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MSI-리프트라이벌즈부터 한국팀의 성적이 예전처럼 나오지 않으면서 나오는 말들이 있다. 그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던 LCK 정글러가 추구하는 방향이 맞는 건가. 여기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나왔고, 실제로 타지역 정글러들이 세계 대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변화할 때라고 느끼긴 했지만, 2018년은 롤드컵까지 중국과 유럽에게 상위권 자리를 내주면서 아쉽게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LCK도 2019년부터 확실히 변화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특히, 요즘 '서부리그'라고 불리는 LCK 중-상위권 팀의 경기 양상은 예전과 다르다. 그리고 변화는 정글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임에서 정글러가 라이너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이에 정글의 왕으로 불리는 그리핀의 '타잔' 이승용은 "교전이 중요한 메타에서 정글러는 교전을 여는 역할을 맡고 있다"며 요즘 경기에서 정글러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기도 했다. 다른 상위권팀 역시 정글러와 함께 변화가 일고 있다. 어느새 LCK 경기의 핵심이 된 정글러, 그들을 살펴보면 LCK의 새로운 흐름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온플릭-캐니언', 이걸 들어가?
수비-공격 전환...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 1월 25일 LCK 순위표 (출처 : LCK 공식 중계 화면)

2019 LCK 스프링 초반부의 변화 중 가장 놀라운 점은 승강전을 넘어 올라온 두 팀이 중-상위권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 그리핀이 그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긴 했지만, 두 팀이나 맹렬한 기세로 상위권에 안착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세대교체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LCK팀 성적의 변화가 눈에 띈다.

경기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LCK팀들은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선호하고 운영으로 확실한 승리를 굳히고 싶어했다. 하지만 LCK 신입생인 담원-샌드박스 게이밍은 다른 길을 선택을 했다. 그것도 짧은 순간에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수적으로 불리하고 후퇴해야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두 팀은 갑작스럽게 교전으로 전환한다. 혼자만의 판단이 아닌 이미 콜을 마친 상태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공격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 상대하는 팀과 보는 입장에서 '이걸 들어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 벽을 두고 후퇴에서 공격 전환하는 카밀(출처 : LoL esports Highlights)

샌드박스의 '온플릭'은 상대의 빈틈을 찾아냈다. '온플릭' 김장겸은 카밀로 벽만 넘으면 안전지대로 갈 수 있었다. 카밀이 벽을 사이에 두고 교전과 휴전 사이의 선택에 기로에 섰고, 샌드박스의 선택은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 결정을 모두가 공유한 듯, 샌드박스가 SKT T1보다 한발 빠르게 합류해 교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예전의 LCK 경기라면, 카밀이 후퇴한 뒤 확실한 싸움과 운영을 선택했을 법하다. 하지만 벽을 사이에 두고 '온플릭'은 고민 없이 교전으로 전환해 핵심 딜러인 아칼리에게 포블을 쥐어줄 수 있었다.

담원의 '캐니언'도 교전을 앞두고 물러서지 않았다. KT전에서 상대의 다이브에 대거 킬을 내주고 킬 스코어가 5:9까지 벌어진 상황. KT는 담원게이밍 봇 라인에 위협만 주고 유유히 후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캐니언' 김건부의 녹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를 물고 늘어져 3:4로 시작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대치할 때만 해도 담원이 팀원이 수적으로 불리했다. 하지만 선공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통하는지 플레이로 보여줬다. 녹턴의 궁극기로 상대 시야를 제거한 뒤, 한 발 빠르게 아군이 합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처음에는 무리해 보이는 듯했지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들만의 확신있는 플레이를 한 것이다.

그렇게 두 팀은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공격이 항상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담원-샌드박스 게이밍처럼 날카롭게 들어가는 공격이라면 충분히 앞으로 더 기대할 수 있다. 철저한 팀플레이 속에 과감한이 더 해지면서 확실한 장면으로 완성하면서 말이다. 나아가, 상대가 LCK와 롤드컵에서 어떤 성적을 냈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들어가는 두 팀의 플레이에 많은 이들을 놀랄 수밖에 없었다.

▲ 3:4, 5:9? '공격' 패기로 불리함 극복한 담원(출처 : LoL esports Highlights)



'클리드', 이걸 살아?
극한의 피지컬, 목숨 걸고 살면 우린 이긴다



유저들 사이에서 LoL을 잘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나오곤 했다. 게임 전반의 운영과 관련해 '뇌지컬'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피지컬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 역시 종종 떠오르는 이야깃거리였다. 그리고 최근 메타에서 피지컬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듯하다. 요즘 프로 경기에서도 이런 부분이 여실히 드러났고, 경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교전이 핵심인 메타에서 피지컬은 더 중요해졌다. 그리핀의 경우 한화생명e스포츠와 불리한 1세트에서 상대 궁극기 몇 개 빠졌다는 근거만으로 교전을 열어 역전승을 일궈낸 바 있다. 그만큼 스킬 하나를 피하고 빼내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공들여 사용한 점멸과 초시계, 도주기가 결국 아군에게 큰 득점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를 잘 보여준 정글러가 바로 '클리드'라고 할 수 있다. 드래곤 지역에서 전투를 결심한 진에어 그린윙스가 연이어 리 신을 노리는 상황. 하지만 '클리드'는 위기에서 살아남아 오히려 상대를 불리한 상황으로 몰고갔다. '클리드'는 드래곤 전투를 앞두고 몇 번이고 상대의 궁극기를 낭비하게 했다. 과감하게 들어왔으나 소득 없이 빠져야 하는 건 '클리드'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기가 더욱 놀라온 이유는 리 신에 관한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이다. '리 신 잡으면 초반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말 대신, '클리드'라면 중-후반에 피지컬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실히 입증한 경기이기도 하다.

