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하는 악마의 후예


게이머들이라면 '악마의 게임'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주변에서 할만한 게임 뭐 있냐고 물어본 친구에게 악마의 게임 중 하나인 문명을 저녁에 추천해 줬다가 다음날 점심쯤에 "할만하네"하고 대답을 받아본 기억이 있거든요. 흔히 타임머신이라고 할 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게임들을 악마의 게임이라고 하죠.

그 악마의 게임, 타임머신과 같은 게임들은 3대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문명하셨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위상을 가진 '문명' 시리즈와, 축구를 모르는 사람도 축구에 빠져들게 만드는 '풋볼 매니저' 시리즈가 있죠. 그리고 여기에 마지막으로 꼽혔던 게임이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입니다. 흔히 히마매, HOMM이라고 하죠.

HOMM 시리즈 중에 으뜸으로 꼽히고 한국에서도 인기를 크게 구가했던 시리즈는 3편입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후 시리즈 중에서는 5편을 제외하고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위상이 좀 떨어졌죠. 그렇지만 지금도 HOMM3를 플레이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게임은 이 악마의 게임의 후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감성이 듬뿍 살아있는 레트로 그래픽의 게임, '히어로즈 아워(Hero's Hour)'입니다. 이름에 시간이 왜 들어갔나 했는데, 이게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라서 그런가 싶을 정도 재밌습니다. HOMM 시리즈 팬이시라면 놓치면 안 될 게임 같을 정도로 말이죠.


게임명 : 히어로즈 아워(Hero's Hour)
장르명 : 전략
출시일 : 2022.1.27.
개발사 : ThingOnItsOwn
서비스 : STOVE, Goblinz Publishing
플랫폼 : PC

관련 링크: '히어로즈 아워' 오픈크리틱 페이지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감성 듬뿍


히어로즈 아워는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을 플레이해 본 유저라면 정말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종족마다 세워진 마을(성), 맵 안에 추가로 생산할 수 있는 건물, 유닛 생산, 그리고 내정과 영웅을 성장하고 조종하면서 진행하는 전략 게임이죠. 그냥 정말 말 그대로 HOMM의 시스템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마을의 테크 트리(빌드)를 올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발전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서 영웅과 병력이 성장합니다. 마을마다 특정 병력을 '특화' 시킬 수 있는 특성화도 존재하고 점령한 마을을 전환시킬 수도 있고요. 또한 영웅들도 종족 마을마다 배울 수 있는 마법이 달라서 특정 능력을 특화 시킬 수 있기도 합니다.

그냥 복잡한 설명을 하고 특성 설명을 할 필요 없이 모든 면에서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향수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마을의 발전과 영웅 성장, 그리고 포탈과 영역 내 몬스터 리젠 및 성장, 심지어 마을 배치나 영웅 이동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서 HOMM의 향수를 느낄 수 있죠.

▲ 그래픽은 다르지만 정말 익숙한 이 느낌...

이게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금방 익숙해진 유저들이라면 어느새 훌쩍 지나버린 시간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성의 매력이 있습니다. 차근차근 마을을 발전시켜서 기틀을 다지고, 영웅들에게 좋은 장비를 제공하며 차근차근 영토를 확장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성장한 AI들이 튀어나와서 괴롭힙니다. 치고 빠지기식으로 내 병력과 행동력을 소모시키면서 목을 옥죄어 오죠. 이 쫄깃한 턴제 공방전까지 거의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죠.

▲ 유닛이나 영웅도 딱 보면 느껴집니다.

물론 어느 정도 턴제 전략 게임 형식과 맵 구조 및 형성에 일정한 토대가 있지만, 게임 세계는 무작위 생성이 도입되어 플레이할 때마다 같은 맵이라도 다른 감성을 느끼게 됩니다. 내 영토에 있는 점령지들을 확인하고, 내 종족에 따라서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 매번 플레이마다 바뀐다는 느낌이죠. 영웅과 진영까지 랜덤으로 설정했다면 매번 플레이마다 구상한 빌드를 바꿔야 합니다.

