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우리은행 LCK 스프링 스플릿 중계 화면이 많이 바뀌었다.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보라색이 대폭 줄었다. 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화면에 나타나는 각종 정보들을 알아보기 쉬워졌다는 평가가 많아졌다. 팀별 색깔이 부각됐고 밴픽 화면이 커졌으며 경기 화면에 다양한 데이터가 추가됐다.

리그 일정이 한창 진행 중일 때 LCK 제작을 맡은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의 이민호 PD를 만났다. 그를 필두로 LCK 방송을 제작하는 제작 인원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를 고민했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을까.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이민호 PD는 다양한 질문에 상세한 답변을 해줬다. 결국,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건 '빠른 피드백'과 '팬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Q. 작년에 어떤 아쉬움을 발견해서 방송 화면을 대폭 수정했나?

작년에 소위 '보라색 논란'이 항상 있었다. 당시엔 LCK 하면 떠오르는 핵심 색깔을 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프리미어 리그나 LEC도 형광색 톤의 특징을 아이덴티티로 잘 가져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하고 보니 이게 정말 팬들이 원하는건가 싶었다. 보라색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각 팀의 색이 두드러지지 못했다.

그 결과, 팬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모바일 플랫폼에서의 가시성도 고민했다.

▲ 보라색 맛이 났던 2019 LCK

▲ 2020 LCK에서는 2D와 팀별 고유의 색깔을 통해 가독성에 힘을 줬다

이번 스플릿 배경색은 무채색이다. 팀들의 개성을 최대한 예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배경에는 무채색과 3D 각인 스타일을 넣고 앞에는 세련된 2D 디자인을 넣었다. 팀별 고유의 색깔을 뽑아냈고 그걸 디자인에 하나하나 녹였다.


Q. 전체적인 디자인을 2D로 선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모바일 가독성에 강점을 보이려면 개인적으로 2D가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2D가 3D보다 만들기 쉽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론 반대다. 3D로는 소위 있어 보이게 하기에 2D보다 쉬운 측면이 있다. 2D는 정말 하이 퀄리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정말 없어보인다.

작년 스프링에 2D와 보라색을 배합했을 때 별로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래서 섬머에는 3D 요소를 많이 집어넣었다. 다시 고민해본 결과, 팀들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점과 플랫폼에 관계없이 가독성이 좋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Q. 오프닝 영상 스타일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이번엔 기존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나고 싶었다. 매번 영상을 보면 선수들이 슬로무 모션으로 걸어가거나 팔장을 낀 자세로 상대를 노려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고착화된 방식에서 벗어나는 걸 추구했다. 결국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에 대한 갈증 해소였다.

▲ 많은 변화를 꾀한 오프닝 영상

이번 영상은 총 5개의 문단으로 나눠져있다. 새롭게 합류한 APK 프린스, 선수들이 서로 뒤바뀌는 kt 롤스터와 아프리카 프릭스, 샌드박스 게이밍과 담원게이밍의 라이벌 구도, T1과 젠지 사이에 화제가 됐던 '클리드' 김태민을 중심으로 한 신흥 갈등 구도, 드래곤X와 그리핀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 이 다섯 가지를 오프닝 영상에 담았다.

오프닝 영상 BGM도 일부러 힙합을 선택했다. 기존처럼 록 발라드를 활용하면 해왔던 스타일 그대로 편하게 만들 수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변화를 줘야 했다. 이것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스토리텔링과 연관이 있다고 보시면 좋을 거 같다.


Q. 밴픽 화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챔피언이 최대한 잘 보이게 크기를 키웠다. 모든 칸에 들어가는 챔피언의 초상화는 직접 잘라넣었다. 카메라 감독님들이 사실 많이 힘드실거다. 밴픽 화면에서 디자인을 다 걷어내면 화면 구도가 상당히 이상해진다. 카메라 감독님들은 그 이상한 구도로 계속 화면을 잡고 계신거다. 얼굴이 화면 중앙에 들어가고 그 위가 죄다 배경인 이상한 구도 말이다. 하지만 그래야 밴픽 디자인을 넣었을 때 구도가 예쁘게 나온다.

