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PSP로 할 게임이 없다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을 들어보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두세달에 하나 꼴로 그럭저럭 할만한 게임들이 나왔으니까. 그것도 몬스터헌터 2nd 포터블판의 성공 이후에 활성화된 것이지, 그 이전에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워낙 할만한 게임이 나오지 않으니까 게임 하나로 1년 이상을 플레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인벤팀 내의 B기자는 PSP로 몬스터헌터와 DJMAX 외 다른 게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국 시장에서는 일본에서의 패키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정식발매된 게임도 있고, 그 중에는 한글화가 이루어진 것도 있었지만 불법복제로 적지 않은 피해를 봤기 때문에 최근에는 한글화된 정식발매 게임을 보기 힘들 정도로 PSP게임 시장은 암울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의 PSP게임 발매 라인업이 매우 좋아졌다. 작년 디시디아 파이널판타지 이후로 매월 한 개 이상 해볼만한 게임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올해 여름을 기점으로 한달에 2~3개씩 게임을 구입해야 할 정도로 작년까지와는 완전히 딴판인 라인업이다. 대체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PSP 애드훅 기능이 판매량 증가의 원인

PSP의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제대로 팔리게 된 계기로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몬스터헌터 2nd이다. PS2판의 몬스터헌터2를 휴대용 기기인 PSP에 맞게 새로 만든 게임으로, 후속작인 2ndG와 함께 각각 150만장과 350만장 이상 판매되었다. 심지어 염가형으로 나온 2ndG의 Best판 역시 지금도 꾸준히 팔려서 100만장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다.




[ PSP 최초의 밀리언셀러, 몬스터헌터 포터블 2nd ]




몬스터헌터 이전까지는 NDS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던 PSP는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몬스터헌터2nd로 인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게임 제작사들이 하나둘 PSP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몬스터헌터2nd가 성공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 중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함께'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크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금도 거리나 전철 등 곳곳에서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모여서 협동 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몬스터헌터2nd의 성공 후 PSP의 근거리 무선통신인 애드훅 기능을 이용하여 최대 4인 또는 8인이 동시에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 판타시스타 포터블은 일본에서 2008년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PS3의 온라인 기능을 이용하여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PSP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올해 PSP 라인업을 보면 울고 싶다

PSP 기기는 있는데 게임이 할 것이 없어서 우는게 아니라, 수중의 자금은 한정되어 있는데 명작 게임들이 쏟아져나와서 무엇을 사야될지의 고민으로 울고 싶은 것이다.



작년 12월 디시디아 파이널판타지를 시작으로 PSP의 라인업이 화려해지기 시작한다. 올해 초 Xbox360의 전유물이라 불렸던 아이돌마스터가 3가지 버전으로 동시에 발매가 되었으며, 그 후에도 매달 하나 이상은 반드시 구입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높은 퀄리티를 가진 게임들이 줄줄이 나왔다. 특히 올해 여름 이후의 라인업은 한숨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 파이널판타지 2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디시디아 파이널판타지 ]




작년까지만 해도 PSP게임을 구입하면 몇 달동안은 신통한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책상 위에 진열해 놓고 생각나면 한번씩 집어들고 놀기 좋았는데, 이제는 2~3개월 단위로 책상을 정리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완전히 재정파탄 직전이다. 올해 구입할 게임들 목록을 줄이고 줄이고 줄여도 목록을 만들어 보니 아래와 같다.


  • 9월 구입목록
    - Ys7(9.17)
    - 진구지 사부로 ~재와 다이아몬드~(9.17)
    - 태합입지전 V(9.17)


  • 10월 구입목록
    - 그란투리스모(10.1)
    - 마크로스 얼티밋 프론티어(10.1)
    - 언데드나이츠(10.15)
    - 안티포나의 성가공주 ~천사의 악보 Op.A~(10.22)


  • 11월 구입목록
    - 페르소나3 포터블(11.1)
    - 디시디아 파이널판타지 ~유니버스 튜닝~(11.1)
    - WARSHIP GUNNERS 2 강철의 포효(11.12)
    - 아머드코어3 사일런트 라인 포터블(11.19)
    - 라 퓌셀 † 라그나로크(11.26)


