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LoL에서는 미드-정글 싸움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지 않았던 적이 있었겠냐만, 최근 그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유저들 간 랭크 게임만 봐도 탑 라이너와 바텀 듀오들은 '미드-정글이 무너지면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라고 투덜거릴 정도다.

대회 경기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초반에는 특히 정글러가 팀의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글러의 초반 동선과 움직임에 라이너들의 라인전 양상이 아예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정글러가 근처에 있으면 상성에서 밀려도 공격적으로 라인전을 행할 수 있고, 반대로 정글러가 근처에 없으면 많이 유리해도 조심스럽게 플레이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중요한 정글러들의 초반 움직임은 실제 대회 경기에서 많은 걸 의미한다. 1위 그리핀부터 4위 SKT T1까지, 소속 정글러들의 최근 경기 중 극 초반 동선은 어땠으며 이는 어떤 걸 의미했을지 알아봤다. '타잔' 이승용과 '온플릭' 김장겸, '캐니언' 김건부, '클리드' 김태민의 첫 귀환 전까지의 움직임은 어땠을까.


그리핀 '타잔' 이승용
'도란' 돌보는 정글의 왕


그리핀은 최근 '소드' 최성원 대신 '도란' 최현준을 주전 탑 라이너로 기용 중이다. '래더' 신형섭과 '쵸비' 정지훈을 번갈아 기용했던 잠깐의 기간을 제외하면 오랫동안 5인 주전 로스터를 가동했던 그리핀에겐 색다른 시도다. '도란'이 신인인 만큼 '타잔'은 극 초반 정글 동선에서 탑 라인 위주의 움직임을 주로 보였다.

최근 여덟 번의 세트 동안 '타잔'의 첫 귀환은 다섯 번 탑 라인 부근에서 행해졌다. 지난 2일 있었던 샌드박스 게이밍전 3세트와 9일 젠지전 1, 2, 3세트에 그랬다. 11일에 있었던 킹존 드래곤X와의 1세트에는 탑 라인 갱킹까지 성공시켰다.

▲ 최근 경기 중 '타잔'의 극초반 정글 동선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정글 지역을 벗어난 동선도 꽤 있었다는 점이다. 샌드박스 게이밍과의 2세트엔 2레벨 바텀 갱킹 실패 후, 자신의 블루 버프 몬스터 지역으로 난입했던 '온플릭'에게 쫓겨났다. 이후 '타잔'은 본진 테두리를 빙 돌아 칼날부리 캠프를 사냥한 뒤 귀환했다.

평균적으로 '타잔'은 탑 라인에 신경을 많이 써줬지만, 전방위적으로 움직였다. 협곡 정글 캠프 전역에 그의 발자국이 진하게 찍혔다. 그만큼 폭넓게 움직이면서도 상대 정글러와의 대면은 최대한 피했다. 라인전을 진행 중인 아군의 뒤를 봐주는 움직임도 그리 많진 않았다. 그만큼 그리핀의 모든 라이너가 단단하고 영리하게 라인전을 수행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발맞춰 '타잔'은 최대한 '풀캠프 동선'을 보였다.


샌드박스 게이밍 '온플릭' 김장겸
'풀캠프' 위해선 미드 라인 '돌파'까지?


'온플릭'도 '타잔'만큼,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오히려 더 폭넓게 움직였다.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글 캠프 전역에 '온플릭'의 동선이 짙게 그려졌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온플릭'이 꽤 자주 2레벨 타이밍에 바텀 라인 부근에서 상황을 지켜봤다는 점이다. 최근 여덟 번의 세트 중에 두 번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 어찌 보면 적을 수도 있겠지만, 초반 동선이 꼬이는 걸 감안하면 파격적인 동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시 기본적으로 '풀캠프 동선'을 추구했다. 최근 대회 경기에서 대부분의 정글러들이 선호하는 동선이다. 초반 변수를 노리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정글을 사냥해 성장에서 밀리지 않는 걸 추구하는 모양새다. 지난 2일 있었던 그리핀과의 2세트에 상대 블루 버프 몬스터 쪽으로 난입했던 걸 제외하면 많은 경기에서 정글링에 집중했다.

▲ 최근 경기 중 '온플릭'의 극초반 정글 동선

특히, 블루 진영 위쪽 정글 캠프에 '온플릭'의 발자국이 많이 찍혔는데, '서밋' 박우태가 있는 탑 라인 쪽에 가장 많이 신경 써줬다는 걸 보여준다. 자신들이 블루 진영일 땐 아래쪽 캠프를 사냥하고 위쪽 캠프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레드 진영일 때도 바텀 듀오의 '리쉬'를 받아 블루 버프 몬스터를 사냥한 뒤에 위쪽 캠프 위주로 움직였다. 어느 때건 기본 바탕은 '풀캠프 동선'이었다.

