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에 직접 나서는 건 선수들이다. 이들은 상대 팀 선수들과 규정에 따라 합을 겨루며 경기를 치른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팀 혹은 선수 개인의 승패가 결정되곤 한다. 감독은 경기 중에 선수들을 실시간으로 진두지휘한다. 이를 통해 감독은 자신의 판단과 작전을 선수들에게 주입하며,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플레이해 남은 경기를 치른다.

e스포츠에도 선수와 감독이 있다. 선수들의 역할은 타 스포츠와 같다. 감독은 어떤가. e스포츠 경기 중에 감독, 더 넓게 코치들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경기 중에 선수들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분석을 하고, 경기가 끝나면 '이미 지나간' 플레이에 대해 피드백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e스포츠에서 잊을 만하면 항상 나오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감독과 코치 무용론'이다. 말 그대로 감독과 코치들(이하 코치진)이 e스포츠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코치진이 연습실과 숙소에서 선수들과 어떤 훈련을 하고 어떤 전략을 모색하는지는 팬들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경기 중에 팬들이 코치진의 역량을 체감하기에 가장 좋은 건 실시간 작전 지시와 그에 따른 경기 흐름의 변화인데 e스포츠에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e스포츠의 종목 특성 때문이다. e스포츠에서는 다른 스포츠처럼 선수들이 직접 행하는 움직임이 주가 아니다. 선수들이 조종하는 게임 속 캐릭터의 플레이가 곧 경기 내용이다. 그래서 '옵저빙(게임 화면을 중계 화면처럼 보여주는 것)'이 필수다. 옵저버가 잡아주는 인게임 화면을 통해 현장 관객과 시청자, 중계진 모두 경기를 시청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화면에는 당연하게도 양 팀의 시야가 모두 담긴다.

여기서 '경기 중 개입 불가'라는 e스포츠의 특징이 드러난다. 가령,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 중에 A팀의 정글러가 갱킹을 시도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모두가 인게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옵저버의 화면에는 이 움직임이 그대로 노출될 거다. 이걸 누군가 B팀에게 알려줘선 안 된다. 이건 양 팀의 코치진에게도 해당하는 내용이다. 정글러의 갱킹 뿐만 아니라 몰래 바론, 매복 전략 등 경기 중에 발생하는 수많은 상황에 통용되는 기본적이고 암묵적인 룰이다.


이 때문에 코치진이 경기 중에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등 개입할 여지가 사라진다. 코치진이 경기 중에 자신들의 역량을 펼칠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세트 종료 후에 선수들을 모아놓고 플레이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것이 곧장 이어질 다음 세트나 경기에 긍정적 영향을 행사할 순 있겠지만, 피드백하고 있는 그 경기의 승패는 이미 코치진의 피드백 시간 전에 결정된다.

그렇다면 코치진이 e스포츠에서도 경기 중에 자신들의 역량을 보여줄 방법은 없을까. 현재 방식대로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1. 감독이 선수들 뒤에 서서 작전을 지시한다?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공통 해결책은 감독에게도 선수들끼리 소통하는 데 활용되는 헤드셋을 주는 거다. 그럼 코치진도 선수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코치진도 상대 움직임을 너무 적나라하게 다 볼 수 있다'만 해결하면 된다.

프로게이머들이 경기 중에 착용하는 헤드셋은 같은 공간에서 성능 좋은 마이크로 크게 이야기하는 중계진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설계된다. 이를 돕는 현장 세팅도 필수다. 따라서 코치진도 선수들과 같은 헤드셋을 착용한다면, 경기장에 선수들이 앉아있는 곳에 함께 있어도 무방할 거다. 문제는 중계 화면이다. 현장에는 무조건 인게임 화면을 비추는, 즉 두 팀의 시야를 모두 제공해주는 중계 화면이 있다. 선수들은 이걸 절대 봐선 안 되는데, 그 규칙을 코치진에게도 적용하는 거다.

