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라는 건 귀중한 자산이다. 큰 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에겐 경험의 유무가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자신의 이력에 방점을 찍을 만큼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이를 처음 해보는 사람과 경험해봤던 사람의 차이는 클 것이다.

5일 종각 LoL 파크에서 2019 스무살우리 LCK 스프링 스플릿 포스트 시즌 1라운드 킹존 드래곤X와 담원 게이밍의 대결이 열렸다. 결과는 킹존 드래곤X의 세트 스코어 3:0 완승이었다. 2라운드 들어 여러 가지 밴픽과 전략을 성공리에 완수하며 '천의 얼굴'로 불렸던 킹존 드래곤X는 이번 대결에서도 자신들의 강점을 계속 드러냈다. 이는 경험이 부족했던 담원 게이밍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한 결과를 낳았다.


몰려 다닌 1세트
상대 예상을 뛰어넘는 공세를 퍼부어라

1세트 밴픽에서 킹존 드래곤X가 보인 의도는 적나라했다. 오른과 녹턴, 사일러스 등 중반부터 강력해지는 챔피언으로 상체를 구성했고 애쉬와 쓰레쉬라는 강력한 바텀 듀오를 꺼냈다. 시작과 동시에 '데프트' 김혁규의 애쉬와 '투신' 박종익의 쓰레쉬로 바텀 라인을 강하게 압박, 주도권을 잡고 상체가 강해지는 중반 타이밍까지 흐름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강력한 이니시에이팅으로 승리를 확정짓는다. 이것이 킹존 드래곤X의 설계였다.


'데프트'와 '투신'의 바텀 듀오는 이른 타이밍에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했다. 6분 20초경에 오직 두 명의 힘으로 '뉴클리어' 신정현의 루시안을 잡았다. 바텀 라인전 구도는 예상보다 이른 타이밍에 킹존 드래곤X 쪽으로 흘러갔다.

이들에게 한 가지 희소식이 더 있었다. '폰' 허원석의 사일러스는 '쇼메이커' 허수의 코르키보다 항상 빠르게 라인을 밀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는 '쇼메이커'의 코르키 뿐만 아니라 '캐니언' 김건부의 자르반 4세, 더 나아가 '너구리' 장하권의 제이스에게도 은근히 압박감을 심어줬다. 덕분에 초반 내내 크게 밀릴 수도 있었던 킹존 드래곤X의 상체가 별다른 사고 없이 자신들이 강해지는 타이밍을 맞이했다.

물론, 담원 게이밍의 저력에 킹존 드래곤X는 초반에 벌어뒀던 이득을 거의 다 잃었다. 상대 바텀 듀오는 기습을 통해 '데프트'의 애쉬를 잡았고 담원 게이밍 상체 라인의 힘도 다시 살아났다. 어찌 보면 반반 구도의 시작이었고 불리했던 담원 게이밍 입장에서는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하지만 킹존 드래곤X는 담원 게이밍의 예상보다 한 단계 빨랐고 묵직했다. 오른과 녹턴, 애쉬는 모두 이니시에이팅에 특화된 챔피언이었다. 이들이 뭉치자 극한의 시너지가 발생했다. 시작은 17분경 바텀 라인이었다. '라스칼' 김광희의 오른과 마주하고 있던 '너구리'의 제이스는 혹시 모를 상대 녹턴의 합류를 대비해 '캐니언'의 자르반 4세를 대동했다. 2:2 싸움에서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킹존 드래곤X는 담원 게이밍의 예상을 뛰어넘는 공세를 펼쳤다. '커즈' 문우찬 녹턴의 궁극기와 '라스칼' 오른의 궁극기가 작렬했고 2:2 싸움이 벌여졌다. 이 전장에 갑자기 킹존 드래곤X 전원이 참전했다. 이는 담원 게이밍의 예상을 완벽하게 벗어난 전투양상이었다. 당연히 담원 게이밍은 대패했다. 문제는 이런 그림이 2분 뒤에 또 나왔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전투에서 킹존 드래곤X는 상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양 팀의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담원 게이밍은 이를 끝내 뒤집지 못했다.


변칙적이었던 2세트
'천의 얼굴' 킹존 드래곤X의 힘

1세트와 2세트에서 킹존 드래곤X가 보여줬던 공통된 힘은 '잘 짜여진 밴픽과 이를 승리로 연결짓는 선수들의 실력'이었다. 1세트엔 초반 바텀 라인의 공격적인 운영을 필두로 한 상체 라인의 버티기, 그 이후엔 조합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파괴적인 이니시에이팅을 선보였다. 2세트에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능력을 선보였다. 변칙적인 챔피언 픽과 이를 극대화하는 선수들의 챔피언 숙련도였다.


킹존 드래곤X가 픽 1페이즈 3픽으로 꺼냈던 모르가나를 '데프트'에게 쥐여줬다. 그 파트너인 '투신'에게는 파이크를 선택하게 했다. 담원 게이밍 바텀 듀오의 필승 카드로 여겨지는 애쉬-탐 켄치 조합에 대한 완벽한 카운터펀치였다. 실제로 애쉬와 탐 켄치는 조합의 강점을 드러내지 못했다. 라인전 단계에서는 모르가나의 완벽한 공수 밸런스 때문에, 한타 페이즈에서는 합류를 방해하는 파이크의 괴롭힘 때문이었다.