이런 점들을 통틀어 보면 정말 '도트 HOMM'이라고 하기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 3다 마의 게임에 하나에 들 만큼 높은 집중하고 빠져드는 플레이의 감각이 살아있습니다. 그 요소들이 무엇이고, 왜 그게 재미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구현했다고 볼 수 있죠. 이것이 바로 '히어로즈 아워'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도트 그래픽'과 작은 편의성, 그리고 오토 전투의 차별화

▲ 오히려 내정까지 너무 닮아서 당황스러울 정도인데...차별점은 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면 거의 카피캣 게임이라고 비난을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히어로즈 아워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만들어두었는데, 첫 번째는 도트 그래픽이라고 할 수 있죠. 아쉽게도 도트 그래픽이 정밀도가 엄청 높은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유닛들이나 영웅, 그리고 마을과 풍경 등에 대해서는 특징적인 부분을 잡아낼 수 있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세심하고 아름다운 레트로 그래픽보다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진 레트로 그래픽이라고 볼 수 있죠.

이 레트로 그래픽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 바로 전투 파트입니다. HOMM과 달리 히어로즈 아워의 전투는 '자동'으로 이뤄집니다. 물론 영웅인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할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나긴 하죠.

유닛이 우수수 나오고 날아가고 해서 신나는 전투가 펼쳐집니다. 실시간 '군단' 지휘!

내정과 이동, 확장은 턴제로 진행되나 전투가 오토 플레이로 진행되는 점은 생각보다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아마 HOMM에서 수천 마리의 부대가 단 한 칸에 있어서 '위용'을 보지 못한 분들이 조금 아쉬워할 수 있는 부분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죠.

각 유닛들은 타일 배치가 아니라 전장에 배치하면 숫자만큼 불어납니다. 그래서 중후반까지 이어지면 어마어마한 수량의 부대들이 튀어나와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죠. 물론 이는 클라이언트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것 같기에, 한 전장에 배치할 수 있는 병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대신 전장에 투입되지 못한 잔존 병력들은 '증원군'이라는 형태로 전장에 도입됩니다. 이러한 증원군은 전장 내 병력이 일정 이상 이탈하거나,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죠. 때로는 이 증원군에 의해서 판도가 크게 갈릴 정도로 나름대로 전략적인 요소입니다.

▲ 자동 전투로 진행되는 전장, 지휘하는 맛도 훌륭합니다.

여기에 영웅들의 영향력이 좀 더 크게 발휘됩니다. 영웅들이 배우는 주문과 효과에 따라서 주변 유닛이 강화되거나, 전장에서 상위 등급으로 진화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강력한 유닛을 더 약하게 만들거나 서로 싸우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영웅들의 주문이 강력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게임 속에서 상세한 설명이 있지 않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치 중 하나는 바로 '힘'입니다. 이 '힘'은 유닛과 영웅 모두 고유한 값이 있으며, 영웅들의 경우는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치이고 주문이나 기술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유닛들의 경우는 이 '힘'과 부피(크기)가 진형을 유지하고 부수는 데 꽤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정 유닛들은 돌진이나 밀치기 공격 등을 통해 유닛이 밀집된 부분을 와해시키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 '힘'과 더불어 특성(밀려나지 않음)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마 망치와 모루 개념을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러한 진영 붕괴가 얼마나 전선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쉽게 아실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추가로 이 '힘'은 나름대로 유닛의 등급이나 능력을 구분하는 역할도 가지고 있어서, 힘이라는 개념이 여러가지로 쓰이는 부분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힘에 따라서 주문의 대상이나 효과를 받는 부분도 크게 달라지니까 전략적 선택도 필요하고요. 힘은 매우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능력치기에, 전략의 새로운 하나의 요소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유닛의 특수 능력들이 전장의 판도를 크게 가르기도 합니다.

여기에 비행 속성 유닛들은 유닛들을 공중으로 끌고 가 낙하시키기도 하면서 공격력보다 뛰어난 대미지를 주기도 하고, 각종 스펠과 투사체에 유닛들의 스킬까지 더해지면서 전장이 엄청 다이나믹하게 변합니다. HOMM에서 대군을 이끌어도 타일 하나만 차지하던 것과 달리, 전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죠.

이것이 히어로즈 아워가 HOMM와 차별화를 둘 수 있는 가장 큰 개성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추가로 스킬 트리나 병력 소지 한도 및 증원군 및 모험 건물 등 여러 가지 요소들로 다른 느낌을 주려고 한 부분은 보이지만, 아무래도 레트로 그래픽의 장점을 잘 살린 전투가 가장 부각되는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가로 영웅을 뽑아 병력만 사용하고 자원을 50% 상승시키는 캠핑 기능을 활용하여 빌드 업을 빠르게 하는 또 다른 잉여 영웅의 활용처도 만들어 둔 점은 괜찮아 보입니다.