  • 12월 구입목록
    - 판타시스타 포터블2(12.3)
    - 퀸즈 블레이드 스파이럴 카오스(12.17)


  • 그 외 일정불명
    - 철권6(가을)
    - GOD EATER(가을)
    - 루나 ~하모니 오브 실버스타~(가을)
    - 전장의 발큐리아2 갈리아 왕립사관학교(겨울)
    - 파이널판타지 Agito XIII(겨울)
    - 킹덤하츠 Birth by Sleep(2009년 내)


  • 주머니가 텅텅 빌 것을 생각하면 그저 울고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안하고 고개를 돌리자니 게임을 즐기는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에 구입한 게임들 숫자도 구입 예정 목록과 맞먹을 정도니 눈앞이 캄캄하다.



    콘솔 교체시기에는 명작들이 쏟아진다

    갑자기 쏟아지는 PSP의 게임들 목록을 보다보니 문득 과거의 콘솔기기 교체기 시절이 생각났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슈퍼패미콤에서 PS1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던 시절의 게임들이다. 스퀘어의 바하무트라군이나 루드라의 비보, 닌텐도의 파이어엠블렘 트라키아 776과 같이 슈퍼패미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낸 게임들이 슈퍼패미콤 말기에 나왔던 게임들이다. 또한 PS1에서 PS2로 넘어갈 무렵에도 PS2초기의 게임들을 능가하는 걸작들이 쏟아져나왔다.



    좀 더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면 애플2에서 IBM-PC로 넘어갈 무렵의 타임즈 오브 로어(Times of Lore)나 A.D.2400, MSX에서는 바리스 시리즈나 코에이의 역사 시뮬레이션 시리즈 등이 있다. 물론 PC의 경우 8비트 PC와 16비트 PC의 파일이 어느정도 호환이 되었고, 양 버전으로 동시에 나온 것도 많았기 때문에 인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콘솔 기기는 아예 플랫폼이 다르기 때문에 호환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역사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게임들이 적지 않았다.




    [ 슈퍼패미콤 말기에 나왔던 바하무트 라군 ]




    절묘하게도 한 플랫폼이 시장에서 사라져갈 무렵에는 그 플랫폼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낸 걸작 게임들이 나온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발매된 지 시간이 4~5년쯤 지나고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높은 수준의 게임이 연달이 발매된다면 다음 기종으로 세대교체가 될 때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우스갯소리도 나오곤 한다.



    PSP GO는 PSP2의 선행 테스트 기종인가

    PSP의 세대교체가 정말로 이루어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올해 가을에 UMD를 폐지하고 다운로드 판매방식을 채택한 PSP GO가 출시된다. 공개 전까지만 해도 PSP의 발매가 오래된 점과 이렇다할 타이틀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 탓에 PSP2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지만 기본성능은 PSP랑 동일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무시한 다운로드 전용 판매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PSP GO가 PSP2의 기능 테스트 버전이라는 말이 슬슬 나오고 있다. 지금도 PSP2에 대한 소문은 각종 게시판에서 합성사진 등으로 꾸준히 올라오고 있을 정도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PSP의 라인업이 한 기종의 세기말을 연상시키는 걸작들이 쏟아져 나오니 더욱 신빙성이 높은 것이다. 어느 곳에서는 PSP2에는 아이팟을 견제하여 터치기능이 들어간다는 확인되지 않은 관계자의 언급을 내세우는 곳도 있다.




    [ 여러 곳에서 떠도는 소문의 PSP2 모델 중 하나 ]




    이런 소문에 대해 소니측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하고 있지만, 전에도 소문이 현실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니의 발표를 얌전히 믿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예전 PSP GO 발매때도 그렇게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결국 현실이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번 PSP GO는 PSP2에서 적용될 프로그램 다운로드 판매를 위한 테스트라고 부르는 것이다.



