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상위권의 두 팀, 그리핀과 SKT T1이 두 번째 대결을 앞두고 있다. LCK 스프링을 대표하는 그리핀은 팀원의 KDA부터 연승-순위와 같은 모든 지표가 압도적인 그들의 행보를 증명하고 있는 팀이다. 2019년 공식 경기에서 샌드박스전 한 세트 패배를 제외하고 경기로는 전승을 달리고 있다. 경기 내용 역시 완벽에 가까웠기에 연승의 끝이 어디일지 모를 분위기다.

상대인 SKT T1은 최근 기세를 끌어올린 팀이다. 이전까지 아쉬운 실수와 리빌딩 후 호흡이 완벽하지 않아 패배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젠지 e스포츠와 킹존 드래곤X전에서 군더더기 없는 합과 한타를 선보이며 이전과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킹존전 승리 후 '마타' 조세형은 "개인적으로 팀 호흡이 90% 정도 맞춰졌다고 생각한다"며 팀 합이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완벽한 구도로 에이스를 띄우는 한타가 이어지면서 SKT T1에 대한 기대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고, 기세를 증명할 가장 강력한 상대인 그리핀을 만나게 됐다.

그동안 그리핀은 상대와 잘 싸워주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이 원하는 타이밍에 싸워 필승 구도를 만들 줄 아는 팀이었다. 상대인 SKT T1은 자신들이 설계한 다이브-한타로 확실한 승리를 거두고 있다. 이상을 실현하는 두 팀의 2차전 대결. 원하는 그림을 완성하는 팀은 어디일까.


성장형 '타잔' vs 파괴형 '클리드'
두 정글러가 바라는 이상적인 한타는?


▲ LCK에서 '타잔'의 성장은 막을 수가 없었다

SKT T1과 그리핀의 1차전은 '신흥 vs 전통'의 LCK 최강팀 대결로 많은 관심 속에 열렸다. 하지만 결과는 KeSPA컵부터 기세를 이어온 그리핀의 이변 없는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경기 후 "'클리드' 김태민에게 왜 올라프를 쥐어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자신이 잘 소화해내는 리 신과 같은 챔피언이 아닌 상대의 주력 챔피언을 빼앗아온 느낌이었다.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상체 싸움'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 듯한 움직임이 나오고 말았다. 반대로, '타잔' 이승용은 늘 해오던 것처럼 6레벨을 달성했고, 유리한 타이밍에 싸움이 열려 승리할 수 있었다. 올라프가 5레벨일 때 녹턴이 6레벨을 달성했을 정도로 '타잔'은 빠른 성장으로 이미 우위에 서 있었다.


이런 그리핀의 승리 공식은 최근 경기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타잔'은 발 빠른 정글 사냥 능력을 바탕으로 성장에 힘이 실리는 챔피언을 주로 기용했다. 최근 경기에서 6레벨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녹턴과 스카너, 성장 후 한타를 책임지는 아트록스와 자크까지. '타잔'이 고른 챔피언의 성장은 멈출 수 없었다. LCK에서도 초반 싸움에 약한 초식 정글러가 레벨을 올리는데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타잔'은 달랐다. 상대를 피해 움직이는 동선으로, 어느새 6레벨이 돼 활약하고 있는 장면이 오히려 더 익숙할 것이다. 그렇게 '타잔'과 그리핀은 원하는 그림을 완성하면서 지금까지 승리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핀전 패배 이후로 SKT T1과 '클리드'는 확실한 노선을 택했다. 그리고 '클리드'의 공격은 한층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 하다. 리 신-자르반 4세-엘리스-렉사이와 같은 챔피언으로 초반부터 자신의 공격적인 색깔을 경기에 입혔다. 교전이 일어날 법한 곳마다 '클리드'가 나타다 킬을 냈고, 어느새 경기가 기울어져 있었다. '클리드'는 상대가 성장할 만한 시간, 생존기로 반응할 틈 조차 주지 않았다. 이전의 어설픈 상체 싸움 대신 화끈한 플레이가 나오며 SKT T1의 주도적인 운영에 큰 힘이 됐다. 동시에 라이너들까지 킬과 함께 성장해 자신들의 캐리력을 뽐낼 만한 기회를 만들어준 게 '클리드'의 역할이다. SKT T1의 운영의 핵심인 '클리드'의 공격이 얼마나 날카롭게 들어가는지가 경기 흐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2차전 대결 역시 '클리드'가 날카로운 공격으로 '타잔'의 성장을 막을 수 있을지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다. 1차전에서는 '타잔'의 성장을 막지 못했다. 이번에는 단단한 그리핀의 라이너와 성장 중인 '타잔' 중 누구를 노릴 것인가. '클리드'의 선택에 초점이 맞춰진다.