▲ 직관적으로 변한 밴픽 중계 화면


Q. 밴픽 진행 중에 잡히는 방송 화면에는 어떤 기준과 판단이 녹아있나?

그 날의 스토리가 가장 잘 드러나도록 화면을 잡는다. 밴픽에 돌입하면 생각보다 단순하다. 보통 예측이 들어간다. 메타상 바텀 듀오를 먼저 선택하는 게 유행이라면, 픽을 하는 탑 라이너 말고 바텀 듀오를 번갈아 비추는 식이다. 요즘은 카메라 감독님들이 밴픽 도사가 되셔서 콜을 드리기도 전에 알아서 화면을 잡아주신다. 게임 이해도가 높아지셨다.

밴픽에 들어가기 전이나 후에는 포인트가 되는 사람을 잡는다. 예를 들어, '페이커'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르블랑을 선택했다면 '페이커'를 집중적으로 화면에 담는다. 깜짝 픽이 나왔다면 밴픽을 주도한 감독이나 코치를 찍기도 한다. 선수들의 명암을 조명하기도 한다. 예전 kt 롤스터와 드래곤X의 대결에서 '쿠로'는 캐리하고 '표식'은 아쉬웠던 경기가 있었다. 그럼 그 다음 세트 밴픽 시작 땐 '쿠로'와 '표식'을 번갈아 잡기도 한다.

물론, 중계진이 특별히 언급해주는 선수나 인물이 있다면 그걸 듣고 카메라 화면을 그쪽으로 넘기기도 한다. 팬들이 현장을 찾아주셨을 땐 사연이 있는 분들이나 재밌는 치어풀을 들고 계신 분들도 방송 화면에 담는다. 특히, 외국인 팬들은 빠짐 없이 담고자 한다. 한국 여행 중에 좋은 추억을 남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Q. 경기 화면 내 실시간 데이터들이 화제다.

e스포츠가 스포츠로 가는 과정에서 데이터 강화는 필연적이라고 본다. 스포츠는 가볍게 즐기는 사람들과 좀 더 몰입해서 보는 사람들로 나뉘는데 각자 서로 다른 의미로 데이터 공개를 원한다. 가볍게 즐기는 사람들은 좀 더 경기를 직관적으로 보기 위해, 전문적인 시각을 가지신 사람들은 자신의 분석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 경기 중 공개되는 데이터가 더욱 다양해졌다

e스포츠는 스포츠보다 이런 점에서 좀 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모든 데이터가 일원적으로 다 서버에 저장된다. 그걸 빠뜨리지 않고 공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린 화면 캡처 하나로 그 때 상황을 모조리 보여주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경기 결과 화면 같은 경우는 그 자체가 '짤방'이 되도록 만들자는 모토를 갖고 있다.


Q. 앞으로 방송 화면에 더 담고 싶은 것들이 있는지?

밴픽률도 스플릿 초반에는 담지 못하다가 최근 추가했다. 특히, 담고 싶었던 건 인게임 내 데이터나 하나의 스플릿 동안 쌓인 데이터였다. 예를 들어, 르블랑의 역대 밴픽률과 승률 같은 것들 말이다. 리워크나 리메이크에 따라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름 중요한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쿠로'나 '페이커'이 르블랑을 선택함과 동시에 두 선수의 르블랑 역대 승률이 들어가는 식이다. 꼭 특정 선수의 대표적인 픽들이 아니더라도 나중엔 다양한 선수들의 다양한 픽에 대한 데이터를 방송 화면에 내보내고 싶다.

▲ 위 내용은 실제 중계 화면에 반영됐다

또 하나는 특정 챔피언에 대한 선호도 등 좀 더 세부적인 데이터다. 메타에 따라, 팀의 판단에 따라 같은 챔피언이라도 선호도나 티어가 다르다. 이걸 조사하고 분석해서 밴픽 단계에 해당 챔피언이 등장하면 그와 관련된 데이터를 보여주고 싶다. 챔피언 뿐만 아니라 조합에 대한 것도 같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패치 노트 소개 방송도 변화를 주고 싶다. 예전엔 너무 패치 내용에 대한 설명만 있었다. 사실 패치 내용을 우리 방송에서 보길 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거다. 시청자들은 패치 내용이 LCK 혹은 각 팀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그런 걸 담고 싶다. 간단한 예로, 킨드레드가 버프를 받았으니 '표식'에게 유리할 수 있다던지. 출연자들에게 부담이 될 순 있지만, 그걸 잘 해내면 자신의 역량에 대한 평가를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Q. 데이터도 좀 더 다양한 것들을 보게 될까?

