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여신전생은 매력적인 게임이다.

시리즈 대대로 디자인이 화제가 되었을 정도로 독특한 악마의 그래픽은 온라인에서도 여전하며, 세계 멸망 이후라는 근 미래 배경에 레벨과 아이템으로 표현되는 일직선 형태의 성장에서 벗어나 엑스퍼트라는 스킬 기반의 육성 시스템을 갖고 있다.

게다가 진 여신전생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악마의 육성과 합체! 사실 진 여신전생의 재미 중 80% 이상은 바로 이 악마에서 나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온라인에서도 그 매력은 여전하다.

힘들게 키운 악마를 남들에게 자랑할 수 없었던 콘솔 버전보다는, 자신의 악마를 남들에게 드러내고 은근슬쩍 자랑할 수도 있는 온라인 버전이 진 여신전생의 매력을 더 잘 드러낼 수도 있다. 남들보다 강력하고 멋진 악마를 소환하는 순간, 다른 데빌 버스터*들의 시선이 집중될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진 여신전생 온라인에서는 플레이어를 악마와 대적하는 자, 데빌 버스터라고 부른다.)

스킬 기반의 육성 시스템인 엑스퍼트 시스템 역시 온라인에서 그 장점이 극대화된다. 콘솔에서야 내가 어떤 형태로 캐릭터와 악마를 키워도 결국 엔딩만 보면 끝이지만 진 여신전생 온라인에서는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되면서 어떤 방향으로 육성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연구하게 된다. 결국 일반적인 MMORPG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키워줄 수 밖에 없다.

세계관, 시스템, 성장, 악마,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지 않다. 진 여신전생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등장했던 어떤 온라인게임보다도 독특하고 신선한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 진 여신전생이 갖고 있는 이 독특한 매력과 게임성을 모든 게이머들이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을까?






아쉽게도 얼마전 프리 오픈베타를 시작한 한국의 진 여신전생 온라인은 갈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진 여신전생 온라인은 챕터 하나하나를 넘어갈 때마다 옆구리에 낀 공략집을 뒤적거려야 했던 과거의 패키지 게임 스타일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온라인화된 게임이다. 게이머들이 파고 들어갈만한 재미나 컨텐츠는 만족스러울만큼 다양할지 몰라도 거기에 접근하기까지의 노력은 온전히 게이머에게 달려 있다.

진 여신전생 온라인이 갖고 있는 탁월한 게임성과 매니아적인 재미는 인정하지만, 불친절한 인터페이스와 콘솔 게임 수준의 조작법, 까다로운 시스템 등은 접근하기 쉽고 편한 게임을 추구하는 요즘의 대세에는 따라오지 못한다. 일례로 진 여신전생의 단축키 슬롯은 최근 게임들이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확장 형태가 아니라 한줄만 표시하며, 월드맵의 단축키가 지정되어 있지 않아 게이머가 직접 게임 내에서 수정해 주어야 한다.

하다못해 전통적인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매니아가 충분한 일본에서라면 기본적인 유저층이라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진 여신전생과 데빌 서머너는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보기 힘드니 인지도마저도 부족하다. (페르소나 시리즈의 경우는 그나마 콘솔 게임 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게이머가 먼저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컨텐츠에 접근해야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한국에서 안착하기 위해서는 초보자들이 게임에 익숙해질때까지 쉽고 편하게 지원해줄 수 있는 완벽한 가이드가 조건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단축키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어떤 엑스퍼트와 능력치를 투자할 것인지, 악마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게임 내의 중요한 컨텐츠가 모두 낯설기 때문에 세계관, 시스템, 성장, 악마, 모든 것이 평범하지 않다는 장점은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진다는 단점으로 바뀐다.




[ 악마 꼬시기의 출발점은 반가운 인사, 혹은 도발이나 위압 ]




대표적인 예를 들어 진 여신전생 온라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엑스퍼트 기반의 성장 시스템은, 물론 레벨도 있긴 하지만, 게이머가 어느 분야에 얼마만큼 투자했느냐가 게임을 좌지우지할만큼의 영향을 주게 된다.

직업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근접, 마법, 원거리, 방어 등 전투를 담당하는 테크닉(Technique) 계열과 지식이나 생산 등을 담당하는 놀리지(Knowledge) 계열의 엑스퍼트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따라서 수백 종 이상으로 자유롭게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엑스퍼트 자체도 랭크에 따라 들어가는 포인트가 다르니 분기는 더욱 많아진다.)

차후 상위 엑스퍼트라 할 수 있는 체인 엑스퍼트를 배우기 위해서는 일정 엑스퍼트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배울 수 있는 최대 엑스퍼트의 갯수가 포인트로 정해져 있으니 어떤 엑스퍼트를 얼마만큼 투자할 것인지 처음부터 잘 고려해서 캐릭터를 키워야 한다.





[ 스킬, 숙련도, 특성, 연계가 모두 혼합된 형태의 엑스퍼트 시스템 ]




그러나 오픈베타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슬롯은 오직 1개뿐이고, 게임 내에서 이미 올린 엑스퍼트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게임을 어느 정도 파악한 뒤 엑스퍼트를 바꿔보고 싶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키워야 한다. (차후 가능하긴 하지만 캐쉬 아이템의 형태이고 현재는 프리 오픈베타 버전이니 초보자의 입자에서는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기존 캐릭터를 지우고 새로 키우는 방법도 있지만 하루의 대기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단지 잘못 찍은 엑스퍼트 하나를 수정하기 위해서 오픈베타 초반에 힘들게 키운 캐릭터를 선뜻 지우기는 힘들다. 결국 랙이나 클릭미스로 잘못 찍은 스킬 포인트처럼 계속 마음 한구석에서 찜찜함으로 남게 된다.