▲ 그리핀전 패배 이후 확실한 길 걷고 있는 '클리드'



캐리력 되찾은 '칸' vs 묵묵히 버텨준 '소드'
우르곳 시대 끝... 새로운 대결 양상은?


그리핀의 승리 공식인 '타잔'이 성장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라이너들의 숨은 활약이다. 단순히 경기를 굳히는 '쵸비' 정지훈이 보여준 하드 캐리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타잔'이 마음 놓고 성장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라이너들의 뒷받침이 있기에 성장이 가능한 것. 갱킹에 당하지 않고 라인에서 안정감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타잔'에게 큰 힘이 됐다.

그런 역할을 가장 잘 해낸 팀원으로 '소드' 최성원을 뽑을 수 있다. 상대 방이 충분히 공격할 만한 타이밍을 잘 흘려냈고, 홀로 무리하거나 독단적인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LCK 6전 전승의 우르곳과 8승 1패의 사이온의 전적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을 그대로 게임 내에서 보여주고 있다.

'소드'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인전 단계를 마치면, '소드'는 한타에서 남다른 활약을 펼쳤다. 사이드에서 파고드는 특유의 플레이로 한타를 승리로 이끌었다. 빅토르-피오라-제이스와 같은 딜러 역할을 맡아도 흔들림 없이 제 역할을 해냈기에 그리핀 승리의 숨은 주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상대인 '칸'은 최근까지 이어져온 '우르곳 시대'에 결과가 좋지 못했다. 작년 킹존 드래곤X가 롤드컵 선발전에 나간 시기부터 이번 KeSPA컵까지 주로 우르곳(8회/10전)을 선택해 경기에 임했지만,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후 LCK에서도 우르곳-사이온과 같은 픽을 상대로 빅토르-라이즈 등을 꺼냈고, 여전히 이전 '칸'을 기억하는 팬들의 기대를 만족할 만한 플레이는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패치로 메타가 변화해서일까. '칸' 김동하가 날개를 단 듯했다. 이전까지 우르곳-사이온의 단단함을 뚫지 못했다면, 이제는 제이스-피오라와 같은 자신의 손에 맞는 '무기'를 쥘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친정팀인 킹존 드래곤X전에서는 제이스로 확실히 상대를 찍어누르는 압도적인 힘을 자랑했다. 공격적인 '클리드'의 움직임까지 더 해지자 우직하게 라인을 미는 플레이와 깔끔한 다이브로 연이은 득점을 해냈다. 아군이 봇에 힘을 줄 때 탑이 위험할 수 있다는 '대각선의 법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힘이 실린 '칸'은 경기 내에서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순간이동'을 활용한 한타 역시 빠지지 않았다. 드래곤 지역 대치 상황에서 상대의 뒤를 잡는 순간이동의 활용은 예술이었다. '마타' 조세형과 한 몸 같은 움직임으로 SKT T1만의 한타 그림을 완성했다. 글로벌 골드 격차와 킬 스코어 같은 수치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한타 한 번으로 모든 걸 뒤집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놀라운 건 '칸'이 스플릿 푸쉬에 특화된 챔피언을 잡더라도 한타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타에서 최대한 딜을 할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져 스플릿 챔피언의 한계를 뛰어넘어 버렸다.

▲ 탱커-딜러의 비중이 다른 두 선수
우르곳 너프 이후 딜러 적극적으로 활용한 '칸'

단단함으로 LCK를 대표할 만한 탑 라이너 '소드', 그리고 특유의 공격력으로 유명한 '칸'. 얼핏 보면 '창과 방패'의 대결로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드' 역시 KeSPA컵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피오라-제이스 등을 꺼내면서 딜러 활용에서도 밀리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칸' 역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사이온과 올해 첫선을 보인 블라디미르로 승리를 이끌며 MVP를 받기도 했다. 다양한 챔피언을 소화해내기 위해 노력해온 두 선수의 대결인 만큼 어떤 스타일의 '진검 승부'가 나올지 모른다. 챔피언 선택부터 두 탑 라이너의 자존심 싸움은 시작될 것이다.

두 팀의 대결에는 많은 것이 달려있다. SKT T1은 LoL 최고의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팀으로 언제든지 다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팀이다. 올해 리빌딩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고, 그리핀전은 신뢰를 회복할 만한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반대로 그리핀은 현 LCK의 최강이자 희망이다. 기존 LCK 팀을 넘어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줄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승자는 더 큰 팬들의 성원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을 것이다. 패배한 팀에겐 아쉬운 말이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팀은 수많은 부담감을 이겨낼 만한 기세를 끌어올렸다. 이번 상위권 팀 간 대결에서 승리한 팀의 기세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9 스무살우리 LCK 스프링 스플릿 31일 차 일정

1경기 SKT T1 vs 그리핀 - 8일 오후 5시
2경기 kt 롤스터 vs 젠지 e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