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소프트웨어의 신작 게임 '엘든 링'이 출시된 지 어느덧 2주가 흘렀다.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힌 게임답게 스팀 통계 기준 접속자 최대 95만 명을 달성했으며, 현재도 꾸준하게 평균 60만 명 이상의 접속자를 유지하면서 스팀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PC뿐만 아니라 PS, Xbox 등 콘솔 플랫폼까지 합친다면 역대급 성공이라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엘든 링'이 처음부터 이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출시 첫날인 25일 기준 23,614개의 긍정적 평가와 14,185개의 부정적 평가가 달리면서 게임의 평가는 복합적으로 굳어졌다. 당시 스팀 리뷰가 일시적으로 잠겼던 것을 생각한다면 실제 보이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달렸던 부정적 평가는 대부분 게임의 최적화, 그리고 레벨 디자인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최적화는 PC 플랫폼 기준 사양에 상관없이 잦은 프레임 드랍이 발생했으며, 그래픽 성능을 최대로 높이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전투 자체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액션 게임에서 최적화 이슈는 꽤 치명적인 문제인지라 게이머의 항의는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 점차 부정적 비중이 줄어들고 긍정적 비중이 높아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출시 첫날과 달리 이튿날부터 부정적인 평가보다 긍정적 평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3월 3일에는 매우 긍정적 평가로 돌아섰다. 지금도 여전히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 최적화와 관련된 내용뿐이고 게임 자체는 재미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평가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상황이다.

프롬소프트웨어의 오랜 팬으로서 '엘든 링'이 이처럼 재미있고 또 잘 나가는 모습이 흐뭇한 한편, 왜 이렇게까지 잘 나가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도 그럴게 프롬소프트웨어의 주 분야는 소울라이크, 즉 매니악한 장르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빈말로도 대중적인 게임이라곤 할 수 없으며, '엘든 링'의 경우 전작보다 보스들의 엇박자 패턴이 많아져 악랄해졌다는 평가가 이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어려운 게임, 매니악한 게임이란 명함에도 불구하고 '엘든 링'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 재미있다, 잘 만들었다로 함축할 수 없는 '엘든 링'의 인기 비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스팀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는 엘든 링 (이미지 출처 - Steamdb)

먼저, 소울라이크 장르가 왜 매니악한 장르의 게임으로 불리는지 알 필요가 있다. 아마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이유를 알 테지만 부연 설명을 하자면 미칠 듯이 어려운 난이도에 있다. 지나가는 졸병A가 휘두른 무기에도 자칫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들의 공격력이 높게 측정되어 있으니 보스 몬스터의 경우에는 얼마나 더 강력할지 딱히 말 안 해도 추측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프롬소프트웨어의 치밀한 레벨 디자인이 더해지면 유저는 게임을 하는 내내 온갖 시련과 역경을 마주해야 한다. 보통 프롬소프트웨어 게임은 일자 진행이기 때문에 특정 구간에서 막혀도 우회할 수 없다. 모 아니면 도 방식의 전개와 더불어 전투 중에도 스태미나와 포션 등 한정된 자원 속에서 최적의 공격을 펼쳐야 하니 무턱대고 싸울 수도 없다. 패턴을 모르면 아예 깰 수조차 없는 보스도 있어 어중간한 컨트롤의 소유자라면 아마 수십, 수백 번의 도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려운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실패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지만, 굳이 재미로 즐기는 게임에서조차 실패를 겪길 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힘들게 보스를 잡았을 때의 쾌감이 엄청나긴 해도 굳이 이 때문에 힘든 소울라이크 게임을 하려 하진 않는다. 일종의 밈처럼 굳어져 소울라이크 게임이 대중들에게도 인식됐지만, 5년 전에 출시된 '다크소울 3'의 스팀 전체 게임 플레이 통계를 보면 게임의 엔딩을 본 사람은 전체 이용자의 23%밖에 되지 않는다.

▲ 정석 엔딩 기준 23%의 달성률을 보이는 다크소울 3

'엘든 링' 역시 프롬소프트웨어에서 만든 게임답게 기존 소울라이크 시리즈의 특징을 이어받았다. 딱 한 가지, 레벨 디자인을 제외하고 말이다. 원래 프롬소프트웨어가 자랑하던 치밀한 레벨 디자인은 오픈 월드로 게임의 구조가 바뀌면서 이전 시리즈와는 다른 방식으로 변했다. 기존에는 개발사에서 의도한 대로 진행해야 했지만 이제 유저가 원하는 루트로 게임을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엘든 링'의 평가가 달라지는데에도 일조했는데 출시 초반에는 '엘든 링'을 단순히 전작과 비슷하게 보고 게임에서 알려주는 대로 일자 진행을 한 유저들이 대다수였다. 축복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간다면 저 레벨 구간에 스톰빌 성에 진입하게 되고 너무나도 강력한 몬스터에 의해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픈 월드를 활용한 진행 및 성장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 덕분에 게임의 진입 장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초반에 토렌트(말)를 얻고 난 뒤 곧바로 스톰빌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림그레이브 남부나 흐느낌의 반도에서 천천히 파밍을 하고 난 뒤에 스톰빌 성으로 향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첫 관문인 접목의 고드릭을 쓰러트리는 것이 가능하다.