우선, 코치진은 헤드셋을 끼고 선수들 바로 뒷공간에만 머무른다. 그럼 머리 바로 위에 있는 큰 중계화면은 코치진의 시야에 닿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심판이 코치진 곁에 계속 머무르면서 중계 화면을 올려다보거나 관객석 쪽으로 시야를 돌리는 걸 확인해 이를 행하면 바로 강력한 페널티를 주는 규정을 추가하면 어떨까. 경기 중에 코치진은 오직 선수들 뒤를 돌아다니며 선수들의 모니터를 통해 경기 흐름을 파악하고, 헤드셋을 통해 실시간으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게 될 거다.


2. 코치진도 게임에 입장할 수 있게 해준다?


위 방법은 아무래도 위험해 보인다. 코치진이 현장 중계 화면을 순간적으로 보게 되거나 관객석에서 누군가 치어풀 등으로 상대 움직임을 알려준다면? 심판을 항상 대기시키고 규정을 강하게 적용한다고 해도 아예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아예 게임사 쪽에서 새로운 기능을 하나 개발할 수도 있다. 코치진이 게임에 입장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 물론, 양 팀의 시야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옵저버 권한이 그대로 주어지면 안 된다. 또 하나의 플레이어처럼 입장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코치진은 게임에 입장해 자신의 팀 시야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코치진을 게임에 입장하도록 해준 캐릭터는 경기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면 안 된다.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AOS 장르에선 맵 밖에 존재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고, FPS에선 실시간으로 바뀌는 전장을 볼 수 있도록 움직일 순 있지만, 공격도 방어도 못 하고 충돌 크기나 피격 판정도 없으며 보이지도 않는 캐릭터로 만들어져야 할 거다.

위와 같은 특징을 모두 지닌 코치진 전용 캐릭터를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 코치진 전용 옵저빙 모드를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A팀 코치진은 전용 옵저빙 시스템을 통해 A팀의 시야로만 게임 화면을 볼 수 있도록 제한을 두는 식이다. 그럼 코치진은 선수들과 같은 시야만 제공받은 채로 경기 흐름을 파악하고 분석해 최선의 작전을 실시간으로 지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e스포츠에도 작전 타임을 적용한다?


아예 다른 식의 접근도 가능하다. 코치진의 양심에 맡기는 일도, 게임 내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코치진은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똑같이 경기를 관전한다. 여기에 하나의 규정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작전 타임을 도입하는 것이다. 양 팀의 코치진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심판에게 작전 타임을 요구할 수 있고, 심판이 이를 받아들이면 경기가 중단되며, 코치진에게 지금 밴픽 과정에서 사용되는 헤드셋을 잠시 지급한다. 그러면 정해진 짧은 시간 내에 코치진은 선수들에게 앞으로 행해야 할 움직임이나 새로운 전략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아무 시점에나 작전 타임이 적용되면 경기 흐름이 끊길 수 있다. 제한을 둬야 할 것이다. 가령, 리그 오브 레전드는 상대 팀의 공격이나 전략이 어떠한 결과를 낸 이후에만 작전 타임 요청이 받아들여지거나 하는 식 말이다. 마치, 구기 종목에서 아군이 공격권을 갖게 되었을 때만 작전 타임에 돌입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너무 작전 타임이 잦아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한 세트당 1회 정도로 제한을 두는 것도 필요하겠다.



위 모든 방식은 'e스포츠에서도 경기 중에 코치진이 역량을 드러낼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상상에 의한 가정들이었다. 그렇기에 e스포츠 종목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존재할 거다. 실현 가능성을 따져봐도, 현재 시점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방식으로든 코치진이 e스포츠 경기 중에 작전을 지시하고 선수들의 플레이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단 코치진의 역량이 훨씬 잘 드러날 거다. 이를 통해 능력 있는 코치진의 존재감이 더욱 커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능력 증진을 위한 코치진의 노력도 증가할 것이다.

모든 스포츠에는 팬들로부터 인정받는 감독들이 있다. 이들은 선수단을 아우르는 카리스마와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판단력과 결단력, 종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e스포츠에도 그런 능력 있는 코치진은 많다. 이들이 좀 더 공개적인 자리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면, 'e스포츠에 감독이나 코치는 필요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점차 줄어들고, 팬들에게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받는 시대가 올 수 있지 않을까.