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우리은행 LCK 섬머 스플릿 대망의 결승전도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후 4시부터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릴 이번 결승의 핵심 라인은 단연코 정글이다. '클리드' 김태민과 '타잔' 이승용이 다시 우승 트로피 앞에서 마주했다.

지난 스프링 스플릿부터 양 팀의 상대 전적이 6:6이라 두 선수의 상대 전적도 같다. 다른 건 최근 이들이 보여준 스타일 차이다. 정규 시즌만 해도 두 정글러의 스타일 차이는 확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차이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클리드'는 포스트 시즌 들어 이전보다 라인 개입에 집중했고 '타잔'은 그들의 최근 경기에서 탑 라인 케어와 정글 장악에 신경썼다.


'클리드' 김태민
보다 적극적인 라인 개입 시도


'클리드'는 SKT T1에 합류하면서 기존 스타일을 많이 버렸다. LPL에서 활동할 땐 많은 이가 그를 공격적인 정글러라고 평가했다. LCK의 코치진과 관계자들도 그랬고 LPL 코치진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극단적으로는 '한 번 꽂히면 갱킹만 다니는 정글러'라고 설명했던 사람도 있었다.

거긴 LPL이었고 '클리드'의 새 무대는 2019년부터 LCK로 바뀌었다. 팀도 SKT T1이었다. SKT T1의 정글러들은 '벵기' 배성웅 때부터 공격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 않았다. '클리드' 역시 SKT T1식 정글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기존 스타일을 많이 유지했다. 그 결과, '클리드'는 공격적이면서도 똑똑한 움직임을 가진 정글러가 됐다.

팀에 합류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클리드'의 기본 바탕은 여전히 공격성이지만, 그 공격성이 좀 다르게 나타났다. 최근 경기 밴픽에서도 이를 알 수 있었다. 그는 포스트 시즌 들어 스카너와 사일러스, 엘리스로 소화했다. 횟수 차이는 거의 나지 않았다. 스카너가 2회, 사일러스 4회, 엘리스 3회였다.


다들 아는 것처럼 스카너와 사일러스는 초반 라인 개입력이 약하다. 그럼 어째서 그가 라인 개입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을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엘리스다. 그는 엘리스를 포스트 시즌 들어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클리드'의 엘리스는 사실 정규 시즌에 세 번 꺼내 한 번 밖에 못 이겼던 카드였다. 그 세 번도 보통 대세 정글 챔피언들이 다수 밴됐을 때의 선택지일 뿐이었다. 경기 내용도 최근과 비교하면 그리 좋지 않았다. 정규 시즌에 처음 엘리스를 꺼냈던 아프리카 프릭스전 2세트와 3세트에는 시작부터 암울했다. 탑 쪽 개입을 시도했다가 상대에게 혼쭐이 나 제대로 된 라인 개입을 보여주지 못했다. 샌드박스 게이밍과의 2세트에는 바텀 갱킹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지만 한타 페이즈로 무난하게 넘어가 엘리스의 힘을 더 보여주지 못했다.

포스트 시즌 들어 '클리드'의 엘리스는 라인 개입에 더욱 신경썼고 더 날카롭게 움직였다. 샌드박스 게이밍과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2세트 3분경에 과감한 바텀 갱킹을 성공시키면서 시동을 걸었다. 이는 SKT T1의 라이너들에게 힘을 실어줬고 몰아치는 SKT T1의 모습을 제대로 이끌어낸 원동력이 되었다. '클리드'는 엘리스의 힘이 빠지기 전에 경기 흐름을 더 확실히 잡기 위해 정규 시즌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였다. 그 결과, SKT T1 포스트 시즌 내내 경기 초중반 하이라이트 장면에는 '클리드' 엘리스의 모습이 자주 나왔다.