킹존 드래곤X의 상체 라인 3인방은 1세트와 똑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무난하게 버틸 것. 이것이 그들에게 떨어진 임무였고 '라스칼-커즈-폰'은 그 임무를 착실하게 완수했다. 그러자 한타 내내 '투신'의 파이크가 날아다녔다. '라스칼'의 아칼리와 '커즈'의 자르반 4세가 상대 시선을 끌고 '폰'의 라이즈와 '데프트'의 모르가나가 상대 체력을 골고루 줄였다. 그러자 '투신'의 파이크는 궁극기로 상대를 계속 참수했다. 이 변칙적인 조합 앞에 담원 게이밍은 허물어지듯이 패배했다.


무너진 담원 게이밍
'경험 부족'에게 상대의 노련함은 높은 벽과 같았다

1라운드를 거쳐 2라운드에 완성된 킹존 드래곤X의 가장 큰 무기가 두 세트 연속으로 드러나자,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했던 담원 게이밍이 흔들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양 팀의 3세트에는 킹존 드래곤X의 뛰어난 경기력도 돋보였지만 그만큼 담원 게이밍의 아쉬운 실수도 여럿 나왔다.


담원 게이밍은 대놓고 후반을 바라보는 조합이었다. '너구리'의 블라디미르와 '캐니언'의 킨드레드, '뉴클리어'의 카이사까지. 모두 후반 캐리력을 뽐내기 용이하지만 초반엔 성장에 주력해야 하는 챔피언들이었다. '쇼메이커'의 질리언은 이들을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자칫 약할 수 있는 중반 타이밍에는 어그로 핑퐁에 능한 챔피언 구성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의 궁극기와 W스킬, 킨드레드의 궁극기, 질리언의 궁극기, 카이사의 궁극기 등. 이론상으론 말도 안되는 생존력을 갖춘 조합이었다.

양 팀의 균열은 이른 타이밍에 바텀 라인에서 발생했다. '뉴클리어'의 카이사는 상대의 이동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채 앞으로 살짝 나갔다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데프트'가 선택했던 루시안은 초반부터 중반까지 강력한 챔피언이다. 그런 루시안에게 중반 이후까지 버텨야 하는 카이사로 킬을 내줬으니 실로 큰 손해를 입은 셈이었다.

여기까진 그래도 버틸 만 했다. 12분경 협곡의 전령을 둔 한타가 발생하기 전까진 말이다. 여기서 담원 게이밍은 조합의 이점을 통해 최소 반반 구도를 만들고자 했다.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간 후반까지 가지도 못한 채 무너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이 그렸던 이상적인 한타 구도는 나오지 않았다. 킹존 드래곤X의 날렵한 움직임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담원 게이밍의 실수가 연달아 터져나온 한타였다.


'너구리'의 블라디미르가 포위당하면서 시작된 한타. '쇼메이커'의 질리언은 부랴부랴 '너구리'의 블라디미르에게 궁극기를 시전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미리 활용했던 궁극기의 체력 회복 효과로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킹존 드래곤X의 칼 같은 타겟 전환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질리언의 궁극기가 낭비된 셈이었다.

▲ 부정확한 타이밍에 활용된 질리언의 궁극기

그 위에서는 '캐니언'의 킨드레드가 본인의 생존을 위해 궁극기를 시전했다. 여기서는 '너구리'의 블라디미르가 실수를 범했다. 아직 '양의 안식처'의 무적 효과가 풀리지 않았는데 시간 계산 실수로 '점멸-E스킬' 콤보를 상대에게 작렬했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쓰러지지 않았다. 회심의 스킬 콤보가 허공을 갈랐다.

▲ '양의 안식처'가 끝나지 않았는데 활용되는 블라디미르의 '점멸-E스킬' 콤보

▲ 무리한 호응으로 스스로 갇힌 카이사

그 직후에도 담원 게이밍의 실수가 나왔다. '점멸'이 없었던 '뉴클리어'의 카이사는 '호잇' 류호성의 알리스타에 호응하기 위해 궁극기로 둥지 안까지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는 무리한 플레이였고 '뉴클리어'와 '호잇'은 나란히 쓰러졌다. 대량 득점에 성공한 킹존 드래곤X는 그 뒤로 담원 게이밍을 마음껏 요리하면서 포스트 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로 향했다.


킹존 드래곤X는 어찌 보면 잔인한 팀이다. 이제 막 LCK에 합류해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성과를 올린 팀에게 그들이 당할 수 있는 모든 패배의 수를 선사하면서 승리했다. 아직 킹존 드래곤X는 더 보여줄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 이를 지켜봤을 SKT T1의 대처도 기대된다.

반대로 담원 게이밍은 자신들의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이번 패배로 알게 됐을 것이다. 그들은 미드 라인에서 대치 중이던 애쉬가 쓰레쉬의 랜턴까지 타면서 빠르게 내려가 전장에 합류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모르가나와 파이크가 자신들 바텀 듀오의 필승 카드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두 번의 허무한 패배가 자신들에게 다음 세트 들어 어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도 알게 됐다. 크게 넘어진 담원 게이밍은 다가올 섬머 스플릿 들어 더 강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