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결국 우승 후보로 점쳐졌던 두 팀, 젠지 e스포츠와 T1이 대망의 결승전에서 만났다. 둘 중 한 팀은 2020 LCK 스프링 스플릿 트로피를 손에 넣는다.

젠지 e스포츠는 로스터가 완성된 시점부터 LCK 최상위 팀으로 분류됐다. LCK에 늦깎이로 데뷔하자마자 정상을 찍은 '클리드' 김태민와 FA 최대어로 꼽힌 '비디디' 곽보성, 그리고 이제는 젠지맨이 된 '룰러' 박재혁의 네임 밸류 때문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젠지 e스포츠는 정규 시즌 1위로 결승에 직행했다.

T1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2019 시즌의 주축이었던 '칸' 김동하와 '클리드'가 이탈하면서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페이커' 이상혁을 중심으로 한 후반 운영에서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승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서 드래곤X를 꺾고 결승까지 왔다.


젠지 - 2,164일 만에 밟는 결승 무대
2014년 삼성 블루 이후 첫 LCK 결승


우리의 기억 속 젠지 e스포츠는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우승 트로피와 준우승 타이틀을 보유한, 명실상부한 LCK의 명문 팀이다. 삼성 형제팀 시절까지 포함하면 두 번이나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는 롤드컵 3회 우승의 T1을 제외하면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좋은 성적표다.

하지만, 유독 LCK와는 인연이 없었다. 2013년과 2014년 삼성 화이트와 삼성 블루의 우승 이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승컵을 거머쥐지 못했다. 사실 우승 근처까지도 가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결승 무대를 밟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LoL 엑소더스'로 형제팀 선수 전원이 팀을 떠나고 암흑기를 겪었던 2015년, '앰비션' 강찬용의 영입으로 재기에 성공한 2016년, 롤드컵 우승에 빛나는 2017년, 다시 주춤했던 2018년, 최악의 한 해를 보낸 2019년까지. LCK에서의 최고 성적은 최종 3위다. 그것도 2017 스프링 단 한 번.

이번 결승전은 젠지 e스포츠에게 2,164일 만의 결승전이다. 올해는 스토브 리그 기간부터 우승 후보로 점쳐졌기에 어쩌면 당연하기도 한 수순이지만, 그간 먼 길을 돌아온 젠지 e스포츠에게는 뜻깊은 도전이자 더 큰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다.


T1 - 익숙한, 하지만 새로운 도전
김정균 감독 없이 맞이하는 첫 LCK 결승


T1은 우승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한 LoL 역사상 최고의 팀이다. 롤드컵 3회 우승, MSI 2회 우승, LCK 8회 우승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지난해에도 LCK 스프링과 섬머 우승을 독차지했다. 이 기록을 깨부술 수 있는 건 T1 자신 밖에 없다.

올해도 T1은 익숙하게 또 LCK 결승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어딘가 새롭다. '페이커' 이상혁과 함께 팀의 주축을 이루던 원년 멤버 김정균 감독이 떠난 뒤 김정수 감독 체제에서 처음 맞는 결승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정수 감독 역시 큰 무대 경험이 많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 기대가 앞선다.

사실 앞서 말했듯 로스터가 발표됐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T1의 난항을 예측하는 시선이 많았다. '칸'과 '클리드'의 이탈이 주된 이유였다. '칸나' 김창동은 완전한 신예였고, '커즈' 문우찬도 최상위권 정글러이긴 했지만, '클리드'에 비해선 확실히 임팩트가 약했다.

하지만, T1은 생각보다 빠르게 폼을 끌어올렸다. '페이커' 이상혁이 중심에서 팀을 이끌었고, '테디' 박진성이 후반 보증 수표로 나섰다. 덕분에 T1은 승리를 챙기면서 '칸나'가 성장하고, '커즈'가 팀에 녹아들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결국 '칸나'는 PO 2라운드 드래곤X전 맹활약으로 팀에 보답했다.


상대 전적은 T1이 우세
이번 정규 시즌도 T1의 2전 전승

상대 전적은 T1이 확실히 앞서고 있다. 단일팀으로 바뀐 2015년도부터 T1은 젠지 e스포츠에게 23승 6패(세트 기준 50승 24패)를 거뒀다. 물론 T1은 그간 무수히 많은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만큼 거의 모든 팀을 상대로 승률이 좋기는 하나, kt 롤스터(21승 1무 7패)나 드래곤X(16승 10패)와 비교해도 격차가 좀 더 크다.

▲ T1과 젠지 e스포츠의 다전제 전적

그런데, 다전제의 큰 무대에서는 젠지 e스포츠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양 팀은 2016년과 2017년 롤드컵 결승, 2017년과 2018년 LCK 포스트 시즌, 2018년 롤드컵 선발전에서 맞붙었는데, 경기로 따지면 T1이 한 경기 앞서지만, 세트 기준으로는 10:10으로 팽팽하다.

이번 시즌도 아직은 T1이 상대 전적을 리드한다. 동일한 로스터로 맞붙은 2019 LoL KeSPA컵을 시작으로 정규 시즌 두 라운드까지 3번의 대결 모두 풀세트 끝에 T1이 승리했다. 과연 2020년의 첫 5판 3선 경기이기도 한 결승에서는 누가 웃게 될까.


승부처는 미드-정글
양 팀 감독도 허리 싸움에 주목

T1과 젠지 e스포츠의 대결에서 승부처로 꼽히는 건 단연 미드-정글이다. 게임 특성상 스노우볼의 시작점이 되는 초중반 주도권이 미드-정글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젠지 e스포츠가 워낙 강력한 미드-정글을 보유해 T1이 이를 받아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됐다.

양 팀 감독 역시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대결의 핵심은 미드-정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T1 김정수 감독은 "젠지 e스포츠가 미드-정글 스노우볼을 잘 굴리는 팀이라 여기서 밀리게 되면 힘들 수 있다"고 했고, "우리도 맞받아칠 것"이라며 팽팽한 미드-정글 싸움을 예고했다.


또다른 관전 포인트는 '클리드'다. '클리드'는 '비디디'와 함께 젠지 e스포츠의 초중반 스노우볼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T1전에서 젠지 e스포츠의 발목을 잡은 건 이 '클리드'의 기복이었다. '클리드'는 유독 T1전에서 무기력했다. 친정팀에 대한 압박감 때문인지 플레이와 판단에서 실수가 잦았다.

'클리드'가 힘을 쓰지 못한다면, 경기 양상은 정규 시즌과 비슷하게 T1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든 부담과 압박을 덜고 제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클리드'의 번뜩이는 공격성과 라인 개입 능력이 나와야 젠지 e스포츠의 무기가 더 날카로워질 수 있다.

봄의 왕좌를 차지할 팀을 가리는 마지막 무대다. '코로나19' 여파로 으리으리한 경기장이나 팬들의 환호와 함성을 바랄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10명의 선수 모두 그간 갈고 닦은 실력을 100% 발휘해 이런 아쉬움을 달랠 또하나의 명경기를 만들어주길 바라본다.


■ 2020 우리은행 LoL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스플릿 결승전

젠지 e스포츠 vs T1 - 25일 오후 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