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게임쇼(이하 TGS) 인디관을 지날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일본어로 ‘오, 이거 굉장한데?’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얼마나 대단한 인디 게임일까 하며 걸음을 옮기자 다크소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디관 게임 중에서도 눈에 띄긴 하네’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좀 지켜보자 눈에 익은 게임 같았죠. 그래서 어떤 게임인지 제목을 봤습니다. ‘애니머스’. 사실 이때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어요. 이건 한국의 텐버즈(10Birds)가 개발한 모바일 게임이거든요. 이게 왜 여기 있지? 언제 닌텐도 스위치로 포팅했지? 결국, 궁금해져서 옆에 있던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혹시 한국인이냐는 질문과 함께 현재 닌텐도 스위치로 포팅 중이란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틈에 ‘애니머스’는 닌텐도 스위치 포팅을 준비한 걸까요? 인디관 부스에서 만난 일본 퍼블리셔 트로제(TROOZE)의 김상호 대표님에게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 트로제 김상호 대표(우측)


Q. 트로제, 어떤 회사인가요?

전직 캡콤 개발자들이 설립한 퍼블리셔입니다. 저 역시도 캡콤 소식인데 캡콤에 있을 적에는 한국 개발사와 관련한 사업을 맡았었습니다. ‘애니머스’ 퍼블리싱을 하게 된 이유 역시 이때의 경험 덕분이에요. ‘애니머스’를 개발한 텐버즈의 유민우 대표님이 예전에 넥슨 모바일에서 디렉터였을 때 연을 맺었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한국 게임을 일본에 퍼블리싱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아이어’를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이건 꼭 퍼블리싱하고 싶다 생각해서 개발사에 연락했는데 직접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만나러 갔는데 유민우 대표님이었어요. 서로 ‘어?!’ 하고 놀랐죠. 아무튼 서로 좋게 보고 있어서 퍼블리싱 계약은 막힘 없이 흘러갔어요. 저희는 일본 내 서비스, CS, 커뮤니티 대응을 주로 했었는데 저희의 노력이 결실을 본 건지 ‘아이어’가 피처드가 되기도 했어요. 그 덕분에 대표님도 저희를 더 좋게 봐줬죠.

그러던 와중에 대표님이 그러셨어요. ‘애니머스’를 닌텐도 스위치로 포팅하고 싶다고. 마침 저희한테 개발킷도 있겠다 우리가 도와줄 테니 함께하는 게 어떠냐 하니 대표님도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닌텐도 본사를 찾아가서 함께 프레젠테이션했는데 닌텐도도 흡족해하면서 ‘애니머스’ 포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어요.


Q. 서로 마음이 맞은 건 그렇다 치고 닌텐도에서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건가요?

네. 잘 아실 거예요. 닌텐도 스위치에 할만한 게임들이 적다는 걸요. 사실 닌텐도 스위치에 인디 게임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로 닌텐도 아메리카가 인디 게임을 거의 무작정 승인하기 때문에 그런 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일본 본사는 되도록 승인을 안 하는 주의인데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승인해줬어요.


Q. 어떤 식으로 포팅 되나요? 단순 이식인가요 아니면 플랫폼에 맞춰서 퀄리티도 올라가나요?

처음에는 단순 이식을 했어요. 그런데 닌텐도 스위치 게임을 전문적으로 QA하는 업체에 의뢰하니 온갖 리포트가 나오더라고요.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렇게 이식하면 안 된다는 수준이었어요. 저희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테스트할 때도 바꿔야 할 게 많았고요.

우선 모바일과 비교해 그래픽을 몇 단계나 끌어올렸어요. 원래부터 때깔은 좋은 게임이었거든요. 근데 모바일이라서 표현할 수 없었던 걸 닌텐도 스위치니까 다 보여주자고 한 거죠. 여기에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컷씬을 추가하는 등 전체적으로 퀄리티를 올린 리마스터라고 보시면 될 거에요. 여기에 모바일에는 있던 인앱을 빼는 대신 아이템 밸런스도 새롭게 짰고요.



Q. 서로 호흡이 워낙 잘 맞았다고 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전부터 발을 맞춘 개발사다 보니까 전혀 없었어요. 물론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것과는 별개로 개발을 하는 부분에서는 어려운 부분도 있었죠. 텐버즈가 닌텐도 스위치 포팅 경험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닌텐도 스위치 포팅에 대해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있어서 도와주기도 했어요.