    PSP의 라인업 강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

    지금까지 PSP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한 게임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PSP의 기본성능은 발매 당시 시대를 몇 년 앞서갔다고 불린다. 그렇지만 최근 발매된 소울캘리버BD는 PSP CPU의 최고 처리속도인 333Mhz를 모두 사용한다는 말이 있다. 즉 PSP의 기능을 최대한 끌어냈다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PS2로 발매됐던 명작들이 PSP에 맞게 개량되어 줄줄이 이식되고 있다. 이런 이식작과 오리지널작의 조합 러시는 라이벌 콘솔인 NDS의 라인업을 가볍게 누른다.



    이런 빵빵한 라인업에 맞춰 PSP GO가 출시되는 것은 PSP2의 예고편이 아니라 PSP의 재도약을 의미하는 것일수도 있다. 발매 당시 시대를 앞서간 성능을 지녔지만 소프트웨어가 받쳐주지 못해서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 PSP가 본격적으로 날개짓을 친다는 의미가 아닐까.




    [ 2009년 가을에 발매될 PSP GO ]




    또한 NDS용으로 출시된 드래곤퀘스트9의 성공은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휴대용 기기가 지금까지 집 안에서만 즐기는 것으로 인식된 대형 콘솔 기기를 넘어서기 시작하는 흐름일 수도 있다. 드래곤퀘스트9와 몬스터헌터 2nd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멀티 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들이 하나둘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런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PSP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NDS의 게임은 누구나 쉽고 가볍게 즐기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많은 연령층에게 사랑받았고, PSP보다 훨씬 많은 판매량을 자랑했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플레이 시간이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PSP의 강력한 기기 성능을 다시 보는 추세이다.



    NDS는 256MB라는 용량의 한계로 고용량의 게임을 제작할 수 없는 것에 비해 PSP는 약 2GB의 용량을 지닌 UMD를 채택하고 있으며, 용량이 부족하다 싶으면 여러 장의 UMD게임으로 만들면 되기 때문에 용량의 제약이 적은 편이다. 또한 NDS의 게임은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게임들의 비중이 높았으나 게임 플레이 타임이 길어질수록 그래픽이나 표현 등에서 불만을 갖게 되고, 이는 PSP를 찾게 된 원인이다.




    [ PSP의 성능을 모두 끌어냈다는 소울캘리버DB ]




    NDS의 발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조금씩 NDS의 표현력의 부족함을 느끼게 된 NDS 소유자들과, 그에 맞춰서 높은 그래픽과 연출을 보여주는 PSP의 강력한 라인업의 등장은 어찌 보면 이 때를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흐름이 계속 유지되길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게임계 시장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PSP의 라인업은 한 명의 게이머로서 기쁨을 넘어서 이미 공포를 느낄 정도로 작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PSP가 기종 교체 직전 최후의 불꽃을 태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세기말적인 느낌을 받은 것은 기자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 소니에서 PSP2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다양한 소문들을 부정하고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머지않아 PSP2가 시장에 선보이게 될 것은 분명하다. 진실은 담당자만 알고 있을 것이고 아무리 설레발을 쳐 봐야 답은 보이지 않는다. 올해 후반기 PSP라인업은 지갑에서 먼지만 날리게 할 정도로 쏟아지는, 지금까지의 부진함을 모두 날려버린 PSP의 게임들은 콘솔게임 시장에서 강력한 펀치라는 것는 틀림없다.




    [ 올해 겨울 발매될 예정인 파이널판타지 Agito XIII ]




    일부에서는 아직도 PSP의 매상이 신통치 않으니 PSP2로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게임들의 라인업을 강력하게 만들어서 테스트한 후, PSP GO로 확인한 다운로드 판매방식을 이용한다는 소문이 꾸준히 돌고 있다. 이 소문이 거짓임을 밝히고 NDS와 좋은 승부를 펼치기 위하여, 강력해진 PSP의 라인업이 앞으로 꾸준히 이어가면서 새로운 휴대용 콘솔 시장의 흐름이자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