▲ 초반에는 웅장했던 스톰 빌도 성장 후에는 그저 그런 레거시 던전이 될 수 있다

특히, 이전 시리즈에서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점차 물약의 횟수와 효율을 늘릴 수 있었다면 '엘든 링'은 맵을 돌아다니면서 물약 업그레이드에 관련된 재료를 찾을 수 있다. 물약 한 개 차이로 죽을지 살지가 결정될 정도로 게임 내에서 아주 중요한 아이템을 그저 맵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엘든 링'의 레벨 디자인의 기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극명하게 알려주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또한, 극단적인 예시긴 하지만 초반부터 후반부의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고효율의 룬 노가다를 진행하면서 단숨에 고렙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게임의 난이도 자체가 꽤 높으므로 캐릭터의 레벨이 높다고 해서 게임이 유아용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롬소프트웨어의 다른 게임들을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레벨 디자인에 더해 전투의 변화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은 기본기에 충실한 전투 시스템을 보여왔다. 캐릭터의 스킬보단 평타와 구르기 등 기본기에 충실해야 비로소 게임을 수월하게 깰 수 있었다. '다크소울 1'에서 몇몇 무기에 특수한 기술이 내장되어 있거나 '다크소울 3'에서 FP라는 개념이 추가되고 부가적인 기술이 나타나긴 했지만, 이런 장비는 후반부에서 얻을 수 있었고 결국 중요한 것은 기본기였다.

▲ 다크소울 1에도 특별한 기술을 내장한 무기는 존재했다

반면, '엘든 링'은 기존에 전투 기술에서 발전한 전회라는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큰 변화가 나타났다. 전회는 무기에 특별한 기술을 부여할 수 있는 일종의 스킬 개념이다. 가령, 돌진 전회를 롱소드에 부여하면 롱소드를 들고 돌진을 하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게임 내에는 수많은 전회가 등장하며, 몇몇 전회는 전투의 양상 자체를 바꿔버릴 만큼 사기적인 능력을 자랑한다.

최근 떠오르는 기술인 서리 밝기의 경우, 짧은 발구르기로 넓은 범위에 얼음 광역 피해를 주는데 준수한 피해량과 짧은 딜레이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필드에서 빠르게 입수할 수 있는데다 사용 FP도 적으니 이런 사기 전회만 얻어두면 평소에는 도전하기 어려운 몬스터라 할지라도 수월하게 쓰러트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몇몇 특수 무기는 이보다 더 강력한 성능의 전회가 내장되어 있으니 다양한 전회를 통해 입맛대로 게임을 공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마법 역시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과거 시리즈에서 마법은 단순한 견제용으로 사용됐다. 숫자도 많지 않았고 성능 역시 효율을 생각하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유저가 근접 캐릭터를 선호했다. 그에 반해 '엘든 링'은 지력, 신앙에 영향을 받는 수많은 마법이 존재하며, 처음부터 마법사로 육성해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 일 대 일과 일 대 다수의 싸움은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이번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한 영체 시스템을 잘 활용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근접 캐릭터보다 마법 캐릭터가 더 높은 효율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체들이 몬스터의 시선을 끄는 사이에 원거리에서 부담 없이 적을 공격할 수 있으니 컨트롤이 부족한 유저라 할지라도 쾌적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장비와 마법의 효율이 높아지다 보니 유저들은 더 좋은 성능의 장비들을 찾아 떠나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오픈 월드를 탐험하는 계기가 되면서 콘텐츠 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종합해보자면 '엘든 링'은 일자식 진행 구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전투의 다양성을 통해 진행 방식의 다채로움을 충족했다. 덕분에 프롬소프트웨어가 구현한 어려운 전투 난이도가 유저에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여전히 어려운 게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소울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할 만하다", "생각보다 초보자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등의 스팀 평가를 종종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대한 오픈 월드와 함께 다양해진 육성 방식 덕분에 게임에서 파고들 수 있는 요소가 많아졌다는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단순히 엔딩을 보고 끝내는 게임이 아니라 RPG처럼 계속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적당한 장비 파밍을 통해 나만의 빌드를 만드는 다양한 컨셉 플레이가 가능해진 셈이다.

▲ 특별한 장비와 특별한 기술이 게임 플레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물론, 여러 변화 덕분에 보스의 패턴이 이전 시리즈와 비교한다면 훨씬 악랄하게 디자인되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유저의 구르기 타이밍을 뺏는 엇박자 패턴과 듀오 보스가 종종 등장하며, 일반적인 구르기에는 쉽게 피하기 어려운 빠른 템포의 공격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적도 존재한다. 전체적으로 성장이 쉬워진 탓에 너무 쉽게 보스를 설계할 경우 되려 프롬소프트웨어 특유의 맛이 죽어버릴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한 편으론 너무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적화 문제도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출시 첫날부터 지금까지 프롬소프트웨어가 적극적으로 게임 최적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말했듯 게임 최적화가 중요한 액션 게임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정상적인 수준으로 맞춰둘 필요가 있다. 현재도 대다수의 부정적인 평가가 최적화에 대한 부분이니 이 점만 잘 수정한다면 압도적인 긍정적 평가를 받을 날도 머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출시 전부터 기대도 많이 받았고 출시 후에는 부정적인 평가도 뒤따랐던 '엘든 링'이다. 확실한 것은 프롬소프트웨어의 전략적 판단이 게이머들에게 적중했다는 점이다. '엘든 링'은 그간 소울라이크 장르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 게임이자 앞으로 소울라이크 장르에 큰 변화를 더해줄 게임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