Q. 텐버즈의 ‘아이어’나 ‘애니머스’를 보면 UI가 유독 단순한 거 같아요. 뭐랄까, 그냥 엔진에 있는 기본 에셋을 쓴 거 같아요. 아까 그래픽을 올렸다는데 데모에선 여전하더라고요. 혹시 수정 계획은 없나요?

아, 그 부분…. 저희도 텐버즈에 여러 차례 건의한 부분이에요. 그런데 텐버즈가 10명 남짓으로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개발사다 보니 당분간은 개선할 계획이 없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일종의 외골수 기질이랄까 그런 게 있다 보니 디자인에 시간을 쏟느니 투박하더라도 좀 더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데 신경 쓰는 거 같아요.


Q. 지나가면서 보니까 데모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은 거 같아요. ‘굉장해!’ 이런 소리도 들려오던데 어떤가요?

비즈니스 데이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업계 관계자들이 오다 보니 인디관에서는 정말 인디스러운, 독창적인 게임을 찾던 거 같은데 ‘애니머스’는 누가 봐도 다크소울에 영향을 받은 게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괜히 갔고 왔나 하고 생각했는데 일반인 참관일이 되니까 통로 쪽이라서 상대적으로 불편한 위치인데도 불구하고 큰 관심을 보여줘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유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소규모 개발사가 이 정도 퀄리티를 냈다는 거에서 놀라더라고요. 유민우 대표님이 ‘다크소울’을 8천시간 넘게 하면서 이런 재미있는 게임을 일반 유저들이 어려워한다는 걸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만들었다는데 그런 대표님의 의도를 유저들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정말 기쁩니다.



Q. 그러고 보니 곧 ‘다크소울 리마스터’가 닌텐도 스위치로 출시되죠. 경쟁이 불가피할 거 같아요.

내부에서도 그것과 관련해서 얘기가 나온 적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말해서 전혀 경쟁 관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죠. 사실 그렇잖아요. ‘애니머스’를 살 생각이었던 유저가 ‘다크소울 리마스터’를 보고 안 살까요? 어차피 ‘다크소울 리마스터’를 살 유저는 사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경쟁 관계랄 순 없는 거죠. 오히려 반대로 ‘다크소울 리마스터’가 잘 팔리면 ‘어? 이거 어딘지 분위기가 비슷한데 해볼까?’ 하는 생각에 ‘애니머스’를 살 유저가 늘어날 거로 생각해요. 그러니 저희로서는 ‘다크소울 리마스터’가 잘 됐으면 하고 있어요. 그러면 관심을 두는 유저가 늘 테니까요. ‘애니머스’는 11월 말에 출시할 생각인데 가격도 저렴하게 해서 한 만원 정도 될 거에요. 이 정도면 유저들도 관심을 두지 않을까요?


Q. 일본 퍼블리셔이긴 해도 한국인이시니 양국의 느낌을 잘 알 거 같아요. 그래서 듣고 싶은데 TGS에 오는 게 한국 개발사에게 큰 홍보 효과가 될까요?

좀 박하게 하는 얘기일 수 있는 데 큰 도움은 안 된다고 봐요. E3는 전 세계적인 게임쇼랄 수 있지만 TGS는 일본 개발사에 포커스가 맞춰진 로컬 게임쇼에 가깝거든요. 외국 게임은 어지간한 대형 게임이 아닌 이상 들러리에 불과한 수준이에요. 물론 저희 같은 인디 부스는 좀 다른 얘기기도 하지만요.


Q. 인디관을 보니까 닌텐도 스위치로 낸 게임이 꽤 많이 눈에 띄더라고요. 역시 닌텐도 스위치가 인디 게임에 있어선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된 거 같아요.

그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아까 닌텐도 아메리카가 인디 게임을 엄청나게 승인해줬다고 했잖아요? 근데 이제는 인디 게임이 너무 늘어났어요. 이게 문제인 게 구매층은 거의 고정됐는데 인디 게임만 늘어나니 실제로 돈을 버는 개발사는 거의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정말 제대로 된 게임을 엄선해서 닌텐도 스위치로 내는 거 같아요. 서드파티 게임이나 인디 게임 전부 포함해서요. 그래서인지 앞으로는 서드파티 게임을 포팅하는 업체가 당분간 크게 성장하지 않을까 싶어요.



Q. ‘애니머스’ 닌텐도 스위치 출시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데 이 기회에 유저들에게 인사 한마디 부탁합니다.

‘애니머스’가 콘솔로는 처음 나오는데 진정한 ‘애니머스’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끔 개발자 모두가 고민을 거듭하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닌텐도 스위치로 할만한 게임들이 없었을 텐데 오랜만에 나오는 제대로 된 액션 게임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니, 많은 기대 부탁합니다.



9월 20일 개최되는 도쿄게임쇼(TGS2018) 최신 소식은 일본 현지에 나가 있는 TGS 특별 취재팀이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뉴스센터: https://goo.gl/gkLq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