정글러 히트맵이나 선수들의 와딩 포인트에 대한 건 항상 고민 중이다. 준비를 하곤 있는데 어떤 식으로 보여줘야 할 지 모르겠다. 중계 화면에서는 사실 보여주기 어렵다. 분석 데스크에서 활용하는 걸 생각 중이다. 팬들이 그런 데이터들을 중계 화면, 또는 분석 데스크 등에서 보고 싶어한다면 추진하려고 한다.

그리고 스포츠에 있어서 데이터를 활용한 예측이라는 건 언제나 재미 요소가 된다. 단순히 따라가는 데이터가 아닌, 예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데이터를 공유하고 싶다. 예를 들어 총 골드 수급량 데이터를 발전시키는 거다. A라는 미드 라이너가 지금까지 골드를 이만큼 벌었는데 앞으로 몇 분 후면 '라바돈의 죽음모자'를 구매하게 된다, 이런 데이터들. 그럼 경기 내용을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될 거다.

또 하나 시도했던 건 슈퍼 플레이가 나왔을 때 리플레이에 키보드 입력 코드를 띄우는 거였다. 경기에 나서는 선수의 프로 뷰를 그 선수 얼굴 화면과 동시에 잡아주는 건 현재 LCK 밖에 없다. 그런데 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다. 보통 슈퍼 플레이가 나오면 프로 뷰 화면과 선수 얼굴 화면을 조합해 송출하는데, 그때 플레이했던 키를 화면에 띄워주면 어떨까. 말 그대로 스킬 콤보를 보여주는 거다. 아이디어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Q. 분석 데스크도 많이 바뀌었다.

일단, 멤버 교체가 있었다. '캡틴잭' 강형우와 '좁쌀' 현수환은 군입대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다. '매드라이프' 홍민기는 우리 입장에선 잡고 싶었는데 본인이 개인 방송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그런 와중에 분석 데스크를 위해 필요한 인재들이 많이 생겼다. 해외 리그에서도 몸 담아봤던 선수 출신 분석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희망이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과 접촉한 결과, '와디드' 김배인과 '리라' 남태유를 출연자로 확정하게 됐다.

분석 데스크는 그동안 너무 미시적 분석에 초점을 둔 것 아니냐는 피드백을 받았다. 대세에 대한 분석에 대해 부족함을 느꼈던 분들이 있었다. 그리고 분석가들 사이에 너무 이견이 없었다. 난 그게 싫었다. 이번 스플릿 분석 데스크에는 자신들의 색깔을 좀 더 드러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했다. 본인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이야기를 강하게 어필해달라고 계속 주문 중이다.

▲ 속시원한 분석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와디드' 김배인

분석 데스크가 경기 중 쉬는 시간에만 편성되어 짧은 느낌이 든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분석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따로 편성할 생각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지는 계속 고민 중이다. 우리보다 글로벌 쪽에서 먼저 진행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번외로 SNL에서 해외 리그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의 근황에 대해서도 담을 계획이다. 현재 상황으론 힘들겠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해외에 직접 취재를 가는 방식도 좋을 것 같다. 매번 담지는 못하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보여드릴 계획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항상 많은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모두가 만족하는 방송을 만들기는 힘들겠지만 피드백을 주시면 그걸 최대한 빨리 반영하고자 노력 중이다. 우린 피드백만큼은 우리가 가장 빨리 받아들인다는 인식을 주고 싶다. 방송도 패치가 빠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걸 모토로 삼고 있다.

우리도 방송 제작자 이전에 한 사람의 플레이어들이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고민 중인 만큼 진정성에 대해 알아주셨으면 한다.

아쉽게도 1라운드 일정이 마무리되면 코로나19로 인해 LCK가 잠정 휴식기에 들어간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선수와 출연진, 근무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수시로 검토했고, 현장에 적용했다. 한창 판도가 뜨거워지는 시점에 중단을 하게 돼 우리 역시 너무 아쉽다. 그러나 리그 구성원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재개하게 될지 현시점에서 알수 없지만, LCK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모두들 부디 건강 잘 챙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