이처럼 게임 내에는 게이머들을 답답하게 만들면서 되돌리기도 힘든 난관들이 수없이 널려 있는데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게이머들의 궁금증을 풀어줄만큼 충분한 가이드가 부족하고 단순한 일반론 형태의 정보들만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 익숙하다면 그나마 게시판들을 뒤져서 정보를 찾아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게임에 매력을 느끼기 힘들다.

진 여신전생 시리즈에 대한 경험도 있고 진 여신전생 온라인에 대한 사전 지식도 있는 필자가 이럴진대, 이번 온라인 버전으로 진 여신전생을 처음 접한 게이머에게 과연 어떻게 느껴졌을 것인지 궁금하다. 솔직한 심정대로 말하자면, 절대 높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서비스의 기반이 갖춰지지 못하면 한국에서의 진 여신전생 온라인은 부족한 인지도와 매니아 취향의 재미, 쉽지 않은 접근성까지 삼중고를 골고루 갖춘 그저그런 또 하나의 온라인게임일 뿐이다. 결국 공식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는 정보를 원하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일본의 위키나 팬사이트 주소가 돌아다니는 상황.

자기 마음대로 합체과 유전을 통해 수백종류의 악마를 만들 수 있다는 진 여신전생 최고의 장점도, 제대로된 악마 합체의 공식을 모르는 게이머에게는 그냥 귀찮고 관리하기 힘든 또 하나의 펫에 불과한 것이다.





[ 레벨은 안되도 방법만 알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오프닝의 귀녀 타라카. 방법만 안다면... ]




또 하나의 문제. 서버 초기의 랙과 초기화되지 않는 테스트 서버


서버 첫날 많은 게이머들을 괴롭혔던 이동랙이나 지형에 끼이는 문제 등은 다행스럽게 긴급 패치를 통해 하루만에 대부분 해결되었다. 게임하기 쉽지 않다는 프리 오픈베타 첫날인 것을 감안한다면 좋지 못한 인상은 남겼을지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공식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올라온 테스터의 글. 자신이 사내 클로즈 테스터의 한 명이었으며, 사내 클로즈 테스트를 체험했던 유저들의 데이터가 프리 오픈베타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클로즈베타도 아니고 극히 제한된 인원으로 수행되는 사내 테스트를 체험했던 인원들이 프리 오픈베타에서 과거의 데이터를 그대로 갖고 있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현재 진 여신전생은 프리 오픈베타 서비스이기 때문에 지금 상태로라면 상용화 이후에도 사내 테스터들의 데이터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둘째날인데, 초보자 수준을 훌쩍 벗어난 유저들이 이미 돌아다닌다. ]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다수의 인원을 모집한 클로즈 베타라고 할지라도 데이터를 오픈 베타 이후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많은 인원을 뽑았더라도 클로즈베타와 오픈베타의 특성상 뒤늦게 시작한 오픈베타 유저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어 게임의 흥미를 떨어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대적인 홍보도 거치지 않고 소규모의 인원들만 제한된 경로를 통해 접속할 수 있었던 사내 테스트 서버의 데이터가 프리 오픈베타로 이어진다는 것은, 오픈베타부터 시작한 정상적인 게이머들에게는 불평등한 경쟁을 시작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니 당연히 납득할 수 없다.

혹여 이렇게 공식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 떠도는 사내 테스트 관련 글들이 루머일 뿐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공지를 통해 게이머들의 오해를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나중에라도 일부 게이머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게이머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고, 최대한 많은 게이머들을 끌어들여 상용화를 준비해야 하는 오픈베타 시기를 논쟁으로 날려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공식 홈페이지에서 기본적인 가이드는 제공하고 있지만... ]




성공적인 로컬라이제이션 과정을 거쳐 퍼블리싱이 성공해도 흔히 말하는 대박을 치기란 어려운 접근성의 게임. 거기다 충분한 기반을 갖추지 못할 경우 한국을 거쳐갔던 수많은 외산 온라인 기대작들처럼 처음만 시끌벅적한 케이스가 되어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또다른 불신만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워낙 접근하기 어려운 게임인만큼 게임의 기초가 되는 시스템 가이드라고 해도 이를 퍼블리셔가 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또 퍼블리싱과 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구조의 한계상 아무리 일본측과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더라도 한국의 실정에 걸맞는 서비스와는 어쩔 수 없는 갭이 발생하리란 것도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하다. 결국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게이머들의 시선을 끌고 최대한 입맛을 맞춰야 한다. 어떻게든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최소한의 서비스는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나 분기 단위로 십여개 이상의 온라인게임들이 쏟아져나오는 한국의 온라인 시장은 포화 상태에 가까우며, 진 여신전생 온라인도 오픈베타 시기가 되면 당장 WoW나 리니지, 아이온 같은 흥행작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게임은 분명히 재미있다. 게임을 접속하는 것도 큰 문제는 없고 한글화 역시 일부 오류가 있긴 해도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의 게임성은 절반의 성공만을 보장한다. 특히나 진 여신전생 온라인처럼 독특하고 낯선 게임일수록 게임 외의 지원이 절실하다.

한국에 진 여신전생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서비스할 준비는 되었을지 몰라도,
포화 상태인 한국의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 준비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