한 번 들어가면 뒤가 없어 보이는 챔피언인 녹턴. 최근 '클리드-타잔'이 잡았을 때는 더 놀랄만한 어그로 핑퐁 장면이 잡히곤 했다. 둘 다 상대의 노림수에 당해 후퇴하는 상황이 찾아왔음에도 침착한 대처가 돋보였다. 상대를 끌어들인 뒤 적절한 초시계 활용으로 버티면, 그사이 아군의 합류와 함께 역습할 기회가 찾아왔다. 나아가 '타잔'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궁극기를 활용해 퇴로를 확보해 살아나가면서 팀의 압승을 이끌었다. 팀원들 역시 칼같이 합류해 승리로 향하는 한타 장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최근 경기에서 정글러의 생존이 곧 승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정글러가 끊기는 순간, 게임 흐름이 넘어가기도 하니까. 한화생명e스포츠가 0데스 '타잔' 공략에 성공하며 경기 초반 흐름을 잡았듯이, 정글러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여겨 볼만한 경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정교한 피지컬이 더 빛나고 있다.




'온플릭-보노', 이걸 설계해?
상대 생각을 뛰어넘는 정글러들



작년까지 LCK 팀들은 세계무대만 가면 'Mlxg'의 갱킹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날카로운 갱킹 한 방에 흐름이 끊기고, 무너진 기억이 가득할 정도다. 예측할 수 없는 동선을 찾는 'Mlxg'의 게임을 주도하는 움직임은 많은 정글러들이 본받을 만 했다.

그리고 올해 LCK에서도 그런 움직임들이 경기를 통해 보이고 있다. 공격적인 정글러 픽이 다시 뜨는 추세에서 샌드박스의 '온플릭'이 카밀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갈고리 발사를 활용해 탑 탱커인 사이온을 끊어주면서 경기의 흐름을 가져왔다. 보통 샌드박스가 선택한 제이스로 사이온을 꺾기 힘들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지만, 샌드박스는 이를 역으로 이용해 허를 찌르는 탑 공략에 나선 것. 그것도 쉬지 않고 두 번 연속으로 찌르는 갱킹에 단단한 사이온 역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갱킹 루트의 선택 역시 확실했다. 와드가 없는 지역으로 우회해 찌르기로 한 것. 상대 방에게 의도를 읽혔을 때 자칫 시간과 동선이 낭비할 수 있음에도 2연속 갱킹을 시도해 승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상대의 허를 찌르는 '온플릭'의 시도가 통하면서 샌드박스 게이밍 역시 지금까지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화생명e스포츠의 '보노' 김기범의 초반 설계 역시 놀라웠다. 올라프 정글을 선택하더니 시작부터 아군과 함께 상대 레드 버프로 향했다. 노련한 정글러 KT '스코어' 고동빈을 상대로 레드 버프와 칼날부리를 모두 챙기면서 큰 경험치 격차를 벌리며 급성장할 수 있었다. 속도가 붙은 올라프에겐 '유통기한'에 대한 우려가 조금도 들지 않았고, 결국 '보노'의 올라프는 다른 팀과 경기에서도 밴이 나올 정도로 힘을 인정받았다.


이게 끝이 아니야... LCK 정글러들의 미래


LCK 정글러들의 기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LoL KeSPA컵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챔피언을 바꿔가며 다양한 스타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타잔'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타잔'은 "1티어 정글 챔피언을 뽑기 어렵다. 상황만 맞으면 어떤 챔피언이든 활용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더 무서운 건 정글러를 뽑은 목표에 맞게 챔피언 숙련도 역시 뛰어나다는 것이다. '구원' 올라프로 아군을 돕고, 이블린을 뽑았을 때는 암살 작전을 펼쳤다. 자크-세주아니의 이니시에이팅, 탈리야와 아트록스로는 역갱킹을 성공하면서 급격히 성장해 게임을 캐리할 줄도 알았다. 아직도 수많은 정글 챔피언이 남았기에 '타잔'의 행보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 같다.

'온플릭' 역시 자신의 주력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는 카밀에 대해 인상적인 발언을 남겼다. "숙련도를 한계까지 이끌어내면, 좋은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현재 카밀이 4승 4패를 기록하는 가운데, 3승을 '온플릭' 혼자 달성한 상황이다. 한동안 밴픽 창에서 서서히 이름을 잃어가던 카밀-올라프도 어떤 선수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실력으로 보여줬다.

그렇게 LCK도 정글러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뽐낼 수 있는 무대로 변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정글러들이 이끌어갈 LCK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것인가. 변화의 중심에 있는 정글러들에게 한 번 더 관심이 쏠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