응을 잘한 듯 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다가 선수 대기실 안전요원의 제지를 받아 실패했다.

이번 기행기에 꼭 한 번 언급하고 싶었던 게 있는데 바로 중국 기자들의 열정이다. 미디어 룸에는 몇몇 한국 기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국 기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이들은 오가며 서로의 친목을 확인이라도 하듯 정겹게 대화를 나눴다. 그 정도야 한국 기자들 사이에서도 항상 있는 일이지만, 한 가지 놀라웠던 건 다른 장면에서 나왔다.

▲ e스포츠 팬의 마음으로 경기를 시청 중인 중국 기자들

▲ 심지어 중국 대표팀 서포터 '밍'도 기자실에서 함께 경기를 시청했다.

미디어 룸에서는 메인 스테이지 경기를 제외한 서브 스테이지 두 곳의 경기 화면을 볼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당연히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와 중국 대표팀의 경기는 물론, 다른 팀들 간의 대결도 볼 수 있었다. 기자실이 가장 열정으로 가득찼던 순간은 중국 대표팀의 경기가 상영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중국 기자들이 TV 앞에 자리를 잡고 장면 하나하나에 열광하고 아쉬워하며 경기를 시청했다.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걸 뒤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면서도 e스포츠 경기를 한 사람의 팬으로서 즐길 줄 알았다. 중국 대표팀의 선전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고, 아쉬운 장면에서는 서로 손을 맞잡고 슬퍼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내 입장에서는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1일 차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4전 전승이라는 엄청난 성적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코치진과 선수들 모두 지금쯤 선수촌에 도착해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2일 차를 대비하기 위해 또 갖은 노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렇듯이 나도 1일 차 일정이 무사하게 끝난 것에 감사하며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해야겠다. 2일 차에도 무탈하게 일정이 마무리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자카르타 현지 취재 : 박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