▲ LCK 공식 유튜브 채널

LCK와 같이 안정감을 최우선시 하는 운영이 대세를 이루는 리그에서 엘리스를 주력 카드로 삼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SKT T1은 그러한 LCK식 안정감을 대표하는 팀 중 하나다. 그런 환경에서 '클리드'가 포스트 시즌에 엘리스를 주력 카드로 삼아 그 힘을 100% 끌어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클리드'의 최근 무기는 라인 개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나 더 추가로 언급할 건 '클리드'가 담원 게이밍과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1세트에 사일러스로도 적극적으로 라인 쪽에서 싸움을 설계하는 등 개입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타잔' 이승용
정글 지역 장악 능력


'클리드'가 정규 시즌보다 포스트 시즌 들어 더욱 라인 개입력에 힘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는 건 최근 메타가 정글러의 초반 라인 개입력에 의해 좌우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뜻도 된다. 이를 정교하게 해냈던 SKT T1이 정글러로부터 시작된 스노우볼을 끝까지 굴려 승기를 굳혔다. 결승전에서도 웬만하면 이런 경기 양상이 주를 이룰 것이다.

'클리드'에 맞설 '타잔'은 예전부터 계속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 중이다. '타잔'은 정글의 왕이라는 본인의 별명에 맞게 운영에 특화된 정글러다. 비슷한 스타일을 꼽자면 과거 전성기 시절의 '스코어' 고동빈이나 지금은 은퇴한 '앰비션' 강찬용을 언급하겠다. 운영형 정글러들의 특징은 정글 지역 장악력을 토대로 바쁘게 움직이면서 라이너의 상황을 봐주고 상대 정글러의 움직임을 제한하는데 있다.

'타잔'은 결승전으로 직행했기에 포스트 시즌 기록이 없는 만큼 섬머 스플릿 정규 시즌의 데이터만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그의 모스트 픽이다. 세주아니를 12번이나 플레이했다. 워낙 세주아니가 정글 1티어 챔피언으로 오래 군림했다곤 해도 의미있는 데이터다. 세주아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했던 챔피언이 자르반 4세와 올라프인데 둘을 합쳐야 세주아니를 고른 수치와 같아졌다.

또한, 그의 모스트 픽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라인 개입력이 좋은 챔피언이 많지 않았다. 세주아니도 그렇고 올라프나 카서스도 마찬가지. 어찌 보면 자르반 4세를 제외하면 자주 픽했던 것들 중에 갱킹이라고 할 만한 걸 잘할 수 있는 챔피언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챔피언들의 강점은 한타 파괴력이 좋거나 정글 지역을 장악하기에 좋다는 점. 특히, 정글 지역 1:1보다는 2:2나 3:3에서 힘을 발휘하기 좋은 챔피언들이다. 이를 토대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여 상대 정글러, 더 나아가 상대 라이너들을 압박하기에 적합하다.


'타잔'의 실제 플레이스타일도 그랬다. '타잔'은 갱킹을 최소화하면서 정글 지역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타잔'의 활동 영역을 봐도 탑 라인을 제외하면 라인 쪽에 자주 들르지 않았다. 한화생명e스포츠전 1세트에도 엘리스로 바텀 다이브를 한 번 시도해보려다가 말았던 것을 제외하면 정글링에 집중했을 정도였다.

아무것도 안한 채 정글링에만 신경썼단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영리한 움직임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위치나 의도를 거의 노출하지 않았고 이를 심리적 압박의 도구로 마음껏 활용했다. 그러다가 상대가 틈을 보이면 확정 킬을 낼 수 있을 확률이 매우 높은 지역에 갱킹을 시도했다. 아래 영상만 봐도 '타잔'이 얼마나 상대와의 심리전이나 운영 싸움에 세심하게 신경쓰는지 알 수 있었다.

▲ 자료 제공 : KT e스포츠 라이브

물론, 최근 메타에서 정글러의 운영보다 라인 개입력과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 가능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판명난 만큼 '타잔'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클리드'의 라인 개입력에 맞불을 놔 칼끝 싸움을 벌일 것인지 아니면 기존 본인의 스타일로 '클리드'를 압박해 그가 라인에 개입하지 못하고 '타잔'과의 심리전에만 집중하게 만들 것인지 기대된다. 이들의 초중반 양상이 양 팀의 결승전 양상을 좌지우지할 거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