너무나 거대한 HOMM의 그림자


비록 자동 전투 등 몇 가지 포인트로 차별화를 주긴 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히어로즈 아워'는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의 감성이 가장 잘 살아있다는 점이 특징이자 장점이자. 그리고 이는 반대로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HOMM'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점이기에, 그렇다고 '참 개성 있는 게임이다'라는 평가를 주기가 매우 힘듭니다.

장르적인 한계도 약간은 눈에 띕니다. 이러한 전략 게임은 RTS의 경우는 '대전'을 통해 치열한 전략을 주고받는 멀티플레이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HOMM도 이와 비슷한 시도를 하려고 했었고요. 그렇지만 반대로 '거대한 서사시'를 보여주는 캠페인 시나리오를 도입하기도 하죠. HOMM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선택한 게임이기도 하고요. 3편부터는 본격적으로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유저들이 있었고, 유비소프트로 이관된 5편부터는 동시 턴 기능을 도입하면서 변화를 맞이했죠.

그렇지만 현재 '히어로즈 아워'는 멀티플레이에 한계가 있습니다. 사실상 리모트 플레이를 통한 순차 멀티플레이 모드밖에 지원이 되지 않죠. 결국 진영과 빌드 모두 노출되기에 양심에 맡기고 플레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싱글 플레이의 재미는 충분하지만 멀티플레이는 아직 챙기지 못했단 점이 아쉽죠.

▲ DLC를 구매해야 좀 '챔피언' 답게 보이는 유닛들도 있는 점도 살짝 아쉬운 부분.

또한 스토리도 다소 빈약합니다. 캠페인 테스트 맵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아직 적용되지 않아 보입니다. 나름대로 각 타운과 영웅들의 이야기들의 설정을 잡아둔 흔적들은 보이는데, 이를 활용하여 캠페인이 만들어지지 않아 매우 아쉽습니다. 물론 각 타운별 캠페인을 짜임새 있게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공수가 들기에 이해는 할 수 있죠. HOMM이 에라시아 대륙의 이야기로 거대한 서사시를 썼고 이를 좋아하는 팬층도 있던 점을 보면 아쉽긴 합니다.

여기에 비록 몇 가지 편의 기능을 넣었지만 아직은 부족하고, 사운드도 적당히 어울리는 정도로만 있기에 정말 잘 만든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있어서 아쉽습니다. 또한 한국어를 지원하긴 하지만, UI 스케일링이나 한국어화에 아쉬운 부분도 있고 자잘한 버그나 오래 게임을 하면 지연되는 현상도 있고요. 전체적으로 플레이 하는데 큰 지장은 없는데 하나 둘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약간은 마감새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HOMM의 그림자는 단점이자 장점입니다. HOMM 시리즈는 '악마의 게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마성적인 흡입력을 가진 게임이니까요. 막상 단점은 한 걸음 물러나야 하나 둘 잡히는 편이고,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그저 세력을 불리고, 싸우고, 정복하는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악마의 게임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마력적인 몰입감을 가졌죠. 즉, 개성과 차별화가 아쉬울 뿐이지 게임 자체는 그 감성이 듬뿍 담겨있기에 몰입감이 뛰어나고 재밌습니다. 재미없는 게임은 아닌데 신선함과 개성이 부족한, '어디서 해 본 느낌'이 강하죠. 그게 HOMM이라서 참 재미있는게 문제고요. 정말 재밌으니 좀 더 노력해서 더 차별화된 개성있는 부분을 만들어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입니다.

게임 자체는 살짝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빌드와 전략을 잘 구사한다면 정말 싱글 플레이에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플레이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소 아쉬운 그래픽은 서포터즈 팩을 구매하면 꽤 괜찮은 최종/상위 티어 유닛을 볼 수 있게 바뀌기도 하고, 나름대로 개발사에서도 타운 및 영웅 능력과 주문에 대해서는 밸런스 조정을 대응하고 있어서 긍정적이고요.

물론 여전히 몇 가지 사기적인 능력들과 운영 능력이 있고 이를 자체 맵핵을 갖고 있는 AI가 사용하면 골치 아파지긴 합니다. 그래도 그걸 극복하고 승리하는 게 과거 HOMM에서 팬들이 느꼈던 나름의 희열이 아닐까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HOMM 시리즈, 그중에서도 3편과 5편을 좋아하셨던 유저들에게라면 부담 없이 추천해 줄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잠깐 신기해서 아침에 잡아본 게임을 어느새 저녁 먹을 때까지 하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HOMM 시리즈의 팬이라면 정말 강력하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