'온플릭'만의 특징이라면, 미드 라인을 관통하고 있는 두 개의 선이다. 딱히 갱킹을 시도했다기엔 선이 지나치게 직선 모양이다. 그 이유는 '온플릭'의 과감함에 있었다. 그는 '풀캠프 동선'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도브' 김재연이 라인전을 진행하고 있던 미드 라인을 가로질러 움직였다. 마치 특유의 느리고 여유 있는 말투로 '지나가유~'를 외쳤을 것만 같다.


담원 게이밍 '캐니언' 김건부
여전했던 탑 위주의 동선, 깔끔한(?) 움직임


예전에 '뉴클리어' 신정현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캐니언'의 초반 동선을 짚어봤던 적이 있었다. 당시 '캐니언'은 놀라울 정도로 '너구리' 장하권이 있는 탑 라인 위주의 동선을 보였다. 바텀 듀오 입장에서는 팀적인 합의에 의한 거라곤 해도 서운할 정도의 동선이었다. '캐니언'은 최근 경기에서도 여전히 그렇게 돌아다녔다.

지난 1일 진행됐던 아프리카 프릭스전 두 세트 모두 '캐니언'의 첫 귀환 시전 장소는 탑 라인 부근이었다. 1세트에는 레드 진영 위쪽 캠프 세 곳만 사냥한 뒤에 빠르게 귀환, 2세트에는 레드 버프 몬스터를 시작으로 위쪽 캠프에 이어 아래 캠프까지 모조리 사냥한 뒤에 굳이 한 번 더 탑 라인을 봐주다가 귀환했다. 한화생명e스포츠와의 2세트에도 블루 진영에서 블루 버프 몬스터를 시작으로 위쪽 바위게 싸움에서 승리, 탑 라인을 봐주다가 귀환했다.

▲ 최근 경기 중 '캐니언'의 극초반 정글 동선

두 번의 갱킹 시도도 있었다. 한 번은 성공했고 한 번은 실패했다. 4일 진행됐던 한화생명e스포츠와의 1세트에는 위쪽 캠프를 사냥하다가 미드 라인 역갱킹을 갔고 사망했다. 8일 있었던 kt 롤스터와의 1세트에는 탑 라인 역갱킹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두 번의 라인 교전 모두 '캐니언'의 역갱킹 혹은 커버 플레이였던 걸 생각하면 라이너의 콜에 적극적 혹은 희생적인 움직임을 보였다고 표현해도 좋다.

'캐니언'만의 특징을 꼽자면, 최대한 다니던 곳으로만 다녔다는 점이다.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잔'이나 '온플릭'과 달리 희미하게 그려진 동선이 거의 없다. '캐니언'은 거의 정글 지역 안으로만 이동했고 두 번의 초반 갱킹 이외에는 낯선 곳에 가지 않았다. 이 기사에서 언급할 총 네 명의 정글러 중에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깔끔한 정글 동선을 보였다고 할 수 있겠다.


SKT T1 '클리드' 김태민
'피 카운터 정글' 장인? 이리저리 꼬인 동선


'클리드'하면 가장 어울리는 표현은 '똑똑한 정글러'다. 상대 정글러의 생각을 읽는 듯한 움직임과 판단으로 SKT T1의 초반 운영과 스노우볼링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클리드'의 최근 경기 중 초반 정글 동선은 그 모양이 많이 복잡했다.

그는 상대 정글러들에게 괴롭힘을 생각보다 자주 당했다. '클리드'를 초반에 괴롭히지 못하면 본인들이 나중에 당할 거라고 판단했을까. '클리드'는 첫 귀환 전에 상대 정글러에게 카운터 정글을 꽤 당했다. 1일 킹존 드래곤X전 1세트와 3일 아프리카 프릭스전 2세트에 그랬다. 그럼에도 '클리드'는 이를 예상하고 싸움을 피했다. 그림에 이리저리 흩어진 선들은 '클리드'가 상대의 카운터 정글을 피할 때 생겼던 발자국이다.

▲ 최근 경기 중 '클리드'의 극초반 정글 동선

아래쪽 캠프에 난 길 중에 '클리드'만 발을 들였던 곳이 있었다. 블루 진영 기준으로 칼날부리 캠프와 레드 버프 몬스터 캠프를 최단거리로 잇는 길 뒤에 난 길. 다들 조금 돌아가는 길이라 선호하지 않았는데 유독 '클리드'만 저 길로 자주 움직였다. 다방면으로 움직였던 '클리드'가 한 번도 밟지 않았던 지역도 있었다. 드래곤 둥지 뒤편에 나있는 길이었다. '타잔'과 '온플릭', '캐니언' 모두 그곳을 지나갔는데 '클리드'는 거길 선호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건 '클리드'가 욕심쟁이라는 거다. 상대 정글러의 움직임을 알아챘다면 똑똑하게 그쪽을 피해 다른 쪽 정글 캠프를 독식했다. 한 번 동선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면 자신의 캠프를 독식함은 물론, 상대 정글 캠프도 적극적으로 빼앗았다. 미세하게나마 정글러 간 성장 격차를 벌리는 것이 '클리드'의 스타일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